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수(最惡手)'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이 결정이 철회되지 않는 한, 그래서 이 무기가 한국 땅에 있는 한, 우리는 그야말로 '헬조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결정은 강대국의 강요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박근혜 정부의 자발적 선택에 가깝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고 또 실망스럽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이번 결정으로 초래될 위기와 불안이 결코 일시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 있다. 우리가 숱한 위기를 겪어왔다고 하지만, 이번 위기는 질적으로 다른 속성이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먼저 한국의 적대국이 1개국에서 3개국으로 늘어날 위기에 처했다. 현존 위협이라는 북한과의 적대성은 더욱 강해지고 냉전 시대의 적대국이었다가 우호 협력 관계로 바뀐 중국과 러시아와는 거의 30년 만에 다시 적대 관계로 돌아설 위기에 처한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사드 결정에 대해 외교적 항의는 물론이고 군사적 대응까지 거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결코 기우가 아니다.
더구나 북핵을 상대하겠다는 사드의 방어적 실효성은 거의 없거나 오히려 역효과가 더 크다. 최소한 한국에게는 이렇다. 또한 세계 2, 3위의 군사 대국인 러시아 및 중국과의 관계 회복도 특단의 조치, 즉 사드 배치 발표 철회가 있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사드로 북핵이라는 혹을 떼려다 그 혹은 더 커지고 이보다 더 큰 혹을 여러 개 달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사드가 "자위적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실은 "가장 치명적인 자해 조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상당수 언론과 정치인들도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 이를 주문한다. 그런데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문제가 있다. 사드 배치가 공론화된 지 3년 가까이 지났다. 이 사이에 한미 양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납득시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오히려 이들 나라의 반발 수위는 더 강해져 왔다. 과연 배치 결정을 내리기 전에도 실패했던 설득 외교가 결정 후에 성공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미션 임파서블'이다. 오히려 중국과 러시아는 무시당했다고 분개하고 있다. 이들 나라는 최고 지도자들까지 나서서 반대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었다. 그런데 한미 동맹이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배치 결정을 발표하자 즉각 "강한 불만"을 표했다. 이로 인해 한국이 이들 나라를 설득하기는커녕 문전박대 받게 될 처지에 내몰리고 있다. 중국의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한국 친구들, 어떤 변명도 안 통해!"라고 말한 것도 이러한 기류의 반영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위기와 불안이 사드 결정을 번복하지 않으면 장기화되고 고착화될 우려가 대단히 높다는 것이다. 1차적인 고비는 사드 발표와 내년 하반기로 예정된 실제 배치까지의 1년여의 시간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한미 양국의 결정을 번복시키기 위해 다양하고도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할 것이다.
그런데 이때만 참는다고 곧 지나갈 문제도 아니다. 기어코 사드가 한국에 배치되면 중국과 러시아는 외교적·경제적 압박에 더해 군사적·전략적 대응에도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사드 부대를 겨냥한 미사일 부대 배치, 중러 간의 전략 무기 협력 본격화, 동아시아 세력 균형 유지 차원에서 북한 핵 보유 사실상 묵인 및 북-중-러 군사 협력 관계 복원 등이 이에 해당된다. 한국 내 사드 배치는 우리를 '지정학적 감옥'으로 인도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해온 까닭이기도 하다.
위기의 장기화, 고착화는 사드의 무서운 '증식' 능력에서도 비롯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세이의 법칙'처럼 사드를 비롯한 MD는 끊임없이 수요를 창출하고 그래서 강화·확대된다. 가령 이번에 배치키로 한 사드 포대가 수도권을 방어 대상에 포함시킬 수 없다면, 한미 군 당국과 일부 언론은 제2의 사드 포대 도입이나 패트리어트의 증강, 심지어는 이지스함에 장착하는 SM-3 미사일의 도입 필요성을 제기할 것이다. 펜타곤과 록히드마틴은 기존 사드보다 빠르고 멀리 날아가는 확장형 사드(THAAD-ER) 개발에도 착수한 상황이다.
또 최근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 시험 발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은 사드를 비롯한 MD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투발 수단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아울러 사드가 배치되면 전략적 균형이 무너질 것이라고 간주하는 중국과 러시아도 한국에 대한 군사적 대응책을 강구할 것이다. 이는 곧 MD 확대·강화의 군사적 빌미가 되고 만다. 한마디로 한국은 'MD의 늪'으로 계속 빠져들 공산이 크다.
정리하자면 사드 배치 발표로 초래되는 위기는 전면적이고도 총체적이며 장기적일 수밖에 없다. 남남 갈등-남북 갈등-동북아 갈등의 악순환적 확대 재생산, 경제 불안과 안보 불안의 상시화, 중앙 정부와 사드 부지 주민 사이의 갈등, 추진론-신중론-반대론이 맞서면서 초래될 정치의 기능 부전 등 한국이 입게 될 유무형의 손실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가 될 것이다.
이를 초래하는 당사자가 박근혜 정부라는 점에서 '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이 고사는 진시황이 진(秦)나라를 망하게 할 자가 호(胡, 오랑캐)라는 예언을 듣고 변방을 막으려 만리장성을 쌓았지만, 진나라를 망하게 한 자는 호가 아니라 그의 자식인 호해(胡亥)였다는 뜻이다. 외부의 위협에만 주목하다가 내부의 문제를 소홀히 하면 망국(亡國)의 길로 빠져들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고사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정부가 사드 배치 발표를 철회하거나 최소한 배치 추진을 유보하는 것이다. 이것밖에는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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