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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와 반어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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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와 반어에 관하여 [기고] 안희정의 '말'에 대하여
1. 안희정 충남지사가 부산대학교에서 강연을 했다.

그곳에서 "(이명박과 박근혜가) 선한 의지로 없는 사람과 국민 위해 좋은 정치 하려고 했는데 뜻대로 안됐"다고 말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박근혜가 거액 뜯어낸) K스포츠·미르재단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사회적 대기업의 좋은 후원금을 받아 동계올림픽을 잘 치르고 싶었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복잡할 것도 혼동될 것도 없다. 온 나라를 절단 낸 박근혜의 불법 행위 본질이 '선한 의지'였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일지라도 감히 내뱉기 어려운 발언이다. 그녀의 국정농단과 희대의 범죄에 분노하여 연 인원 수천만 명의 시민이 몇 달 째 촛불을 들고 있는데. 이 혐의 때문에 현재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 중인데. 한마디로 촛불민심을 정면으로 모욕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안 지사의 이러한 인식과 발언이 돌발적인 게 아니라는 점이다.

'새누리당과 대연정'이 가능하다. '사드 한반도 배치'를 되돌릴 수 없다. 'MB의 녹색경제와 박근혜의 창조경제'를 계승하겠다. '기본소득은 국민들에게 주는 공짜밥'이다. '개성공단 재 가동'은 미국한테 물어봐야 한다. '노동시장은 더욱 유연화'되어야 한다… 등등. 지난 몇 달 간 줄기차게 이어진 신자유주의적 기득권 지향 발언의 연장선상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당연히 폭발적인 분노가 여론을 휩쓸고 있다. 반응이 심상치 않다 싶은지 그는 급히 해명을 내놓았다. 해당 발언이 '비유와 반어'였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해명이라고 던진 이 말이 참으로 터무니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2. 수사학 혹은 수사법으로 번역되는 레토릭(rethoric)은 "말과 글로 사람을 설득하는 기술"로 정의된다. 여기서 비유(比喩, figure)는 고대 그리스 이래 2,500년 동안 핵심적 레토릭 기법으로 사용되어온 것이다. 어떤 대상을 언급할 때 그것을 직접 거론하지 않고 다른 현상이나 사물에 "빗대어" 말하는 것이 바로 비유다. 특정 현상 혹은 사물이 지닌 차별적 개념과 이미지를 다른 사물에 전이(轉移)시켜 표현에 독특한 매력과 효과를 발생시키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사랑에 빠진 남자가 사랑하는 그녀에게 "당신은 6월의 장미입니다"라고 고백했다 치자. 이 남자는 표현을 통해 "장미"가 지닌 아름답고 매혹적인 이미지를 "당신"이라는 존재에 빗대어 전이시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당신(A) = 장미(B)의 공식으로 설명되는 은유(metaphor)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이것이 비유의 작동원리다.

그런데 안 지사가 던진 "박근혜가 선한 의지로 없는 사람과 국민을 위해 좋은 정치를 하려고 했다"는 표현 어디에 비유가 있는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아무데나 갖다 붙인다고 없는 비유가 생겨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아무리 어색한 웃음으로 추임새를 넣는다 해도.

직접 세어보니, 3분 23초의 길지 않은 부산대 발언 동영상 안에서 "선의" 혹은 "선한 의지"라는 어휘가 무려 6번이나 나온다. 작정하고 선택한 말이라는 뜻이다. 결코 우스개 소리나 비유가 아니다. 그의 발언은 스스로 내면에 잠재된 생각을 있는 그대로 서술한 문장일 뿐이다. 이런 표현을 우리는 직설(直說)이라 부른다.

3. 그는 또한 반어를 썼다고 주장한다. 더욱 엉뚱한 말이다. 반어(反語, Irony)는 "속에 품은 참 뜻과 반대되게 말함으로써 오히려 호소력을 강화하는 수사법"이다. 전형적 사례를 들자면 이렇다. 아들이 술에 만취되어 밤늦게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문을 열어주면서 "잘 한다 잘해!"라고 했을 때가 그것이다.

실제 말하려는 뜻을 숨기며 의도적으로 거꾸로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생기는 풍자와 골계가 반어법의 목적이다. 그렇다면 안희정 지사의 발언 어디에 원래 말하고자 하는 참뜻과 반대되게 표현한 대목이 있는가? 어느 구석에 풍자가 있는가?

그는 자기 생각을 (이 대목에서는 웃지도 않고) 진지한 설교조로 이야기했다. "우리는 그 누구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의 의지를 '선한 의지'로 받아드려야 합니다"라고.

그러므로 내가 보건대, 그는 애초에 비유가 뭐고 반어가 뭔지 개념을 전혀 모르고 발화(發話)를 했다. 또 해명을 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자신의 레토릭 구사법을 이해못한다고 기자를 탓해서야 되겠는가. 자기 말을 오해했다고 유권자들을 탓해서야 되겠는가. 한 사람이면 모르겠다. 하지만 수 천 수 만의 사람이 동시에 특정 발언의 뜻을 못 알아듣는 바보일 수야 없지 않겠는가.

4. 결론이다. 안희정 지사는 비유니 반어니 엉뚱한 변명으로 자신의 문제 발언을 뭉개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명박과 박근혜 옹호 발언의 진의를 해명해야 한다.

그리고 박근혜의 선한 의지 따위는 단 한 뼘도 믿지 않는 수백만 촛불시민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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