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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없는 3월'도 봄은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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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없는 3월'도 봄은 아닐 수 있다" [진보논평] "탄핵 이후에도 광장에 모여야 한다"

박근혜 정권 즉각 퇴진 투쟁이 그동안 이룩한 그 많은 놀라운 성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이는 헌재의 탄핵 인용을 기정 사실로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현실의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은 것은, 단지 박근혜 정권과 보수 세력이 다시 준동을 시작해서가 아니다. 그들의 준동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되겠지만, 그보다 진짜 문제는 광장의 정치에 대해 그동안 쏟아낸 수많은 의미 부여와 온갖 전망이 어느 새 축소되거나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데 있다. 지금 이 같은 현실을 맞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광장의 분노와 열기를 정치적, 계급적으로 상승시켜 내지 못한 데 따른 불가피한 결과다.

탄핵 이후

탄핵은 당연히 인용되어야 하며, 인용되도록 해야 한다. 지금 이런 얘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그렇더라도 광장이 거기에만 얽매여서는 안 된다. 지금 중요한 것은 탄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현실화하기 위한 준비와 대비를 해야 하는 일이다. 이는 벌써부터 그래야만 했던 것이다. '박근혜 없는 박근혜 정권'에 대해 광장이 분노하고 있듯이 탄핵은 정권 퇴진의 일부일 뿐이다. 나아가 정권 퇴진 또한 그 성과를 광장의 것으로, 대중 자신의 것으로 확실히 거머쥐어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광장이 내건 요구를 쟁취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껏 탄핵 이후 광장의 진로에 대해 확실한 결정이 나 있지 않은 상태다. 아무리 탄핵에 집중하기 위한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지금도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현실에서 즉각 퇴진, 정권 퇴진 요구는 탄핵 인용 요구로 상당히 축소, 굴절되어 있다. 나아가 헌재 결정에 대한 승복 여부가 쟁점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 와중에 이른바 '태극기 집회', '박근혜 대리인단'이 탄핵에 대한 불복종 선언을 공공연히 하고 있는 실정이다. 승복 프레임은 탄핵 이후 보수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한 노림수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광장이 쟁취한 성과를 기존 제도(정치) 안으로 (재)흡수하려는 것이다.


승복 프레임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이게 다가 아니다. 그것은 겉으로는 탄핵이 기각되더라도 거기에 승복하라는 협박으로 들리지만, 이를 통해 거두려는 정치적 핵심은 탄핵 이후에는 광장을 그만 끝내라는 것이다. 지금 여야 할 것 없이 기존 정치권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탄핵 이후에도 광장에서 계속되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러나 광장은 이미 승복의 대상이 아니라, 승복을 강요하려는 자들을 오히려 승복시킬 수 있는 정치의 주체(실체)로 우뚝 서 있다. 이를 확실히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광장은 탄핵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야만 한다.

물론, 광장이 과연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며, 계속될 수 있을 것인지는 예단하거나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에 대한 기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 내용적으로는 광장이 요구한 긴급 과제가 해결될 때까지, 시간적으로는 대선 기간을 포함해 민주노총에서 계획하고 있는 6월 '사회적 총파업' 때까지다. 그런데 만약 그 때까지도 박근혜 구속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광장은 박근혜 구속 때까지로 당연히 연장되어야 한다. 이조차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기준이다. 사실 광장은, 광장의 정치가 일상의 정치로, 광장 바깥의 영역으로 확산될 때까지, 나아가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로 이어질 때까지 어떤 형태로든 지속되어야 한다. 그럴 수 있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최소한의 기준만이라도 확실히 제시되어야 한다. 탄핵 즉시 광장은 여전히 계속된다는 것을 곧바로 선언해야 한다.

분수령

이제 공은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 국민행동'(퇴진 행동)과 민주노총에게로 다시 넘어왔다. 지금 정세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퇴진 행동과 민주노총은 특검과 헌재가 퇴장한 자리를 정치권이 독점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은 지난 대의원 대회에서 광장의 정치를 살리고 강화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정치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퇴진 행동 또한 광장의 진로와 과제를 제시하는 데 내적으로는 여전히 주저하고 있다. 비록 퇴진행동이 단일한 조직이 아니고 연대체이긴 하지만, 또한 민주노총이 정치조직이 아니고 대중조직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그동안 광장에서 행한 말과 행위에 대해서만큼은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민주노총은 머뭇거리지 말고 퇴진 행동을 적극적으로 이끌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민주노총에게는 그럴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이 있다. 퇴진 행동과 민주노총이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역사에 커다란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당장 광장의 대중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머지않아 퇴진 행동과 민주노총도 다시 대중들과 분리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금 광장의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데에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만이 아니라 퇴진 행동과 민주노총의 조직적 행위가 있다는 것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광장의 진로와 과제에 대해 시민 개개인은, 아무리 그 합이 크더라도, 제시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의지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광장 자체(전체)는 외적으로는 직접민주주의를 체현하고 있지만, 광장 내부적으로는 아직 전면적으로 그러지 못한 상태에 놓여 있다. 이는 누구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현 단계 '진보-좌파' 세력의 역량과 대중의 상태를 반영하는 불가피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광장의 미래를 시민 개개인에게 물을 수는 없다. 광장의 미래에 대한 제시는 일단 퇴진 행동과 민주노총이 먼저 꺼내야만 한다. 물론, 그러한 행위는 어디까지나 임의적이고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퇴진 행동과 민주노총이 광장을 대변하고 있다고는 할 수 있어도 아직 대표하고 있지는 못한 때문이다. 퇴진 행동과 민주노총은 지금까지 감당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비교적 최선을 다했지만, 적극적으로 감당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망설여왔다. 즉 스스로 정치적 시험대에 오르는 것을 회피해왔다. 그러나 이제 더는 그럴 수 없다. 탄핵이라는 분수령이 바로 눈앞에 다가와 있기 때문이다.


지금 광장을 끝낼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퇴진 행동과 민주노총 안에도 탄핵 이후 광장의 진로와 과제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퇴진 행동과 민주노총은 적어도 위에서 말한 기준만이라도 합의를 해야 한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합의를 이룬 부위가 광장을 계속 진행해야 한다. 이조차 삐꺽거린다면 광장의 정치는 기존 정치권에 의해 재흡수 당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진보-좌파' 세력과 민주노총이 대선 공동 대응을 사실상 성사시키지 못한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지금 상황에서 이를 다시 성사시키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지만 가능성이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다. 광장을 계속해 나간다면 그 속에서 대선 공동 대응을 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방안이 열릴 수도 있다. 그 방안은 퇴진 행동과 민주노총이 광장의 정치적 대표성을 획득하는 것으로부터 열리거나, 광장의 요구에 의해서 열릴 수도 있다. 어쨌든 그럴 가능성은 오직 퇴진행동과 민주노총이 탄핵 이후에도 광장을 계속해 나가는 것을 전제로 해서만 성립할 수 있다. 이 또한 탄핵 이후 정국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



"박근혜 없는 3월, 그래야 봄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박근혜 없는 3월에도 '박근혜 없는 박근혜 정권'은 여전할 수 있다. 아니 심지어는 정권 교체가 이루어져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야당과 야당 대선 주자들의 행태를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야당은 지금 정국에서도 무엇 하나 제대로 된 대응을 못하고 있다. 역풍이일까 두려워 단순히 몸조심을 하는 차원이 아니다. 이런 현실은 야당이 '개혁'하려는 의지도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는 데에서 비롯되고 있다. 스스로 내건 '개혁 입법'조차 관철하고 있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 이 땅의 정치적 계절은 봄은커녕 동토가 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요동치고 있다. 경제 위기도 더욱 심화되고 있다.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상황이 다가올 수 있는 가능성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탄핵이 되더라도 노동자 민중에게는 아직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일 뿐이다. 지난 이명박근혜 정권 10년이 지긋지긋하다고 해서, 그 이전 자유주의 정권 10년으로 돌아가는 것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예컨대 광장이 요구하고 있는 그야말로 최소한의 긴급 과제조차 해결할 수 없는 정권 교체라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가로막는 정권 교체라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정권 교체인지 되물어야 한다. 어차피 그것들은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노동자민중 자신이 결국 투쟁을 통해 획득해야 하는 일이다. 누구도 이를 대신해 주지 않는다.


실제 광장에서는 탄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라는 공감대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다. 이를 나타내는 요구에는 여전히 힘이 실려 있다. 시민 개개인은 어떤지 몰라도 집단으로서의 광장은 분명 그러하다. 광장이 계속되어야만 하는 매우 직접적인 이유다. 뿐만 아니라 탄핵 이후에도 '태극기 집회'가 멈추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또한 광장이 계속되어야 하는 현실적 이유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진행동과 민주노총은 지금 광장을 계속해 나갈 준비와 태세를 분명히 갖추고 있지 않다. 퇴진 행동은 3월 11일을 "국민 승리를 축하하는 촛불을 들자"고 하고 있다. 그럴 필요가 충분히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3월 11일은 광장을 계속해 나가겠다는 다짐을 선언하는 집회가 되어야 한다. 3월 11일 집회가 광장을 마치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광장이 대선 정국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만이라도 이번 기회에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그래야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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