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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필리핀에 졌다…남중국해 소용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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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필리핀에 졌다…남중국해 소용돌이 미중 갈등 격화에 동아시아 긴장 속으로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PCA)가 12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대한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필리핀이 지난 2013년 '남해구단선' 내 일부 섬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이 유엔해양법협약에 부합하는지 판단해달라고 중재신청을 내면서 시작됐다.

이와 함께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군도), 미스치프 환초(메이지자오), 수비 환초(주비자오), 파이어리크로스 환초(융수자오) 등은 간조기에만 드러나는 섬이어서 영토가 될 수 없다는 게 필리핀의 주장이다. 영유권 분쟁에 관한 첫 번째 국제 판결이란 점에서 관심이 쏠렸다.

예상대로 PCA는 필리핀의 손을 들어줬다. PCA는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로 삼고 있는 남해구단선에 대해 "법적인 근거가 없으며 무효하다"고 판결했다. PCA는 "다른 국가의 어민들과 선박들도 중국과 함께 역사적으로 남중국해의 섬에서 활동을 해왔다"며 "중국이 역사적으로 남중국해 해역의 자원들을 독점적으로 이용해 왔다는 주장에 대해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PCA는 스프래틀리 군도 등에서의 중국측 배타적 경제수역(EZZ)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PCA는 필리핀의 어민들이 남중국해 인근에서 조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중국이 이를 심각하게 심해하고 있다고 판결했다.

중국은 이미 밝힌 대로 PCA 판결을 수용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필리핀이 양자협상을 통해 해결하기로 한 양국 간의 협약을 어기고 일방적으로 제소한 것 자체가 국제법 위반이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왜 남중국해인가?

중국이 '판결 무시' 및 강경 대응을 천명한 이유는 남중국해가 갖는 경제적, 전략적 중요성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취임 당시부터 '해양강국'을 국가적 목표로 추진해왔다. 중국 경제성장 전략의 핵심인 '21세기 해양 실크로드' 구상의 출발점이 남중국해다.

중국이 수입하는 석유의 80%가 이 곳을 통해 들어온다. 중국 선박의 90% 이상이 남중국해를 통해 태평양과 인도양으로 나가며 연 5조 달러 규모의 상품이 오간다. 에너지 자원의 안정적 수송로이자 무역의 교차로인 셈이다. PCA 판결에도 중국이 남중국해를 결코 포기 할 수 없는 이유다.

남중국해 자체도 어마어마한 원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된 자원의 보고다. 원유는 최대 2130억 배럴, 천연가스는 3조8000억㎥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중국해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위해 중국은 인공섬에 등대를 세우고 활주로를 건설했다. 해군과 공군이 무력시위를 하며 영해와 영공을 단속해왔다. 판결 전날인 11일까지 중국은 이 지역에서 전략폭격기까지 동원한 군사훈련을 했다.

반면 미국은 중국의 해양굴기를 자국의 해양 패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전략의 핵심은 중국 봉쇄다. 지난 5월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베트남, 일본 순방 시 미국 언론들은 "중국 봉쇄를 위한 외교"로 의미 부여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과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또 다른 나라 베트남에 무기 수출 금지 전면 해제라는 선물을 안겼다. 일본에게는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하고 과거사를 씻어줬다.

미국은 '항행의 자유' 논리를 앞세워 필리핀과 베트남 등을 지원하는 한편 일본과도 중국 봉쇄의 역할을 분담해왔다. 일본 역시 동중국해의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댜오)에서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당사국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은 12일 "PCA 중재 재판의 판단은 분쟁 당사국 사이에서 구속력이 있다"며 중국 정부의 판결 수용을 압박했다.

남중국해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압박도 지속적으로 전개돼왔다. 미국은 판결을 앞두고 필리핀 동쪽 해역에서 태평양함대 소속 '존 C 스테니스'와 '로널드 레이건' 등 항공모함 2척을 동원해 공중방어 및 해상정찰 작전을 벌였다.

동아시아 전체가 남중국해 소용돌이로

영유권 분쟁을 계기로 미국과 중국이 직접 맞부딪힌 남중국해 갈등이 향후 어떻게 전개되느냐는 일차적으로 중국의 대응에 달렸다.

'PCA 판결 무시' 기조 속에 외교적 해법으로 가닥을 잡을 수 있다. 대외적으로는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더라도 국제적 명분이 취약해진 중국이 필리핀 등과 외교적 협력을 모색하는 시나리오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도 친미 성향의 베그니노 아키노 전 대통령과 달리 중국과 타협을 통한 원만한 해법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는 지난 5일 PCA 판결 수용 의사를 밝히면서도 중국에 대화를 제안했다.

일각에선 9월 께 두테르테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필리핀의 소송 취하를 요구했던 중국이 판결 이후 필리핀의 대화 제의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중국이 남중국해 일대에서 강공책을 펴면, 동아시아 전체가 미중 간의 갈등에 휘말리는 사태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남한에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한데 이어 일본 아베 정권이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하는 등 미국의 대중 압박 흐름이 가시화된 점도 중국이 강경한 선택을 할 가능성을 점치는 근거다.

중국이 남중국해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하거나 인공섬에 군사시설과 미사일 등 무기를 배치하는 등의 행위를 하는 경우다. 오는 9월 중국은 러시아 해군과 함께 남중국해 해역에서 합동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도 '항행의 자유' 논리를 앞세워 남중국해에서 정찰 활동을 늘리거나 주변국들과 공동으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중화권 매체 보쉰은 최근 시진핑 주석이 PCA의 판결을 계기로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무력 도발에 나설 경우 중국군에 일전불사할 각오를 다지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미중 갈등이 격화될수록 동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이냐 중국이냐'는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중국이 반대하는 사드 배치 결정으로 미국과 보조를 맞춘 한국 정부로서는 더욱 곤혹스런 상황에 내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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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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