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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대, 박근혜를 뺀 '외교게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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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대, 박근혜를 뺀 '외교게임'이 시작됐다

[한반도 브리핑 ] 불확실성에서 살아남기 : 2017년 한반도 정세 전망

시계 제로. 한반도뿐만이 아니다. 세계 질서 자체가 '불확실의 안개'다. 미국에서도 유럽에서도 2017년을 전망하는 '열쇠 말'은 '불확실성'이다. 트럼프 정부의 외교 노선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지만, 알고 보면 트럼프의 당선 자체가 '불확실성'의 결과다.

세계화의 그늘에서 만들어진 '과거에 대한 향수'와 '현실에 대한 불만'의 물결이 영국에서 시작해 미국을 거쳐 다시 유럽으로, 아시아로 번지고 있다. '향수에 사로잡힌 민족주의'가 세계를 휩쓸면서, 국제사회는 각자도생으로 흩어지고 있다. 과연 이 안개는 동북아시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미중러 삼각관계가 변할까?

동아시아 정세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우선 미중러 삼각관계가 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트럼프 정부가 러시아 정책을 바꿀 의향을 내비쳤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상대하지 않고, 트럼프 정부를 기다린다. 미러 관계가 좋아지면, 트럼프 정부는 미중관계에서 훨씬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

미중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대만 총통과 통화를 하면서, 중국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불확실성을 더욱 높여서, 선택의 여지를 넓히는 전략이다. 알고 보면 외교는 선택지를 넓히는 것이고, 트럼프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물론 삼각관계의 외교 게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선적으로 미러 관계가 복잡하다. 오바마 정부가 출범할 때 미러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임기가 끝나는 현재의 시점은 최악이다. 미국의 전략실패도 있지만, 푸틴 정부의 공격적 민족주의 탓도 크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겪으면서 양국은 충돌했다. 러시아는 저유가와 구조개혁 실패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국내의 위기를 민족주의적 위신을 추구하면서 벗어나고자 했다. 트럼프 정부가 과연 우크라이나 문제를 비롯해 러시아 제재 완화, 시리아 사태 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유럽 확장 등을 러시아와 타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 지난 2013년 6월 17일(현지 시각) 북아일랜드 에니스킬렌의 휴양단지 로크에른에서 시리아 문제와 관련해 양자회담을 가진 버락 오바마(왼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동북아에서 사할린 가스관 연결사업(PNG)처럼 남북미러의 4자 협력 가능성이 있지만, 극동에서의 미러 관계는 유럽에서의 미러 관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러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개선의 움직임은 있겠지만, 과연 1990년대 중반의 미러 협력 관계를 재구축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양국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너무 많고, 악화의 시간이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동북아시아에서 미중러 삼각관계의 변화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러시아 카드가 질서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으나, 여전히 미중 관계가 중요하다. 미중 관계는 당분간 재조정의 과정을 거칠 것이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에 대한 의지와 미중 양국의 경제적 상호의존 사이에서 출렁거릴 것이다. 지금 거론되는 남중국해에서의 군사적 대결의 완화, '하나의 중국' 원칙의 변화, 혹은 무역 분쟁의 가능성 모두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다.

20세기 미국은 중국을 미소 관계의 협상카드로 활용했다. 21세기 미국은 이제 러시아를 미중 관계의 협상카드로 활용하려 한다. 20세기 미중소 삼각관계는 세계적인 데탕트를 가져왔다. 21세기 미중러 삼각관계는 오히려 불확실성을 높인다. 내용을 예측할 수 없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환경이 요동치고 있음은 확실하다.

미국의 복잡한 동맹관계의 재조정

트럼프 정부는 동맹국의 안보 '무임승차'를 강력히 비판했다. 이미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국내적 요구가 존재했다. 어떤 식으로든 동맹국들과의 안보비용 분담에 대한 재조정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과연 트럼프 정부가 분담구조를 획기적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미국의 최우선 동맹국은 유럽 국가들이다. 유럽 국가들도 형편이 좋지 않다. 영국을 시작으로 세계화의 그늘이 만든 역습에 시달리는 유럽 국가들이 안보부담을 얼마나 떠안을지 의문이다.

ISIS 세력이 퇴조하고 있으나, 당분간 무차별적인 테러는 증가할 것이다. 시리아 사태의 출구를 찾는 일도 여전히 미국과 유럽이 공동 대응할 현안이다. 중동의 유동성도 여전하다. 테러로 흔들거리는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을 몰아붙이기도 어렵다. 터키는 미국에게 언제나 중동의 교두보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시아도 복잡하다. 필리핀의 두테르테 정부는 이미 미중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선언했고,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도 흔들거리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인도차이나에서 미얀마까지 소위 '아시아 귀환' 정책으로 묶어 놓은 국가들을 관리하는 것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미국의 외교 전문가들은 트럼프 정부가 동남아시아에서 동맹국과의 관계를 재조정하려 하지만, 오히려 동맹국들이 미국과의 관계를 재검토할 가능성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한미 동맹 재조정 문제를 고립적으로 보면 안된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미국이 동맹국들과의 안보부담 재조정을 어떻게 추진할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은 일본의 역할을 확대하면서 한미일 삼각관계를 제도화하려는 전략을 지속할 것이다. 트럼프 시대, 미일 관계의 공고함은 한국 외교의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지켜보겠다는 북한

북한의 신년사는 '새로운 것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대외적 불확실성을 반영해서 이미 밝힌 원칙을 재확인했다.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이 가시화할 때까지, 그리고 한국의 정치 상황이 구체화될 때까지 북한은 관망할 가능성이 높다.

2016년 두 번의 핵실험을 했기 때문에, 추가실험의 기술적 필요는 높지 않다. 운반수단의 성능개량이나 핵탄두의 소형화·경량화·표준화는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지 않고도 지속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국제적 제재 상황에서 국내경제의 실험도 확대할 것이다. 북한의 기업관리 제도는 계속 변화하고 있다. 포전담당제를 비롯한 농업정책의 변화도 진행 중이다. '금컵 종합 식료품공장'과 같은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형태의 기업가도 늘어날 것이다. 제재의 영향으로 혁신기업의 산업 분야는 제한적이겠지만, 소비나 생산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 지난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의 대외정책 역시 주변 환경이 불확실한 만큼 유동적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러시아 카드의 효용성은 높아졌다. 러시아카드는 북중 관계의 선택지를 높이는 전통적 역할에서 이제는 북미 관계의 카드로도 활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북중 관계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2017년은 그동안 물밑에서 조용하게 관계를 재조정하고자 했던 북중 관계가 어떤 형태로든 물 위로 형태를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북중 양국 모두 정세가 불확실한 만큼, 관계를 유지하고 확대할 전략적 필요가 높아졌다.

불확실한 안개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한 치 앞이 캄캄한 우리는 주변 환경을 신경 쓸 여력이 없다. 그러나 안개는 국내정치만 드리운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 내부의 안개야 시간이 흐르면 걷힐 것이다. 그러나 외부의 안개는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다. 불확실성은 빠르게 움직이고, 진폭도 클 것이다.

불확실한 안개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첫째, 발밑이라도 가시권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탄핵 국면을 하루라도 빨리 종식하고 새로운 정부를 출범시키는 것이 우리가 살 길이다. 우리를 둘러싼 질서가 너무 불확실해서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책을 말하기가 어렵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 우선적으로 남북관계를 안정시켜야 한다. 남북관계가 안정되어야 급변하는 국제질서에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둘째,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택지를 넓히는 것이다. 양자택일은 언제나 악마의 선물이다. 남북관계에서, 북핵문제에서, 혹은 한미 동맹에서 낡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제3의 대안을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다. 없으면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외교적 능력이다.

셋째, 외교안보는 언제나 국내에서 시작된다. 민주적으로 결정해야 올바른 출구를 찾을 수 있고, 경제가 살아야 여유가 있고, 초당적 협력이 이루어지면 어떤 대외적 위기도 헤쳐갈 수 있다. 물론 초당적 협력이 한국의 정치문화에서 어려운 줄 안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추진해 왔던 '내용 없는 형식적인 협력'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합의의 기반을 넓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는 전례 없는 상황이다. 우리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급변 상황이기 때문에 과거처럼 대응하면 망한다. 여전히 색깔론을 제기하는 인사들은 한심하고, 색깔론에 포박당해 과거처럼 대응하는 야권도 애처롭다. 지금은 이념놀음을 할 만큼 한가롭지 않다.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면서, 하루 이틀이 아니라 먼 장래를 보는 '새롭게 담대한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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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철

김연철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교수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에서 활동했으며 2004년 7월부터 2006년 1월까지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역임했습니다. 저서로 <냉전의 추억>, <북한경제개혁연구>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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