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서울대 A+ 학점 비결, 독일에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서울대 A+ 학점 비결, 독일에선? [조성복의 '독일에서 살아보니'] 독일의 교육 ⑤ 대학교의 질적 측면
지난 글에서 독일 대학의 구조적, 형식적 측면을 살펴보았다. 독일에는 대학 간 서열이 없고, 절대평가와 졸업정원제가 실시되고 있으며, 강의와 시험이 구분되어 학사가 엄격하게 관리되고, 일반인 누구나 강의를 듣거나 도서관의 이용이 가능하여 대학의 공공성이 살아있기 때문에 대다수 대학들이 등록금 없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에는 그 내용적, 질적인 측면에 대하여 몇 가지 사례들을 통해 살펴보겠다.

주입식 교육이 아니다

먼저 독일에서의 교육은 단순한 주입식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독일도 엄격한 주입식 교육을 했다. 이에 따른 표준적 인재 양성은 과거 대량생산 체제에 알맞은 교육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학문의 발전과 정보유통이 활발해지면서, 특히 인터넷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단순한 정보는 그 가치를 잃어버렸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누구나 언제든지 그와 같은 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그럴 수 없었기 때문에 정보 자체가 힘이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단순한 주입식 교육은 더 이상 의미를 갖기 어렵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 방식은 여전히 그와 같은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프랑스 혁명에 대해 배울 때 보통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등 사실에 대한 정답 찾기나 일정한 해석을 정답으로 정하고 그것과 다른 생각은 모두 틀린 것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그 혁명이 왜 일어났는가?" 또는 "일정한 사건이나 기사가 프랑스 혁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하는 식의 원인 분석이나 개인의 새로운 해석 또는 주장이 중시된다.

독일의 교실에서는 이처럼 학생들의 창의적 생각을 환영하고 존중한다. 이는 시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지문을 읽고 문단을 나누는 시험에서, 학생이 원래 교사가 만든 모범 답안과 다르게 문단을 나누었더라도 그렇게 구분한 논리가 명확하다면 똑같이 만점을 준다.

또한 우리처럼 학과 시간에 배운 문제가 그대로 나오는 경우도 드물다. 수업시간에 윤동주의 '서시'를 통해 시를 분석하는 방법을 배웠다면, 시험에서는 똑같은 시를 출제하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별 헤는 밤'처럼 다른 시를 주고 분석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서울대에서 A+를 받는 학생들의 비결이 교수의 강의 내용을 숨소리까지 그대로 베껴 답안을 작성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충격적인 사실이다. 이러한 방식은 독일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쾰른대 한 교육학과 교수는 학생들에게 시험에서 자기가 강의한 내용은 쓰지 말라고 주문한다. 자신이 말한 것들은 이미 알고 있으니, 학생들 자신의 생각을 쓰라고 당부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쓰다 보니 과거 한국에서의 대학 시절 한 대목이 떠오른다. 기독교 계통의 학교이기 때문에 첫 학기에는 반드시 채플에 참석하고, 교양필수로 '기독교개론'이란 과목을 들어야 했다. 중견 신학 교수의 강의를 듣고 시험을 봤는데, 학점이 F가 나왔다. 항의를 위해 바로 담당교수를 찾았는데, 방학이라고 이미 미국으로 떠난 후였다. 그래서 학점을 수정할 타이밍을 놓쳤다. 이후에는 귀찮아 더 이상 찾아가지 않았지만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오래전 일이라 그 시험과 관련하여 기억나는 것은 거의 없다. 아마도 신의 존재와 관련한 질문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에 대해 썼던 답안 내용은 지금도 생생하다. 강의시간에 배운 것을 쓰지 않고 당시 종교 관련 고민하던 나름의 생각을 적었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 조시마 장로 편에 나오는 한 가지 일화를 인용하며 의견을 썼었다.

"러시아의 한 소도시 시장의 이야기이다. 그는 젊었을 때 그 도시에서 불가피하게 살인을 했다. 이후 잘못을 뉘우친 그는 열심히 일하여 성과를 내고 시장에도 당선되었다. 그는 여기서도 일을 잘하여 시민들의 칭송이 높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과거 일에 대해 계속 고민하다가, 자신의 생일 파티에 모인 수백 명의 손님들 앞에서 30년 전 살인사건의 범인이 바로 자신이라고 고백한다. 그런데 손님들은 당신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믿으려 하지 않았다. 이처럼 다른 사람들조차도 믿으려 하지 않는 자신의 과거 잘못에 대해 그 시장은 왜 그렇게 괴로워하며 고백할 수밖에 없는지 궁금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어느 늦은 밤 이 부분을 읽다가 이것은 인간의 감성이나 이성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절대자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도록 해주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신이 존재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어 전율했던 기억이 있다.

그 사건을 소개하고 앞서 이 같은 해석을 적으면서 나름 훌륭한 답안이라고 만족했다. 내심 좋은 성적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낙제점을 받은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대학에서 배워야 하는 것들, 문제 제기‧근거 있는 주장과 토론‧논문쓰기

독일 대학의 기본과정(Grundstudium, 학사과정)에서는 학술용어의 개념이나 사실관계를 익히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후 본과정(Hauptstudium, 석사과정)에서는 단순한 지식의 전달보다는 현상의 분석, 이론과 실제, 인과관계의 도출 등이 주요 과제가 된다.

학문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는 제대로 된 질문(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독일어로 '푸라게스텔룽(Fragestellung, 문제 제기)'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생각만큼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일상에서의 질문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관련 주제에 대해 정통해야 하고, 해당 분야에 대한 이론적 배경도 갖춰야 한다. 특히 사회과학의 경우에는 문제 제기만 보아도 그 논문의 질을 대충 파악할 수도 있다.

또 제대로 된 토론 문화를 익히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흔히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농담하지만, 토론에서 중요한 것은 논리적이고 근거 있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동시에 남의 주장을 경청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야만 비로소 타협과 양보가 가능하고 의미 있는 토론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학을 비롯하여 방송이나 학회 등 우리의 토론 문화를 살펴보면, 다른 사람의 의견에 별로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 중 가장 심각한 곳은 아마도 정치권일 것이다. 이렇게 서로 경청하지 않은 협상의 결과는 적절한 타협에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또 다른 문제점은 우리는 타협을 하나의 야합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과거 독재시대의 산물이라고 본다. 당시에는 일방적 힘의 논리가 지배하던 상황에서 타협이란 굴복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정치권의 힘의 관계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었고, 사회세력들 간 이해관계가 복잡해져 상호 주장하는 바를 주고받는 타협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대학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후 시민들의 광화문 촛불시위는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 또는 탄핵을 추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최종적으로 매듭짓는 것은 결국 정치인들의 몫이다. 협상과 타협을 못하는 무능한 대통령과 정치인들 때문에 백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벌써 여러 차례의 토요일을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세미나에서 관심 있는 테마를 골라서 자신만의 문제 제기를 하고 답을 구하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해 주제발표를 하고 토론을 한 후에 논문을 작성하는 것이 독일의 대학에서는 필수이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학문적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한국에서 대학에 다닐 때 리포트 과제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배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별다른 문제 제기 없이, 또는 어떤 사실에 대한 요약 내용을 대충 짜깁기해서 제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는 이런 점들이 나아졌는지 모르겠다.

필자는 독일의 대학에서 1번의 기초 세미나와 4번의 주 세미나에서 그와 같은 훈련을 받았다. 기초 세미나에서는 10~15쪽, 주 세미나에서는 20~25쪽의 소논문을 작성하였다. 그중 한번은 인용 문제 등을 이유로 3번이나 논문을 수정하여 제출하고 아주 힘겹게 증명서를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훈련은 나중에 디플롬 논문을 쓸 때나 박사 논문을 작성할 때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기본적 컨셉은 매번 같기 때문에 양적으로 또는 질적으로 확대하고 심화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학문적 경계의 느슨함

독일 대학에서의 학과 간 경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느슨하다. 예를 들어 누군가 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자 한다면, 정치학 교수와 접촉하여 허락을 받으면 가능하다. 이 경우 유일한 전제조건은 디플롬이나 마기스터 학위이다. 볼로냐 프로세스에 따라 이제는 석사(Master) 학위가 조건이 될 것이다. 여기서 그 학위가 경제학이든, 사회학이든, 또는 인문학이나 자연과학, 심지어 공대 출신이든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는 나중에 교수가 될 때도 마찬가지이다. 최초 출신 학과를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는 성골이네, 진골이네 하면서 지독한 학과 순혈주의에 젖어있다. 대학 간 서열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일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젊었을 때 한순간에 결정된 학벌이 평생을 규정하는 것은 부당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세분화한 학과도 그 자체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실제로 한국에서 경제학과를 졸업했던 필자는 유학 후에 정치학과에서 강의 자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정치학과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찾아갈 곳도 거의 없었고, 가더라도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일 대학에서 교수 되기

독일 대학에서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하빌리타치온(Habilitation, 교수자격취득)'을 받아야 한다. 이는 박사 학위를 받은 다음의 후속 과정으로 보통 4~5년에 걸쳐 진행되는데, 이들은 대개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하빌리타치온 논문을 작성하게 된다. 이 논문은 박사 때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한다.

이 과정을 마친 사람을 '프리바트도젠트(Privatdozent)'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흔히 시간 강사로 번역하는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교수보다 더 많은 과정을 거쳤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학위를 받은 후 대학으로부터 부름(Beruf)을 받아야 정식 교수(우리의 정교수)가 될 수 있다. 이 때 학위를 받은 후 부름을 받기까지 주어진 시간은 약 4년 정도이다. 이 시간이 지난 후에는 대개 '외래교수(außerplanmäßig Professor)'로 남게 된다.

대학에서의 교수 채용은 대단히 신중한 과정을 거친다. 쾰른대 재학 중일 때 정치제도 분야의 교수를 채용하는 과정을 직접 지켜본 적이 있다. 3학기에 걸쳐 3명의 시간 강사가 매번 한 학기씩 강의를 했고, 그 가운데 한 명이 최종적으로 부름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게 채용절차는 까다롭지만, 그 이후에는 우리와 달리 교수를 귀찮게 하지 않는다. 논문 실적이 저조하다느니, 저서가 너무 적네 등의 이유로 교수의 학문적 활동에 거의 개입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교수의 재량에 따라 연구하고 활동하면 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하빌리타치온 과정이 다른 나라에 비해 독일 연구자들의 교수 진입을 너무 늦추게 한다는 비판에 따라 박사 학위자를 바로 조교수(Juniorprofessor) 채용하고 진급시키는 시스템도 병행되고 있다.

이 정교수의 숫자는 우리보다 적은 듯 보이지만, 그러한 교수직 밑에는 사강사를 포함하여, 다수의 박사, 디플롬/마기스터들이 소속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이들을 통틀어 '도젠트(Dozent)'라고 한다. 강의는 주로 교수가 맡아서 하고, 나머지 도젠트들은 다양한 주제의 세미나를 맡아서 이끈다.

이들 도젠트들은 보통 4~5년 정도 거의 준공무원에 해당하는 안정된 신분과 수입을 보장받고 연구실을 배정받아 자신의 학업에 몰두할 수 있다. 물론 이들에 대한 교수의 권위와 결정은 절대적이지만, 그러한 영향력은 철저하게 공적인 범주에 한정된다.

반면에 지도교수의 강아지 미용 심부름까지 해야 했다는 한국 대학원생의 이야기는 독일에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강사제도는 독일의 도젠트 제도와 비교할 때 너무도 열악하고 비참한 수준이다. 안정된 신분도 없고, 수입은 도저히 비교할 수가 없으며, 기간의 보장도 없고, 연구실도 주어지지 않는다. 대학 내에서도 철저하게 승자독식이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대학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독일의 사례를 참고하여 먼저 대학의 수와 대학생의 숫자를 줄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졸자와 고졸자의 사이의 과도한 임금격차를 줄여 불필요하게 대학에 가는 것을 사전에 방지해야 한다. 그래서 꼭 필요한 사람만 대학을 가도록 해야 하고, 단순한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대학 교육의 질을 올려야 한다.

또 대학의 공공성을 점차적으로 강화하여 등록금을 줄여나감으로써 돈이 없어 공부할 수 없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교육기회의 공정성을 보장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대학의 서열화를 폐지해 나가고, 교수와 대학원생 사이의 관계도 재정립되어야 한다. 끝으로 과도한 격차를 보이는 교수와 강사 사이의 간극을 좁혀 나갈 수 있는 교육계의 보다 전향적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원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조성복
조성복 교수는 1986년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1997년 30대 중반에 독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2000~2007년까지 쾰른 및 뒤스부르크-에센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고, 2007년 쾰른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베를린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한 후 2010년에 귀국하여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국회 정책연구위원 등을 지냈습니다. 저서로 <독일 정치, 우리의 대안> <독일 사회, 우리의 대안> <독일 연방제와 지방자치>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무엇인가> 등이 있습니다. 현재 유튜브 채널 '조교수의 사치'를 통해 우리 사회현상과 정치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소통하는 활동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