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민심에 의해 탄핵된, 그래서 사실상 '식물 정권'으로 전락한 박근혜 정부가 유독 안보 분야에서는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14일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을 가서명한 데 이어, 16일에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부지로 롯데 성주 골프장과 경기도 남양주 내 국유지를 맞교환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국민들은 '아무것도 하지 마라'고, 아니 조속히 스스로 물러나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를 지켜달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묻지마 식' 안보 자해 행보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 방식도 기만과 꼼수로 점철되고 있다. 당초 국방부는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과 관련해 국민 공감대 형성을 비롯한 "여건 성숙이 필요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가서명 직후에는 말을 바꿨다.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거나 "앞으로 여건 성숙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마차가 말을 끌고 있는 셈'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일본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협정 체결을 제안한 쪽도, 서둘러 마무리하자는 쪽도 박근혜 정부였다고 한다. 장기 집권을 노리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로서는 작년 12월에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위안부 합의에 이어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이라는 연말 선물을 박근혜로부터 또 받게 된 셈이다.
사드 부지 확보 과정도 꼼수 그 자체이다. 박근혜 정부가 토지 맞교환 방식을 택한 이유는 국회를 피해가기 위한 것이다. 롯데 골프장을 매입하려면 약 120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고 이는 어떠한 형태로든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맞교환 방식을 택함으로써 이 과정을 건너 뛸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사드는 짧게는 지난 4개월간, 길게는 지난 3년간 한국 사회는 물론이고 동북아에서도 최대 논란거리였다.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 역시 2012년 6월 이명박 정부가 몰래 추진하다가 발각되자 폭발한 민심에 의해 취소된 바 있었다. 그만큼 이들 이슈는 여론의 큰 관심사였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온 국민의 시선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쏠려 있는 사이에 이들 사안을 일사천리로 처리하려고 한다.
생사의 기로에 선 청와대와 잔존 비선 실세들의 정치적 셈법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국방부가 사드 부지를 결정하고 이를 공식 발표함으로써 사드를 강력하게 반대해온 중국은 어떠한 형태로든 대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한중 관계의 불안이 증폭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드 부지 발표와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 체결은 북한의 강경파를 자극할 소지가 크다. 북한이 이에 대응하고 나서면 남북 관계의 불안감도 증폭될 수 있는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세력은 이를 노리고 있을 공산이 크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한중 관계와 남북 관계의 불안 증폭은 보수층의 재결집을 유도하면서 국면 전환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 실제 효과 여부와 관계없이 박근혜 일파는 이렇게 믿고 있을 것이다. 또한 외교 안보의 불안은 박근혜의 마지막 구명줄이라고 할 수 있는 '내치와 외치 분리론'에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
예상컨대, '게이트 세력'의 다음 카드는 한미 정상 회담 추진이 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의 대통령 취임 이후 조속히 정상 회담을 성사시키면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와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 체결을 서두르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한국이 주한 미군과 주일 미군은 물론이고 미국 본토 방어에도 기여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카드이기 때문이다. 또한 돈을 중시하는 트럼프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미국 무기 추가 구매를 정상 회담의 반대 급부로 제시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처럼 박근혜가 청와대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안보와 경제 부담도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국가 간의 약속은 되돌리기 힘든 속성이 강하기 때문에, 차기 한국 정부에게 크나큰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가짜 안보'를 향한 박근혜 세력의 폭주를 멈춰 세울 수 있는 힘과 지혜가 절실한 시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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