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핵 문제와 관련해 주목을 끈 뉴스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량이 꾸준히 늘고 있다는 미국발 소식이었고, 또 하나는 "북한과 9월까지는 어떤 대화도 없다"는 박근혜 정부 고위 관계자의 발언이었다.
6월 8일 <로이터>는 미국 국무부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해 "북한이 영변 핵 시설에서 사용 후 핵 연료를 빼내 식힌 다음 재처리 시설로 옮기는 작업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6일 후에는 미국의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가 위성 사진을 판독한 결과, 북한이 현재 "13∼21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특히 이 연구소의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소장은 2020년까지 북한의 핵무기 보유량이 최대 50개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20일 <한겨레>는 "정부는 9월까지는 북한과 그 어떤 교류 협력 사업과 대화도 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라는 박근혜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8~9월께면 북한이 국제 사회의 제재를 더는 견디지 못하고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라는 설명과 함께 말이다.
8∼9월이면 유엔 안보리를 비롯한 각종 대북 제재가 본격화된 지 6개월 쯤 지난 시간이다. 정부는 이때까지 대북 제재에 '올인'하면 북한이 굴복하고 나올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이를 '전략적 로드맵'이라고 명명하면서 북한 왕따시키기 외교에 몰두해왔다.
하지만 이건 아전인수에 불과하다. 대북 제재의 1차적인 목적은 북한의 핵 능력 강화를 막는 데에 있다. 그런데 제재 국면에도 불구하고 북핵은 꾸준히 증강되어왔다. 2013년 3차 핵 실험 직후에도 한-미-일은 "북한의 전략적 셈법을 바꿔놓겠다"며 강력한 대북 제재를 부과했지만, 2년 사이에 북핵은 5개가량 늘어났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추세는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 특히 김정은 시대 들어 이러한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대북 제재의 2차적인 목표는 북한으로 하여금 비핵화에 동의하고 협상 테이블에 나오게 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대북 제재가 강화된 시기에 북한의 공식적인 언술 체계에서 '비핵화'는 사라지고 말았다. 오히려 노동당 규약에 '경제 건설과 핵 무력 건설 병진 노선'을 명시하는 등 핵 보유국이 되겠다는 의지만 강해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북 제재의 목표 자체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북한 붕괴론이 바로 그것이다. 그 현실성과 위험성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정부의 대북 정책에서 북한 붕괴론은 거의 '종교적 신념'처럼 되어 버렸다. 하지만 북한 붕괴론이 맹위를 떨칠수록 북한의 핵 보유 의지는 강해질 뿐이다. 북한이 핵 무장의 이유 가운데 하나로 '제도 통일(흡수 통일) 저지'를 내세우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제재의 목표는 왜 이뤄지지 못하는 것일까? 제재는 잘못을 뉘우치게 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북한은 잘못한 게 없다고, 아니 잘하고 있다고 여긴다. 셈법을 바꾸기 위해 제재의 강도를 높일수록 북한의 결기어린 반항심만 커지게 된다. 더구나 북한은 핵 무장을 통해 '언터처블(Untouchable)'이 되었다고 믿는다.
이런 북한을 상대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없는 존재처럼 여길 수도 없다. 그래서 대화가 필요하다. 그들의 주장과 요구를 들으면서 '상호 만족할 수 있는 해법'이 있는지 찾아봐야 한다.
냉정하게 볼 때, 단박에 비핵화를 이룰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일단 멈춰 세워야 한다. 비핵화를 장기적인 목표로 설정하면서 북한의 핵 동결을 받아내고 정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대체하는 협상은 그 '전환점'에 해당한다. 그리고 8월에 예정된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의 중단 내지 대폭 축소와 북한의 핵 실험 및 탄도 미사일 발사 중단을 맞바꾸는 협상은 그 '시작점'에 해당한다.
시작점을 만들지 못하면, 8∼9월에 한반도는 또다시 위기에 봉착할 공산이 크다. 정부의 바람처럼 손들고 나온 북한이 아니라 한미 군사 훈련에 반발해 위기 지수를 높이는 북한과 맞닥뜨릴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 또다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면 미국 내 '사드파'들은 이를 빌미로 삼아 한국 내 사드 배치를 밀어붙이려고 할 것이다. 10월 한미연례안보회의(SCM)를 목표로 삼아서 말이다. "9월까진 북한의 태도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대화 없는 대북정책이 몰고 올 진짜 위험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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