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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트럼프 압박하다 박근혜 살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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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트럼프 압박하다 박근혜 살려준다" [정세현의 정세토크] "트럼프 정부 대비하려면 조기 대선 치러야"
도널드 트럼프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고립주의적인 정책을 펼 것이고, 대외 군사 개입을 줄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산업‧경제 구조를 살펴봤을 때 갑작스러운 대외 군사 개입을 줄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미국은 수출을 해서 돈을 버는 나라가 아니다. 군산복합체가 만들어낸 무기를 팔아서 국내 고용을 창출‧유지하면서 경제가 돌아가는 구조"라면서 트럼프가 집권하더라도 꾸준한 대외 개입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전 장관은 "냉전 이후에도 미국 경제는 군산복합체가 움직이는 방식으로 경제를 버텨왔다"면서 "갑자기 군사 개입을 하지 않으면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뭘 먹고 살겠나? 군사 개입이 줄어서 무기 시장이 축소되면 미국 국내 경제에 문제가 생긴다"고 전망했다.

그는 "트럼프 당선자가 미국 경제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아직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대외 개입 문제에 대해 추상적으로, 관념적으로 생각하고 말한 것 같다"며 "트럼프 시대에 대외 개입이 줄어들 것이므로 대북 압박이 감소하고, 여기서 남북이 화해 협력을 추진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질 수 있다는 생각은 너무 단순한 도식"이라고 잘라 말했다.

정 전 장과는 북한이 미국과 향후 협상을 염두에 두고 트럼프 정부 내 외교 안보 및 대북 정책을 담당할 인사들을 확정짓기 전에 핵 협상 능력을 높이기 위해 핵과 미사일 능력 강화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이 사고 치지 않고 얌전히 기도하고 있으면 미국이 선뜻 협상에 나서게 되나?"라며 "북한은 트럼프 정부가 협상에 나올 수밖에 없도록 군사적인 조치를 하면서 압박을 가하고 한쪽으로는 트럼프 정부와 협상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강온 양면 전략을 쓸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북한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대미 협상력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핵 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안보 분야의 장악력이 커지고, 그러면 죽었던 박 대통령을 살리는 길이 될 것"이라며 북한이 신중한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과 미국이 핵 문제를 두고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가운데, 사실상 식물 대통령이 돼버린 박근혜 정부로는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 대응할 수 없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정 전 장관은 "트럼프 정부의 외교 안보라인이 5월에 구축되는데, 이에 앞서 4월에 조기 대선을 치르고 이를 통해 새로 짜여진 외교안보라인이 상황을 주도해야 한다"며 "지금 박근혜 정부의 외교 안보 팀으로는 사실상 아무 대응도 못하게 된다"고 진단했다.

인터뷰는 지난 14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됐습니다. 미국 내 제도권에서는 거의 '멘탈 붕괴' 수준의 충격이었던 것 같지만, 한국 내에서는 트럼프의 당선이 나쁘지 않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대외 군사 개입을 자제하겠다는 식의 발언을 했기 때문인데요.

트럼프 당선자는 한국을 비롯해 일본,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등 기존 동맹국들에게 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올릴 것을 요구했습니다. 방위비 분담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미군을 철수시킬 수 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요.

그래서 결국 우리가 자주국방을 하든지, 아니면 남북관계를 풀어서 남북 간 공생하는 질서를 만들 수밖에 없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남한이 국방 부문에서 강제적인 '자주화'를 당할 수 있다는 건데요. 트럼프 집권 이후의 대외 관계는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십니까?

정세현 : 남한이 대미 의존성을 줄이고 독자적인 안보 및 대외관계를 가져갈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 있는데 다소 섣부른 예측 같습니다. 물론 트럼프 당선자가 후보 시절 대외 개입을 줄일 것처럼 이야기한 것은 사실입니다. 당장 미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 군사 개입을 하지 않겠다고 했죠. 그런데 이게 군사 개입을 엄청나게 줄이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의 경제 구조를 보면 대외 군사 개입 축소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트럼프 당선자의 외교 노선을 흔히 '고립주의'라고 하는데, 이건 19세기에 등장했던 '먼로 독트린'과는 성격이 매우 다릅니다. 미국의 제5대 대통령인 제임스 먼로는 1823년 12월 의회에 제출한 연두교서에서 자기들이 유럽 문제에 개입하지 않을테니, 유럽 역시 미주 대륙에 간섭하거나 식민지를 건설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고 밝혔습니다.

먼로 대통령이 이러한 내용의 외교 방침을 밝힌 이유는 미국의 힘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괜히 유럽 문제에 개입했다가 본전도 못 찾고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선을 그은 겁니다. 이렇게 고립주의 속에서 미국은 힘을 기를 수 있었고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전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준비를 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경제 규모가 엄청나게 확장된 것은 군사 강국이 됐기 때문입니다. 보통 열강들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방식은 비슷비슷합니다. 먼저 상인들이 특정한 국가에 진출하면 이 상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군대를 보냅니다. 일본도 조선에 진출할 때 상인들이 먼저 들어오고, 이후에 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군인이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경제와 군사를 배경으로 정치적인 영향력을 키운 뒤 나중에는 외교권까지 가져가 버리는 식으로 식민지를 건설해왔습니다.

미국이 경제 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위와 같은 구조 속에서 경제 성장과 동시에 군사력을 키웠기 때문입니다. 미국 내 군산복합체의 형성과 성장은 미국의 대외관계사와 연결됩니다. 사실 미국은 수출을 해서 돈을 버는 나라는 아닙니다. 군산복합체가 만들어낸 무기를 팔아서 국내 고용을 창출‧유지하면서 경제가 돌아가는 구조입니다. 그러다 보니 꾸준한 대외 개입이 필요합니다.

이 꾸준한 개입을 위해 미국은 냉전 초기 소위 '반공'을 명분으로 내세웠고, 특정 지역의 질서 유지를 명목으로 군대를 계속 보내고 그 규모도 늘려왔습니다. 냉전이 끝난 다음에도 질서 유지를 이유로 작은 나라에 개입했습니다. 미국은 해당 지역의 종교 분쟁, 민족 분쟁 등이 발생하는 상황을 이용해 군대를 보내고 무기를 팔았습니다.

냉전 이후 24~25년 동안 미국 경제는 이러한 방식으로 버텨왔습니다. 그렇게 버텨온 미국 경제가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다고해서 갑자기 대외 개입을 줄일 수 있을까요? 갑자기 군사 개입을 하지 않으면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뭘 먹고 살겠습니까? 당장 무기 시장이 줄어들면 미국 국내 경제에 문제가 생깁니다. 대량 해고 사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트럼프 당선자가 미국 경제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아직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대외 개입 문제에 대해 추상적으로, 관념적으로 생각하고 말한 것 같습니다. 트럼프 당선자가 대외 개입을 줄이겠다고 말한 것이 곧 군사 개입을 줄이는 것과 같은 뜻이라면 이는 곧 없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트럼프 시대에는 대외 개입이 줄어들테니 대북 압박이 감소하고, 여기서 남북이 화해 협력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질 수 있다는 생각은 너무 단순한 도식으로 보입니다.

대중정책만 해도 그렇습니다. 트럼프 당선자는 후보 시절 중국을 압박한다면서 모든 중국 물품에 45%의 관세를 적용할 것이라고 공언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만 미국 수출로 먹고사는 것이 아니라, 미국도 중국과 상호 의존적인 경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중국과 경제 관계를 무시하고 45%의 관세를 매길 수 있을까요? 이 역시 트럼프 당선자가 비현실적인 약속을 한 부분이라고 봅니다.

▲ 도널드 트럼프 제45대 대통령 당선자가 9일(현지 시각) 오전 미국 뉴욕시 힐튼 미드타운 선거본부에서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미국 경제가 전쟁을 통해 군수품을 팔고, 이를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대외 개입을 줄이기 어렵다는 분석인데요. 그런데 방위비 분담금은 올리려고 하지 않을까요?

정세현 : 그건 그대로 이행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은 1991년부터 지금까지 주한미군 주둔비의 일정 부분을 부담했습니다. 지금은 거의 절반 정도를 내고 있지만 초기에만 해도 10% 정도였습니다.

처음에는 주로 인건비, 즉 주한미군에 고용돼있는 한국인에 대한 인건비에 많이 쓰였습니다. 물론 트럼프 당선자는 미군의 월급까지 우리보고 내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또 분담금을 거의 100%까지 내라고 떼를 쓸 수도 있지만 이건 흥정의 여지가 있는 부분입니다.

우리로서는 주한미군 주둔비의 분담 비율을 높이는 것이 어렵다고 할 것이고, 70~80% 정도 부담하는 것도 너무 높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트럼프 당선자는 정말 주한미군을 빼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모두 철수시키지는 못할 겁니다. 그보다는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병력을 축소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 주한미군이 2만8000명 정도인데 한 때 4만 명이 넘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남한 안보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까? 크게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에 주한미군 축소는 언제든 나올 수 있는 카드입니다.

심지어 조지 W. 부시 정부 때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해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신속 기동군화를 추진했고, 이와 연관시켜 한국에 전시작전권 환수 결정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렇게 미군이 자꾸 줄어들면 힘의 공백 상태가 생긴다고 하면서 북한 인민군이 남침할 수 있다는 공포를 가지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 공포 때문에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트럼프가 한국보다 유리한 고지에 있는 측면도 있습니다. 지금 현재 한국이 부담하고 있는 방위비가 약 9500억 원 정도인데, 여기서 2배를 더 낸다고 해도 2조가 되지 않는다면서, 2조를 내지 못해서 미군 병력을 축소하면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겁니다.

북한이 이런 기회를 노려서 도발을 하거나 남침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는데, 이를 대비하는 비용보다 미군의 방위비를 높여주는 것이 오히려 저렴하다는 논리입니다.

사실 한국의 국방비 전체 규모를 보면 1조 정도를 미국에 더 주는 것이 별로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한국의 국방 예산이 40조 원을 돌파한 상황에서 방위비 분담금으로 1조를 더 얹어주는 것은 국방비 자체만 보자면 큰 부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1조를 빼다 쓰면 다른 곳의 예산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복지나 교육 등 예산을 지킬 힘이 없는 곳에서 이 예산을 끌어다가 쓸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국민 정서를 보더라도 복지나 교육 쪽 예산이 좀 줄어든다고 할지언정 주한미군의 남한 존치에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트럼프 당선자의 방위비 분담금 요구와 주한미군 철수는 그렇게 쉽게 이뤄질 문제는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트럼프 당선자가 주한미군이나 주일미군 등을 단지 '동맹국들을 지켜주는 군대'로만 인식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트럼프는 자국에서 외국을 지켜주는데 왜 이렇게 많은 돈을 내야 하느냐고 불만을 표시했지만, 사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이 있기 때문에 미국이 태평양을 자기 바다 쓰듯이 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점을 봤을 때 트럼프 당선자는 눈 앞에 보이는 이익만 따지는 소상인적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 내에 저소득층 백인들의 정서에만 호소할 수 있을 정도의 식견 혹은 안목 수준에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전 세계를 운영할 수 있는 거상의 안목은 없는 셈이죠.

▲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성김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 2014년 2월 서울 도렴동에 위치한 외교부 청사에서 제9차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협정(SMA)에 서명한 뒤 협정서를 교환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레시안 : 일부에서는 안보적인 측면보다는 무역 관계에서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옵니다.

정세현 : 앞서 말했듯이 트럼프 당선자가 중국에서 들어오는 물건에 45%의 관세를 붙이겠다고 했는데 이게 '뇌관'일 수 있습니다. 이는 중국과 미국 간 무역의 문제를 떠나 우리한테도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여파가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트럼프 당선자는 자유무역협정, 즉 FTA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여러 번 밝혔습니다. 우리도 한미 FTA 재협상을 준비해야 합니다. 트럼프 정부는 분명 한국 제품의 관세를 올리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이걸 우리가 거절하기가 어렵습니다. 최근 우리는 미국과 무역으로 250억 달러가 넘는 흑자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FTA 재협상에 돌입하면 이정도 흑자를 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따라서 이전보다 더 많은 방위비 분담금 지출보다는 FTA 개정 혹은 폐지로 인한 피해가 훨씬 클 수 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FTA 변화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책이 없어 보입니다.

프레시안 : 트럼프 당선자는 후보 시절 한국과 일본에 핵 무장을 용인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부인하고 있습니다.

정세현 : 트럼프 당선자가 한국과 일본 등에 핵무장을 허용하면 원자력 협력 협정 개정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핵확산방지조약(NPT)이 깨지는 겁니다. NPT는 미국이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한 체제인데 이걸 스스로 깬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은 초강대국으로 NPT 체제를 통해 자신의 '슈퍼 파워'를 행사해 왔습니다. 이걸 유지하기 위해 사실상 핵을 가지고 있는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이 핵을 무장하면 인정해주겠다고요?

그럴리가 없겠지만, 만약 정말 그렇게 한다고 하면 미국은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의 핵을 모두 인정해야 합니다. 즉 NPT를 해체해야 합니다. 이는 미국이 2차 대전 이후 가졌던 유일 강대국 지위가 없어지는 겁니다. 미국이 이러한 선택을 할까요?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트럼프 당선자가 핵 무장 용인에 대한 입장을 철회했다고 하지만, 핵 무장이 가져올 미국 국가 이익의 중대한 손해에 대해 식견이 없는 사람이 현실성 없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했고, 이런 사람이 거의 절반에 가까운 미국 사람의 지지를 받았다는 것도 걱정스러운 부분입니다.

동북아 급변기, 내년 4월 조기 대선이 유일한 답

프레시안 : 일부에서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나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는 자유무역과 시장경제, 민주주의 등 보편적인 원칙을 가지고 군사 개입을 해왔지만, 트럼프 당선자는 오로지 미국 국익에만 기준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군사 개입의 측면에 있어 오히려 클린턴 후보보다 위험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북한과 관련해서 역시 트럼프 당선자의 말이 오락가락합니다. 다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대화 가능성을 언급했기 때문에 북핵 문제와 북미 관계에 돌파구가 열릴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옵니다.

특히 지난 9월 미국 대외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 외교협회(CFR, Council on Foreign Relations)에서 오바마 정부의 대북 정책인 '전략적 인내'가 실패했다고 규정했고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의 경우에도 북한 핵 동결 쪽으로 가야 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10월에는 북미 간 1.5트랙 접촉도 있었고요. 미국의 주류 제도권에서는 북핵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기도 했는데요.

트럼프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북한 핵이 얼마나 높은지 모르겠으나, 미국 주류는 북핵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북핵 문제와 관련해 진지한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있을까요? 북한이 트럼프를 어떻게 보느냐도 중요하지만 북미 간 대화가 이뤄진다면 그 사이에서 남한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요?

정세현 : 일단 지난 10월 북미 간 접촉을 보면 참석자 중에 조지프 디트라니가 있었습니다. 디트라니는 공화당 쪽 사람인데, 북한이 디트라니를 통해 줄을 대보려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남한의 대북정책 및 대미정책 공백기가 너무 길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1월에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 북핵 문제 실무 책임자인 동아태차관보가 결정되는 것은 빨라야 5월입니다. 이전까지는 북쪽과 회담하고 싶어도 누구를 내세울 것인지를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심지어 정책 자체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내년 5월까지 미국과 남한 모두 일종의 공백기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지난 1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해 백령도에서 가까운 마합도의 포병부대를 시찰하고 포사격 훈련을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물론 박근혜 정부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밀어붙이고 있긴 하지만 이건 정부 내에서 이미 결정된 것들을 이행하는 문제입니다.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팀이 어떻게 수행해 나가겠습니까? 당장 박 대통령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의 동아태차관보가 들어선 이후에 미국 정부와 관계를 풀어가기 위해 북한이 적극적인 자세로 트럼프 정권 쪽 사람들과 줄을 대고 있는데, 한국은 여전히 박근혜 정부가 지속된다면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미국과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 공백 기간 중에 북한이 상당히 골치 아픈 사고를 칠 가능성도 있습니다. 북한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사고를 치려면 이 때 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북한은 트럼프 정부의 외교 안보 및 대북정책 인선이 모두 마무리된 뒤에 협상은 어차피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이 틈새 시간을 노려 핵 능력을 키워 놓자는 구상을 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핵과 미사일 능력 강화는 곧 협상 능력의 강화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사고 치지 않고 얌전히 기도하고 있으면 미국이 선뜻 협상에 나섭니까?

북한은 미국 정부가 협상에 나올 수밖에 없도록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트럼프 정부와 협상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한편으로는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군사적인 조치를 감행할 겁니다. 북한은 압박 전술을 쓰면 결국 미국이 협상에 끌려 나오더라는 성공의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대미 협상력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핵 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안보 분야의 장악력이 커지고, 그러면 죽었던 박 대통령을 살리는 길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프레시안 : 미국과 북한이 접촉을 시도하는 국면에서 남한 정부가 어떻게 주도권을 가지고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이냐가 중요한데요. 하루라도 빨리 국정 공백을 막고 대통령이 하야든 2선 후퇴든 결단을 내려야 할 것 같은데 전혀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정세현 : 결국 국회를 통해서 정부를 견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군사정보보호협정뿐만아니라 대외관계, 남북관계 문제 등에서도 장관들을 수시로 불러내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박 대통령은 국정 운영을 계속 본인이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지만, 이런 상태에서는 북한이 설사 사고를 친다고 해도 미국과 협력을 하기 어렵습니다. 오바마 정부는 이제 겨우 임기가 한달 보름 정도 남았습니다. 트럼프 정부와 협의를 해야 하는데 이들과 제대로 네트워크를 연결시키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지지율 5% 나오는 대통령 밑에서 일하고 있는 관료들과 누가 연락을 하고 싶어하겠습니까?

결국 조기 대선밖에 답이 없습니다. 트럼프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이 5월에 구축되는데, 이에 앞서 4월에 조기 대선을 치르고 이를 통해 새로 짜여진 외교안보 라인이 상황을 주도해야 합니다. 이게 늦어지면 지금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으로는 사실상 아무 대응도 못하고 당하게 됩니다. 물론 이 역시 트럼프 정부로부터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이라는 전제가 붙어야 가능한 일이긴 합니다.

프레시안 : 사실상 정부가 뇌사 상태라서 능동적으로 움직일 상황이 아닌데도 박근혜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끝까지 고집하고 있습니다. 국민과 국회를 완전히 무시하고 가겠다는 뜻으로 보이는데요.

정세현:조약급의 협정이면 모르곘지만 국방부는 실무 선에서 진행하는 문제라며 국회 비준까지 갈 필요가 없다고 버틸 겁니다. 사드 배치도 버티는 사람들인데 협정 정도는 가볍게 넘기겠다는 생각일 겁니다.

프레시안 : 국방부는 왜 이렇게 서둘러서 협정을 추진하려고 하는 걸까요?

정세현 : 조직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관성이라고 봅니다. 일단 하던 일은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판단과 함께 미국 입장에서 생각하다 보니 이렇게 급하게 추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충성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미국이 하자는대로, 미국이 생각하는 쪽으로 움직여줘야 한다는 요인이 작용한 것이죠. 그렇다 보니 이 협정이 발효돼야만 안보가 튼튼해진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공직사회를 경험해보니 외교부보다 더 미국 중심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군인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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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이사장
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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