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행정부의 고위 관료의 사드 발언이 주목을 끌고 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16일 한국 방문에 동행한 백악관의 외교정책 보좌관이 이날 기내에서 백악관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가진 브리핑에서 "5월 초에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기 때문에 (한국의) 다음 대통령이 이 문제를 결정하는 것이 맞다"고 말한 것이다.
그는 "배치 작업이 진행 중이지만 아직 몇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면서 "어떠한 정부의 결정도 수주 내지 수개월 정도 걸리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 한국이 대통령을 뽑을 때까지 그렇게 할 것이고, 그것은 (한국의) 다음 대통령이 내려야 할 결정인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에 앞선 14일에도 백악관의 한 고위 관료는 기자들과 전화로 가진 브리핑에서 "한국은 수주 내에 대선이 있고 사드는 한국 내부의 이슈가 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펜스 부통령의 방한 기간에 이 문제도 논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위에서 소개한 발언이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을 뒷받침해주는 대목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사드 배치 문제를 한국의 차기 정부로 넘기려는 의사를 시사함으로써 사드 논란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당황한 황교안 권한 대행 체제는 "사드 배치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며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대세를 거스르는 것은 역부족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이러한 입장을 밝히고 나온 것일까? 기실 이러한 입장은 상당 부분 예견된 것이었다. 우선 한국 대선 이전에 사드 배치를 완료하겠다는 것은 한미 양국 정부의 합의이거나 미국의 요청 사항이라기보다는 황교안 체제의 '자가 발전'의 성격이 짙었다. 황교안 체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속한 사드 배치에 대한 미국의 확답을 받으려고 총력을 기울였지만, 미국으로서는 분초를 다투는 시급한 사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트럼프 행정부는 사드에 관한 "중국의 우려를 이해하고 있다"거나 "중국의 반대를 잘 알고 있다"고 밝혀왔다. 이는 "사드는 중국과 무관하다"고 밝혔던 오바마 행정부와 분명 결의 다른 입장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사드 배치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보이면서 사드 배치를 중국의 대북 압박 및 미중간의 무역 불균형 완화를 이끌어 낼 지렛대로 삼아왔다고 할 수 있다.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이러한 물밑 거래가 논의되었을 공산이 크다.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사드 발언이 눈에 띠게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차기 정부와 협의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미국은 기술적으로도 사드 배치를 조속히 완료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달았을 것이다. 사드는 미군의 최대 수송기인 C-17 글로벌 마스터로 운반되는데, 성주 골프장 및 그 인근에 이 수송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활주로를 확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한 사드는 너무 무겁기 때문에 치누크와 같은 수송 헬기로 실어 나르는 것도 불가능하다. 유일한 방법은 대형 특수트럭으로 운반하는 것인데, 현지 주민들이 결사 저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마저도 여의치가 않다. 주한미군 사령부는 현지 답사를 통해 이러한 한계를 인지했을 공산이 크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미국이 사드 배치를 밀어붙여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은 별로 없다. 중국과의 전면적인 갈등,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결속 강화, 대북 공조 체계의 균열 등을 감수하면서 사드 배치를 조속히 추진해야 할 시급한 사유가 별로 없는 것이다.
이는 사드 배치 유보나 철회 시 미국의 보복이나 한미동맹의 악화가 있을 것이라는 '공미형(恐美形) 사드 배치론'의 근거가 애초부터 희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두려워 사드 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은 '있는 그대로의 미국'이 아니라 '사드 찬성론자들이 만들어낸 미국'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황교안 권한 대행 체제도 사드 배치를 차기 정부로 넘기겠다는 의사를 밝혀야 한다. 이를 근거로 중국에도 사드 보복 철회를 요구해야 한다. 이게 황 대행이 국민들에게 해야 할 최소한의, 그리고 마지막 도리이다.
이제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아무리 붙잡으려고 해도 소용없는 일이 될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모쪼록 황교안 대행과 사드 찬성 대선 주자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사드 대선으로 몰아가려는 언론들이 이러한 현실을 깨닫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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