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2일 저녁 부산 가톨릭센터에서 '사드와 북핵'을 주제로 강연할 때 벌어진 일이다. 강연 시작 직후 청중들을 바라보던 내 눈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피곤한 탓이었나 싶었는데, 누군가 핸드폰을 보곤 '지진'이라고 알려줬다. 잠시 후엔 내 눈뿐만이 아니라 다리가 흔들리는 걸 느꼈다. 주최 측에서 계속해 달라고 해서 말을 이어갔지만, '핵발전소는 괜찮을까?'라는 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렇다. 계기 관측 이래 최대 규모라는 지진이 경주에서 발생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핵 '무기'와 핵 '발전'을 분리해서 봤던 내 마음의 장벽은 2011년 3월 발생한 후쿠시마 참사로 무너진 바 있다. 그리고 이번 지진으로 한국도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내 '불편한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지진 발생 사흘 전에는 북한의 5차 핵 실험이 있었다. 핵무기의 탄두화가 완성되었거나 그 문턱에 도달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었다. 한국 내 일각에선 독자적인 핵무장이나 미국의 전술 핵을 재배치해야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하지만 우리의 운명에 성큼 다가선 '또 하나의 핵', 즉 한국의 핵발전소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는 여전히 소수로 그치고 있다.
한국에게 핵은 세 가지 얼굴로 다가온다. '존재론적 위협'으로 일컬어지는 북핵, 그 존재론적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지켜준다는 미국의 핵우산, 그리고 수명을 연장하고 새로 지으면서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한국 내 핵발전소가 그것들이다. 하지만 북핵의 공포는 '과장'되기 일쑤이고, 미국의 핵우산은 '찬양'의 대상이며, 한국의 핵발전소는 안전 신화 속에 그 위험성이 '외면'받고 있다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하지만 나는 북핵보다 남핵, 즉 한국의 핵발전소가 더 무섭다. 인간의 실수에 의해서든, 기계의 오작동에 의해서든, 지진과 같은 자연 재해에 의해서든, 전쟁 시 피격에 의해서든 핵발전소가 폭발하는 순간, 대한민국의 미래도 사라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핵보다 남핵이 더 무서운 본질적인 이유는 또 있다. 북핵은 억제 및 통제 가능하지만, 남핵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한미 동맹의 강력한 보복 능력은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 사용이 곧 자멸이라는 것을 일깨워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그래서 대북 억제는 가능하다. 또한 관계 개선과 협상을 통해서 북핵을 통제하고, 또한 동결‧축소‧폐기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남한의 핵발전소는 그렇지 못하다. 인간이 지진 발생을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진 규모를 억제할 수도 없다. 협상을 통해 지진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도 없음은 물론이다.
유일한 방법은 인간이 자연 앞에서 겸손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운명을 천운에 맡길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건 바로 '탈핵'이다. 노후한 원전을 하루빨리 폐기하고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혹자는 이번 지진과 계속되는 여진이 더 큰 규모의 지진을 예고해주는 '전조'라고 말한다.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말로는 안심이 안 되는 현실이다. 그 가능성이 높고 낮음을 떠나 가능성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리고 그 가능성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가 선택해야 할 미래는 자명해지기 때문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