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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정치인' 박근혜 씨, '8:0' 결과에 불복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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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정치인' 박근혜 씨, '8:0' 결과에 불복합니까? [주장] 어설픈 '화해와 통합론'을 경계한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박근혜 씨가 헌정 사상 첫 '탄핵 대통령'이란 불명예 속에 10일 파면됐다. 헌법재판관 8명이 만장일치다. 오만과 타락으로 국정을 운영할 정치적, 도덕적 권능을 상실한 그에게 헌법재판소가 내린 마땅한 선고다.

헌재는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보아야 한다"고 박 씨의 파면 사유를 분명히 했다.

이로써 지난 석 달을 이어 온 박근혜 탄핵 심판은 광장에서 발현된 촛불 민의와 제도 기관인 국회 및 헌재가 이성적, 헌법적 가치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한 것으로 매듭됐다.

누적인원 1500만 명. 열아홉 차례의 주말 촛불 집회에서 확인한 수준 높은 시민들의 모습에 세계 언론들은 '아름다운 민주주의의 축제'라고 표현했다. 박 씨에 대한 탄핵이 인용되자 <뉴욕타임스>는 "한국 민주주의가 진화했다"고 평가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박근혜 대리인단의 헌재 능멸과 탄핵이 인용되면 "아스팔트가 피로 물들 것"이라는 선동, 일부 친박 단체의 신변 위협에도 불구하고 헌재 재판관들은 상식적인 판단으로 헌법적 가치를 지켜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법적 절차에 따른 권력자의 파면을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헌법, 즉 법의 수단에 의해 정상화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표현했던대로다. 최 교수가 말한 '촛불의 명예혁명'은 박 씨에 대한 헌재의 전원일치 파면 선고로 완성됐다.

국민들은 박 씨의 집권 기간 동안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을 수 없이 쏟아냈던 터라 이재명 성남시장이 "국민은 역사상 최초로 최고 권력자를 끌어내렸다. 이게 나라다"라고 한 말에도 울림이 있다.

하지만 피를 흘리지 않은 민주주의의 승리로 기록될 역사적 사건을 지켜보면서도 우려가 없지 않다.

박 씨는 탄핵 인용 결정 뒤에도 청와대 관저에 머물며 입장조차 내지 않고 침묵 모드다. 그러나 그의 침묵은 누가 봐도 탄핵 불복의 의미일 수밖에 없다.

탄핵 반대를 주장했던 친박 단체의 불복 운동, 박근혜 동정론에 기대 정치적 입지를 모색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정치 선동에 기대 법 밖의 영역에서 장외 여론전을 전개하겠다는 뜻이다. 박 씨의 저항은 형사책임 앞에 직면한 '자연인 박근혜'의 반헌법적 몸부림이다.

대통령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보편적 믿음을 헌재가 확인한 만큼, 박 씨가 40년 지기 최순실 씨와 공모한 국정 농단과 이권 추구, 이 과정에서 삼성 등 대기업과 맺은 정경유착의 실체는 이제 검찰이 규명해야 할 몫이다.

일각에선 조기 대선 국면으로 접어드는 탓에 박 씨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늦춰질 거란 우려가 있다. 검찰의 좌고우면은 박 씨와 일부 탄핵 불복층에게 정치적, 사법적 반발의 시간과 공간을 열어주는 꼴이다. 검찰은 정치 일정과 관계없이, 특검 수사에 철저히 불응했던 국정농단 사건의 '몸통' 박 씨에 대해 원칙에 따른 엄정한 수사로 사법적 절차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건은 후유증이 불가피하다. 탄핵이 인용된 직후부터 거리에선 탄핵 반대 세력과 경찰이 충돌해 불상사가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박 씨를 옹호하는 이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를 다독여야 할 책임은 누구보다 정치권에 있다.

그러나 무분별한 통합론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헌재가 보충의견으로 "탄핵 심판이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 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라고 탄핵의 성격을 보다 분명하게 규정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광장의 민의를 바탕으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발의될 때부터 헌재의 선고가 나올 때까지 민심은 단 한 번도 분열 된 적이 없었다.

탄핵 찬반론을 기계적으로 나열해 '국론 분열 프레임'을 부추기고 보수와 진보의 대립으로 치환시키려는 일부 언론과 정치권의 움직임은 그 자체가 박근혜 씨를 탄핵한 민심과 헌재 선고에 대한 왜곡이다.

벌써부터 '용서와 화해'라는, 고상한 언어로 포장된 또 다른 교란도 일고 있다. 그러나 자기 책임을 인정한 박 씨의 진솔한 사죄의 변을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데다, 박 씨에 대한 제대로 된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등장한 '용서와 화해'는 어불성설이다.

마지막으로, 대통령 파면 이후 가장 우려되는 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처신이다. 박근혜 정부의 법무부 장관으로, 국무총리로 승승장구한 그가 국정 실패의 공동 책임자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박 씨의 탄핵이 인용된 이상, 황교안 과도 정부의 정당성도 권위도 사라졌다. 망한 정부의 2인자인 그를 비롯해 내각의 그 누구도 사표를 내지 않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의아하다.

황 대행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송구스럽다"면서도 "정부는 비상 상황 관리에 혼신을 다하겠다"며 되레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쥐려는 행보다.

특히 황 대행은 이날 한민구 국방장관 등과 전화통화를 통해 '북한 도발 가능성'을 운운하며 정치적 오해를 자초하고 있다. 가뜩이나 전격적인 사드 도입으로 박근혜 정부의 실패한 외교안보 정책에 말뚝을 박은 그가 안보 정국으로 국면 뒤흔들기를 시도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관측이다.

만약 황 대행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국민들과 정치권의 요구를 외면한 채 박근혜 없는 국정을 사유화하고 극우 세력에 편승해 대선 출마를 저울질한다면, 그 역시 민심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뜻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 탄핵된 비상한 정국에 조기 대선 국면까지 열린 상황에서 대선을 향해 뛰는 주자들은 '박정희 패러다임의 해체'라는 박근혜 탄핵의 의미를 미래화 된 국가 의제로 업그레이드시켜서 제시해야 한다.

80%의 탄핵 찬성 민심과 헌재의 8:0 전원일치 결정은 정치인들이 속기 쉬운 어설픈 타협론을 배척한다. 적폐를 청산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면 잠시 숨죽인 박정희 체제는 언제든 되살아난다. 탄핵 전과 후는 달라야 한다. 박근혜 파면으로 시작된 대선은 탄핵이 끝이 아닌 시작임을 입증하는 과정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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