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한 인터넷 커뮤니티가 지진 경보 서비스라는 '지진희알림'을 만들었을까. 21일 오전에 발생한 지진은 '지진희알림'이 기상청의 트위터 계정이나 국민안전처 재난문자보다 더 빨랐다고 한다. (☞관련 기사 : ) 각자도생해야 하는 황폐한 현실을 상징한다고 할까.
재난 대비 시스템은 급할수록 제대로 돌아가고 효과를 내야 한다면, 그런 점에서도 "공적 시스템은 없다"고 해야 하는 지경이다. 그래도 다른 시스템은 돌아갈 터, 예상하기로는 재난 문자와 홈페이지를 고치기 위해 야단법석을 떨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기상청은 국민안전처와 별도로 직접 재난 문자를 발송하겠다고 발표했다. 모든 부처가 큰돈을 들여 컴퓨터 용량을 키우고 사람을 늘린다고 할 것이 뻔하다. 지진이 아닌 다른 일이라고 가만히 있겠는가. 엉망으로 돌아가는 것을 봤으니, 시설이든 인력이든 다시 챙겨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나마 크지 않은 피해로 '반면교사' 교훈을 얻을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정말 나아진다면 예방주사라 치고 그리 나쁜 일이라고만 할 수 없다. 하지만, 낙관하기는 이르다. '환골탈태'나 근본 개혁이 되기에는 틈이 많고 '시스템' 접근에 미치지 못한다.
많은 이유 가운데 한 가지만 꼽는다. 이 사안을 '구조'로 접근하지 않는 데다, 그중에서도 재난의 불평등 구조를 전혀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 정부와 국회 모두 야단법석인 재난 정보 전파 체계가 대표적 예다.
문제 인식과 해결 방식은 단선적이고 쪼개져 있다. 지금 논의하는 대로 고치면 재난 문자 발송을 더 빨리하거나 어느 때든 홈페이지가 돌아가게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재난 문자를 아예 받을 수 없거나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언론 보도로는 무려 1190만 명이나 되는 3세대(G) 휴대폰 사용자가 재난 문자 대부분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관련 기사 : )
구형 휴대폰도 재난 문자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대책은 이미 나왔으니, 좀 시간이 지나면 이 문제도 해결될지 모른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가 남는다. 휴대폰이 아예 없거나 문자를 읽을 수 없거나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고령 노인이나 장애를 가진 분, 그중에서도 혼자 사는 사람에게 재난 문자가 소용이 닿을 리 없다. 인터넷 홈페이지는 더구나 소수와 일부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지리적 여건이나 주택, 개인의 반응 능력(건강이나 기능, 장애 등)을 생각하면 그런 사람들일수록 재난에 더 취약할 것이 분명하다. (1) 조건과 환경의 취약성과 (2) 예방과 대비의 취약성을 함께 가진, 이른바 '이중의 취약성' 상태에 놓이는 것이 현실이자 진실이다.
'이중의 취약성'은 '이중의 불평등'을 다르게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 조건과 환경의 불평등, 그리고 (2) 예방과 대비의 불평등. 어느 언론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취약성과 그것의 불평등은 지진 피해의 원인이자, 경과, 결과로 현재 진행형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불평등 구조가 내연했던 것은 (다른 형태의 재난이었던) 메르스 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 (☞관련 기사 : ) 메르스 정보를 얻고 해석하는 데에, 어떻게 움직이고 행동하는 데에, 격리하고 격리를 '당하는' 갈림길에, 그리고 의사와 의료 기관을 찾는 곳곳에 불평등이 실현되었다.
메르스 당시의 겉으로 드러난 노골적인 불평등은 국립중앙의료원에 입원해 있던 에이즈나 결핵 환자를 무작정 밖으로 내보낸 것이었다. 가장 취약한 집단이 가장 불리한 처우를 받았으니 가장 심한 불평등이 아니고 무엇이랴. 메르스라는 압도적인 위험과 불안 때문에 다른 불평등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은 따로 기억해야 한다.
경주 지진과 메르스가 다르지 않은 것은 재난이 보편적(또는 공통의) 불평등 구조를 갖기 때문이다. 다른 재해, 나아가 규모가 그것보다 작은 사건과 사고도 비슷하다. 자연재해든 인공 재해든, 불평등은 재난의 본질적 요소 가운데 하나다.
다시 말하지만, 자연재해도 예외가 아니다(사실, 동어반복일지도 모른다). 재해나 재난 그 무엇이라 하든, '재(災)'라는 말 자체가 사회적인 것을 뜻한다. 아직도 기억하는 미국의 카트리나(2005년 9월), 동일본 대지진(2011년 3워), 필리핀의 태풍 하이옌(2013년 11월), 네팔의 지진(2015년 4월)이 모두 마찬가지다. 자연재해지만 인공의 요소가 개입했고, 불평등한 구조와 통로를 통해 불평등한 결과로 이어진다.
재난의 불평등 구조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다음 3단계를 거친다. (1) 불평등한 발생과 노출, (2) 불평등한 대응(대비), (3) 불평등한 결과(피해). 불평등한 노출과 발생은 자연재해보다는 인공 재해 쪽이 두드러지지만. 여러 요소가 뒤섞이고 결합할 때 자연과 인공을 나누는 것은 부질없다.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핵발전소 사고는 결국 하나가 아닌가, 이 지역 농어민에게 불평등하게 실현된 재난이자 재해 피해다.
불평등한 대응과 대비, 그리고 불평등한 결과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같은 강도를 가진 자연재해라도 허술한 집이면 더 쉽게 무너지고(대응과 대비), 건물이 같은 정도로 손상을 입어도 그 안에 사는 사람이 신체장애가 있으면 피해가 중할 수밖에 없다(결과). 여기서 노출(발생)과 대응(대비), 그리고 결과는 이어지면서 동시에 가중된다.
이런 구조는 그냥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재해 규모와 강도가 압도적일수록 '분포'는 힘을 잃기 마련이다. 늘 총량과 총규모가 주목을 받기 쉽고, 개인은 숫자로 추상화된다. 그중에서도 자연재해는 총체와 집약으로 나타나는 '지역'을 넘어 포착되기 어렵다. '특별 재난 지역'이 재해를 드러내는 동시에 재해의 구조를 숨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재해의 불평등 구조를 넘기 위해서는 이 일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먼저 '알아차리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피해와 고통이 불평등하게 나타나는 것, 그리고 그 배후에 불평등 구조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첫 단계다. 유감스럽지만, 경주 지진과 메르스의 불평등 구조는 아직 이런 인식 범위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재난 문자도 필요하고 누구나 이해하는 행동 요령을 제대로 전파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일을 위해서도 재해가 일어나고 영향을 미치는 전체 과정에 불평등 구조가 완강하게 버틴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인식의 진전을 위해, 이제 형평성의 '주류화(mainstreaming)'를 제안하고자 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주류화는 모든 일의 모든 단계에 어떤 가치와 기준으로서의 '렌즈'를 들이대는 것을 뜻한다. 한편으로 다른 가치를 '반(反) 주류화'하고 '주변화'하는 시도라는 의미도 있다.
'형평성 주류화'라는 말은 확립되어 보편적으로 쓰이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이젠 제법 익숙해진 '젠더(또는 성) 주류화' 개념을 응용해 불평등 인식에도 이 개념을 도입할 것을 주장한다. 주류화는 재난의 불평등뿐 아니라 다른 건강과 보건 문제, 또는 사회 문제와 사회 정책에도 널리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1997년 유엔경제사회이사회는 젠더 주류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젠더 주류화는 모든 영역과 모든 수준에서 입법, 정책, 사업을 포함하는 모든 행동 계획이 여성과 남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평가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이는 모든 정치, 경제, 사회적 영역의 정책과 사업을 계획, 실행, 모니터링, 평가함에 있어 여성과 남성의 관심과 경험을 필수적인 차원으로 통합하기 위한 전략이다. (…) 이의 궁극적인 목표는 양성 평등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관련 자료 : )
조금 바꾸어 적으면 형평성 주류화는 이렇게 규정할 수 있다.
"형평성 주류화는 모든 영역과 모든 수준에서 입법, 정책, 사업을 포함하는 모든 행동 계획이 서로 다른 집단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평가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이는 모든 정치, 경제, 사회적 영역의 정책과 사업을 계획, 실행, 모니터링, 평가함에 있어 서로 다른 집단, 계급, 계층의 관심과 경험을 필수적인 차원으로 통합하기 위한 전략이다. (…) 이의 궁극적인 목표는 서로 다른 집단 사이의 형평성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것에서 불평등이 심화되는 시기, 형평성 주류화가 또 다른 시작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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