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의 공과(功過)' 시리즈로 이어집니다. (☞시리즈 목록 보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엔이 창설된 주요 목적은 전쟁 방지 및 중재였고, 인권 보호, 기아 구제 등도 유엔의 주된 목표 중 하나다. 또한 주로 국경을 넘는 범위의 전염병 방제 역시 전통적인 유엔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유엔이 전염병의 '매개체'가 된 엽기적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2010년 아이티에서였다. 지난 12일 귀국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임기 중이다.
아이티는 정치적 혼란을 수십 년째 겪고 있었다. '아이티 사태'는 수 차례 발생했다. 이에 따라 유엔은 아이티에 평화유지군 수천 명을 주둔시키고 있었다. 규모는 한때 1만 명을 넘기도 했고, 2000년대 중반에는 7~8000명 선이었다. 2010년 1월 아이티를 덮친 대지진으로 인해(☞관련 기사 : 아이티 정부 12만명 사망 확인), 파병 규모는 더 커졌다. 당시 안보리는 2000명을 증원하기로 결정했다.
아이티 평화유지군 가운데는 브라질군(1200명)이 최다수였고, 다른 나라들도 수백 명 규모의 군대를 보냈다. 브라질 다음은 우루과이, 스리랑카였고, 공동 4위는 748명을 보낸 요르단과 네팔이었다. 네팔군은 아이티 중부 미레발레 지역에 주둔했다. 이 네팔군 부대가, 수천 명의 사망자를 낸 콜레라 대재앙의 근원지로 지목됐다.
네팔군 부대는 인접한 아르티보니트 강에 정화되지 않은 하수를 버린 것으로 의심되고 있다. 병원균은 이 강을 따라 퍼져나갔다. 2010년 10월 첫 콜레라 발병 이후 2016년 말까지 무려 9500명이 사망했다. 감염자는 무려 80만 명에 이른다. 아이티 인구는 1000만 정도다. 한 나라 인구의 8%가 단일 질병에 감염됐다.
네팔은 콜레라가 유행했던 나라다. 반면 아이티는 콜레라 청정국이었다. 유엔이 네팔군을 아이티에 파견하기 전, 해당 군인들의 완치 여부 등 사전 역학조사를 게을리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더 고약한 것은, 유엔은 발병 초기 '평화유지군 부대에 대한 자체 역학 조사를 시행했으나 반응이 음성이었다'며 유엔군 부대가 발병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공식 부인했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 )
그러나 불과 두 달 후인 같은해 12월, 프랑스 <AFP>)
반기문의 대응은?
반 전 총장은 지난해 12월에야 아이티 국민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콜레라 발병으로부터 무려 만 6년 2개월 만이었다. 이 6년여 동안 반 전 총장이 이끈 유엔은 책임을 부인하기만 했다. 콜레라를 발병시킨 것보다, 이 '책임의 부인'이야말로 더 비난 소지가 높은 잘못이라는 비판이 많다.
게다가 반 전 총장의 '사과' 역시 흔쾌한 것이 아니었다. 반 전 총장은 당시 "유엔을 대신해 아이티 국민들에게 분명히 사과하고 싶다"며 "우리는 아이티 콜레라 발병과 확산에 충분히 대처하지 못했다. 우리의 역할에 대해 대단히 죄송하다"고 했다. 그러나 유엔은 반 당시 총장의 이같은 언급은 정치적·도의적인 것일 뿐 배상 등 법적 책임을 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지난해 12월 28일자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반 전 총장이 6년만에 콜레라 문제에 대해 사과한 것을, 그의 한국 대선 출마 가능성과 연결지어 해석하기도 했다. 다음은 <포린폴리시> 보도 가운데 일부.
2016년 1월 15일, 필립 알스톤 유엔 인권특별보고관이 뉴욕 유엔본부 38층 유엔 사무총장 집무실로 반기문을 찾았다. 알스톤은 5년 전 아이티의 콜레라 창궐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 인정을 꺼리고 있는 유엔을 강하게 비판하는 보고서를 준비 중이었다. 만약 반기문이 유엔의 명예와 자신의 업적을 조금이라도 지키고 싶었다면, 이 역사적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빨리 움직여야 했다.
알스톤은 반기문에게 에둘러 경고했다고 말했다. 한국 대통령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던 남자에게, 잠재적 스캔들을 암시한 것은 설득력이 있었다. 72세인 반기문은 9000명이 사망한 아이티 콜레라에 대한 유엔의 책임을 재검토할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12월 1일, 숙고의 시간을 거친 후 반기문은 유엔을 대표해 아이티인들에게 아주 예외적인 사과를 했다. 이는 콜레라 창궐에 대한 유엔의 공동 책임을 부인한 지난 몇 년의 세월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었다. 공들여 매만진 성명서는, 꼭 법적인 것이 아니라도 유엔의 도덕적 책임을 인정하고 있었다. 반기문은 "엄청나게(profoundly) 유감"이라며 유엔 회원국들에게 콜레라 대응과 치료를 위한 4억 달러를 토해내라고 압박했다.
(중략…그러나) 아이티 콜레라는 반기문의 업적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2010년 10월, 미르발레 지역 평화유지군 캠프에서 콜레라균에 감염된 하수가 아르티보니트 강의 지류인 메일레 강으로 유입됐고, 이는 현재까지도 아이티인들을 괴롭히는 콜레라 유행의 시발점이 됐다.
2011년 11월, 5000명의 아이티인들을 대리한 변호사들이 유엔에 탄원서를 냈다. 이들은 공식 사과와 보상, 전염병 통제를 위한 상수도와 위생 체계 설치를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유엔은 협상을 거부했다. 평화유지군은 외교상 면책 특권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유엔을 위해 일했던 한 변호사는, 콜레라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는 법적인 결정이 '비밀의 장막' 뒤에서 오랫동안 준비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결정에서 반기문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는 뜨거운 논쟁거리다.
이 사건에 정통한 외교관 및 관계자들에 따르면, 패트리샤 오브라이언 유엔 수석 변호사와 허브 라드소우 유엔 평화유지군 사령관 등은 사건 초창기에 '유엔은 원고 측과 협의할 의무가 있다'는 취지의 메모를 준비했다고 한다. 그러나 반기문은 미국과 상의한 후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반면 다른 관계자들은 오브라이언이 (원고 측과의 협의를) 강하게 반대했으며, 보상의 30% 정도를 부담해야 할 미국도 간접적으로 반대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중략) <포린폴리시>와의 인터뷰에서, 반기문은 '콜레라 피해 보상 거부 건에서 당신의 역할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대체로 피했다. 수백억 달러에 이를 보상액을 두려워한 미국 등 강대국들이 자신에게 어떤 충고를 했는지 밝히지도 않았다. 그는 유엔 변호사들이 이 문제에 대해 매우 "엄격하다(strict)"며 수십억 달러를 요구하는 어떤 "법적인 공격"에 직면하더라도 책임을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이 일에 대해 매우 매우 방어적인 입장이었다. 그게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필립 알스톤 유엔 특별보고관은 12월 1일 나온 반기문의 사과를 "옳은 방향으로 가는 중요한 행보"라고 환영했다. 하지만 그는 반기문이 콜레라에 대한 법적 책임은 부인한 것은 결국 보상이 '자선'에 그칠 것이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돈은 거의 걷히지 않거나 아예 걷히지 않을 것이다."
유엔과 미국의 법률고문이었던 브루스 래시코우는 유엔이 너무 오랫동안 버텼으며 6년이 넘게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사과는 별 게 아니다. 사과는 응당 해야 할 일이었지만, 사과가 그의 업적에 난 흠을 메우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사과는 그 흠을 더 키웠다."
한 유엔 회원국 인구의 8%가 전염병에 감염됐고, 1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에 대한 유엔의 책임을 인정하는 데도 반 전 총장은 인색하기 그지없었다. 반 전 총장에게 흔히 가해지는 '우려만 했다'는 비판조차, 이 사례에 적용하기에는 오히려 너무 후한 평가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