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선이 반 년밖에 남지 않았던 2012년 5월. 언론에 대대적으로 거물 간첩 사건이 보도됐습니다.
"GPS 전파 교란기술 北에 빼돌리려던 2명 구속…비전향 장기수 출신 70대 포함"
"GPS 교란기술 등 북에 넘긴 고정간첩 최고위층 구속"
GPS가 뭔지도 잘 모르는 일흔 넘은 노인 이대식 씨. 그가 어쩌다 '거물 간첩'이 되어버린 걸까요?
2년 전인 2010년. 이대식 씨는 뉴질랜드 교포 출신인 한 남자를 만납니다. 사이먼김. 한국 이름 김반석.
대북 사업 통로인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연) 부대표가 '아는 사람이 있는데 사업차 만나보라'며 연결해준 사람이었습니다.
"외모로 봐선 상당히 신실해 보였습니다. 자기 과거를 죽 이야기하면서, 군납업을 했고, 북한을 수시로 드나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북한을 자유롭게 다녀올 수 있으니 대북 사업을 하고 싶으면 자기가 계약을 따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해외동포위원회에서 뉴질랜드연합회사무국장을 맡고 있다고 했고, 아마 그래서 북쪽에서 사이먼김을 신뢰했던 것 같습니다."
시험 삼아 여비를 줄 테니 송이버섯 사업 양해각서(MOU)를 받아와 달라고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각서를 받아왔습니다. 시험대를 완벽하게 통과한 셈이었습니다. 대북 실무 업무는 사이먼김에게 믿고 맡기기로 했습니다. 단둥에 사무실 용도로 쓸 60평대 아파트도 구해줬습니다. 돈은 대식 씨가 내고, 명의는 사이먼김으로 했습니다.
좋은 관계는 얼마 가지 못 했습니다. 수익 배분 문제로 사이가 틀어졌습니다.
"송이버섯은 9월이면 매일매일 나옵니다. 그런데 생물이다 보니 관리가 힘듭니다. 어떤 날은 많이 내보낼 수 있는데, 또 어떤 날은 팔 수 없기도 합니다. 매일 결산하면 안 되고, 한 달 치를 합산해서 따져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에 사이먼김에게 '북쪽과 연결만 해주는 조건으로, 한 달 이윤의 40%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이먼김은 결산을 매일 해달라고 하는 겁니다. 저도 사업 하는 사람인데, 빤히 보이는 손해를 감당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바로 결별 수순을 밟았습니다. 아파트에서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이먼김은 도리어 대식 씨에게 나가라고 했습니다. 자기 명의라는 것이었습니다. 화가 난 대식 씨는 중국 국정원에 해당하는 국가안전부에 다니는 아는 사람에게 이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곧 공안에서 사람이 나와 사이먼김을 조사했습니다. 잡아넣겠다는 말에 그제서야 사이먼김은 계약을 바꾸고 아파트에서 나갔습니다.
"이때부터 저에 대한 모함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사이먼김이 내통하던 국정원 직원이 있는데 제가 예전에 간첩죄로 감옥 살다 나온 걸 알고 그걸 바탕으로 교묘하게 거짓말을 꾸며낸 것이지요."
검찰이 제시한 대식 씨의 혐의는 '2011년 7월 중국 단둥에서 북한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40대 남자로부터 NSI 4.0 300V, 고공관측레이다(4만 미터~6만 미터), 전파교란 장비, 전파 감지기 등을 구입하라는 지령을 받은 뒤 사이먼김에게 구해보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증거는 사이먼김의 진술이었습니다.
"신발 사업하고 송이버섯 사업하던 제가 무기를 뭘 알겠습니까. NSI라는 걸 사이먼김한테서 처음 들었습니다. 돈이 된다기에 한 번 알아보기나 했습니다."
대식 씨는 출소 이후 어렵게 생활한 이후로 돈이 되는 것이라면 닥치는 대로 다 했습니다. 특히나 늦둥이 딸들을 보면서 더 늙기 전에 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사이먼김은 군대에 물자를 납품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며 NSI 4.0이라는 장비 거래를 추천했습니다.
지인 가운데 그나마 알 만한 손성현이라는 사람에게 NSI 4.0이라는 게 무엇이며, 구매가 가능한지 알려달라고 연락했습니다. 메일이 왔습니다. NSI 4.0을 판매하는 회사 홈페이지 주소가 적혀있었습니다. 이 사람 또한 구체적으로 NSI 4.0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잘 알지 못하는지 홈페이지 주소만 안내할 뿐, 별다른 설명은 하지 않았습니다.
사이먼김은 "북한 고위층 자제라는 불상의 40대 남자를 아파트에 데리고 왔으며, 그 다음날 아침에 이대식이 NSI 4.0 장비를 구할 수 있느냐고 물었고, 그러면서 손성현이 보낸 메일을 보내주었다"고 검찰에 진술했습니다.
어불성설이었습니다. 사이먼김이 공작원으로 지목한 40대 남자가 아파트에 찾아온 것은 2011년 7월 15일 이후였습니다. 만일 공작원이 먼저 구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라면, 그 이후에 이대식 씨가 손성현 씨에게 문의를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둘의 통화 시각은 2011년 7월 14일이었습니다.
사이먼김은 이 부분에서 진술도 오락가락했습니다. 이대식 씨가 사이먼김 본인에게 지령을 내린 날이 북한 사람이 다녀간 날인 15일이라고 했다가, 또 어떤 때는 북한 사람이 다녀간 다음 날인 16일이라고도 하는 등 진술에 일관성이 없었습니다.
이대식 씨의 변호인들은 이러한 점을 조목조목 짚었습니다. 대식 씨 1심 변호인단 가운데에는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알려진 황교안 현 총리도 있었습니다. 변호인단은 유일한 증거인 사이먼김 진술의 논리적 모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대식 씨가 탐지 수집하려 했다는 물품이 국가 기밀에 해당하는지도 따졌습니다.
국가 기밀이 되기 위해서는 일반인들이 손쉽게 취득할 수 없어야 하고, 또 그 내용이 누설될 경우 국가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야 합니다.
이에 대해 NSI 회사 부사장은 "NSI 4.0의 직접 용도는 안테나의 정밀도를 측정하는 것이며 용도가 제한돼있는 것이 아니라 군사용과 상업용 어느 쪽으로도 사용 가능하다"며, "다만 가격이 높아 개인적으로 구입하기는 어렵고 대기업이나 정부, 군 기관 등에서 주로 구입한다"고 진술했습니다. 국가 기밀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재판에서도 이러한 점들이 인정됐고, 이대식 씨는 1심에서 3심까지 모두 무죄를 받았습니다. 함께 기소된 사이먼김 역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사이먼김은 본인이 공동 피고인이 될 줄 알면서도 왜 이대식 씨의 범행을 진술한 걸까요? 상식적으로 납득이 잘 가지 않는 부분입니다.
"저도 확실한 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재판 중간에 잠깐 말을 할 기회가 생겨서 제가 사이먼김한테 '내가 너와 뭐 그렇게까지 원수진 게 있느냐, 네가 어떻게 기름 치고 불 속에 들어가려 하냐'고 하니, 사이먼김이 "난 괜찮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 저 자는 든든한 뒤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이먼김이 국정원에 연이 있지 않습니까? 추측을 해보자면, 그 사람이 사이먼김에게, 너도 이대식과 같이 범죄자가 되지만 곧 빼주겠노라고 말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 2016년 6월 대법원 최종 무죄 판결을 받으며 대식 씨는 다시금 자유를 되찾았습니다. 이번엔 전처럼 조사 과정에서 고문도 받지 않았고, 유죄 판결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다시 손쓸 수 없이 망가져 버렸습니다. 원래도 대북 사업을 하느라 딸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 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부녀간의 골이 더 깊어졌고, 급기야 딸들은 아버지로부터 등을 돌렸습니다.
"누가 살면서 두 번씩이나 간첩으로 몰릴 거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억울한 걸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습니다. 과거 전력이 이렇게 다시 저를 옥죈 셈입니다. 우리 사회는 민주화가 되려면 정말로 아직 요원합니다."
그는 더 늦기 전에, 법원에 과거 사건 재심을 신청할 계획입니다.
"그간은 대북 사업 때문에 엄두도 못 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이라도 지긋지긋한 보안관찰도 벗어나려면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렵습니다. 과거는 다시 회상하고 싶지 않은데, 재심 준비를 하려면 불가피하게 다시 반추해야 할 테지요. 두렵고 끔찍합니다.
재심 결과도 함부로 추단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 속 양심으로는 나는 분명히 죄가 없기 때문에, 재판부 또한 무죄 판결을 내리리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길고 길었던 억울한 시간을 이제는 끝내고 싶습니다."
(이 기사는 다음 '스토리펀딩'도 함께 진행했습니다.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