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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바라지 공사 중단' 선언한 박원순, 철거민 사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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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바라지 공사 중단' 선언한 박원순, 철거민 사망은? [뉴타운 잔혹사 下] 철거 막은 게 '정치적 쇼'란 의구심 씻으려면…
영화 <미션 임파서블>을 방불케 했다. 용역 직원들을 태운 두 대의 사다리차 바스켓이 건물 5층에 닿자 용역들은 소화기를 뿌리며 건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은 속수무책이었다. 한 명 한 명이 용역들에 의해 강제로 건물 밖으로 끌려 나왔다. 이와 중에 저항하는 이들은 옷이 찢기고 안경이 부서지기도 했다. 호흡 장애로 119에 실려 후송되는 사람도 있었다. 한 마디로 아수라장.

새벽 6시 20분께 시작된 강제퇴거는 약 2시간 만에 '깔끔히' 마무리됐다. 약 100명에 가까운 용역이 투입됐다. 50여 명의 시민들이 '인간 바리케이드'를 치고 막았으나 소용 없었다. 문신한 건장한 20~30대 용역직원들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무악동 46번지 일대, 이른바 '옥바라지 골목'의 마지막 퇴거 대상인 구본장 여관의 주인이 강제 퇴거 됐다. 이곳은 2000년대 초부터 주민들을 중심으로 재개발이 추진돼왔다. 2006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후 2010년 재개발조합이 설립됐고, 이어 지난해 7월 관리 처분 인가가 떨어졌다.

하지만 이주를 거부하는 일부 주민과 시민단체가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의 재개발을 반대하는 비상대책주민위원회'를 구성, 역사적 보존가치 등을 내세우면서 재개발에 반대하고 나섰다. 시공사와 재개발조합 측은 한시라도 공사가 진행돼야 한다고 공사를 강행했다.

구본장 여관 주인 이길자 씨는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주민이었다. 그는 강제 퇴거 된 뒤 "세상이 다 조합 편인 듯하다"며 "누굴 믿고 살 수 있겠느냐. 결국, 내가 죽어야 철거가 멈출 듯하다"고 오열했다.

▲ 사다리차를 이용해 건물로 진입하는 용역들. ⓒ프레시안(허환주)

박원순 시장이 막은 강제철거, 정치적 쇼?

그나마 박원순 서울시장이 직접 나서면서 구본장 여관은 집기만 퇴거되고 건물은 철거되지 않았다. 강제 퇴거 직후 옥바라지 골목 현장을 찾은 박 시장은 "서울시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이 공사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울시가 강제 철거를 막기 위해 행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는 게 중론이다. 뉴타운 재개발 사업에서 행정권을 가진 서울시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인‧허가권이지만 옥바라지 골목처럼 관리 처분 인가, 즉 사업이 사실상 마무리 단계까지 간 지역은 서울시가 공식적으로 개입하기가 힘들다. 더구나 옥바라지 골목처럼 규모가 작은 지역의 사업 인‧허가권은 구청에 있다.

그렇다고 박 시장의 발언이 정치적 쇼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그간 무리한 강제 철거를 막기 위해 여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온 서울시다.

2013년 2월 만든 강제 철거 관련 행정대집행 인권 매뉴얼을 보면 행정대집행을 할 경우, 소유자 등의 퇴거가 완료된 이후에 시설, 건물 등의 철거를 진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사람이 퇴거하지 않은 공간에 대해선 철거를 금지하고 있다, 동원인력에 대한 인권침해 예방교육 실시와 동절기, 악천후 등 시기와 시점도 규제하고 있다.

또한, 서울시가 2013년 2월 발표한 재개발‧재건축‧뉴타운 정비사업 강제 철거 예방 대책을 보면 재개발 현장에서 조합, 가옥주, 세입자, 공무원 등이 함께 하는 사전협의체를 5번 운영하고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을 경우 부구청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정비사업 분쟁조정위원회를 가동해 원만한 타협 속에서 재개발을 추진하도록 했다. 세입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가 거리로 내몰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인권 메뉴얼과 사전협의체는 지시사항이 아닌 권고사항이라 사실상 재개발 현장에서 적용되지 않는 실정이다. 박 시장이 옥바라지 골목의 구본장 여관 강제퇴거 관련해서 공사를 중단시키겠다면서 "손해배상 소송도 각오한다"고 말한 이유다.

▲ 옥바라지 골목 철거를 막으려는 시민 활동가들을 끌어내는 용역들. ⓒ프레시안(허환주)

박원순 시장, 정치력 발휘할까

박 시장을 발언을 두고 "속 시원하다. 박원순 시장답다"고 지지하는 평가가 대다수다. 반면, "뒤늦게 와서 정치적 성과만 챙긴다"고 비판하는 이도 일부분 존재한다. 이슈가 되는 곳에서 정치적 발언을 통해 표심을 건드리고 있다는 것.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박 시장이 정치력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이야기를 돌려 지난 4월 12일 서울 돈의문뉴타운지역 상가세입자 고모 씨가 분신자살한 사건을 이야기해보자. 고 씨는 세입자대책위원장을 맡는 등 상가를 지키고자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스물한 가구가 나갈 때까지 끝까지 남은 고 씨였다. 하지만 결국, 철거를 막지 못했다 급기야 용역 직원들이 자신의 가게를 강제 철거하자 자신의 몸에 시너를 붓고 불을 댕겼다.


고 씨의 분신자살을 두고 아무도 책임지는 기관은 없다. 늘 그렇듯 정비업체, 즉 용역과 조합은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적법한 절차에 거쳐 철거 작업을 하다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이라는 것. 돈의뉴타운사업을 인가한 서울시와 종로구청은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고모 씨의 유족들은 서울시가 나서서 사고가 발생한 지역의 재개발을 유보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강제 철거 과정에서 용역 직원들과 고인 간 물리적 충돌이 있었으리라 판단한다. 그리고 그 충돌이 고인의 직접적인 분신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고인의 죽음에 대한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사고 지역의 개발을 유보해달라는 이유다.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 현장마저 보존되지 않는다면 진실은 영원히 밝혀질 수 없다는 게 유족 생각이다.

고 씨가 장사하던 곳은 조합의 기부채납 지역으로 재개발 이후 서울시 소유가 된다. 공원을 조성할 예정이다. 이 사업의 공사 발주처는 서울시 산하기관인 SH공사다. '옥바라지 골목' 철거 문제에서 정치력을 발휘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 사건에도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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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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