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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를 욕하면 여성 혐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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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를 욕하면 여성 혐오인가? [사회 책임 혁명] 여성 혐오와 민주주의

제45대 대통령 선거에서 "예상과 달리" 힐러리 클린턴이 패배하고, 말하자면 악의 화신 같은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하자 다양한 분석이 봇물을 이루었다. 요즘 사석에서 누구나 박근혜와 최순실 얘기를 하듯, 미 대선 결과가 나오고 며칠은 클린턴과 트럼프가 화젯거리였다. 그중에는 여성 혐오 문제도 포함되었다. 트럼프의 당선에 여성 혐오 문제가 미친 영향은 어느 정도였을까.

미국의 사회학자나 여성학자가 시간을 두고 과학적으로 연구해볼 만한 주제임이 분명하다. 당장 비과학적 직관에 입각해서 얘기하자면, 클린턴이 여성이라서 선거에서 졌다고 할 수 없지만 패인 중에서 '여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관점을 바꾸어서 트럼프가 선거에서 이기는 데 그의 여성 혐오 성향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승인 가운데 여성 혐오를 포함하는 게 타당해 보인다.

트럼프 자신의 여성 혐오 성향은 표를 깎아먹었을지 모르지만, 여성 혐오를 통해 클린턴의 여성성을 환기시킴으로써 깎은 표 이상으로 '어디선가' 표를 얻어내지 않았을까. 가정해서 빌 클린턴과 힐러리 클린턴의 위치와 출마 순서가 바뀌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힐러리가 먼저 대통령을 하고, 대통령의 남편인 빌이 이번에 대통령에 출마하여 여성 혐오주의자인 도널드와 맞붙었다면.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그냥 근거 없는 추측이다.

막연한 국외자의 입장임을 전제하고, 트럼프의 여성 혐오는 혐오스러울 정도로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그렇다고 그의 혐오 정치에서 여성 혐오가 두드러져 보이지는 않는다. 그의 정치 전략은 혐오와 배제를 근간으로 하기에 여성 혐오는 부인되지 않지만 그 중 하나에 불과하다. 반면 여성 정치인 힐러리에게 '여성'은 전면적으로 드러나기에, 명시적이지 않은 은밀한 여성 혐오라 해도 치명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인물만으로 이야기한다면,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클린턴이 기득권에 속한 부패한 구태 정치인이란 공통점과, 대놓고 뻔뻔하고 무도한 트럼프에 비해 가식과 위선에 절었다는 차이점을 논할 수 있지만 더 큰 차이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점이다. 배제와 혐오를 기본으로 하는 트럼프에게 여성혐오는 일종의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작동한 반면 클린턴에게 여성 혐오는 포지티브 시스템으로 작동한 장벽이었다는 의미이다.

박근혜 대통령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가 "대통령에게도 여성으로서 사생활이 있다는 것을 고려해 달라"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태평양 건너 한국 상황을 살펴보자. 논란이 많은 민주주의지만 그런데도 우리보다 역사가 오래된 민주주의를 보유한 미국이 이처럼 여성 혐오를 넘어서지 못해 여성 대통령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반면 우리나라는 4년 전에 이미 여성 대통령을 배출했다는 이야기를 이 대목에서 꺼낸다면 사방에서 험한 소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겠다.

그래서 여성 혐오의 의미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여성 대통령은 여성 대통령 자체나, 대통령의 성(性)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여성 혐오를 넘어서 대통령으로 선출됐다는 데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 따라서 선출된 대통령은 그냥 대통령이다.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최초라는 기록상의 수식어는 따라다니겠지만) 그 역시 마찬가지로 그냥 대통령이었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젠더 인식에 입각해 남녀 차별을 줄이고 성 평등을 제고하는 정책을 펴야 '좋은 대통령'으로 평가받을 수 있게 된다. 박근혜 씨가 나쁜 대통령인 것은 그가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박근혜여서이다. 박근혜가 나쁜 대통령인 것과 그가 여성 대통령인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부패하고 무능하며 사악한 기득권의 대표자인 박근혜를 우리는 혐오할 수 있지만 우리의 혐오는 혐오스러운 것을 혐오할 뿐이지 혐오해서 안 되는 것까지 도매금으로 함께 혐오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잘못을 여성 혐오에 근거해 비난하거나, 반대로 여성성에 근거해 비난을 모면하려는 시도 모두 혐오스럽다.

우리는 박근혜라는 혐오스런 역사에 직면하여 민주주의의 새로운 힘을 발견하며 혐오를 극복하는 자랑스런 도정을 걷는 중이다. 혐오의 극복이 다른 혐오의 확대 재생산으로 연결된다면 크나큰 상처를 입고 어렵사리 회복중인 우리의 민주주의에 다른 위해를 가하는 일이 되고 만다. 여성 혐오에 무너진 미국의 민주주의와 우리 민주주의는 달라야 한다.

혐오를 무너뜨리는 과정은 전면적이어야 하며 하나의 혐오를 무너뜨린다는 이유로 슬그머니 또 다른 혐오를 초대해서는 안 된다. 우리 민주주의의 당면한 과제는 박근혜 퇴진이고 전술적으로 이 일에 일사불란한 힘을 모아야 하겠지만, 우리 민주주의 전망이 당연히 박근혜를 넘어서야 한다는 데에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안치용 교수는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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