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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비정규직은 혼자 죽고, 50대 정규직은 셋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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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비정규직은 혼자 죽고, 50대 정규직은 셋이서…" [구의역 사고를 보며]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요즘 사람의 실제 나이는 전통적인 개념의 숫자에 0.8을 곱해서 계산해야 한다고 한다. 50세 중년에게 이 계산을 적용하면 40세, 청년이라고 불러도 민망하지 않을 연령이 된다. 의학 기술이 발달하고, 영양 상태가 좋아진 영향이 클 것이다. 요즘 활발하게 활동하는 노인들을 보면 나이보다 10살 이상 젊어 보이는 경우도 많다.

사회적 역할이나 위상이란 점에서도 변화가 뚜렷하다. 1980년대 중반 무렵만 해도 40대라면 자녀 한둘을 둔 가장이요, 직장에서는 실무에서 손을 떼고 업무의 감독에만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결혼하지 않은 40대 청년도 많고, 직장에서도 직접 실무를 챙겨야 하는 위치이다.

20대 청년들도 과거에는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데 무리가 없었지만 지금은 쉽지 않다.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 자기 발로 서는 사회인이 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지식의 분량이 많아지고, 경제생활에 필요한 기능의 수준도 높아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세대 간의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기성세대의 은퇴가 늦춰지는 반면 젊은이들의 사회적 진입 장벽은 높아진다. 이것은 공포스러운 결과로 이어진다. 청년들이 가난해지는 것이다. 업종 전환을 생각한다는 한 사업가는 "청년층 대상의 아이템을 검토했지만 요즘 구매력 있는 젊은이들이 많지 않은 것 같아서 포기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나 청년들은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힘들고 분노하기 쉽다. 문제는 그 기간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교육열이 높고 국민 평균의 가방끈(학력)도 길다. 청년층이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데 소모되는 에너지와 스트레스, 비용, 기간이 엄청나게 많고, 높고, 비싸고, 길다는 얘기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긴장을 낳게 된다. 장년층이나 노년층으로 인한 사회적 긴장보다 청년층의 불만으로 인한 긴장은 장기화되고 악성화되기 쉽다. 장년층이나 노년층에게 주어진 시간보다 청년층에게 주어진 시간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그 청년들이 평생 비정규직으로 고통스럽게 살아간다 해도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일본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는 일본식 고려장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이 작품 내용만 보자면 근대 이전 일본 사회가 기성세대에게 매우 잔인한 시스템이었던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일본의 전통적인 가족은 장남에게만 상속권을 인정하고, 차남 이하 자녀들은 마치 피고용인처럼 취급했다.

차남 이하 아들들은 결혼도 쉽지 않았고 장남 밑에서 머슴처럼 일하거나 집을 떠나 낭인처럼 떠돌곤 했다. 당연히 이들은 사회의 불안 요소로 작용했다. 메이지 유신도 사회에 정착할 수 없었던 차남들이 대거 가세해 이뤄낸 사회적 격변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청년층의 불만이 파괴적인 힘으로 작용하는 경우 폭동, 폭행, 강도 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우리 사회는 이미 그런 현상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내어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간다. 공무원 연금 개혁이 엉뚱하게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 파문으로 번진 것이 대표적이다. 기성세대가 별로 가진 것이 없는 청년층에게 미래의 부담까지 더 키워서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세대 간 전쟁, 세대 간 착취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용 유연성이 필요하다. 경력 직원을 쉽게 해고할 수 있어야 신입 사원의 채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정년은 연장되고, 한번 채용한 인력은 해고하기 어렵다. 결국 기업들은 검증된 경력직을 선호한다. 신입 인력이 훈련받지 못하니 다시 경력직을 선호하게 된다. 악순환이 이어진다. 신입과 경력의 대비 구도에는 세대 간의 갈등도 숨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진보 진영은 '고용 유연성은 절대악'이라는 명제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요즘 유행하는 '결혼 불능 세대'라는 말이 이러한 현실을 분명하게 웅변해준다. 사회적인 위상이 추락한 요즘 청년들은 결혼조차 하기 힘들다. 결혼 시장 또는 성(性) 시장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봐야 한다.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가 꽤 인기를 끌었다. 이 노래의 가사는 소름끼칠 정도로 인상적이다.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나이와 무관한 인간적 본능인 애정 희구 심리를 표현한 가사이다. 하지만 이 가사에는 다른 메시지가 숨어있다.

저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또는 거기에 감정 이입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들의 연정의 대상은 또 누구일까?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또는 "그대만이 정말 내 사랑인데 눈물이 나네요" 등의 가사를 고려하면 저 노래의 주체는 나이 먹은 기성세대 남성이며, 그 연정의 대상은 그들보다 훨씬 더 젊은 여성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기성세대 남성 모두가 저런 세레나데를 부를 수 있을까? 일인 가구로 폐지를 줍다가 고독사하는 노인들, 자식들이 이혼하면서 버리고 간 손자손녀를 힘겹게 키우는 노인들이 저런 노래를 부를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한다. 돈푼깨나 만지고 연금 덕분에 별 걱정 없이 살아가면서 영양상태도 좋은, 정력도 젊은이들 못지않고 어린 여자들에게 베풀어줄 금전적 심리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바로 저 유행가의 주인공들이다.

외국인 신부 수입이나 다문화 가정이 사회적 의제가 됐지만 최근에는 이런 현상이 뜸하다고 한다. 흔하게 보이던 외국인 신부 결혼 등의 간판도 많이 사라졌다.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충격적이다. 그나마 외국 여성이라도 데려와 결혼을 하려는 세대는 40대로 거의 끝났고 30대 이하 세대는 아예 결혼 의욕 자체를 거의 상실했다는 것이다.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19살 청년의 죽음이 송곳 같은 충격을 던지고 있다. '비정규직은 혼자 와서 죽었고, 정규직은 셋이 와서 포스트잇을 뗀다'라는 추모문(?)이 이 시대 진보의 묘비명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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