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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시대 대결 구도로 회귀하는 美의 한반도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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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시대 대결 구도로 회귀하는 美의 한반도 정책 [현안진단] 위기의 동북아, 한국의 목소리는 어디에
트럼프 미 행정부는 아직까지 대외정책의 방향을 정립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출범 초기부터 이민 관련 사항, 대만문제 등 몇 가지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정책은 검토 중이며 모든 가능성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다. 우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선제타격부터 대화·협상, 핵보유국 인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안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미국은 사드 배치 강행, 최고 수위의 한미합동군사훈련 등 기존 오바마 행정부 당시의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중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와 같은 북한의 도발도 한몫을 단단히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예측불허의 행동과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이 이어지는 데다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국내 정치마저 불안정을 지속함에 따라 한반도의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 렉스 틸러슨(왼쪽) 미국 국무장관이 17일 서울 정부청사 별관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회담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냉전 시대의 대결 구도로 회귀하는 미국의 한반도 정책

1990년대 초반 구소련 붕괴와 함께 시작된 탈냉전에 맞춰 미국은 한반도의 군사전략적 비중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미국은 1958년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하기 시작해서 1970년대에는 전술핵 기지를 운영했는데, 핵탄두 수가 2000기에 달하기도 했다.

구소련 붕괴 이후 탈냉전이 진행되면서 서유럽에 있는 200기 정도의 자유낙하탄을 제외하고 해외에 전개했던 모든 핵무기의 철수를 결정하게 됐고 노태우 정부는 이를 지렛대로 삼아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미국이 한국의 미군기지 내에 전술핵무기를 배치 운영했던 이유는 소련 및 중국의 군사력을 겨냥한 것이었다. 한국의 노태우 정부는 미국의 전술핵 철수 결정을 계기로 한반도 내 핵무기 부재선언을 발표한 데 이어, 북측과 협상을 벌여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이끌어냈다.

전술핵 철수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은 3단계에 걸쳐 작전통제권을 한국군에게 돌려준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는 바람에 1단계인 평시작전통제권만 이양한 상태에서 중단되고 말았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는 북대서양조약과 달리 자동개입조항이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주한미군은 한강 이북의 휴전선 부근에 전진 배치되어 북한의 전면남침에 대비한 사실상 '인계철선'의 역할을 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와 남북화해가 진전되면서 3만 8천명에 달하는 주한미군의 주둔은 미국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더군다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미군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주한미군의 재조정 문제가 미국에서 논의되었다.

때마침 한국에서도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화해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들이 가시화되면서 전시작전통제권의 한국군 이양과 한미연합사의 해체 논의가 진전되었다. 그리하여 주한미군의 병력은 2만 7500명으로 조정되는 대신 기동타격능력을 갖춘 스트라이커부대로 재편되고, 2012년 12월에 전작권을 환수하고 한미연합사를 대체할 한미군사조정기구를 창설하기로 합의되었었다.

이처럼 미국은 냉전 이후의 세계전략 차원에서 해외미군을 해군, 공군 중심으로 삼고 육군을 스트라이커부대로 재편하는 군사혁신(RMA)을 단행하고, 그 연장선에서 작전통제권을 한국군에 단계적으로 이양한다는 방침을 추진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나는 과정에서 미국은 중국의 급부상을 목도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아프간, 이라크 사태가 마무리되면서 2011년 말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선언하게 된 것이다.

중국의 부상은 해양대국인 미국에게 있어서 말라카 해협에서 남사 및 사사군도, 대만과 센카쿠열도센카쿠 열도(尖角列島,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그리고 한반도에 이르는 해상교통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됐다.

그 가운데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는 과거 냉전 시절에 버금갈 정도의 중요성이 부각됐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지속적인 군사적 도발로 인해 한국의 지정학적 위상 또한 달라졌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와 평택 기지로의 이전 문제도 성격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거침없이 전격 진행되는 한·미·일 군사동맹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변화는 2012년 6월 이명박 정부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체결 직전까지 가게 만들었다. 2014년 12월 한미일 3국간 군사정보보호약정의 체결에 이어, 마침내 2016년 12월 한일 간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이 이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2016년 7월 한미 양국은 중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전격적으로 결정했다.

현 시점에서 종합해보면 과거 냉전시절의 진영 간 대결구도의 회귀로, 탈냉전 이후 변화됐던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가 다시 평가받는 양상이다. 최근에는 미국의 움직임이 더욱 긴박해지고 있다.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감안하여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검토가 끝나지도 않은 가운데 한국 신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사드의 배치를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결정 3일 전인 3월 7일 전격적으로 사드 포대의 일부를 들여온 데 이어,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한중일 3국 방문에 맞춰 핵심 장비인 X-BAND 레이더를 반입하였다.

▲ 사드 발사대 1기가 지난 6일 오산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한미연합사령부

왜 이렇게 미국이 서두르는지 모르겠다는 의문들을 많이 제기하지만, 만일 오는 5월 9일에 치러질 한국의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현실화될 경우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국 내 여론은 급반전될 가능성이 높으며, 결국 유야무야의 양상을 빚게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에 탄핵 결정 이전에 급하게 처리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탄핵 인용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인해 사드 반입은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않은 채 진행되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최초의 해외 배치이며, 한국을 동북아 지역의 전진기지로 확정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최근 워싱턴 일각에서 흘리듯 말하고 있는 두 가지 사안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는 전술핵무기의 한국 내 재배치 언급이다. 비록 언론을 통해 스치듯 나온 말이지만, 중국의 부상을 견제해야 할 필요성으로 인해 다시 한반도에 전술핵을 배치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보아 결코 가볍게 받아들일 문제는 아닌 듯하다.

다른 하나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에 미국의 스텔스 구축함 '줌월트'를 상시 배치하는 문제를 언급한 사실이다. 태평양 사령부를 방문한 국회 국방위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해리스 사령관이 이 문제를 언급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이전에 주한미군사령관도 제주 해군기지의 미군 사용을 언급한 바가 있기 때문에 그저 스쳐 지나가는 말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이다.

이렇듯 중국의 급부상에 따른 한국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과거 냉전 시절 소련의 극동진출을 억제하는 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이 재연되고 있다는 점에 그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보다 상위 개념에서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이해가 변화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강력하게 반발하는 중국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에 중국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사드 배치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는 가운데 사드 배치를 허용한 한국에 대해 보이지 않는 경제제재를 취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기획재정부가 작성한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제재 전망 보고서에서 1단계 한류 제한, 2단계 관광 및 무역 제한, 3단계 투자 철회 등을 예상했는데, 현실은 이미 3단계에 이르고 있다.

한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들은 현저히 감소했고,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에 대해서는 사업 중단 및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제주도를 비롯해 각지에 투자를 진행하던 중국자본은 더 이상의 논의를 중단한 채 철회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 최고의 인기상품이었던 한국산 화장품은 줄줄이 중국으로의 수출길이 차단되고 있다. 이미 한류의 확산은 중단된 지 오래됐고, 중국내 한국을 배척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여전히 공식적인 입장에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중국 당국이 주도하고 조종하는 보복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미국과 중국은 4월 초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의 미국 방문 시 양국 정상회담을 예정하고 있다.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와의 직접적 충돌을 우려하여 일단 미국에 대한 공세는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촛불이 바라는 것은 평화이다

과거의 역사는 현재를 보는 거울이다. 19세기 말 제국주의 세력들은 동북아 지역에서 수차례 충돌했다. 그런데 막상 그 충돌지점은 한반도였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1905년 미국과 일본은 필리핀과 한반도에 대한 서로의 지배권을 인정하기로 한 카스라 태프트 밀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전쟁에서 패한 후 침략국인 독일이 분단된 것과 달리 아시아지역에서는 침략국인 일본이 분단되지 않았다. 오히려 피침략지역이었던 한반도가 38선으로 나뉜 것이다.

지금은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고 있다. 과거 19세기 말과 비교해보면 지금 한국의 위상은 당시와 비할 바 없이 높아지고 강해졌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번 탄핵과정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시민사회의 성숙함과 국민주권의 법치주의를 실현한 나라다. 당당히 우리의 목소리를 내기에 충분한 위치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군사적 대립도, 주변국과 충돌도 원하지 않는다. 평화로운 한반도를 원한다.

이즈음에 미국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 선제공격을 포함한 모든 옵션을 놓고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은 미국의 군사적 압박에 대응하여 한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목소리는 무엇인가? 미국이 검토하는 모든 옵션이란 오직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미국이 모든 옵션을 고려할 때 한국은 그 모든 옵션 가운데 조금이라도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절대 수용할 수 없음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를 거스르는 전술핵 반입이나 북핵 보유 인정, 한반도를 전쟁으로 몰아갈 대북 선제타격 등은 절대로 옵션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못 박아야 한다.

▲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다음날인 11일 촛불 집회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중국이 한국의 자주적 결정에 대해 제재를 취하는 것에 대해서도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서도 절대 핵은 안 되며 어떠한 군사적 도발도 강력히 응징된다는 것을 경고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 판단 기준은 평화다. 그리고 이 평화를 지키는 데는 군사적 대응만이 해답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이라는 수단도 활용해야 한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이익이 한국의 이익과 반드시 일치할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며, 이를 가능케 하는 근간은 평화를 지키는데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그동안 촛불을 들고 한목소리로 갈구한 것도 단순히 국정농단에 대한 분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헌법 전문에 규정된 대로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는 자랑스러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이 땅에 평화의 기운을 심고자 하는 희망과 용기 그 자체였다. 또한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을 다짐하는 장엄한 불꽃의 행렬이었다. 평화는 그렇게 촛불의 힘으로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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