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국 미국이 '거대한 럭비공'이 되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 질서의 향방도 미지와 불확실성에 휩싸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당선 이면에는 세계 경찰을 자임해온 미국에 대한 미국인, 특히 중하층 백인들의 염증이 똬리를 틀고 있다. 기행과 막말로 상징되는 트럼프 현상은 이러한 민심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등장은 한반도 사드 배치에 어떤 영향을 몰고 올까? 너무나도 많은 변수들이 도사리고 있어 쉽사리 예측하기가 힘들다. 일단 그는 사드를 비롯한 미사일 방어 체제(MD) '회의론자'에 가깝다. 돈은 엄청나게 많이 드는 반면에 그 효용성은 낮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소속된 공화당은 MD '신봉자'들이다. 아웃사이더 트럼프와 공화당 주류의 입장이 어떻게 조율될 것인가가 1차적인 관건이다.
트럼프는 또한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공언해왔다. 그런데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유럽 MD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사드 배치에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미-러 관계도 한국 내 사드 배치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반면 트럼프는 중국에 대해서 강경 기조를 분명히 하고 있다. 중국이 위안화 평가 절하를 앞세워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미국의 적자를 눈덩이처럼 불리는 등 미국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곤 미-중 무역 전쟁을 예고하면서 "승리하겠다"고 장담하고 있다. 또한 트럼프는 중국이야말로 북핵 문제 해결의 적임자라고 주장한다. 중국이 강력한 제재와 압박에 나서면 북한도 굴복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가 대중 관계에서 사드 배치를 카드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예고해준다. 무역 전쟁에서 중국의 양보를 강제하고 북핵 문제에서도 중국의 강력한 역할을 요구하는 지렛대로 사드 문제를 다뤄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것이 구실이든, 본질이든 사드 배치는 일단 북한을 겨냥한 것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의 대북 정책의 향방도 중대한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의 대외 정책에서 가장 종잡기 힘든 분야가 바로 대북 정책이다. 그가 임기 초반부터 북한과 대화를 선택해 성과가 나오면 사드 배치의 시급성은 떨어지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가 "한미 동맹 차원의 결정"이라고 하는 만큼 한미 관계도 중대 변수이다. 그런데 일단 사드 배치는 돈을 중시하는 트럼프의 동맹관과 '엇박자'가 난다. 한국에 배치하려는 사드는 일단 미국이 이미 구매해 놓은 것을 갖다 놓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로서는 '왜 우리 돈으로 산 걸 한국에 배치하려고 하느냐'는 반문을 갖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는 한국에게 상응하는 금전적 조치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사서 배치하라고 할 수도 있고, 최소한 '1+1', 즉 하나는 미국이 배치하고 하나는 한국이 구매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적인 인상을 요구하는 압박 카드로도 쓸 수 있고, 연간 100~200억 원으로 추산되는 사드 기지 운영 유지비를 방위비 분담금과는 별도로 내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외교 안보 사안뿐만 아니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 양국의 무역 관계에서도 사드를 압박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이다. 박근혜가 계속 허울뿐인 대통령직을 고집하면 한국은 트럼프에게 좋은 먹잇감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만약 트럼프가 사드 배치를 유보하거나 철회하면 사드에 집착해온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와 여당은 사드 배치에 더더욱 매달릴 공산이 크다. 그런데 그 대가는 사드 배치에 따른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위에서 열거한 트럼프의 청구서들이 날아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트럼프라는 '거대한 럭비공'은 우리가 하기에 따라 재앙이 될 수도 있고 축복이 될 수도 있다. 그 출발점은 '비정상적이고 자해적인' 사드 배치 결정을 우리 안에서부터 '정상화'하는 데에 있다. 그리고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을 우리가 주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이러한 절박한 전환은 박근혜의 대통령직 유지와는 양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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