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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비아그라, 대중의 관음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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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비아그라, 대중의 관음증인가? [사회 책임 혁명] 공적 영역을 사적 영역으로 먼저 격하시킨 건…
청와대가 비아그라를 구입했다는 보도가 나온 23일 점심 자리의 화제는 단연 '비아그라'였다. 그러나 그 자리는 다소 불편한 양상으로 끝나게 되었는데 "비아그라가 과연 이번 사태의 본질이냐"는 엄중한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박근혜 게이트를 파헤치는 건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말초적이고 관음증적인 접근 방식은 본질을 흐릴뿐더러 올바르지 못한 방식이라는 논지였다.

기본적으로 나는 그러한 지적에 동의한다. 대통령에게도 사생활이 있고 사생활의 보호는 "여성으로서"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보호받을 권리다. 물론 "세금으로 비아그라를 샀다"는 흠결이 존재하지만, 이해하자고 들면 꼭 이해하지 못한 일이 아닐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이 흠결의 중요성을 걸고 넘어갈 사람이 있겠지만, 이번 비아그라 사태와 관련하여 구입 자금의 출처에 관한 것보다는 구입 약품의 용처에 관한 논란이 압도적인 상황을 감안하면 일단 대통령의 사생활이 쟁점이라고 단정해도 되지 싶다.

비아그라 구입을 보도하고, 그 보도를 확산시키고 그걸 정식 담론으로 유통시키는 행태 또한 어느 정도 불편할 수 있다. 사생활 보호를 떠나 지엽적이고 자극적인 소재를 팝업함으로써 대중의 저급한 욕망에 영합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비아그라가 국정 농단의 주범이 아닐 뿐 아니라 '세월호 7시간'의 해답도 아니라고 한다면 '비아그라'의 확장이 비겁한 공격이고 저열한 토론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논리가 일리가 있다.

그러나 다른 관점의 논리도 가능하다. 우선 비아그라가 위치한 지점이 사적 영역을 벗어나버렸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비아그라 논란'에는 관음증적 요소가 명백하게 개입하지만, 이 관음증이 사회적 의제로 구성되는 과정에서 공적인 관점이 관여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만일 박근혜 게이트가 발생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비아그라는 대체로 (공적인) 논의거리가 되지 못하고 논의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행위로 취급될 터이다. 그러나 박근혜 씨가 대통령으로서 불법과 비행을 저질렀고 반복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비아그라는 실체적 진실을 구명하는 노력의 불가피한 부산물이란 정당성을 갖는다. 비록 그것이 불편한 부산물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 관음증은 개인적이고 윤리적인 차원을 떠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으로 옮겨져 공유되고 있는 중이다. AP통신은 이날 "Blue pills in Blue House"란 제목으로 '청와대 비아그라' 논란을 보도했다. 푸른 알약(Blue pills)은 당연히 비아그라를 뜻하고 "Blue House"는 청와대이다. 여기서 중학교 수준의 영어 시험 문제를 하나 내면, "Blue House"와 "Blue house"의 차이는? 청와대를 뜻하는 전자는 고유 명사이고 후자는 보통 명사이다.

영어 문제의 답을 간단히 정리하면 청와대가 아닌 그냥 푸른 집 안의 푸른 알약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으며, 청와대 안의 푸른 알약도 박근혜 씨가 박근혜 대통령으로 지칭되는 상황이었다면 정도 차이는 있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테지만, 지금 청와대 안의 푸른 알약은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현재 "Blue House" 안에는 기이하게도 공인이 아닌 사인에 근접한 인물이 살고 있다는 게 비아그라 논란을 이해하는 열쇠이다.

영어 시험 얘기가 나온 김에 조금 어려운 문제로 넘어가면, 관음증(觀淫症)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무엇일까? "voyeurism"이라고도 하고 "Peeping Tomism"이라고도 하는데, 우리에겐 후자가 더 익숙하다. "훔쳐보는 톰(peeping Tom)"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이야기가 전한다.

11세기 중엽 영국 코번트리의 영주 레오프릭는 폭정으로 악명이 높았다. 가혹한 세금으로 영지 내 주민들이 도탄에 빠져 있을 때 톰의 상대인 고귀한 인물이 등장한다. 영주의 두 번째 부인인 17세의 고디바(Godiva)는 이들의 곤경을 보다 못해 세금을 경감해달라고 영주에게 간청하였다. 고디바의 '철없는 간청'을 무시로 일관한 영주는 그래도 간청이 계속되자 아예 말문을 막아버릴 생각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돈다면 세금을 깎아주겠다"고 말했다.

영주를 포함한 모두의 예상을 깨고 고디바는 영주의 조건을 이행했다. 주민들은 고디바의 고결한 희생에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고디바가 벗은 채로 말을 타고 마을을 도는 동안 모두 집의 창문을 커튼이나 나무로 가렸다. 이때 창문을 가리지 않고 몰래 훔쳐본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양복 재단사 톰이었다.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고디바의 나체 시위는 실제 세금 경감으로 이어졌고, 고디바의 알몸을 훔쳐본 톰은 장님이 된다. 하늘의 벌을 받아 눈이 멀었는지, 분노한 주민들이 그를 장님으로 만들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나체 시위의 원조 격인 고디바는 자신의 이름을 아름답게 남겨, 숭고한 뜻을 관철하기 위한, 관행이나 상식을 뛰어넘는 논리와 행동을 고디바이즘(Godivaism)이라 일컫게 된다.

우연찮게도 톰의 관음증은 정치적 맥락 안에 위치했다. 지금의 푸른 알약도 동일하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고산병 예방용이자 치료용으로 비아그라를 구입했으며, 비아그라가 비싸서 복제품인 팔팔정을 함께 구매했다고 해명했다. 일각에서는 고산병에 대한 비아그라의 효능에 의문을 제기하지만 나는 정 대변인의 해명을 믿고자 한다.

그런데도 푸른 알약을 둘러싼 온갖 억측과 상상이 저속한 담화에 불과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고디바의 나체 시위가 핍박받는 자들의 권익을 지키려는 숭고한 목적에 근거하였다면, 푸른 알약의 '맥락'은 국정농단과 민주주의 파괴, 공적 기능을 사용한 불법적 사익 추구와 닿아 있다. 방향과 상황이 반대이지만 두 사례의 관음증은 모두 충분히 정치적이다.

박근혜 씨가 먼저 공적 영역을 사적 영역으로 격하시켰다. 이제 그가 공사 구분 없이 공적인 추궁을 당할 처지가 된 건 다른 누구의 잘못이 아닌 자신의 잘못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또 누구나 짐작하듯, 고디바와 달리 박근혜는 가명(佳名)을 전하기는 영영 글러먹었다. '근혜니즘'이 생기지 않기만을 바라는 정도가 최선이 아닐까. (사족 : 가명까지는 아니어도 이번 '비아그라' 논란에서 가장 혜택을 입은 건 팔팔정이 아닐까 한다. 비아그라와 대등한 약품으로 청와대의 보증까지 받아냈으니 하는 말씀이다.)

(안치용 교수는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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