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지시로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이 청와대를 움직여 기업들로부터 '강제 모금'에 나선 것이 사실에 부합하다는 기소 내용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는 셈이다. 그간 증인으로 지목된 청와대 관계자들은 법정에서든, 헌법재판소에서든 박근혜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법칙'도 이제는 깨지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이날에는 미르재단에 출연금을 낼 아홉 개 기업을 최상목 전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현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직접 지정했다는 구체적인 진술까지 나왔다. 최 전 비서관은 당시 안종범 경제수석실 소속이었다.이수영 전 靑 행정관 "최상목이 9개 기업 지정"…최상목은 "기업 결정 관여 안해"
이수영 전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실 행정관(현재 금융위원회 소속)과 이소원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사회공헌팀장은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최순실 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 대한 11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들은 미르재단 설립 회의와 재단 모금이 청와대의 주도였다는 점을 시인했다.
특히 이수영 전 행정관에 따르면 최 전 비서관은 당시 미르재단의 사무실 위치까지도 구체적으로 정해줬다고 한다. 최 전 비서관은 "사무실 위치 1순위는 강남권 기업 사옥, 2순위는 전경련 회관, 3순위는 콘텐츠진흥원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수영 전 행정관은 미르재단 사무실 후보지를 본인이 직접 답사했다고 증언했다. 이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안 전 수석은 최 전 비서관과 김소영 전 비서관, 이 전 행정관 등을 불러 미르재단 사무실 후보지 네 곳의 사진을 건넸다고 한다.
다만 "안종범은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4개 후보지 사진 받았다고 했다"고 검사가 묻자, 이 전 행정관은 "안 전 수석이 (사진을) 누구에게 받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면서 "전경련 측에 사무실 후보지를 빨리 만들라고 했다가 명단을 주면서 직접 가보라고 해 굉장히 다급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 전 행정관은 당시 답사를 다닐 때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 관용차를 이용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청와대 비서관과 행정관이 직접 재단 사무실 후보지까지 답사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사무실 후보지 답사 결과 역시 안 전 수석에게 보고했다고 밝혔다.
이어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실, 문화체육비서관실, 문체부까지 문화재단 설립 회의를 한 것은 안 전 수석이 재단을 신속하게 설립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고, 이 전 행정관은 "그렇다"며 인정했다. 이 전 행정관은 또 "최상목 전 비서관이 미르재단 출연과 관련해 삼성 등 9개 그룹을 지정해준 것 같다"는 검찰의 질문에 "맞다고 본다"고 답했다.
최 전 비서관의 이름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공소장에도 등장한다. 검찰에 따르면 그는 미르재단 설립 관련 실무를 담당했다. 최 전 비서관은 지난해 11월 안 전 수석 기소 직후 "당시 경제수석의 지시로 회의에 참여했을 뿐 재단 규모나 참여 기업 결정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이수영 전 행정관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9개 참여 기업을 직접 지정해줬다.
말이 엇갈리고 있는데, 둘 중 한명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전경련 간부 "최상목이 다그치자 전경련 상무 얼굴이 시뻘개졌다"
이날 증인대에 선 이소원 전 전경련 사회공헌팀장에 증언에 따르면 최 전 비서관의 개입은 더욱 명확해진다. 미르재단 관련 첫 청와대 회의가 열린 것은 지난 2015년 10월 21일. 이 전 팀장은 당시 미르재단에 출연금을 낼 9개 기업이 정해졌다며, 기업 선정 방식에 대해선 "최상목이 특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9개 기업의 이름이 다 기억나진 않지만 불러주는 대로 노트에 받아적은 기억이 분명히 난다"고 말했다.
"첫 회의에서 최성목이 '전경련이 재단을 설립해야 한다. 일주일 안에 300억 원 규모로 해야 한다'고 말했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그는 "그렇다"면서, 9개 그룹 분담금 작성을 하라는 지시도 받았다고 했다.
2차 회의에서는 분담안을 최 전 비서관으로부터 '컨펌'받았으며, 이날 재단 설립일이 2015년 10월 27일로 확정됐다고 했다.
최 전 비서관은 전경련 측에 재단 출연을 재촉했고, 기업들의 출연 약정서를 받지 못하자 다그치기도 했다고도 밝혔다. 이 전 팀장은 법정에서 "분위기가 서늘해지고, 무서운 분위기가 됐고, 저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는데, 상사(이용우 전경련 상무)도 입을 다물고 얼굴을 못 들고 얼굴이 시뻘게져 있었다"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박찬호 전경련 전무는 이날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청와대가 (기업을) 끌어들인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라"는 취지의 질책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검찰이 '2015년 최상목 당시 비서관이 증인에게 전화해 왜 청와대가 끌어들인 것처럼 보이게 하냐며 질책하듯 말하지 않았나'라고 묻자 박 전무는 "그렇다"고 답했다.박 전무는 "청와대가 앞에 나서지 않고 전경련이 자발적으로 (설립)하는 걸로 보이게 해야 하는데 나는 기업체에 연락하면서 일의 경과나 사업을 시작한 배경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그래서 조심하라는 경고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박 전무는 "대통령 말씀이나 경제수석실을 언급하지 않으면 그렇게 빨리 기업들에 부담을 지워 가며 (재단 설립을) 할 수 없는데 대체 내게 어떻게 하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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