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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주치의, 대통령 사망 진단서를 끊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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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백남기 주치의, 대통령 사망 진단서를 끊었다면… [안종주의 안전 사회] 백남기 '사망 진단서'와 전문가 윤리
농민 백남기 씨의 사망 진단서에 적힌 사망 원인을 놓고 한국 사회가 소용돌이 치고 있다. 그가 시위 도중 경찰의 직사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서울대학교병원으로 뒤늦게 옮겨지고 나서 317일간 사투를 벌이다 마침내 숨졌다는 것은 천하가 아는 사실이다.

알 만한 모든 사람이 그의 사인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서울대병원 교수는 그가 물대포 충격에 의한 외인사가 아니라 '심폐 정지'로 사망 원인을 적었다. 사망 종류는 '병사'라고 했다. 정말 소가 웃을 사망 진단서다. 대다수 국민의 눈에는 사실상 '허위' 사망 진단서로 보인다.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 원인은 삼척동자도 다 알정도로 너무나 명명백백하기 때문에 여기서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서울대 의과대학 학생과 서울대 의과대학 총동문회 등과 일부 법의학자들이 잇따라 서울대병원의 사망 진단서가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에 언론들이 앞 다퉈 이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것들이 뉴스거리가 될까 싶기도 하다.

이보다는 왜 서울대병원 교수가 일반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사망 진단서를 작성하게 됐는지가 더 묻고 따져볼 대목이 아닐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런 사망 진단서를 떼어준 의사는 '심폐 정지' '병사'를 기재하면서 양심이 조금이라고 있었다면 심장이 두근두근 했을 터이다. 아니면 원칙대로, 매뉴얼대로, 의과대학에서 배운 대로 외부 충격에 의한 급성뇌경막출혈 사망, 외인사로 했을 경우 병원에서 자신이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염려했을 수도 있다.

자신의 목줄을 쥐고 있는 상관인 서울대병원장이 지난 4월까지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 주치의를 지냈던 사실을 의식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확증은 없지만 세상 사람들이 모든 관심을 쏟을 백 씨의 사망 진단서 사망 원인을 놓고 병원 내 윗분과 상의를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회적 파장이 엄청난 허위 내용을 기재하면서, 그것이 가져올 역풍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모를 리 없다. 그렇기에 그렇게 하게 된 데는 분명 말 못할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것이다. 매우 합리적인 의심이다.

전공의에게 사망 진단서에 '심폐 정지에 의한 사망' '병사'라고 기재하도록 지시했던 농민 고 백남기 씨의 주치의 백선하 교수는 사망 진단서와 관련해 자신의 양심에 따라 그렇게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3일 "지난 7월 백 씨에게서 급성신부전이 발생했을 때 환자의 가족들이 적극적인 치료를 원치 않아 체외투석 등 치료를 시행하지 못했다"며 "이런 이유 때문에 사인을 병사로 표기한 것"이라고 밝혔다. 백 교수는 또 "만약 백 씨가 경막하출혈 후 적절한 최선의 치료를 시행 받았는데도 사망을 하게 됐다면 사망 종류를 외인사로 표기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야말로 유족들의 가슴에 시퍼런 피멍을 들게 만드는 주장이다. 적절한 치료로 살릴 수 있는데도 가족들이 반대해 죽게 됐다는 것이다. 자식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317일 동안 사실상 식물인간처럼 살았던 백남기 씨가 체외투석을 받았다면 과연 병상을 박차고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렇게 쉽게 살아날 수 있는 것을 서울대병원은 317일 동안 어떤 치료를 했기에 그가 식물인간처럼 지내도록 만들었는가.

백선하 교수에게 물어 답을 듣고 싶다. 만약 국가 지도자급 인사가 누군가의 총격에 의해 머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백 교수가 주치의를 맡았다고 하자. 317일간 치료에도 사실상 식물인간처럼 지내다 가족들이 더는 소생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더 이상의 치료를 원하지 않는다고 해 얼마 뒤 결국 죽었다면 사망 진단서에 총격에 의한 외인사로 하지 않고 '병사'. '심폐 정지에 의한 사망'이라고 기재하겠는가.

가습기 살균제 청부 연구에 이어 허위 사망 진단서 논란에 휩싸인 서울대

가습기 살균제 참사 사망 원인을 놓고 우리 사회 최고 전문가라고 하는 서울대교수가 가습기살균제 성분 때문이 아니라는 '청부 연구'를 한 것으로 검찰 수사로 연구 5년 만에 드러나 최근 징역 2년의 1심 판결을 받은 바 있다. 그는 산모와 어린이 등을 대거 죽음으로 몰고 간 폐 손상의 원인이 분명 가습기살균제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진실보다는 돈을 택했다. 양심보다는 거짓을 중시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원인에 이어 백남기 농민 사망 원인과 관련해서도 '허위' 사망 진단서를 서울대병원 교수가 발부해주자 우리 사회에서는 왜 서울대 출신들이 우리 사회의 윤리와 도덕을 분탕질하는 일에 앞장서는지 모르겠다며 비판한다. 의사, 법률가, 교수 등 우리 사회 전문가들은 진실 게임이 벌어지거나 재난, 사건 등이 벌어졌을 때 이를 판정하거나 진실을 파헤쳐 국민에게 알려주는 판관 구실을 해야 한다.

이들의 뇌에 거짓과 돈과 권력에 대한 아부가 자리 잡을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사회 가 입게 된다. 특히 힘없고 못 배우고 돈 없는 사람들이 전문가들의 거짓놀음과 부도덕에 놀아나게 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그 가족이, 백남기 씨 자녀들이 부도덕한 전문가들의 장난에 고통을 겪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그동안 의사가 발급해준 허위 진단서 또는 허위 사망 진단서로 시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사건들이 많았다. 대전에서는 한 대학병원 의사들이 폭행으로 숨진 사람을 병사를 했다고 허위 사망 진단서를 끊어줘 입건된 일이 있었다.

2013년에는 두 살배기 아기가 부모의 학대와 폭행 끝에 뇌경막출혈을 일으켜 숨졌음에도 아기의 주검을 보지도 않은 채 허위로 뇌출혈에 의한 병사로 시신 검안서를 작성한 의사가 허위검안서 작성 혐의로, 이 아기가 질병으로 숨지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지 않은 경북대병원 의사와 경북대병원이 의료법 위반으로 각각 불구속 입건된 적이 있다.

2002년 발생한 여대생 청부 살인 사건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이 사건 때 영남제분 전 회장 부인이 여대생을 청부 살인하도록 교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부인은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형 집행정지로 풀려나 2007년부터 6년 동안 38차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자유롭게 외출까지 하면서 교도소가 아닌 VIP 병실에서 생활했다. 돈에 매수된 주치의가 허위 진단서를 발급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불법, 파렴치 의사들에 대해서는 영구 면허 취소해야

의사들이 이렇게 불법과 부도덕을 일삼는 데는 돈 맛에 길들여진 탓도 있지만 이런 파렴치와 불법을 저지른 의사에 대해 우리 사회가 의사 면허 취소와 같은 강력한 조처를 취하지 않아왔기 때문이다. 허위 진단서나 허위 사망 진단서의 경우 부주의나 실수에 의해 빚어진 것이 아니다. 100% 고의성을 띠고 있다. 이런 사안은 생길 때마다 면허 일시 정지가 아니라 영구 면허 취소를 하면 된다. 아마 그렇게 되면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 하더라도, 권력이 무섭다 하더라도 감히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서울대병원의 '허위' 사망 진단서 사건은 지금의 경찰이나 검찰에 맡겨 실체를 파악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특별검사를 임명해 경찰이 무리하게 부검 영장을 청구하고 법원이 1차 퇴짜를 놓자 다시 재청구까지 하며 부검에 목을 매단 까닭이 무엇인지, 서울대병원 의사가 '허위' 사망 원인을 적게 된 이유와 과정에 어떤 불순 인물이 끼어든 일은 없는지 등을 철저하게 파헤쳐야 한다.

농민 고 백남기 씨 사망사건에 대한 특검을 주장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에 반대하거나 특정 이념 때문이 결코 아니다. 진실의 힘은 강하고 그 무엇과도 결코 바꿀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믿기 전에 반드시 충분한 증거를 요구하는 과학자들이 만드는 <스켑틱> 여름호에서 필 몰레는 '9.11 테러, 누가 음모론을 믿는가(2부)'란 글을 통해 진실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백남기 농민 사망 진단서 사건에 딱 어울리는 내용이다.

"진실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또한 악당들이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하여 진실을 이용할 때 이에 맞서기 위한 우리의 유일한 방어 수단이기 때문에 또한 중요하다. 우리는 진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짐으로써 정부를 비판할 수 있으며, 그들에게 증거와 논리라는 기준을 분명히 따르도록 요구할 수 있다."

죽어서도 고이 눈감지 못하는 사회, 부모가, 자녀가 분명 살인을 당했음에도 살인자는, 살인 교사자는 배 두드리며 지내는 사회, 왜 죽었는지 명백한데도 자꾸 엉뚱한 주장을 하며 주검에 다시 칼을 대려 하는 사회, 부검을 통해 죽음의 원인을 엉뚱한 곳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가 눈에 확연히 보이는데도 그런 세력에 굴복해 자신의 양심을 파는 전문가들이 자꾸 생기는 사회는 결코 안전사회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불안 사회, 위험 사회가 아니라 안전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부릅뜬 눈으로 사회 현안을 바라보는 깨어있는 시민들이 많아져야 한다. 이와 함께 양심 있는 전문가, 돈의 노예가 되지 않는 전문가, 권력에 굴하지 않는 전문가가 시민들의 손을 잡고 더불어 상식이 통하고 진실이 이기는 세상을 만들어갈 때 비로소 안전 사회의 문은 열릴 것이다.

그 동안 <프레시안>에서 '위험 사회' '건강 사회'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진실' 등의 연재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환경과 보건 문제를 깊이 있고 날카롭게 파헤쳐 독자에게 선보이고, 최근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정리한 책 <빼앗긴 숨>(한울 펴냄)을 펴낸 안종주 박사가 '안종주의 안전 사회'로 다시 독자를 만납니다.

이 연재에서는 그동안 천착했던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환경과 보건 위험뿐 아니라 지진 등 자연 재난과 도시 재난, 안전 제도, 위기 관리 등 더욱 폭넓은 주제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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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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