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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몰락' 양강구도, 대선 이후까지 '쭉~'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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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몰락' 양강구도, 대선 이후까지 '쭉~' 가자 [사회 책임 혁명] 5.9 대선은 ABP(Anything But Park)다
19대 대통령 선거가 본격화하기 이전부터 대선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가장 자주 들은 질문은 "문재인이 될 것 같아?"이다. 내가 '그걸 알 리가 없지 않은가' 하는 표정으로 머뭇거리면, 주변에서 누군가는 "글쎄, 어쩐지 안 될 것 같지 않아?"라고 되묻는다. "그럼, 누가 되나?"에는 "……."

여기까지는 지난 1월 31일 "'친문'에게 고언함…문재인은 아직 대통령이 아니다"는 제목으로 <프레시안>에 게재한 글에서 한 얘기다. 최근 상황과 연관 지어 쓰지 못한 이야기를 마저 하면, "문재인·이재명·안희정 중에서 문재인이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다고 할 때 만일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면 안철수 말고는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얘기도 있었다.(☞바로 가기)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 ⓒ프레시안

19대 대선에서 '양강구도'란 용어가 갑작스럽게 전면으로 부상하면서 과거 일화가 떠올랐다. 누구나 이야기하듯 안철수의 지지율 상승세가 매우 놀랍다. 대세론이 지속되길 바랐던 문재인이나 기존 정치 공학에 근거하여 안철수가 아닌 자신에게 높은 지지율이 옮아오기를 고대한 홍준표·유승민에게 모두 우려스러운 현상임이 분명하다. 특별히 문재인 입장에서는 대세론이 흔들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겠지만, 하필 안철수여서 정권교체나 적폐청산 같은 구호가 헐거운 나사 같은 느낌을 주게 되었다는 것 또한 문제이다.

양강구도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 문재인 쪽에서 얼핏 '거품'이란 반응이 나왔던 걸 기억한다. 그러나 거품은 민주당 쪽에 존재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문재인·이재명·안희정 3인의 지지율 합이 70%가량을 유지했지만, 그 지지율의 합이라는 숫자는 병렬전지를 직렬로 연결한 것으로 가정한데 불과한 것이어서 외부출력 기준으로는 의미가 전혀 없다. 각 당의 대선후보 선출이 끝나자마자 거품은 꺼졌다.

그렇다면, 안철수의 부상에 따른 양강구도 형성이 그동안 누누이 반복되었던 '비문(非文)'의 연장선에 위치하는 것일까? 이른바, 문재인에게서 불안감을 느끼는 세력이 이재명과 특히 안희정이란 대항마가 사라지자 '비문'을 실현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안철수에게 모여 양강구도가 형성됐다는 설명. 유권자 전수조사가 불가능하기에 '비문'이란 프레임, 즉 19대 대선이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 것이냐, 아니냐는 틀로 규정된다는 설정이 유효한지를 검증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론 19대 대선이 '문재인의 선거'라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19대 대선이 '박근혜의 선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보수·진보와는 다르지만 아무튼 우리 정치지형에서 보수·진보의 역학을 고려할 때 홍준표·유승민의 부진은 '비문'만으로 설명되지 않고, 또한 기존 진보·보수 프레임으로도 설명되지 않고, 오직 '반박(反朴)' 혹은 '비박(非朴)'으로 설명된다. 여론조사에서 박근혜의 탄핵을 찬성한 국민의 비율이 대략 80% 선에서 일정하게 유지되었고, 대선 후보 지지율의 양상 또한 '반박(反朴)' 혹은 '비박(非朴)'의, 말하자면 지지율과 얼추 비슷하게 전개되었다. 'ABC(Anything But Clinton 클린턴만 아니면)'나, 'ABO(Anything But Obama 오바마만 아니면)'란 미국 정치의 용어를 빌면 'ABP(Anything But Park 박근혜만 아니면)'인 셈이다.

만일 안철수의 지지율이 꺼지고 예컨대 홍준표의 지지율이 갑자기 치솟는다든지 하면 ABP라는 나의 생각이 틀린 것으로 확인되겠지만, 지금까지 현상에 근거하면 안희정·이재명 퇴장 이후 갑작스러운 양강구도의 출현은 '반박' 혹은 '비박' 흐름의 지속으로 볼 수 있다. 박근혜의 탄핵을 지지한 국민들 중 상당수가 민주당이나 문재인 지지자가 아니었다는 점을 떠올릴 때 뒤늦게 하는 말이라 용하게 들리지는 않겠지만, 양강구도의 등장은 불가피했다.

양강구도의 의의는 무엇일까. 일단 국민들의 정권교체 의지가 확고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국민들 중 상당수가 그동안 어떤 식으로든 박근혜와 관계를 맺은 세력에게서 지지를 거두고 있다. 박근혜는 물론 그 계승자들을 철저히 외면한다는 얘기다. 확대해석하면 정권교체는 국민들에 의해서 사실상 이미 이루어졌다.

그렇기에 문재인 캠프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진정한' 정권교체를 부르짖는다면, 아집이나 집권욕으로밖에 비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적폐청산은 다른 얘기다. 원론적으로 누가 적폐를 더 잘 청산할 수 있는지는 따져봐야 하고, 적폐청산의 시급성까지 감안하여 유권자들이 적임자를 판단하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양강구도와 적폐청산은 연결되었다고 본다. 우리 정치의 기득권 세력과 엘리트들은 크게 보아 독재권력에 복무하며 자신들의 이권을 유지·확대하다가 산업화의 깃발을 덧씌운 요즘 용어로 '적폐'세력과, 민주화 진영의 가세로 분단 논리에 편승한 친일의 과거를 희석한 '민주' 세력으로 양분된다. 독재 권력에 맞서 싸움으로써 민주세력은 정치세력으로서 최소한의 자격요건을 뒤늦게 과정을 통해 또 점진적으로 충족시켜 갔지만, 적폐세력은 해방 이후 조성된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과정상의 어떠한 참회 노력 없이 금권과 결합하는 방식으로 기득권을 대물림하였다.

양강구도는 정치지형의 전면적 혁신까지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적폐를 청산할 호기로 작동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박근혜를 통하여 만들어진 우연한 기회는 국민적 각성이나, 여전히 적폐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하지 못할 '민주' 세력의 작의적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적폐세력의 실수에 기반해 창출된 즉자적 전개일 따름이다.

양강구도에서 품게 되는 기대는, 해방 이후 친일·친미 세력이 반공이란 실체 없는 이념을 지렛대 삼아 조성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더 근본적인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것이다. 물론 문재인이나 안철수나 당사자들은 이 역사적 책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정치 게임에 몰두하고 있을 뿐이지만, 양강구도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아 대선 이후로까지 연장될 수 있다면 '근본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 우리 사회에 제대로 된 진보 세력의 등장을 가능케 할 것이다.

이번 대선의 가장 큰 의의는 박근혜로 대표되는 구조적이고 뿌리 깊은 적폐의 청산의 시작이라는 데에 있다. 그러나 또한 분명히 할 것은 적폐청산을, 반박 성향의 대통령 한 사람을 선출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모처럼 주어진 호기를 활용하여 정치개혁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만일 적폐가 시장과 깊숙하게 연관되었다면 "권력이 시장에 넘어갔다"라고 한탄만 할 게 아니라, 정치의 적폐는 물론 시장의 적폐까지 청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여담으로, 그리하여 장차 해방 이후 근본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바로잡았을 때 목격하게 될 의석 분포를 상상하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생태적이고 다층적 이익을 옹호하는 '정의당 너머 당' 2, 정의당 2.5, 더민주당 3, 국민의당 2, (새롭게 커밍아웃한 극우정당) 새누리당 0.5쯤이 되지 않을까. 민주당과 국민의당 지지자들이 화를 낼지 모르지만, 이 상상에서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한 개의 정당으로 존재하여도 무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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