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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 반독재, 그리고 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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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 반독재, 그리고 반문? [사회 책임 혁명] 안철수만의 'to'의 정치를 기대한다
19대 대선 선거운동이 본격화하면서 네거티브다, 마타도어(흑색선전)다, 혹은 단일화다 하며 복잡하고 당사자들에겐 절박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데, 좀 한가하게 옛날이야기나 해보려고 한다. 1945년 8·15와 함께 미국과 소련은 남북한을 분할 점령하고 이후 자연스럽게 각각 자국에 우호적인 정권을 수립한다. 그렇게 한반도 남쪽에 출범한 정권이 이승만 정권이다. 당시 민족적 열망에 근거한 통일된 민족정부 수립이 하나의 정언명법이기에 현실적인 선택을 내려 권력을 장악한 이승만을 주축으로 한 분단세력은 시대정신에 반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요즘 유행하는 용어를 쓰면, 반(反)제국주의 민족해방이란 공통의 의제가 이념과 민족 간의 프레임 대립으로 치환된 데는 그 치환, 즉 '민족'이 '이념'으로 '네다바이'('네다바이(ねたばい)'는 '사기'를 칭하는 일본식 은어다. 이 문장에서는 '뒤바뀐'으로 해석된다. 편집자)된 데에는 친미·친일·기득권 보호라는 매우 핵심적이고 사활이 걸린 동기가 결부되었기 때문으로 보아야 한다. 정상적인 통일국가에서라면 대통령이 되기 어려웠을 이승만이나, 마찬가지로 정상국가라면 척결대상이 되었을 해방 당시의 친일 기득권 세력은 이념을 매개로 분단된 국가에서 생존과 번성의 길을 확보하였다. 우리가 다 아는 '대한민국 건국잔혹사'이다.

여기서 당시 이승만 등의 친미·친일·우파세력의 이념이란 것이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라고 하는 정통적 이념대립 구조에 포함된 이념과는 다르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남한의 지배세력이 된 이승만 등의 친미·친일·우파세력에게 이념적 자각이 있었다기보다는 역설적이게도 '민족' 의제를 좌파(와 김구 등 반일 우파)가 주도하게 된 상황에서 좌파에 맞서 생존 차원에서 뭉쳐 대항하게 보니, 미국의 세계전략에 조응하여 '반공'을 이념의 정점에 위치시킨 것이다. 정상적인 이념이란 무엇을 반대만 한다기보다는, 예컨대 사회주의적인 민족공동체라든지 무엇을 지향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이승만 일파는 생존을 위해 반대만으로 이념 전선을 구축하였다. '무엇으로(to)'와 '무엇으로부터(from)' 중에서 'from'만으로 무장한 이념이란 사실 이념이라고 하기도 민망하였다.

2차 대전 후 반공과 냉전을 기조로 한 세계전략을 추진한 미국은 실현의 수단으로, 공산주의와 생사를 건 투쟁만이 '자유세계'의 유일한 선택이 되어야 하며 반공 이념은 민족이라는 존재와 가치를 넘어서서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가치관을 한국을 포함한 이른바 '자유세계'에 확산시켰다. 따라서 반공이 통치체제라는 동전의 앞면이었다면 친미가 그 뒷면이었으며, 정경유착에 근거한 친일세력을 포함한 기득권의 보호와 확대가 앞면이라면 한국적 자본주의가 그 뒷면을 이루게 된다.

결론적으로 반공은 사상으로서 아무런 체계가 없는 것이지만, (세계지배를 위하여 미국이 표방한) 공산주의와 대결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을 지켜내야 한다는 논리에 덧씌움으로써 반공은 이념적 성격을 짙게 지니는 전략적 수단으로 격상된다. 종국에는 최상위 가치로 등극하여 우리나라 역대의 독재자들이 통치에 전가의 보도로 수용하였다.

해방 후 반민특위 와해과정에서 보듯, 친일청산 세력에게 붙인 '빨갱이'란 무모한 호칭은 실제로 친일청산 세력을 빨갱이로 만들거나 취급하면서 유효한 낙인이 되었고 급기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이념적 배제수단으로 가장 강력한 지위를 갖게 된다. 반면 친일파는 빨갱이를 때려잡는 명분에 의해 애국자로 변신할 수 있었고, 이러한 기제에 의하여 빨갱이란 이념의 낙인은 강화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친일세력이 대한민국이란 근대국가(nation)의 설립을 주도하면서 배제와 증오를 근간으로 한 이념체계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고, 국민의 형성도 민족이 아닌 이념, 그것도 반공이란 기이한 이념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이승만 정부는 한민족 중에서 대한민국의 경계선 안에 있는 민족을 남한의 국민으로 만들기 위해 같은 민족이지만 남한 밖의 민족을 적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동시에 남한 내에서는 대한민국 국민임을 증명하는 기준으로 '빨갱이=비(非)국민'을 수용할 수 있는가를 제시하였고 이 기준은 아직도 통용된다.

한국 정치가 전술한 왜곡된 구조화 안에서 벗어난 적이 없음을 지적하기 위해 아는 얘기를 길게 하였다. 이제 간략하고 빠르게 논의를 전개하면, 대한민국이란 반공국가에서 북한과 빨갱이를 배제한 이념지형 속에서 민주화 진영의 정치 혹은 정치운동은 정확하게 반(反)독재 투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왜 문제냐는 반론이 예상되는데, 간단히 답하면 반독재 투쟁은 'from'의 정치를 고착시킨다. 반독재 또한 '무엇으로부터(from)'만 있을 뿐 '무엇으로(to)'는 부재하였기에 겉으로 통일된 반독재전선에 다양한 이념지향을 포괄하는 듯 보였으나, 반공이 내부적으로 억압과 폭력의 기제로 작동하였듯, 선거 국면에서 '반독재'는 '비판적 지지'나 정권교체를 위한 '사표 방지' 등을 강요하게 된다. 'from'에 매몰돼 'to'의 지평을 전망할 기회를 갖지 못한 셈이다.

새삼 강조하자면 반공은 대외적인 기치이면서 동시에 대내적인 억압과 배제의 기제로 사회 구성원들에게 내면화한다. 같은 맥락에서 반독재는 오랫동안 민주화 진영 내에 지상의 가치로 내면화하여 다양한 이념의 분기와 발전을 가로막았다. 선거는 늘 'from'으로 이루어졌고, 'to'가 제대로 표명되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왜곡이 잘못된 최초 설계에 따라 불가피하였다는 점이 응당 인정되어야 한다.

이제 현실 정치에 눈을 돌려보자. 해방 70년이 지난 현시점에서는 반공이나 반독재(세력) 같은 기존 'from'의 정치보다는 명시적 가치를 표방하고 실현을 역설하는 'to'의 정치가 등장해도 되지 않을까. 계보 상으로 소위 민주화 진영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되는 정치세력들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from'의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다. 박근혜의 역설이다. 여전히 반공을 신줏단지처럼 떠받드는 반시대적 집단은 예컨대 종북좌파 세력 집권 저지 같은 여전히 'from'의 정치에 기댈 테지만, 소위 진보 진영은 과감하게 미래를 보며 'to'의 정치를 시현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 19대 대선의 이른바 정치공학의 핵심 키워드인 '반문연대' 또한 전형적인 'from'의 정치이다. 이상적인 선거라면, 다른 대선 후보와 정치세력들은 문재인에 반대하는 데 힘 빼지 말고 자신들의 지향점(to)을 보여주어 유권자들로부터 심판받아야 한다. 반문이란 용어는 반공, 반독재 등 다양한 '반(反)의 정치 기제'에 비하면 말도 안 되는 코미디이며 동시에 같은 함의를 갖는다. '반문연대'라는 말은 좀 지겹고 남루하다. 차라리 영화 <타짜>의 대사처럼 "쫄리면 뒈지시던지."

다행히 양강구도를 형성한 안철수는 진즉에 반문연대가 아니라 자강론을 천명하였다. 안철수만의 'to'의 정치를 기대한다. 홍준표나 유승민도 종북좌파세력 운운하지 말고 'to'의 정치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심상정 또한 (다른 관점에서) '쫄리지' 말고 끝까지 자기 정치를 펼치기를 응원한다. 문재인에게는 '반문'이 아니라 '친문'이 더 독이 될 수 있음을 (듣거나 말거나) 지적하고자 한다. 19대 대선의 대세론의 주인공 문재인이 만일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면 반문 때문이 아니라 친문 때문일 것이다. 지난 1월 31일 자 ''친문'에게 고언함…문재인은 아직 대통령이 아니다'란 제목의 기고에서 밝혔듯, 문재인은 아직 대통령이 아니다.(☞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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