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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아니라 최순실 "형님"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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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아니라 최순실 "형님"이었나? [사회 책임 혁명] 지금 박근혜가 할 일은 개헌이 아니라 해명

2012년 12월 19일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박근혜가 대한민국의 18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내 주변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나도 탐탁지 않았다. 그렇다고 문재인이 되었다면 기뻤을까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쪽저쪽 모두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유권자로, 두 후보의 장점보다는 항상 단점을 한눈에 파악해내며, 늘 대안의 희망을 가늠하지만 (부끄럽게도) 현실의 장벽에 냉소로 쉽게 주저앉는 경향을 보이는 집단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의 당선 시점 또는 그 전과 후에,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는 것에 대해 내가 주변에게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언급한 사항이 박근혜의 성(性·sex)이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란 정도의 의미를 가질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다.

박근혜의 여성성에 관해서는 논란이 많았고 지금까지 이어진다. 황 아무개라는 전 대학 교수가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근혜에 대해 (박 후보의) 생식기만 여성이지 (박 후보는) 여성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게 대표적이다. 황 전 교수의 주장은 박근혜가 여성 대통령이 아니다로 요약될 수 있다.

'생식기'란 해부학적 용어를 일상적인 용어로 순화하여 다시 설명하면 "박근혜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이지만 사회학적으론 여성이 아니다"이다. 성과 성별, 생물학적 성과 사회학적 성, 섹스와 젠더의 구분쯤으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비록 황 전 교수가 그때에 젠더를 가부장적으로 수용하는 한계를 보였지만 크게 보아 그의 시각이 꼭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비하조로 말하는 '꼴펨'에 남자가 포함되지 말란 법 없으며 여자 마초가 없으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황 전 교수의 시각은 관점에 따라서 당시 박근혜에 대한 나의 의미 부여보다 더 진취적이다. 내가 생물학적 여성이 선출직 최고위직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일단 의미가 있다는 입장이었던 반면 황 전 교수는 그것만으로는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 입장을 옹호하자면, 사회학적 전환에 앞서 대체로 생물학적 전환이 우선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이었다. 익숙한 용어로 양질 전환이다.

황 전 교수와 다른 입장에서 박근혜의 여성성에 대한 일반적인 세간의 기대는, 박근혜가 여성이기에 덜 부패하리라는 판단이었다. 나도 약간은 동의하였는데, 여성 자체보다는 가족, 더 정확하게는 소위 직계 비속이 없다는 점에서 부패로부터 약간은 더 자유로울 여건을 갖췄다고 보았다. (부패와 관련하여 가정된) 여성성의 장점보다는 가족이란 질곡의 단점에서 자유롭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묘하게 일그러지며 깨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재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최순실 스캔들을 떠올리게 된다. 흔한 분석으로 방조했다면 탄핵감이고, 몰랐다면 무기력의 극치라고 할 수밖에 없다. "언니"라고 부르고 불리는 사이였다는 떠돌아다니는 말이 사실이라면 남자 세계의 "형님" 문화와 다를 게 없다. 황 전 교수의 분석이 맞아 들어가는 걸까.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비롯한 자신의 '수하'들에 대한 신뢰와 의리는 "형님" 문화를 압도할 정도로 더 "형님"스럽다. 사실 의리를 내세우는 "형님" 문화라는 게 이익 앞에서 쉽사리 무력해지는 현실과 비교하면 박근혜의 "형님" 문화는 "형님" 문화의 전범이라 할 만하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국민을 배신하면 했지 결코 측근을 배신하지 않는 사람이다. 여성 대통령인 그는 역설적으로 분명 이 시대 최고의 "형님"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개헌안을 꺼냈다. 박 대통령이 '깜짝 카드'를 꺼내는 장면에서 나는 1987년의 장면이 겹쳐졌다. 4·13 호헌 조치에 이어 6·29 선언으로 수세를 돌파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전두환 씨. 6·29 선언을 발표한 이는 노태우 씨이지만, 전두환 씨의 기획과 설득에 의해 가능했다는 게 정설이다. 민주주의를 향한 민중의 열망은 거짓 승리를 거머쥐며 한순간에 가라앉았고 소위 정치 지도자들은 권력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행여 자리를 빼앗길까봐 그들만의 포커판에 서둘러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현재의 87년 체제가 출범했다. 순전히 권력 구조에만 관심을 기울여서 승자독식이되 사이좋게 돌아가며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체제.

박 대통령의 개헌 구상에서 난 그런 기시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때와는 사정이 다르니 다른 저의 또한 숨어 있을 터이다. "참 나쁜 대통령"이란 민주당의 반응이 여러모로 시사적이다. 국면 전환, 친박 정권 재창출 등 여러 가지 분석이 대체로 설득력을 갖지만 나는 혹시 개헌 구상마저 오직 최순실 씨를 구하기 위해서 안출된 게 아닐까 하는 의혹을 갖게 된다. 마침 JTBC가 "최순실 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미리 봤다"고 특종 보도함에 따라 "봉건 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이원종 비서실장)가 사실일 가능성이 커졌다.

권력 서열 1위가 최순실이고 3위가 박근혜란 시중의 얘기가 설마 사실일리는 없겠고, 나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박 대통령이 순도 100%의 "형님" 의식을 갖다보니 최 씨를 구하기 위해 개헌 카드까지 꺼낸 게 아닐까 싶다. 정치가의 권력 의지마저 무력하게 만드는 블랙홀, 기승전 최순실. 반 농담 삼아 하는 이야기지만 사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는 드는 게 이상할 걸까.

모든 사람이 "봉건 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가 잇달아 현실로 확인되는 아수라장에 얼이 빠진 상태다. 도대체 선출직 최고위 공직자와 그 주변에서 왜 모든 상식이 증발하고 해석 불가의 상황이 점철되는지 궁금해서 미칠 노릇이다. 우리가 대통령이 아니라 최순실 씨의 "형님"을 선출했을지도 모른다는 심각한 우려에 대해 선출된 대통령은 유권자들에게 납득이 가도록 설명해 우려를 해소시켜 주어야 한다. 두 말할 필요 없이 박 대통령이 지금 할 일은 개헌이 아니라 해명이다. 해명 없이는 개헌은커녕 자리를 보전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 대한민국을 정상국가라고 부를 수 있다.


(안치용 교수는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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