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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 다리를 잃었다. 그저 시킨 대로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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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 다리를 잃었다. 그저 시킨 대로 했더니..." [반복되는 산재 은폐 上]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전나라수 씨 인터뷰
전나라수(30) 씨는 4년 전 조선소 노동자가 되기 위해 울산으로 흘러들어왔다. 조선소에서 일하면 돈도 많이 주고 떼일 위험도 없다고 했다. 서울에서 여러 일을 했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가족도 친척도 없는 울산으로 흘러온 이유다. 취부사로 일했다. 블록을 용접하기 전 가용접을 하는 일이다.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에서 일했다. 업체에서 제공하는 숙소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 노동자들과 공동생활을 했다. 열심히 돈을 모아 다시 서울로 올라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었다.

조선소에 들어와 일한 지 2년 가까이 되던 2013년 여름, 이슬비가 오던 저녁이었다. 안전상 비가 오면 공정을 멈춰야 한다. 하지만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일해야 했다. 작업현장에서 법은 늘 멀리 떨어져 있었다. (관련기사 ☞ : '조선소 괴담' 1994년 죽음이 2014년 다시?)

"회사가 보상 끝까지 해줄 테니 산재 신청하지 마라"

작업소장이 전 씨에게 고층에 쌓여 있는 자재들을 지층으로 내리라고 했다. 퇴근할 즈음이었다. 급히 일해야 했다. 바닥이 빗물로 미끄러웠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무거운 자재를 들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그만 무게중심을 잃고 자재와 함께 미끄러졌다. 꼼짝을 할 수 없었다. 다리에 이상이 생겼다. 구급차로 울산대병원에 후송됐다. 정밀검사를 받았다. 그 사이 하청대표와 총무가 전 씨를 찾아왔다. 산업재해 신청을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대신 공상(회사에서 치료비 처리해주는 방식) 처리를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관련기사 ☞ : 양심고백 "나는 어떻게 그들을 협박했나")

ⓒ매일노동뉴스(정기훈)

압박을 이겨내기 어려웠다. 완치된 후 다시 일해야 하는 직장이었고 그곳의 상사들이었다. "알았다"고 공상을 받아들였다. 이후 하청업체 지정병원인 A병원으로 이동한 뒤, 다친 오른쪽 다리에 깁스하고 한 달 동안 입원했다. 그렇게 한 달을 지낸 뒤, 서울 부모 집으로 돌아왔다. 깁스는 풀었지만 다리는 여전히 불편했다. 정상으로 회복되려면 상당 시간이 필요했다.

회사에서도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쉰 지 석 달이 지났을까. 회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른 애들은 아무리 다쳐도 석 달이 안 돼서 다 낫는데, 너는 왜 아직도 안 나은 거냐? 일하기 싫어서 일부러 그러는 거냐? 그런 거면 이번 기회에 집에서 그냥 푹 쉬어라."

억울했다. 여전히 다친 다리는 완치되지 않은 상태였다. 통증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몸으로 다시 회사에 나오라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결국, 울산에 있는 업체 지정병원인 A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다. 여전히 아프다고 했으나 지정병원 의사는 "이상이 없다"며 일해도 된다고 진단했다.

이상하다 생각했다. 안 되겠다 싶어 울산대병원을 다시 찾았다. 그제서야 제대로 된 진찰이 이뤄졌다. 전 씨를 진찰했던 의사는 "왜 이제 왔느냐"며 다그쳤다. 전 씨 다리는 그 사이 심각할 정도로 악화돼 있었다.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인대재건수술이었다. 4시간 동안 진행됐다.

업체 지정병원에서 자신의 다리에 이상이 없다고 한 것에 화가 났다. 지정병원을 믿지 못하게 됐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잘못될 경우도 걱정됐다. 전 씨 부모님들도 산재를 신청하라고 했다. 업체 총무에게 다시 산재를 요구했다. 하지만 시종일관 산재는 안 된다는 말만 반복했다.

"회사가 보상은 끝까지 해줄 테니 산재는 신청하지 마라. 부모님이 반대하면 우리가 잘 이야기해주겠다."

전 씨는 수술 후 울산대병원에서 2주간 입원한 뒤, 다시 업체 지정병원인 A병원으로 옮겨졌다. 그곳에서도 재차 산재를 요구했다. 결국, 버틸 재간 없던 업체는 전 씨의 산재를 받아줬다. 그해 12월 31일 산재 승인을 받은 뒤, 전 씨는 곧바로 산재병원인 근로복지공단 인천중앙병원으로 이동해 재활치료를 받았다.

“너 받아들일 여력 없다. 복직할 수 없다"

약 7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다.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됐다 싶었다. 다시 일을 해야 했다. 오랫동안 쉬면서 생활고를 겪어야 했다.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몸이 나아서 다시 일하고 싶습니다."

회사는 거부했다.

"경영난으로 회사가 문 닫을 지경에 이르렀다. 너를 받아들일 여력이 없다. 복직할 수 없다."

회사가 문을 닫는다는 데 어떻게 할 수 없었다. 퇴직금으로 80만 원을 받았다. 왜 이렇게 적은지 의문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것저것 뺐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회사가 어렵다기에 별다른 말 안 하고 그냥 받았다.

일하던 회사가 없어지더라도 일은 해야 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2014년 8월께 다른 하청업체에 취업했다. 그렇게 일하던 중 우연히 낯익은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전 씨 전 업체 소속 노동자들이었다. 회사 경영이 어려워 폐업한다더니 여전히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회사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전 씨의 복귀 요구 이후에도 구인광고를 내고 있었다. 전 씨와 똑같은 취부사였다.

화도 나고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러던 중 이전 업체에서 다친 오른쪽 다리가 악화됐다. 수술한 부위였다.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았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아킬레스건을 절단해야 한다는 것. 수술 후에는 발목을 좌우, 상하로 움직일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방도가 없었다.

전 씨의 불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수술 후에도 상태가 좋아지지 않았다. 3개월 뒤 재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번에는 복숭아뼈를 제거해야 했다. 그래도 다친 부위는 원상복구 되지 않았다. 되레 수술 이후 다리가 붓고 변형이 생겼다. 칼로 서걱서걱 베이는 듯한 고통이 수반됐다. 복합통증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얻었다.

오른쪽 다리를 평생 못 쓰는 것은 물론, 끊임없이 숨쉬기도 힘든 고통이 찾아왔다. 더구나 복합통증증후군은 다리 신경을 타고 척추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전 씨는 신경 죽이는 치료를 받으면서 이를 억제하고 있다. 매일 소량의 마약류 진통제도 투여 받고 있다. 이것이 없으면 고통을 견딜 재간이 없다.

▲ 수술 후 달라진 전 씨의 오른발. ⓒ전나라수

전 씨 "이런 일 겪을 줄 상상도 못했다"

그는 현재 경기도 화성시 근로복지공단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 2015년 4월 이후부터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언제 고통이 척추까지 올라올지 모른다는 공포가 전 씨를 힘들게 하고 있다. 적응장애와 외상후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항우울제 등 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 이 일을 겪고 난 뒤부터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게 두렵다.

전 씨는 "마음 잡고 울산에서 일하려고 조선소에 취업했다가 이런 일을 당했다"며 "도둑질을 하다 이렇게 된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했던 게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전 씨는 자신의 상황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자신에게 연락 한 번 없는 업체가 야속하다고 했다. 전 씨는 "이런 일을 겪고 사고를 당한 업체에 전화했지만 전화 자체를 받지 않았다. 콜백도 없었다"며 "도의적으로 사람이 이렇게 됐으면 미안하다는 이야기라도 한마디 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전 씨는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에서는 나와 같은 사례 말고도 산업재해를 은폐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그저 시키는 대로 일만 하다가 다치면 공상처리를 한다"고 말했다. 전 씨는 "그나마 나 같은 경우는 우겨서 산재 인정이라도 받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이 상당수"라며 "조선소 일이 힘들다고만 생각했지 이런 일을 겪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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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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