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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3당, '박근혜 특검법'을 제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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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3당, '박근혜 특검법'을 제정하라 [시론] 진실 규명 주도권 잡아야 보수 정권 연장 음모 끊는다
지금 한국 사회는 중대한 착각에 빠져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이 모두 밝혀졌다는 착각. 그리하여 이제 남은 것은 정국 수습뿐이라는 착각이 그것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진실 규명은 이제 시작됐을 뿐이다. 그것도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에 의해서. 이는 마치 자기 답안지를 자신이 채점하는 것과 같다. 검찰이 지난 44개월간 박근혜 등이 저지른 국기 문란의 총체적 진실을 밝혀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진실 규명을 외면한 듯 보인다. '대통령 2선 후퇴' '김병준 총리 내정자 지명 철회' 등 부차적 문제에만 집착하고 있다. 이러한 착각이 계속된다면 한국 사회의 전면적 자기 쇄신은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1979년의 10.26이 신군부의 집권으로 귀결된 것처럼 2016년의 10.26이 보수세력의 재집권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지금 야당 세력이 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박근혜 특검법'을 제정해 지난 44개월간 박근혜 등이 저지른 헌정 유린의 총체적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다. 현 정권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적 특검에 의해 보수세력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법적, 정치적 구속력을 갖는 진실을 사회적으로 공인받는 것이다.

"더 이상의 폭로나 증거가 필요할까?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알았다."

<한겨레> 2일 자 '김동춘 칼럼'의 첫 구절이다. 지난 5일 '박근혜 규탄 집회'에 나온 시민들의 생각이 아마 이럴 것이다. '우리는 박근혜 실정(失政)의 모든 것을 알았다. 이제 남은 것은 그를 끌어내리는 것뿐'이라는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 즉 박근혜에 비판적인 시민들의 생각일 뿐이다. 보수세력도 그러할까? 나아가 박근혜의 실정을 알았다 해서 다음번 집권을 스스로 포기할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보수세력은 '그들'의 진실을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객관적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주체적으로 구성되고 사회적으로 공인됐을 때만 비로소 진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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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반 전, 세월호 사태를 돌아보자. 당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고 외쳤다. 달라졌는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왜?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을 집요하게 방해했다. 그리고 무산시켰다. 나아가 세월호 사건은 '애들이 놀러 가다가 교통사고 당한 것'이라는 믿음을 그들만의 '진실'로 간직하고 있다. 대통령의 '7시간 행방불명'도 밝혀지지 않았다. 해수부 관피아와 유병언의 유착과 부패 등은 '비판적 시민들의 진실'로만 남았다. 권력자와 보수세력 상당수는 아직도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들에게는 '애들이 놀러 가다가 교통사고 당한 것'이 사건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도자의 무능, 관료와 기업의 부패 등을 사고의 원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시민들의 진실'과 '권력자의 진실'이 다르다. 따라서 권력자는 바뀌지 않는다. 이것이 세월호 사태의 교훈이다. 권력자로 하여금 '시민들의 진실'을 받아들이도록 했을 때 비로소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 JTBC와 <한겨레> 등의 활약으로 진실의 상당 부분이 드러났다. 그러나 진상의 윤곽일 뿐이다. 총체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실마리에 불과하다. 예컨대 최순실이 재벌들을 '삥 뜯었다'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개성공단 폐쇄나 사드 배치 등 한반도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안, 또는 인사 등 국정 전반에 대한 최순실의 개입 정도, 청와대 내 실세라는 우병우와 최순실의 관계 등은 아직 확정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나아가 재벌이 일방적으로 '삥을 뜯긴' 피해자인지, 헌금의 대가로 훨씬 더 큰 반대급부를 받았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일례로 이중근 부영 회장은 안종범과의 대화에서 노골적으로 세무조사 중지를 요구했다는 보도가 있다. 또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에 따르면 미르재단 모금이 완료된 다음날(2015년 10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2016년도 예산안 시정 연설'에서 예산과는 별 관련이 없는 법들의 조속 처리를 주문했다. 첫째 4개 경제 활성화법(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관광진흥법, 의료법, 국제의료지원법), 둘째 5대 노동개혁법, 셋째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이 그것이다. 올해 1월 13일 즉 K스포츠재단 입금이 끝난 다음 날에는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국회에 또다시 주문했다. 첫째, 노동개혁법 처리, 둘째, 경제 활성화를 위한 서비스발전법 및 '원샷법'(기업활력제고특별법) 처리 등이 그것이다. 즉 헌금을 대가로 재벌들의 소원 수리를 해준 것이다.

(☞ 재벌이 입금하자, 박근혜-최순실이 움직였다)

하지만 이런 언론 보도는 엄밀하게 말해 의혹 제기일 뿐이다. 대통령이 2차례에 걸쳐 사과했다는 점에서 진실임이 입증됐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와 관련해 법적, 정치적 구속력이 있는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결국 법적 권한을 갖는 수사기관이 나서야 한다. 지금 그 역할을 검찰이 하고 있다. 그리고 수사 상황은 최재경 신임 청와대 민정 수석에게 보고되고 있을 것이다.

과연 검찰은 실체적 진실, 진실의 전모를 밝혀낼 수 있을까? 검찰의 수사 결과를 이번 사태에 대한 전체적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난 수십년 간의 검찰 행태로 미루어 그 대답은 '노(No)'다. '성공한 쿠데타는 쿠데타가 아니'라며 전임 대통령도 처벌하지 못했던 검찰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권력을 칠 수 있을까?

그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안종범에 대해 뇌물죄가 아닌 직권남용죄를 적용했다. 한 전임 특수통 검사에 따르면 직권남용은 법원에서 유죄를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무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는 '뇌물 수뢰 후 부정 처사'로 기소하는 게 맞다고 지적한다. 의혹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인 우병우는 수사 개시 75일, 민정 수석 사임 후 1주일 만에야 검찰에 '황제 출두'했다. 팔짱을 낀 채 여유만만한 모습의 우병우는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한겨레> 5일 자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우병우는 최재경을 검찰총장 후보로 밀었다고 한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한 법조인은 "김수남 대검 차장이 0순위였는데 우병우 민정수석이 박근혜 대통령을 설득해 최재경 변호사도 후보로 올라갔다"고 전했다. '우병우 민정수석이 최재경 검찰총장 지명을 막아서 두 사람 사이가 좋지 않다'는 세간의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재경 민정수석' 카드를 오래 전부터 구상한 사람은 이명재 청와대 민정특보다. 경북 영주 출신인 이 특보는 검찰의 대표적인 티케이 원로다. 최재경은 2007년 8월 한나라당 대선 경선 1주일 전에는 이명박 후보에 불리한 수사 결과를 내놓았다가 그해 12월 대선 2주일 전에는 BBK 주가조작 사건 등 이명박 후보의 모든 의혹을 무혐의 처리했다. 한마디로 정치적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대표적인 정치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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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은 지난 3일 방영된 JTBC <썰전>에서 검찰이 당연히 '박근혜 게이트'를 축소·은폐하려 하겠지만, 시민들의 제보와 그동안 JTBC, 한겨레, 경향, 조선 등 언론들이 확보해 놓은 사실들 때문에 쉽사리 성공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검찰이 수사 및 기소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한, 사태의 총체적 진실을 밝혀낼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특히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철저하게 수사하려다 낙마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도 최근 검찰의 수사에 회의적 전망을 내놓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정신 나간 두 여인의 개인적 일탈이나 비리가 아니다. 지난 44개월간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외교, 안보를 송두리째 무너뜨린 거대한 부패의 덩어리다. 여기에는 새누리당-검찰-보수언론-재벌이 공범으로 가세했다. 채동욱의 돌연한 낙마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그 공범 중 하나인 검찰에게 이 사건의 진상 규명을 맡겨도 되는 것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지금 야당이 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박근혜 특검법'을 제정해 독립적 특검으로 하여금 사태의 전모를, 있는 그대로 소상하게 밝혀내는 것이다. 적어도 30명 이상의 양심적 법률가들을 임명해 2년 이상 별도 특검을 실시해야 한다. 대통령이 지명하는 현재의 특검으로는 안 된다. 3년 8개월간 자행된 부정부패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별도 특검, 즉 '박근혜 특검법'이 반드시 제정, 시행돼야 한다. 미국의 경우 9.11사태의 진상을 파헤치는데, 2년 10개월이 걸렸다. 60일, 90일 시한의 특검으로는 결코 사태의 전모를 밝혀낼 수 없다. 우리 국민 모두가 머리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게 만든 이 세기적, 세계적 스캔들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한국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장기전을 각오해야 한다. 그리하여 권력자도, 보수 집권 세력도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태의 '사회적 진실'을 확립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바로 한국이 거듭 태어날 수 있는 시발점이 된다. '진실' 없이는 '쇄신'도 '개혁'도 있을 수 없다.

박명림은 지난 4일 자 <중앙일보> 시평에서 박근혜 정부 4년을 '사설 정부'로 규정하면서 "국가를 위해 한국의 보수는 상당 기간 집권하면 안 된다. 민주화 이후 보수는 최초 10년 집권의 결과 국가를 환란의 나락에 빠뜨렸다. 두 번째 10년 집권은 외환위기 때보다 더한 민생 파탄에다 국기 붕괴와 헌정 파괴까지 초래했다. 한국 보수의 실정과 악정은 당분간 치유 가능성이 없다. 집권하면 안 되는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처럼 한국의 보수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며 스스로 집권을 포기하는 일이 벌어질까? 나는 이것을 희망사항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보수가 이 나라를 어떻게 말아먹었는지가 총체적으로 규명되고 사회적으로 공인되지 않는 한, 보수의 정권 연장 음모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총체적 진상 규명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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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규명 작업은 정국 수습과는 별도로 일관되고 집요하게 추진돼야 한다. 그리하여 보수세력이 이 나라를 어떻게 망쳐왔는지를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야당과 시민 세력이 진실 규명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민주당이 주장하는 '대통령 2선 후퇴' '김병준 총리 내정자 지명 철회' 등은 그 주도권이 청와대에 있다. 청와대가 안 들어주면 그만이다. 그러나 '박근혜 특검법'에 의한 진실 규명은 지금이라도 야 3당이 추진할 수 있는 일이다. 국회 과반 의석(165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야당이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사안이다. 청와대에 대해 별도 특검을 받으라고 요구할 때가 아니다. 당장 '박근혜 특검법'을 발의해 이를 통과시켜야 한다. '책임총리법'이니 '최순실 일가 재산환수법' 같은 부수적 법안에 매달릴 때가 아니다.

오는 12일 민중총궐기가 지나면 청와대 등 보수 집권 세력은 물타기에 들어갈 것이 분명하다. 지금까지는 성난 민심에 떠밀려 뭔가 개혁을 할 것처럼 코스프레를 했지만, 12일 이후에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한국 사회 쇄신의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 과연 민주당은 제대로 된 '박근혜 특검법'을 제정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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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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