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월 20일 세계는 전혀 새로운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든다. '미국우선주의', '백인우선주의'를 주창한 도날드 트럼프가 패권국 미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은 앞으로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돼왔던 세계적 자유무역의 추세는 역전될 것이다. 미국의 제조업 회복 및 일자리 창출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대외 군사 개입(동맹국에 대한 군사적 보호와 적대국에 대한 군사적 공격)도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미국의 과도한 대외 군사 개입이 미국 경제를 약화시켰다고 인식하고 있다. 물론 그는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핵공격 위협도 불사하겠다는 극단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 앞으로 미국의 군사력이 어떻게 사용될지는 아무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노엄 촘스키 등 미국의 비판적 지성들은 기후온난화 위기와 미국의 경찰국가화를 트럼프 시대의 최대 위협으로 꼽고 있다. 화석연료에 의한 기후온난화를 부정하는 트럼프는 셰일 오일과 셰일 가스 등 화석연료 개발과 사용을 확대할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로써 기후온난화는 악화되고 인류를 비롯한 지구상 모든 생물종이 절멸하는 최악의 사태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2001년 9.11사태 이후, 테러 위협을 빌미로 강화돼온 정보기관의 대국민 사찰 등 미국의 경찰국가화와 민주주의의 후퇴도 우려되고 있다.
한편 국내에서는 트럼프의 대외 개입 축소 공약이 한국 외교의 자율적 공간을 넓힐 수 있는 호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하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 문제 해결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오바마 정부와는 달리 러시아에 대해서는 유화적인 반면, 중국에 대한 견제와 반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 정부가 그동안 미 군부와 군산복합체가 추진해온 동아시아 미사일 방어망 구축과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에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현재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트럼프 시대가 불확실성의 시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프레시안>은 노엄 촘스키, 톰 엥겔하트, 월든 벨로, 이매뉴얼 월러스틴, 존 페퍼, 팀 셔록 등 세계 진보적 지식인들의 글을 통해 트럼프 시대, 세계와 한반도의 미래를 전망해 본다.
미국의 독립 진보 매체 <톰디스패치> 운영자인 톰 엥겔하트는 트럼프 시대를 미국이 지난 수십 년 간 나라 밖에서 자행한 악행이 빚은 부메랑, 즉 '역풍'의 맥락으로 해석한다.
엥겔하트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 중앙정보국(CIA)은 미국의 이해에 반하는 타국 정부를 은밀하게 전복시키는 비밀 병기였다. 국민들이 세운 민주 정부를 쿠데타로 뒤집어엎도록 지원하거나, 필요하면 국가 지도자들에 대한 암살도 서슴지 않았다. 이 '은밀한 악행'에 미국인들은 침묵했다.
오늘날 전 세계를 위협하는 극단적 이슬람 무장 세력의 씨앗도 미국이 뿌렸다. 소련 붕괴를 목적으로 CIA를 통해 자금과 물자를 퍼부어 아프가니스탄에서 양성한 이슬람 무장 세력이 알카에다 등으로 변종을 거듭하며 테러 집단으로 성장했다.
이렇게 해외에 뿌린 악행의 씨앗이 자라나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 미국 본토의 심장부가 테러당한 2001년 9.11 사태가 바람의 방향을 바꾼 결정적 사건이었다. 미국은 그로부터 지금까지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 중이다.
9.11 이후 미국의 대응 방식은 과거와 달랐다. CIA를 활용한 물밑 공작 대신,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동원해 대놓고 타국 정부를 전복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조지 W. 부시 정부가 그랬고, 버락 오바마 정부도 그랬다. 그러나 이 역시 이슬람국가(IS) 같은 극단적 이슬람 테러집단을 키운 결과를 야기했다.
미국 정치에서 전쟁은 일상적 작동 원리가 됐다. 아울러 외부의 적과 싸우고 내부의 적을 감시하느라 미국은 '안보국가'로 변모했다. 시민권이 줄어들고 억압적 국가기구의 권한이 커졌다.
역풍의 일차적 결과로 미국 사회에 만연한 이슬람공포증에 트럼프가 올라탔다. 대선 기간, 그는 무슬림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며 물고문의 부활을 주장하기도 했다. 기성 정치가 포괄하지 못한 이들, 심화된 불평등의 희생자들이 세상을 갈아엎자는 심정으로 우파 포퓰리즘에 표를 던졌다. 결국 트럼프가 이겼다.
엥겔하트는 이를 미국 사회의 "점진적인 민주적 쿠데타, 국내적 체제 전복"이라고 했다. 또한 "9.11로부터 시작돼 오랫동안 진행된 역풍의 역사가 트럼프의 승리로 이어진 것"이라고 했다. 타국의 체제 전복을 서슴지 않았던 미국이 이제 민주적 투표로 자기들 체제를 전복한 역설이다.
트럼프 시대는 이제 시작이다. 그는 차기 내각에 들어찬 전쟁광들과 함께 미국을 더욱 극단적이고 공격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갈지도 모른다. 나아가 트럼프는 기후변화협약을 무시하거나 파기할 수도 있다. 이는 미국을 뛰어넘은 범지구적 죄악이다. 그런 의미에서, 엥겔하트에 따르면 트럼프는 '딜 브레이커'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는 트럼프가 이끌어갈 미국이다.
다음은 엥겔하트의 칼럼 전문.
트럼프는 전쟁의 역사가 자초한 역풍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은 중앙정보국(CIA)을 앞세워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수많은 민주 정부를 전복시켜 왔다. 미국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리고는 그 자리에 군사 정권이나 왕정국가, 전제국가, 혹은 독재 정부 등을 세웠다.
1953년, CIA는 영국과 공모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이란의 모하메드 모사데그 정권을 무너뜨렸다. 이에 따라 모사데그가 추진했던 이란의 석유자원 국유화는 좌절됐다. 모사데그 정권은 친미적인 팔레비 정부로 교체됐고 미국의 지원 아래 조직된 비밀경찰 사바크(SAVAK)가 팔레비 정권 유지의 핵심 역할을 했다.
1954년, CIA는 과테말라 정부가 미국 기업(유나이티드 프루츠) 소유의 자국 토지를 유상 몰수 했다는 이유로 쿠데타를 일으켜 야코보 아르벤스 정부를 몰락시켰으며, 이는 카를로스 카스티요 아르마스의 군사 독재로 이어졌다.
1954년, CIA는 월남의 응오 딘 지엠을 국가 지도자로 세우기 위한 공작을 벌였다.
1961년, CIA는 (콩고의 식민종주국인) 벨기에와 함께 선거로 선출된 콩고의 첫 번째 수상인 파트리스 루뭄바를 암살했다. 결국 콩고는 수십년간 모부투 세세 세코의 군사 독재 아래 신음해야 했다.
1964년, CIA는 브라질의 군부 쿠데타를 지원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후앙 굴라르 정부를 무너뜨리고 군부가 권력을 장악하도록 했다.
또한 '첫 번째 9.11(1973년 9월 11일)'은 미국이 지원한 칠레 군부가 국민이 선출한 사회주의자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를 살해하고 칠레 정부를 전복한 날이다.
자, 이제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독자들은 감을 잡았을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수많은 민주 정부를 파괴, 전복한 것이다)
당시 '자유세계'의 영도국을 자칭한 미국은 이런 식으로 자국의 의지를 계속해서 관철해 왔다. CIA의 정권 전복 공작은 대개 은밀하게 수행됐지만, 들통이 났을 때에도 민주주의 전통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미국인들은 기이하게도 CIA가 나라 밖에서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 정부를 파괴한 비밀공작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보통의 미국인들이라면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외국의 나쁜 정권들을 반복해서 지원하는데도 냉전 기간 동안 미국인들 대부분은 이 문제에 대해 조바심치며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았다.
냉전 기간 동안 CIA 주도의 외국 정부 전복은 대부분 은밀히 추진됐다. 이런 일이 백주 대낮에 자랑스럽게 떠들 일은 아니라는 최소한의 양심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21세기 초에 새로운 의식 경향이 생겨났다. 9.11 테러 공격을 받은 이후 '체제 전복(regime change)'이란 용어가 아주 떳떳하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체제 전복은 전혀 숨길 일이 아니게 됐다. 공개적 토론과 모든 미디어의 집중적인 관심 속에서 수행되고 있다.
미국의 입맛에 맞지 않는 정부를 제거하고 말랑말랑한 피후견 국가(client states)를 세우기 위해 더 이상 워싱턴은 은밀하게 CIA를 활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부시 정부는 (9.11을 계기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지구상 '유일의 수퍼 파워'로서, 노골적으로 무력을 동원해 미국이 싫어하는 타국 정부를 직접적으로, 거침없이, 그리고 공개적으로 축출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고 선언했다. 뒤이은 오바마 정부는 '인도주의적 개입' 혹은 'R2P(responsibility to protect : 민간인 보호를 위한 책임)'라는 다른 명분을 내세워 똑같은 일(체제 전복)을 자행했다. 이렇게 볼 때, 체제 전복과 R2P는 군대를 비롯해 크루즈 미사일, 드론, 아파치 헬기까지 동원해 백주대낮에 타국 정부를 전복시킬 수 있는 미국의 권리를 일컫는 말이라고 할 만하다. (부시 정부 시절 사담 후세인 제거가 전자의 사례라면 오바마의 가다피 제거는 후자의 경우라 하겠다.)
이러한 정권 전복 역사를 염두에 두고 11월의 대선 결과를 바라보면서 최근 내게는 한 가지 의구심이 생겼다. 2016년 대선을 통해 미국인들은 그동안 CIA(와 군부)가 다른 나라에서 벌였던 일들을 이젠 국내에서도 수행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아닐까? 달리 말해, 우리 생애 가장 기이한 이번 선거를 통해 우리는 지금 미국의 점진적인 쿠데타, 혹은 국내적 체제 전복(regime change)을 목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는 일이지만, 한 가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국가안보기관이 선거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것이다. 선거 개입은 CIA가 아니라 국내 안보를 다루는 FBI가 했다. FBI가 두 명의 대선 후보 중 한 명에 대한 비판과 음모를 내사해왔으며, 제임스 코미 국장이 공개적으로 뻔뻔하게 열하루 동안이나 (클린턴 후보의 이메일 스캔들을 이유로) 선거에 개입한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는, 완전한 거짓은 아니겠지만, 잘해봐야 불완전한 정보를 근거로 선거 불개입이라는 FBI의 확고한 전통에 반하는 일들을 했다. 이 과정에서 그의 선거 개입은 선거 결과를 바꿔 놓았을지도 모른다. 이는 미국 외의 다른 나라에서는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모르나 민주주의의 원조를 자처하는 미국에게는 매우 특별한 순간을 만들었다.
현재 도널드 트럼프 내각은 인종주의자, 이슬람 혐오자, 이란 혐오자, 갑부들로 이미 채워졌다. 게다가 성미 급하고 비판을 참지 못해 격한 반응을 보이는 호전적인 백인 남성들로 채워져 군사주의화와 전제정부화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하는 내년 1월 20일, 그들은 엄청난 권력을 얻게 된다. 또한 9.11을 계기로 더욱 강화된 미국의 '안보국가(national security state)'는 입법, 행정, 사법부에 이어 미국의 제4부가 됐으며 이를 통해 사찰에서 고문에 이르기까지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됐다. 그들 중에는 분명히 그 권력을 테스트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즉 세계 최초의 민주공화국, 미국은 이제 확실히 경찰국가로 타락한 것이다.
우리 시대 역사의 역풍(Blowback)과 순풍(Blowforward)
이렇게 되기까지 22년이 걸렸다. 돌이켜 보면 1979년 워싱턴이 CIA를 활용해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극단적 무슬림 근본주의 세력에게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고 군사 훈련을 시킨 것이 그 단초였다. 소련의 아프간 침공을 유도해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겪었던 것과 같은 늪에 빠트리기 위한 것이었다. 소련이 붕괴함으로써 미국의 작전은 성공한 듯 보였다. 그러나 미국이 최초로 양성한 급진 이슬람 세력은 2001년 9.11테러로 미 본토를 강타했다. 소련을 겨냥한 워싱턴의 무슬림 과격세력 지원이 22년만에 9.11테러라는 역풍(Blowback: 미 정보기관의 비밀공작이 미국에게 불리한 사태를 초래하는 것을 지칭)을 불러온 것이다.
아프간 전쟁의 역풍은 사우디아라비아 소재 미군 숙소(코바르 타워)에 대한 폭탄 테러, 아프리카 주재 미 대사관(케냐 나이로비,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 폭탄 테러, 아덴 항에 정박 중이던 미 구축함 콜 호에 대한 폭탄 테러를 초래했다.
그러나 정작 미 본토에 대한 역풍을 초래한 사건은 9.11이었다. (9.11 바로 전 해인 2000년 출판된 찰머스 존슨의 책, <블로우백>은 이러한 역풍이 불 것임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이 책은 9.11 이후 베스트셀러가 됐다.) 단돈 40만 달러를 들인 알카에다의 공격은 미국의 상징적인 건물 세 곳을 목표로 삼았다. 첫 번째는 (미국의 금융 권력을 상징하는)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 건물, 두 번째는 (군사 권력을 상징하는) 워싱턴의 미 국방부 건물, 그리고 유나이티드항공 93기가 펜실베이니아에 추락한 것으로 볼 때 세 번째는 틀림없이 (정치 권력을 상징하는) 백악관이나 의회를 겨냥했다. 대부분 사우디 출신인 19명의 비행기 납치범들은 작심하고 미국인들의 자부심에 충격을 가했다.
이에 부시 정부는 즉각 세계적 테러와의 전쟁(GWOT: Global War On Terror))에 착수했다. GWOT 지지자들은 이를 ‘긴 전쟁(Long War)' '제4차 세계 대전’이라고 부르며 호들갑을 떨었다. (몇 세대, 즉 수 십 년 이상에 걸쳐 수행해야 할 전쟁, 소련과의 냉전이 3차 세계 대전이고 이슬람세력과의 대결은 4차 세계 대전이라는 의미) 2001년 10월 아프간을 시작으로 이라크에 대한 침공 및 점령으로 이어진 부시의 GWOT는 (소말리아, 리비아, 예멘, 시리아 등으로 번졌고) 1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이는 미국 역사상 최장 기간의 전쟁이다).
미국은 현재 이슬람 과격세력을 뿌리 뽑겠다며 테러와의 전쟁에 막대한 시간과 자금 및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워싱턴의 대테러전쟁은 이슬람 세력을 뿌리 뽑기는커녕 전 세계에 걸쳐 더 많은 과격파와 무슬림 전사들을 양산하고 있다.
과거 미국이 저지른 아프간전쟁은 22년 후 9.11테러라는 역풍을 초래했다. 반면 9.11 이후 미국이 벌이고 있는 대테러전쟁은 앞으로 수많은 과격파와 무슬림 전사들을 키워낼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9.11 이후 미국의 대테러전쟁은 미래에 미국과 세계에 지극히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서 ‘순풍(Blowforward)'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바꿔 말하자면, 오사마 빈 라덴은 단돈 40만 달러를 들여 미국이 수행한 역대 그 어떤 전쟁과 정부 전복 기도에 들인 비용보다 수 조 달러 이상을 더 허비하게 했으며, 중동과 아프리카 일대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테러 집단을 자라나게 한 셈이다. 광대한 지역에 통제 불능의 소용돌이와 재앙을 일으킨 지난 16년간의 전쟁은 '혼돈의 제국'이란 결과를 낳았으며, 미국으로 향하는 새로운 역풍을 일으켜 미국의 통치 체제 및 사회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뒤틀었다.
1979년 제1차 아프간 개입 이후 37년, 2001년 제2차 아프간 개입 이후 15년이 지난 지금, 미국 대선을 통해 테러와의 전쟁의 역풍은 매우 중대한 방식으로 ‘미국에’ 되돌아왔다. 군부가 득세하고, 국민들의 심성이 변화했으며, 모든 것을 군사력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화됐다. 사실 언젠가 우리는 이번 대선을 최초의 9.11식 선거라고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선거 기간에 제기된 무슬림 입국 금지와 같은 광기 어린 주장에서 알 수 있듯이, 말 그대로 테러와의 전쟁이 광범위하게 미국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지난 15년 동안 외국에서 벌어진 전쟁의 결과를 감안할 때, 이는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다. 예컨대, 최근 보도에 따르면 국방부와 CIA, 국토안전부에 근무하는 무슬림들 사이에서 종교적 박해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으며, 이미 이슬람 혐오 정서가 이미 차기 트럼프 행정부 내에 만연해있다.
역사의 딜 브레이커?
2001년의 9.11테러 직후, 앞으로 이 공격이 미국과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제대로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2016년 11월 8일 미국 대선의 결과(트럼프 당선)가 미국과 세계의 진로에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를 전망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예측이란 본래 위험한 일이고 미래는 언제나 블랙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짙은 안개 속에서도 한 가지만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의 실패한 전쟁(대테러 전쟁)에 관여했던 장성들과 관료들이 향후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 체계를 장악할 것이며, 이제 우리가 만들어낸 혼돈의 제국(그리고 아마도 체제 전복까지도)이 바로 이 땅 미국에서 재연될 것이라는 점이다(미국 자체가 혼돈의 제국이 될 것이며 미국의 정치 체제도 타락할 것이다).
트럼프의 승리, 그가 주창하는 우익 코포라티즘적 또는 갑부 포퓰리즘의 승리, 그리고 점증하는 백인우월주의의 물결은 미국의 현실정치에 9.11식 충격을 가할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9.11테러는 미국의 대외정책을 급격하게 변화시킨 반면, 이번 대선 결과는 미국의 정치체제를 아주 서서히 변화시킬 것이라는 점뿐이다.
2016년 11월 8일 트럼프의 승리가 있기까지는, 2001년의 9.11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역풍으로 얼룩진 역사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영구 전쟁이 워싱턴의 생활방식으로 제도화됐다. 안보국가(군부 및 정보, 공안기구)가 독립적 세력으로 자라나면서 다른 모든 민주적 제도들을 압도했다. 안보국가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사찰을 자행했으며, (중동과 북아프리카 등) 머나먼 전장에서 미국이 사용했던 전투 기술과 군사주의적 사고방식이 미국으로 되돌아와 백악관에게 찍힌 인물은 그 누구라도(심지어 미국 시민까지도) 암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실제로 오바마 정부는 2011년 9월 예멘 출신의 이슬람 성직자이자 미국 국민인 안와르 알 아울라키를 드론에서 발사한 미사일로 암살했다).
이와 더불어 국내적 역풍에는 2010년 대법원의 '시티즌 유나이티드' 판결도(정치헌금의 상한선을 철폐함으로써 대기업과 부자들이 막대한 기부금을 낼 수 있게, 그리하여 선거 결과에 결정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됐다) 포함된다. 이 판결에 따라 기업들의 엄청난 선거자금과 불평등한 사회의 정점에 있는 1% 최상위층의 자금이 정치 시스템으로 유입됐다. 그렇지 않았다면 대통령이 되겠다는 백만장자도, 백만장자들의 내각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 10월 초 나는 "백인 노동자들의 상당수가 경제적으로 혹은 심리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몰렸으며 더 이상 갈 곳도 없다고 느끼고 있다. (…) 이들 중 다수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후보를 백악관에 보내기로 작정했다. 그들은 자기가 피해를 보게 되더라도 세상이 무너지면 기회가 생길 거라고 여긴다"고 썼다. 결국 백인 노동자들의 자살 폭탄 공격의 결과로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했으며, 사람들은 이제 "확 뒤집어 엎어버려"라고 주문한다.
곧 극단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안보국가를 장악한 미국판 '지하드 전사'들이 날뛸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2016년 미국 대선은 점진적 쿠데타였던 것으로 드러날 것이 거의 분명하다. 트럼프는, 과거의 우파 포퓰리스트들과 마찬가지로, 대중 선동에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으며(이번 선거에서 그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미국판 전체주의를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무엇보다 최근 몇 년 사이 시민권은 약화되고 정부 권력은 강화되는 등 독재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의 변화를 감지하는 미국인은 거의 없다.
11월 8일의 사건(트럼프의 승리)이 초래할 사태 중 한 가지는 분명하다. 트럼프가 통치할 미국의 미래다. 블라디미르 푸틴, 석유로 겨우 지탱하는 '석유국가(Petro-State)' 러시아는 잊어라. 이제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는 미국이다.
미디어 조작에만 타고난 천재성을 보일 뿐인 트럼프와 이제까지 테러와의 전쟁이 불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장군들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군비 증강과 타국에 대한 개입과 간섭과 탄압을 통해 미국을 보다 극단적이고 공격적이며 비이성적 경향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이건 확실히 좋은 그림이 아니다. 그러나 트럼프 시대의 미국이 궁극적으로 어떤 모습일까를 보여주는 실마리임은 분명하다. CIA를 통한 외국 정부 전복, 군대를 동원한 체제 전복 등 이제까지 미국이 밥 먹듯이 해온 일들을 고려해 볼 때, 미국은 세계 전체를 붕괴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세계 2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을 이끌어갈 트럼프가 선거 기간에 공약한 에너지 정책에 따르면, 기후온난화 관련 연구기금은 축소되고, 기후협약은 폐기되거나 무시될 것이다. 석유 및 가스관 건설과 프래킹 등 화석연료 개발은 적극 장려되는 반면 대체에너지 개발은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 결국 미국은 북미 대륙의 사우디아라비아를 꿈꾸는 것이다. 이로써 트럼프는 사실상 지구 전체에 대한 체제 전복에 시동을 걸 것이다.
미국에 전제정치의 시대를 열어젖히는 등 트럼프 정부에서 예상되는 일들은 따지고 보면 인류 역사의 일부일 뿐이다. 전제정치는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 독재자는 흥하기도 하지만 결국 망한다. 반역은 일어나지만 대부분 실패한다. 민주주의는 잘 작동하거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린 살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건 인류 역사가 아니라 지구 역사 차원의 일이다. 트럼프는 이 역사의 잠재적인 딜 브레이커(판을 깨는 사람)다. 앞으로 몇 년 동안 겪을 트럼프 시대는 암울한 시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기후 온난화에 따른 지구 상 모든 생물들의(인간을 포함한) 멸종 위기에 비교해보면 트럼프의 폭정 따위는 모두 지나가는 일일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9.11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11월 8일 트럼프의 대선 승리야말로 이제까지의 인류 역사상 어느 누구도 당해보지 않은 일생일대의 충격이자 앞으로 억겁의 시간 동안 계속될 충격이기도 하다. 이것이 우리가 11월 8일 이후 마주한 위험이다. 절대로 착각하지 말자. 우리는 지금 대파국을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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