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 시험 발사에 성공하면서 이에 대한 대응책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1개 포대로는 역부족이라며 동서남북 네 방향을 겨냥한 사드의 추가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에서부터 한국형 이지스함에 SM-3를 장착해야 한다는 주문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더해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오고 있고 '핵에는 핵'이라며 독자적인 핵무장을 추진하거나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합리적인 대응은 정확한 현실 인식과 선택하려는 대응책의 실현 가능성 및 적실성, 그리고 득실 관계를 냉정하게 따지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위에서 열거한 요구들은 하나같이 대안이 될 수 없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나 적실성이 떨어지고 심지어 자해적인 성격마저도 짙기 때문이다.
현실 인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북한의 SLBM은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결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이 SLBM 개발에 성공하고 전력화하더라도 한미 연합 전력의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는 지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지적이 북한의 SLBM이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북한의 SLBM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는 김정은 체제가 원하는 바이자 적절한 대응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북한의 SLBM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대응은 이 무기의 전략적 가치를 억제하는 데에 있다. SLBM의 전략적 위협은 탄도 미사일에 핵탄두가 장착되고 그 수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날수록 커진다. 또한 장시간의 잠항 및 장거리 이동이 가능하고 여러 발의 SLBM 장착이 가능한 핵 추진 잠수함을 플랫폼으로 이용할 때 극대화된다.
북핵 동결의 시급성은 바로 이 부분에서 나온다. 북한의 핵 동결을 이끌어내면 북한은 추가적인 핵무기 생산의 길이 막히게 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SLBM에 핵탄두를 장착할 여력이 줄어들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핵 동결 대상에 우라늄 농축 활동 중단도 포함시켜 핵잠수함 건조에 필요한 소형 원자로 개발을 차단할 수 있는 협상책도 강구해야 한다.
협상을 해야 한다고 하면 인상부터 찌푸리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협상다운 협상은 지금까지, 특히 이명박 정부 이후부터는 없었다. 또한 협상을 군사적 대응의 포기와 동일시하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협상은 강력한 대북 억제력을 전제로 깔고 있다.
"안보를 무시했다"며 부당한 공격을 받아온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의 핵심적인 대북 정책의 기조도 '튼튼한 안보'였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북한은 한미 동맹의 군사력을 영원히 따라올 수 없다.
협상은 동북아의 지정학을 한국에게 유리하게 만들어가는 데에도 대단히 유용하다. 협상의 진전은 북핵 능력의 동결과 저하, 그리고 한반도 정세의 안정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다.
또한 북한의 거부로 협상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를 한국 쪽으로 견인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한미 동맹이 성의를 가지고 협상에 임하는데 북한이 마다한다면, 사드 발표로 흔들리고 있는 대북 압박과 제재 구도도 자연스럽게 복원·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협상은 그 자체로도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는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 개선의 효과는 양면적이다. 한편으로는 북한의 전략적 선택에 영향을 미쳐 핵 동결과 비핵화의 가능성을 높여줄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무력 도발과 같은 북한의 오판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지정학적 환경의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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