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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 노인에 끌려다니는 정치판, 최선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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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칠순 노인에 끌려다니는 정치판, 최선인가요?" [독서통] <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
1997년 외환 위기 이전과 이후의 한국은 완전히 다른 나라입니다. 평생직장이 사라졌고, 비정규직이 일상화되었습니다. 그뿐인가요. 고성장 시대가 끝났습니다. 저성장이 일상화되었습니다.

바뀐 건 이뿐만이 아닙니다. 사회가 늙었습니다. 20세기의 리더가 지금도 한국을 이끕니다. 고령화는 이제 일상적 용어가 됐습니다. 이제 젊은이들은 아버지 세대는 눈여겨보지도 않던 공무원이 되기 위해 엄청난 경쟁을 벌입니다.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은 <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어크로스 펴냄)에서 지난 20년간 변화한 우리 사회를 돌아보고, 변화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지 이야기합니다.

김종배 <시사통> 대표와 강양구 <프레시안> 기자가 진행하는 '독서통'은 15일 이원재 소장의 <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느냐를 이야기합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입니다.



한국, 새로운 패러다임 필요한 사회

김종배 : 매주 화요일 오후를 장식하는 독서통 시간입니다. 금주 소개할 책은 뭔가요?

강양구 : 지난해 <시사통>에서 '세대통' 꼭지가 있었죠? 그 주인공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께서 당시 방송 내용을 뼈대로 최근 <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라는 책을 냈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같이 생각해볼 만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는 책이라서 오늘 같이 살펴보려고 합니다.

김종배 : 지금 이 자리에 이원재 소장도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이원재 : 네, 안녕하세요.

▲ "세월호 참사는 기존 패러다임의 종말을 상징." ⓒ프레시안(최형락)

강양구 : 참, 책에 새로운 시도를 했더라고요? 책의 장이 끝날 때마다 관련된 세대통 방송을 들을 수 있도록 QR코드가 삽입돼 있어요. 저도 책을 읽다가 못 들은 방송도 듣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세대 이야기는 어느새 익숙한 담론이 됐어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 새롭게 푸셨을지 기대하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많이 배웠습니다. (웃음)

김종배 : 그런데 어쩌다 세대 문제에 꽂히셨어요?

이원재 : 2014년의 세월호 참사를 보고 정신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아이들이 사고를 당한 게 단순히 우연한 일이 아니고, 어떤 패러다임의 종말을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세월호 참사가) 우리가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로 여겨졌습니다.

아주 슬프고 비통한 마음을 갖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뭔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2014년 즈음부터 (집필을) 준비했습니다.

김종배 : 기존 패러다임은 뭔가요?

이원재 : 책에서 비판하는 중요한 내용이기도 한데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우리 사회 주류였던 '먹고사니즘'이죠. 먹고 사는 것에 관한 가치가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는.

강양구 : 각자도생.

김종배 : 성장 논리도 깔렸고요.

이원재 : 그렇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성장 지상주의고요, 개인 차원에서 보면 먹고사니즘이죠. 그걸 실현하는 전략으로 보면 각자도생이고요.

강양구 : 이 책이 극복하고자 하는, 비판하려는 내용을 절묘하게 요약해주셨습니다.

김종배 : 새로운 패러다임은 찾으셨어요?

이원재 : 찾는 중입니다. (웃음)

김종배 : 찾는 여정에서 첫 결실이 이 책이군요.

이원재 : 그렇습니다.

강양구 : 이 책의 장점 가운데 하나가 여태까지 한국 사회 미래 비전에 관한 여러 담론을 이원재 소장 식으로 잘 버무리셨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책 뒷부분에 나오는 내용인데 "한국 사회는 복지국가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이 있죠(복지국가론). 또 한편에서는 "임금을 높여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임금 차이를 좁혀야 한다"는 분도 있습니다(경제 민주화론). 그런데 서로 자기 목소리를 내다 보니 이 둘 사이의 차이점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원재 소장께서는 이 책에서 "이러이러한 내용을 버무리면, 즉 성장-분배-재분배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면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원재 : 한국 사회의 미래 비전을 말하면서 제기되는 여러 주장이 서로 충돌하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 전체를 생각하면 성장도, 분배도, 재분배도 다 필요한 이야기죠. 그것들이 상호 보완될 때, 더 나은 대안이 나올 수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책에서 그런 변화가 어떻게 가능할지도 모색해 봤어요.

보통 국가 차원의 변화, 새로운 국가 모델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변화가 개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함으로써 새로운 국가 모델이 가능할지를 밝히려고 했습니다. 즉, 개인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는 것이 크게 봐서 국가 시스템의 변화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김종배 : 여기서 이런 반문을 던져 볼게요. 국가가 국민의 삶을 보살펴주지 못하는데, 먹고사니즘 말고 어떻게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있나요?

이원재 : 물론 국가가 잘해야죠. (웃음)

우리 가운데 "지금의 국가는 아주 소수의, 내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분들이 만들었으니 나는 아무 책임도 없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 이 국가가 이렇게 만들어진 데는 조금씩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 있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가 변하는 것을 통해서 국가도 바뀔 수 있고요.

신자유주의 버린 아이슬란드, 신자유주의 한국

김종배 : 국가가 바뀔 수 있을까요? 사실 이런 정서가 많이 퍼져 있습니다.

이원재 : 변화가 일어나는 경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요. 우리 세대, 혹은 우리 다음 세대의 변화는 소수의 뛰어난 선각자가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사회 전체를 일순간에 바꾸는 식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건 백일몽이죠. 워낙 사회가 복잡다단해졌으니까요.

저는 이 책에서 더 혁명적인 내용을 제안했습니다. 마땅히 국가가 가져야 하리라 이해되는 의식을 사람들이 각자 일상에서 계속 갖고 행동하기 시작하면, 그게 오히려 주변을 바꾸고 궁극적으로 국가권력도 바꿀 수 있습니다. 시민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거죠. 예를 들어 아파트 주민들이 경비원을 어떻게 대하는지 자각하면, 즉 경비원을 노동자로 인식하면 본인도 기업에서 그런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김종배 :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 아이슬란드 사례예요. '우리가 1997년에 이랬다면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는 상상을 계속했어요.

이원재 : 아이슬란드가 재미있는 나라예요. 한국 사회가 아주 큰 변화를 겪은 1997년 이후 약 20년간 아이슬란드도 크게 변화했습니다.

아이슬란드는 인구 32만 명의 아주 작은 나라입니다. 우리는 '여섯 다리 걸치면 다 아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거긴 한 다리 걸치면 다 아는 사람이에요. 오랫동안 유럽의 다른 나라와 달리 어업으로 살아온 나라예요.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 물결에 동참합니다.

정권이 시장을 개방하고 금융 허브 국가로 변신을 꾀하죠. 온갖 장벽을 허물고 투자하기 좋은 나라로 변신합니다. 금융 쪽 일자리가 늘어나자 어부들이 금융 공학을 공부해서 은행에 취업하죠. 부동산 투기도 마구 일어나고요. 약 10년간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시간이 이어집니다.

그 뒤 우리가 다 알다시피 2008년 세계 금융 위기가 옵니다. 거품이 꺼지자 아이슬란드가 가장 먼저 타격을 입습니다. 투자자들이 떠나가고, 100만 달러 가치로 평가되던 자산이 1만 달러 수준으로 쪼그라들죠. 인구의 30~40%가 이런 상황을 겪습니다. 이민 붐이 일어날 정도였죠.

강양구 : 이 나라는 희망이 없다?

이원재 : 네, 그렇습니다.

이때 아이슬란드 국민이 극단적으로 다른 선택을 한 번 더 합니다. 여태껏 이어온 체제를 다시 바꾸자고 국민이 들고일어납니다. 직접 민주주의를 요구하면서 기존 의회, 기존 정치 시스템을 완전히 뒤집어엎자고 합니다. 결국, 이들이 완전히 승리하진 못했어요. 하지만 절반의 승리를 거둡니다. 금융 규제를 강화하고, 투자자들을 다 쫓아냅니다.

강양구 : 외국 자본에 진 채무를 이행하지 않기로 선언하고, 아이슬란드 시민 자산은 국가가 보호해주기로 했더군요.

이원재 :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한국의 선택과 정반대되죠.

강양구 : 이게 사실 위험한 선택입니다. 투자자로서는 돈을 떼였으니, 다시는 이 나라를 신뢰하기 힘들어지잖아요? 그런데도 국민이 '그건 우리의 미래와 상관없다'고 선언한 거죠.

김종배 : 바로 그 대목입니다. 이런 변화를 꾀하려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이원재 : 그런 맥락에서 외환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사회로의 이행)을 우리 국민이 선택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슬란드와는 반대로요.

김종배 : 우리는 여태 유지한 고속 성장 기조를 놓치기 싫었던 거죠.

이원재 : 그렇죠. 물론 당시 정권과 재벌이 주도했지만, 국민이 따른 거죠. 나도 월급 사서 돈 모아서 집 사는 꿈을 간직하겠다고 한 거죠. 아이슬란드 국민은 그걸 따르지 않은 거죠.

강양구 : 외환 위기 직후 가장 유행한 광고 구호가 "부자 되세요"였잖아요. 그런데 아이슬란드는 정반대의 길을 간 거네요.

김종배 : 요즘 아이슬란드는 먹고살 만합니까?

이원재 :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그게 놀랍습니다.

처음 아이슬란드가 그런 선택을 했을 때 많은 경제학자가 걱정했어요. 영국이나 네덜란드는 지금도 아이슬란드를 거의 적국처럼 간주할 정도입니다. 이들 나라가 투자한 돈을 많이 떼였거든요.

강양구 : 이 책을 보면서 저희가 몇 주 전 독서통에서 소개한 <국민을 위한 선거는 없다>(다비트 판 레이브라우크 지음, 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가 생각나더라고요.

아이슬란드가 최근 헌법을 개정하려 하는데, 제비뽑기로 정한 시민들이 위원회를 구성해서 정치인과 머리를 맞대고 궁리 중이래요. 당시는 아이슬란드에서 이런 흐름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 이유를 정확히 몰랐는데, <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를 읽으니 그 이유를 알겠더군요. (☞관련 기사 : "국회의원, 선거 대신 제비뽑기로 정하자")

▲비좁은 취업 관문 통과에 모든 걸 걸어야 하는 청년층이 리더십을 키울 여지는 없다. 한 대학교에 붙은 취업 소식 안내. ⓒ연합뉴스

노인의 나라에 청년의 자리는 없다

김종배 : 살아가다 보면 비록 이론화하기는 어렵지만 체감하는 게 있습니다. 정치 현상도, 먹고 사는 현상도 마찬가지인데, 누구나 '뭔가 문제가 있다'고 직감은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할 것이냐'에서 막히죠. 저는 여기서 아이슬란드가 중요한 힌트가 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 단절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는 것이죠. 이게 결국 이 책에서 얘기하는 '아버지 세대의 것'이 될 테고, 그렇다면 '아들 세대'에서 움켜쥐어야 할 건 무엇이냐가 중요하죠.

강양구 : 책에서 '제론토크라시(gerontocracy, 고령자 지배 체제)'라는 개념이 중요한 열쇳말로 나와요. 아마 이 책을 읽는 '아버지 세대' 독자의 경우 거부감을 가지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뭘 그리 잘못 했느냐는 항변이 예상되는데, 이원재 소장께서 보충 설명을 해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원재 : 어떤 사람의 생애에서 핵심적인 시기가 있지 않습니까? 가장 왕성하게 사회에 참여하는 시간이 있어요. 보통 30~40대 정도죠. 대부분 그때의 경험이 사회 시스템을 지탱하는 지배적인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기는 어렵습니다. 그 경험을 하고 나면, 그보다 더 나이 든 후 다른 패러다임으로 바꾸기가 어려워지죠.

1990년대에 당시의 패러다임을 갖고 이 사회를 주도한 사람들이 있어요. 우리는 지금 2010년대에 살고 있죠. 그런데 만일 지금 한국 사회가 1990년대와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이 사회를 이끌어야 할 사람이 변해야 합니다. 그건 1990년대가 틀리고 2010년대가 옳아서가 아닙니다.

2010년대의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리더십의 세대교체가 필요하죠. 전 세대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시대가 변한 거죠. 앞서 제가 성장 지상주의를 언급했습니다. 모두가 성장에 목을 맸던 건 고성장이 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고성장 시대가 끝났습니다. 지금과 같이 3% 이하의 성장률이 '뉴 노멀(new normal)', 새로운 정상이 된다면 이제 패러다임이 완전히 변해야 합니다.

'늙은이는 능력이 없으니 쫓아내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접근하면 절대 안 됩니다. 새로운 형태의 리더십이 필요하고, 그런 리더십은 새로운 질서를 최대한 체화한 젊은 사람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2010년대 현재의 우리 사회를 보면 과연 그런가요? 그렇지 않은 게 사실이죠. 정부의 국무회의, 재벌 기업 등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아주 나이 많은 이들이 지배하는 질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강양구 : 지금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분들의 연령대를 보면 50~60대 이상이죠. 지금 야당의 상황이 전형적입니다. 1970년대부터 활약한 70대 중반도 넘긴 분이 마치 홀연히 등장해서 마치 전제 군주처럼 일사불란하게 판을 바꾸고 있잖아요? 그분의 행보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그런 모습이 한국 사회 리더십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씁쓸합니다.

이원재 : 물론 (박근혜) 정부나 일부 재벌 기업의 의사 결정 구조에서 제론토크라시가 관철되는 상황이 훨씬 심각합니다. 하지만 방금 지적한 대로 야당의 상황이 흥미로운 건 사실입니다. 나이로 모든 것이 정리되니까요. (웃음)

강양구 : 지금 야당 리더의 화법도 이렇습니다. "내가 예전에 해봐서 아는데…."

이원재 : 그 화법이 정주영 회장, 이명박 대통령 등 그간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이들의 것이죠. 지금도 통합니다. 그러나 이래서는 우리 사회가 경쟁력을 갖기 어렵습니다. 과거의 경험이 가치가 있으려면 과거나 현재나 상황이 똑같아야 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면 과거의 경험은 오히려 사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죠.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바둑을 둬서 이세돌 9단이 진기한 경험을 했잖습니까? 그런데 이 상황에서 조훈현 9단이 나타나 "내가 바둑을 더 오래 둬봤으니 내가 알파고와 더 잘 둘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건 맞지 않죠.

강양구 : 그러고 보니 바둑계는 세대교체가 꽤 잘 이뤄지는 것 같은데, 한국 사회는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과거의 기득권이 여전히 힘을 갖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책에서 제론토크라시로 설명하셨고요. 그런 제론토크라시로 인해 엉망이 된 나라가 일본이라는 지적도 하셨어요.

이원재 : 일본에서 이미 심각하게 드러난 문제입니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다음 세대 리더가 양성되지 않습니다. 다음 세대 경제인도 나타나지 않죠. 손정의 회장 정도가 벤처 기업계의 리더고, 그 이후 세대는 없습니다. 정치인은 말할 것도 없죠. 대를 이어서 정치하는 분들이 나라를 이끌고 있지 않습니까?

▲여전히 한국의 정치 리더십은 옛 세대가 갖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청년 투자 국가 위해 필요한 것은?

강양구 : 기성세대가 본인의 리더십을 버린다고 해서 퇴장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건 아니에요. 책은 본인에게 맞는 역할을 하고, 바람직한 팔로워십을 가지라고 강조하죠. 이원재 소장께서는 기성세대가 사회에 필요 없는 존재가 아니고, 변화한 패러다임 안에서 맡을 제 역할이 있다고 책에서 강조하셨어요.

이원재 :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가 제론토크라시 체제로 정착하면 '막차 문 닫기' 현상이 일어납니다. 리더십을 키울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계속 주니어 역할만 하는, 마치 군대에서 줄 잘못 서서 병장 때까지 청소해야 하는 상태에 있는 이들이 많아지죠. 그런 위기에 처한 세대가 바로 한국 사회의 30대 이하인 것 같아요. 이대로 가면 그들은 오랫동안 리더의 역할을 하지 못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김종배 : 아버지 세대에 짓눌려서 그렇게 되는 거죠.

이원재 : 그렇죠. 숙련에 여러 종류가 있어요. 기술적인 일도 있지만,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는가, 소통을 어떻게 하는가와 같은 것도 있습니다. 직접 경험해야 이런 능력이 길러지죠. 그런데 제론토크라시 사회가 되면, 이 사람들(30대 이하)은 리더가 될 능력을 영원히 갖추지 못합니다.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할 능력을 얻지 못하게 되죠.

그러면 어느 순간 우리 사회는 정말 리더가 부족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습니다. 그럼, 계속 연세 많은 분이 사회를 끌고 가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정말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경험이나 패러다임이 새로운 상황과는 맞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젊은이들이 빨리 리더가 되도록 기회를 줘야죠.

그렇다고, 리더 자리에서 물러난 시니어가 할 일이 없는 건 아니죠. 대기업에서 임원 역할을 한 분은 자신이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도 주민을 잘 이끌고 갈 역량을 가지셨어요. 농담이 아닙니다. 정말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관리 업체가 장난치지 못하도록 감시할 수도 있고, 아파트가 효율적으로 돌아가도록 사람들에게 역할을 분담하고 일을 맡길 능력도 갖추고 계시죠. 이런 일이 봉사가 아니라 업(業)이 되도록 사회가 재조직되면 됩니다.

이래야 우리 사회가 계속 리더십이 숙련되는 과정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동시에 숙련된 리더십이 하방하는 효과도 얻는 선순환 구조를 낳을 수 있습니다.

김종배 : 아들 세대가 빨리 리더십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원재 : 아버지 세대가 빨리 놓아줘야 합니다.

김종배 : 뭘 놓아야 합니까?

이원재 : 첫 번째로 자리를 내줘야 합니다. 의사 결정 경험을 하도록 만들어줘야 합니다.

지금 있는 자리를 내주는 것 외에도 방법이 있습니다. 특히 경제 분야, 산업 분야에서는 청년이 투자받는 기회를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강양구 : 투자받은 청년이 실패하더라도 발목이 잡히지 않는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얘기죠?

'창조 경제'로는 실리콘밸리 못 만들어

▲청년에게 투자해야 새 리더십을 키울 수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이원재 :
맞습니다. 뜻을 가진 이가 마음껏, 새로운 걸 끝까지 만들어 볼 기회가 많아지면 사회 전반적으로 리더십 경험을 하는 이가 단시간에 늘어납니다.

김종배 : 실질적인 고민 상담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 집 아이가 고등학생인데, 머리로는 '어차피 대학 안 가도 되니, 네가 원한다면 대학 등록금에 해당하는 돈을 줄 테니 뭐든 해 봐라'고 조언을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실천에 옮길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어요. 돈이 있고 없고의 문제는 아니고요. 이런 걱정이 드는 거죠. '네가 세상 물정을 뭘 안다고….'

강양구 : 책을 보면 토마 피케티의 스승인 앤서니 엣킨슨이 낸 아이디어가 소개됩니다. 정부가 공공 펀드를 조성해서 사회에 진출하려는 청년에게 목돈을 주는 시스템이죠. 사회가 모든 성인에게 '기초 자본'을 형성해주자는 거죠.

이원재 : 물론 그런 걸 가능하게 하려면 세금을 더 내야 하죠. 사실 상속이 자본주의를 부패하게 합니다. 기초 자본 개념은 결국 '같이 상속하자'는 겁니다.

김종배 : 제가 앞서 저런 말씀을 드린 데는 사회에 대한 불신이 깔렸죠. 우리는 대기업의 골목 상권 침해로 망하는 가게를 수없이 보고 있습니다. 또 기술을 연마해봤자 자기 회사를 차리기에는 너무 힘든 현실을 체감하고 있죠. 이런 상태에서 투자든 창업이든, 과연 청년의 영역이 어디 있느냐는 물음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원재 : 지금 시스템에선 그렇죠.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 되죠. 더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강양구 : 기초 자본 개념을 조금 더 소개해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상속으로 금수저, 은수저에만 돌아가는 돈의 상당 부분을 세금으로 걷어서, 그렇게 조성한 펀드로 청년이 비슷한 위치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겁니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긍정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원재 소장께서 다른 진보 저자와 구별되는 중요한 지점이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의 혁신을 비교적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겁니다. 그런데 청년이 창업해서 성공하면, 즉 돈을 벌면 결국 자본주의 시스템이 강화되죠? 그런데 그런 성공 사례가 많아지는 게 과연 우리 사회를 더 좋게 만드는 방향으로 이어질까요?

이원재 :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하고 일하는 사람을 직접 만나 이야기해 보면, 돈을 목적으로 일한다는 생각이 안 듭니다. 나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데, 이를 위한 기회를 얻었다고 보죠. 미국의 벤처캐피털 투자를 받아 창업하는 기업가 중 대부분은 주식 시장 상장 전까지는 마치 비영리 기관 종사자와 같이 행동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죠.

제가 강조하는 청년 세대에 대한 투자는 그런 여유를 주자는 거죠. 물론 상장 후에 달라지는 모습도 많이 봤습니다. 갑자기 큰돈이 들어오고, 주주의 이해관계를 고려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 전까지 경험이 매우 값집니다. 미국만 하더라도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영리기관으로 진출해 사회적 기업가가 되는 사람도 많고요.

김종배 : 우리나라에서도 벤처 신화를 일군 세대가 있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단절됐어요. 그 사이 시장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합니까, 아니면 정부 정책 때문이라고 봐야 합니까?

이원재 : 업계에는 86학번 신화가 있습니다.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사장, 다음 창업자 이재웅 씨가 그렇죠. 30대 초반에 성공한 분들이죠. 그럼, 그분들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비판적으로 보는 닷컴 버블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1999년에서 2000년 사이에 벌어진 일인데요, 공교롭게 당시가 이들 창업자의 제품이 알려지기 시작할 때예요. 어쨌든 버블이긴 했지만, 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이들에게 여유가 생긴 거죠. 투자가 여유를 주고, 여유가 리더십을 경험하게 한 겁니다.

지금까지도 그 판을 그분들이 이끌잖아요. 다음 세대가 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들 세대 다음에 그런 방식의 투자 시스템이 만들어지지 않아서입니다. 당시는 우연히 국제 환경에 편승해서 버블이 일어났고, 정부도 이를 방조했죠. 당시 유용성을 봤다면, 이를 체계적으로 다듬는 시스템이 만들어졌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죠.

지금의 '창조 경제'도 사람들이 지원금을 타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여야 하는 시스템이라 당시와는 다르죠. 한꺼번에 투자를 받아 일정 기간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해볼 수 있었던 당시와 다르죠. 그렇다면 10년 뒤에 저들과 같은 사람이 나올 거냐. 이 문제에 우리가 봉착했죠.

공무원 준비생에게 미래를 걸어야 할 이유

강양구 : 책을 읽다 든 궁금증이 하나 더 있습니다. 아버지 세대가 아들 세대에게 자리를 주는 것 못잖게, 새로운 자리에서 뭔가 해보려는 욕망이 아들 세대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뉴스를 보면, 적잖은 중고등학생의 꿈이 공무원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됩니다. 그중 최고의 꿈은 건물을 가지고 월세 받는 공무원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고요.

그런 친구들이 과연 이원재 소장께서 기대한 차세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이원재 : 저는 그런 설문 조사에 의구심이 듭니다. 제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식에 갔는데,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이벤트를 하더라고요. 쭉 보니까 부모가 골라준 꿈이 있고, 자기가 고른 꿈이 있어요. 부모가 골라줬다 싶은 꿈은 공무원, 검사와 같은 거죠. 그런 꿈을 빼면 연예인, 요리사, 운동선수, PC방 주인과 같은 게 아이들의 진짜 꿈이에요.

이렇게 요즘 아이도 다 나름의 꿈을 갖고 있어요. 공무원이나 건물주는 부모의 꿈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요즘 취업 준비생이 공무원 시험에 몰리는 건 분명한 사실이죠. 그런데 그들이 공무원 시험에 몰리는 이유가 뭔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과연 이 사람들이 정말 편안하게 평생을 살고 싶어서 이럴까.

저는 이렇게 봅니다. 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건 경제적으로 안정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은퇴한 다음에도 연금이 나와서 죽을 때까지 비참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죠. 또 한편으로 진입 과정에서 공정한 기회를 얻고 싶다는 바람입니다. 공무원은 금수저든 흙수저든 시험만 잘 보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건 사회적으로 보장해줄 수 있어요. 꼭 공무원이 아니라도 늙어서 비참해지지 않을 상황을 사회가 마련해주면 어떻게 될까요? 대박의 꿈을 실현해줄 순 없지만, 적어도 안정된 삶은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 이렇게요. 이렇게 사회 안전망을 갖춰주면 사람들은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사회 공동체에 이바지할 수 있고, 책에 관해 이야기할 수도 있죠. 이 현상이 주는 시사점을 바탕으로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를 우리가 고민해야죠.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읽어야 할 책

김종배 : 이 책의 부제가 "오늘의 불안을 이기는 내일의 경제학"이지만, 사실 경제 책이 아니에요. '어떻게 살 것이냐'는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책이죠. 무엇을 먹고 살 거냐는 게 아니라, 삶의 가치와 방향을 어떻게 잡을 것이냐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알고, 어떻게 살 것이냐를 고민하게 하는 책이죠.

강양구 : 같은 맥락에서 이 책은 진정한 의미의 좋은 자기계발서이기도 합니다. 자기 계발을 하려면 즉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내리려면,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또 이 달라진 세상에서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관한 통찰을 가져야 합니다. 이 책은 그런 고민을 하는 데 도움을 주죠.

이원재 :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장이 노후에 관한 부분입니다. 돈만 준비한다고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김종배 : '노년의 쓸쓸한 삶'이 관용어구처럼 쓰이는데, 우리 사회는 이게 어느 순간 고정 관념이 되었어요.

▲<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이원재 지음, 어크로스 펴냄.) ⓒ프레시안
이원재 :
노인을 공동체에서 배제하는 게 어느 순간 당연해졌죠. 물론 국가가 기초 연금을 강화하는 등의 복지 강화를 통해서 노후에 비참하지 않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또 각자도 개인적으로 노후를 준비하긴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돈만 있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돈이 있어도 불행한 분이 많습니다. 돈뿐만 아니라 일과 관계가 필요합니다.

우선 '나는 마지막까지 어떤 일을 하며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 일이 꼭 돈을 버는 것만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남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며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책을 좋아한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강양구 : 또 책을 보면 은퇴 후에 상당한 돈을 관계를 복원하고 발굴하는 데 투자한 어르신의 사례가 나옵니다. 그분의 전략이 아주 성공적이었죠. 삶이 훨씬 더 윤택하고 행복해졌으니까요. 은퇴 이후의 삶에서 일과 함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김종배 : 이 책을 보면 자연스럽게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가 이야기를 나눌 화두가 나옵니다.

이원재 : "돈을 모아 아파트를 사야 한다"는 아버지에게 "저는 그 돈을 자신에게 투자해서 일흔이 넘도록 일할 준비를 하겠다"고 아들이 이야기함으로써 새로운 대화가 일어날 수 있죠.

강양구 : 독서통 청취자 여러분 중에는 86세대가 많으실 텐데, 이 책을 읽고 자식과 함께 이야기해 보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종배 : 오늘은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과 <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변화와 바람직한 세대교체의 모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이원재 소장, 고맙습니다.

이원재 :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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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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