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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정부 '적극적 케인지언' 기조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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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정부 '적극적 케인지언' 기조여야 한다" [인터뷰] 김상조 한성대학교 교수 "안철수, 국가 경영은 '원론'으로 못 한다"

김상조 한성대학교 교수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2월 초까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다섯 차례 만났다. '경제 공부'를 하는 자리였다. 김 교수는 문 후보가 '착한 학생'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가 설명한 재벌 개혁의 목표와 방법론에 대해 잘 이해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재벌 문제에 대한 문 후보의 입장은, 김 교수와 거의 같다.

김 교수는 지난달 15일 김광두 서강대학교 석좌교수(국가미래연구원 원장), 김호기 연세대학교 교수 등과 함께 문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문 후보 경제정책의 '스피커' 역할을 한다고, 스스로 소개한다. 그는 문 후보 캠프에서 '새로운 대한민국 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아울러 그가 오래 이끌었던 경제개혁연대도 떠났다. '삼성 저격수'라는 별명과 짝을 이루던 직함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이제 그의 몫이 아니다.

현실 정치에 참여한 이유에 대해선 이미 여러 차례 설명했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였다. 우선 '차기 정부의 개혁 성공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다. 또 점점 뚜렷해지는 경제 위기 징후도 이유다. 그의 전공 격인 재벌 문제를 포함한 경제 개혁이 절실하다는 것. 아울러 굳이 문 후보를 지지한 이유에 대해선, '법률가로서의 실용적인 태도', '정부의 역할에 대한 이해' 등을 꼽았다.

김 교수를 지난 17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이른바 '폴리페서'라는 비판은 감수하기로 한 듯 했다. 선거 쟁점에 대해 선명한 입장을 내놨다. 문 후보의 경쟁자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에 대해선 강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안 후보가 지난 2011년 정치를 시작하면서 내놨던 입장에 비해 너무 우경화했다는 게다. 예컨대 2011년 출간된 <안철수의 생각>에는, '기업집단법'을 만들어서 재벌을 제대로 규제하자는 주장이 담겨 있다. '기업집단법' 제정은 경제개혁연대의 주장이기도 했다. 또 안 후보는 당시 '삼성 동물원' 비판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었다. 삼성 등 재벌과 중소기업 사이의 불공정 거래 관행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이랬던 안 후보가 지금은 '규제 완화'를 주로 이야기 한다. 김 교수가 정치에 참여한 뒤 안 후보를 정면으로 비판한 것은 그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안 후보의 안랩 BW(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규제프리존 특별법' 등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 건, 차기 정부의 경제 정책 방향에 대한 생각이었다. 거칠게 요약하면, '적극적인 케인스 경제학'이다. 김 교수는 케인스주의의 핵심이 '큰 정부'가 아니라고 본다. 정부 예산과 공무원 수를 무작정 늘리는 건, 그가 깊이 영향을 받은 케인스주의와 관계없다는 게다. 중요한 건, '지금 해야 할 일을 하는 정부'다. 그와 나눈 이야기를 소개한다.

"안랩 BW 발행, '자금 조달 목적 아니다'라는 말 왜 못 하나"

우선, 안랩 BW 문제. 삼성SDS BW 헐값 발행 사건 유죄 판결을 떠올리게 하는 탓에 2012년 대선 당시에도 집중적인 검증 대상이었다. '삼성 저격수'였던 김 교수의 입장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그의 입장은 이렇다.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정당하지는 않다. 아울러 안 후보의 해명 방식은 문제다. BW 발행 목적은 회사 자금 조달이 아니었다. 대주주인 안 후보의 지분 비율을 높이려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안 후보 측은 이 대목을 빠뜨린 해명을 한다. 그러니까 해명이 모호해진다. '자금 조달 목적은 아니었다'라는 말을 대체 왜 못하는가."

안랩이 BW를 발행한 건, 1999년 10월 12일이다. 안 후보가 수천억 원대 자산가가 된 계기였다. (안 후보는 안랩 주식 절반을 동그라미 재단(안철수 재단)에 넘겼다. 여전히 갖고 있는 나머지 절반의 올해 신고가액은 1075억800만 원이다.) 18년 전 일이고, 불법 행위가 아니므로 길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는 게 김 교수 생각이다. 다만 안 후보는 대통령 후보이므로, 당시 상황에 대해 보다 명료하게 해명할 필요는 있다. 그런데 해명이 솔직하지 않다는 게 김 교수의 입장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안랩 BW 발행 사건을 간단히 소개한다. BW란, 일종의 회사채다. 다만 '신주인수권'이라는 권리가 붙어있다. 미리 약정한 가격에 새로운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다. 이런 권리를 행사할지 말지는 BW 소유자가 마음대로 정한다.

1999년 당시 안랩이 발행한 BW는 '액면가'가 25억 원, 만기는 20년이었다. 연 이자율은 10.5%다. 그리고 '발행가'는 3억3950만 원이다. 그리고 이 BW를 산 사람은 안 후보뿐이었다.

BW를 샀다는 건, 회사에 돈을 빌려줬다는 뜻이다. '발행가'가 BW를 산 가격이다. 요컨대 안 후보는 자신의 회사인 안랩에 3억3950만 원을 빌려주고, 연 이자율을 10.5%로 계산해서 20년 뒤에 '액면가'인 25억 원을 받는 계약을 했다. 그런데 BW에는 신주인수권이 붙어있다. 안랩 주식을 1주당 5만 원으로 BW 액면가인 25억 원어치 살 수 있는 권리다.

BW 발행 이후, 안랩은 무상증자와 액면분할을 거친다. 주식 총량을 늘리는 조치다. 한 주당 가격도 떨어졌다. 이에 따라 안 후보에게 부여된 신주인수권 역시 1주당 1710원으로 조정됐다. 안 후보는 이 권리를 BW 발행 이듬해인 2000년 10월 13일에 행사했다. 안랩이 새로 발행한 주식을 1주당 1710원으로 25억 원어치를 사들였다. 이와 함께 39.7%였던 안 후보의 안랩 지분 비율은 56%가 됐다. 아울러 안 후보는 신주인수권 행사와 함께 안랩에 빌려준 돈(3억3950만 원)과 1년치 이자(3564만 원)를 돌려받았다.

그리고 2001년 9월, 안랩은 코스닥에 상장했다. 안랩 주식 가치가 계속 오르면서, 안 후보 역시 지금과 같은 자산가가 됐다.

안랩은 안철수에게 3억3950만 원 빌린 뒤 갚았을 뿐인데…

이게 왜 논란거리인가. 안 후보 개인과 기업 안랩을 분리해서 살피면 이해가 쉽다. 안랩 입장에선 안 후보에게 3억3950만 원을 1년 동안 빌린 뒤, 10.5% 이자를 쳐서 돌려줬을 뿐이다. 이 정도 거래를 했을 뿐인데, 안 후보에게 대단히 큰 보상을 했다. 안 후보가 손쉽게 지분 비율을 늘리게끔 한 것이다.

이런 보상이 과연 정당한가, 라는 게 논점이다. 1999년 당시 안랩이 현금에 허덕이고 있었다면,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1999년 당시 안랩의 잉여금은 32억 원이었다. 3억3950만 원이 아쉬워서 무리한 보상을 해야 할 처지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다시 김 교수와의 대화로 돌아가자. "자금 조달 목적은 아니었다"라는 설명이 바로 이 대목이다. 1999년 당시 안랩이 오로지 안 후보 한 명에게만 BW를 발행한 건, 확실히 안 후보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서였다. 안 후보가 적은 비용으로 지분 비율을 높이는 혜택이다. 이런 과정에 안랩의 다른 투자자들이 동의했으므로, 법적 문제는 없다. 투자자 입장에선, 안철수 창업자의 브랜드 가치를 극대화 하는 게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자면 창업자에게 과반 지분을 보장해서 경영권을 확고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BW라는 제도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 신주인수권과 결합한 회사채를 허용한 건, 그렇게 해서라도 BW를 발행한 기업에 돈을 빌려주게끔 하려는 유인책이었다. 요컨대 긴급한 자금 수혈이 필요한 기업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꾸준히 이익을 내던 안랩과 같은 기업을 위한 제도는 아니다. 안 후보는 법의 맹점을 활용해서 손쉽게 지분 비율을 높였다. 안 후보 측이 이런 과정에 대해 솔직하게 해명해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논란, '원샷법'을 떠올려 보라"

그리고 규제프리존 특별법 논란. '규제프리존'은 박근혜 정부가 2015년 12월 발표한 규제완화 정책이다. 수도권을 제외한 14개 지방자치단체에 각각 2가지 전략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특별법으로 해당 지역에 규제를 대폭 풀어주자는 내용이 담겼다. 관련 법안이 현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안철수 후보는 이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문재인 후보는 반대 입장이다. 문 후보를 지지하는 김 교수 역시 같은 입장이다.

박근혜 정부와 안 후보가 '규제프리존'이 필요하다고 보는 근거는 이른바 4차 산업 혁명에 대한 대응이다. 김 교수 역시 신산업 육성을 위해선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예컨대 김 교수 및 문재인 캠프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찬성한다. 서비스산업에 진출한 기업에 규제 완화와 세금 감면 등 각종 혜택을 주는 법안이다. 다만 보건의료처럼 생명 및 안전에 관한 분야는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단서가 있음에도, 상당수 시민사회단체는 우려를 거두지 않고 있다. 의료 관련 규제까지 푸는 걸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게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이른바 '원샷법'(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을 예로 들면서 반박했다. 이 법 역시 초기 단계에선 확실히 독소 조항이 많았다. 재벌 경영권 편법 승계를 위한 법률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독소 조항은 대부분 걸러졌고, 보완 대책도 반영됐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역시 국회 논의 과정에서 안전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고 한다.

4차 산업 혁명 대응, 중앙정부 몫이다

어찌 됐건, 안 후보와 문 후보 모두 '4차 산업 혁명'에 대한 대응이 절박하다고 보는 건 마찬가지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신산업 관련 규제를 풀자는 점도 닮았다. 다만 방법이 다를 뿐인데, '규제프리존'을 지지하는 안 후보 측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강조한다. 반면 문 후보 측은 중앙정부가 해야 한다고 본다. 문 후보 캠프에서 일하는 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김 교수가 보기에 경제 분야에서) 문재인 후보의 가장 큰 관심사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재벌 개혁, 나머지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일자리 문제다.

4차 산업 혁명 대응을 지자체가 주도한다는 '규제프리존 특별법'의 발상은 현실성이 없다. 4차 산업 혁명 관련 논의를 주요 키워드로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사물인터넷(IoT)' 보급을 확대한다. 둘째, 그렇게 해서 생겨난 데이터를 '5G망'으로 전송한다. 셋째, 이렇게 축적된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가공해서 활용한다. 넷째, '인공지능'을 '빅데이터'와 결합한다.

이런 과정을 과연 지방자치단체가 진행할 수 있겠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중앙정부 단위의 계획이 필요하다. 물론 특정 인프라를 어느 지역에 시범적으로 먼저 설치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중앙정부가 세심하게 계획해서 할 일이다.

중앙정부가 '사물인터넷', '5G망',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을 종합적으로 결합한 계획을 세워서 추진하는 게 먼저다. 개별 분야에서 한국이 지닌 경쟁력 수준도 파악해야 한다. 예컨대 '사물인터넷'은 한국이 독일보다 한참 뒤쳐져 있는 게 현실이다. 모든 분야에서 선진국을 따라잡겠다는 식의 계획은 의미가 없다. 어디에 역량을 집중할지에 대한 중앙정부의 판단이 필요하다. 그 바탕 위에서 기업들이 자율주행차, 핀테크, 드론 등의 사업을 진행한다. 그게 바람직한 4차 산업 혁명 대응 모델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육성할 분야를 선별하는 '규제프리존' 모델은 방향이 틀렸다. 일본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지난 2003년부터 10년 동안 일본은 전국에 1189개의 규제 개혁 특구를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않았다. 의미 있는 규제 개혁은 이뤄지지 않았고, 자원 낭비만 심했다. 결국 지난 2013년, 정책 방향을 바꿨다. 아베 총리가 직접 이끄는 위원회를 만들었다. 중앙정부 주도로 규제 개혁을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쪽이 더 효과적이었다. 4차 산업 혁명 대응에는 막대한 자원이 투입돼야 한다. 이런 결정을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하다면, 자원 낭비가 필연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신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는 푼다. 그러나 마구잡이식 규제 완화는 아니다. 풀어야 할 규제가 있는가하면, 더 강화해야 할 규제도 있다. 예컨대 생명, 안전 등에 관한 규제는 엄격하게 해야 한다. 어떤 규제를 어떻게 풀지를 정하는 주체는, 중앙정부여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그 역할을 하는 모델은 자원 낭비, 난개발을 불러서 실패한다.'

"다음 정부는 '대단히 적극적인 케인지언' 정책 기조여야"

김 교수는 '케인스 경제학'의 테두리 안에서 학문 활동을 했다. 기자가 그를 만난 지 십 년째인데, 유독 이날 '케인스'를 자주 언급했다. 그는 "차기 정부 출범 초기는 '대단히 적극적인 케인지언' 정책 기조여야 한다"고 말했다. '규제프리존' 특별법을 놓고, 안 후보 측과 대립한 것도 그 맥락으로 보인다. 지금은 중앙정부의 역할을 키울 때라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큰 정부'를 주장하는 건가. 김 교수는 케인스 경제학의 핵심은 '큰 정부'와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 대 시장'이라는 대립 항 역시 허구적이라고 했다. 그는 케인스가 <자유 방임의 종언>에서 썼던 문장을 인용했다.

"경제학의 역할은 '정부가 해야 할 일'과 '정부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별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의 역할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민주주의 틀 안에서 하게끔 하는 것이다."

요컨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큰 정부'는 케인스의 주장이 아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도 계속 묻게 된다. 경제 위기 국면에선 결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늘어난다. 이는 정부 예산 및 공무원 수를 늘리자는 주장으로 연결될 수 있다. 그러자면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일자리는 시장에 맡긴다?…'경제학 원론'일 뿐"


우선 공무원 수. 공공 부문에서 81만 개의 일자리를 만든다는 건, 문 후보의 공약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81만 개 일자리를 모두 정부 예산으로 만든다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81만 개 일자리 가운데 공무원은 17만 명이다. 주로 안전, 복지 분야다. 그리고 나머지는 보육, 요양 등 사회 서비스 분야에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또 30만 명에 달하는 공공 부문 비정규직을 단계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직접 일자리를 만드는데 대해선 반감을 가진 이들이 꽤 있다. 예컨대 안 후보 측은 이 대목을 공격한다. "일자리 창출은 민간 기업이 주도해야 한다"라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역시 케인스의 표현을 인용했다. "그러나 장기엔, 우리는 모두 죽는다." 언젠가는 시장이 충분한 일자리를 만드는 날이 온다. 하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그날을 마냥 기다리는 건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공공 부문은 민간 부문을 활성화하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시장에서 일자리가 생겨나기 위한, 초기 작업을 한다는 뜻이다.

그는 "'일자리 창출은 시장이 한다'라는 주장은 그저 '경제학 원론' 수준일 뿐"이라는 말도 자주 했다. "안철수 후보는 원론만 이야기하는 경향이 더 심해졌다"고도 했다. 꽤 진보적인 내용이 담긴 <안철수의 생각>을 들고 나와서 정치를 시작했던 안 후보가 지금은 보수 진영에게 표를 얻으려 한다. 그러니까 민감한 각론은 생략하고 원론만 이야기하게 됐다는 게 김 교수의 진단이다. 그러면서 이어진 말.

"'청년의 멘토'일 때는 원론만으로도 됐다. 하지만 국가 경영을 '경제학 원론'으로 할 수는 없다."

"정부가 '착한 사용자 모델' 만들어야"

▲ 김상조 한성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아울러 김 교수는 '착한 사용자 모델'에 대해 이야기했다. 현재 한국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가 심각하다.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아예 다른 세상에 산다. 대기업은 위험한 업무를 죄다 비정규직에게 떠넘긴다. 이런 '나쁜 사용자 모델'에 맞서서 '착한 사용자 모델'을 만들고 이를 퍼뜨리는 게 정부가 할 일이라는 설명이다.

그 다음 문제, 세금. 공공 부문 일자리를 늘리고 복지를 확대하며, 경제 위기에 대응하려면 결국 재정 확대가 필수적이다. 그 돈을 어디서 마련하나. '증세'를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선 조심스러웠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마련한 중기 재정 계획이 있다. 정부의 수입은 연평균 5% 늘어나고, 정부의 지출은 3.5% 늘어나는 구조다. 대단히 보수적인 재정 계획이다. 이른바 '건전 재정의 신화'에 사로잡힌 탓이다. 그런데 실제 정부 수입을 보면, 연평균 5% 늘어날 전망이다. 따라서 현행 세율을 유지한 채로도 재정을 확대할 여력이 있다. 아울러 재정 지출을 효율화하는 등의 방법도 최대한 동원해야 한다.

증세 논의는 그 다음이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 역시 증세를 전제로 한 '중부담-중복지' 주장을 하지 않았나. 보수 진영도 증세를 마냥 반대할 수는 없다고 본다. 다만 대단히 조심스럽고 치밀해야 한다."

(문재인 후보는 19일 2차 텔레비전 토론에서 "이명박, 박근혜 정권 동안 지속적으로 부자 감세, 서민 증세가 행해졌다. 이제 조세의 공정성, 조세 정의가 회복돼야 한다"며 "증세는 다시 부자, 재벌, 대기업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중소기업과 중산층 서민에 대한 세부담이 증가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 역시 증세를 주장한다. 사회복지목적세를 도입하자고도 한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새로운 목적세를 도입하거나, 특정 세목만 조정하는 방식은 반대한다"고 했다. 그는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자산 관련 세금 등을 종합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1분기 경제가 회복세?…국민 경제 인식 왜곡 신호!"


김 교수가 이야기한 '대단히 적극적인 케인지언 정부'. 이게 제대로 실현될지 여부는 차기 정부 초기에 결정된다. 약 3주 뒤다. 그런데 김 교수는 5월 10일 이후, 그러니까 차기 정부 초기의 경제 전망을 어둡게 본다. 그래서 요즘 나오는 언론 보도가 걱정스럽다. 올해 1분기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섰다는 보도가 나온다. 주로 경제 관료들이 흘린 이야기다.

김 교수는 "국민의 경제 인식을 왜곡시키는 신호"라면서 강하게 비판했다. 1분기 성장률 잠정 지표가 좋아 보이는 것은, 반도체와 석유화학 분야의 실적 때문이다. 이들 분야의 실적은 특정 기업에게만 돌아가며, 이른바 낙수 효과는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나머지 산업의 실적은 대단히 나쁘다.

게다가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경제 보복이 미친 효과는 1분기 지표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2분기 지표에 반영될 게다. 이런 점들을 두루 고려하면, 차기 정부가 출범하는 2분기 지표는 대단히 어두울 수 있다. 관료들이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 관료들은 왜 엉뚱한 신호를 보내나. 김 교수의 대답은 이렇다.

"차기 정부가 장관을 다 임명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인수위조차 없다. 그러므로 한동안은 '차관 정부'가 된다. 지금 있는 차관들은 교체되고 새로운 차관이 임명된다. 이런 상황을 내다본 실무 관료들이 '지금 우리 잘하고 있다'라는 신호를 (미래 권력에게)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쇼잉(보여주기)'인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재벌 경제력 집중 억제와 지배구조 개선

앞서 김 교수는 "문재인 후보의 가장 큰 관심사 두 가지 가운데 하나가 '재벌 개혁'"이라고 했다. 마침 국내 최대 재벌 삼성의 총수가 뇌물 혐의로 구속돼 있다. 촛불 민심 역시 '재벌 개혁'을 향하고 있다. 문 후보가 김 교수에게 배움을 청한 주요 이유 역시 재벌 문제 때문이다. 그리고 문 후보는 재벌 문제에 대해선 김 교수와 입장이 겹친다고 했다. 김 교수는 재벌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나.

"재벌 개혁의 목표는 두 가지다. 첫째는 경제력 집중 억제다. 둘째는 지배구조 개선이다. 이 두 가지 목표는 각각 해당 범위가 다르다.

첫째 목표는 상위 4대 재벌(삼성, 현대차, SK, LG)만 대상으로 삼으면 된다. 상위 4대 재벌이 30대 재벌 자산의 절반을 차지한다. 범(汎) 4대 재벌로 넓히면 3분의 2를 차지한다. 따라서 '경제력 집중 억제'라는 목표는 상위, 혹은 최상위 재벌에게만 해당한다.

둘째 목표는 해당 범위가 확 넓어져야 한다. 중견 기업도 지배구조가 엉망인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 목표를 분리하고 해당 범위를 다르게 잡아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상위 4대 재벌과 30대 재벌에게 같은 규제를 적용한다고 치자. 그럼 상위 재벌에겐 너무 느슨한 규제가 되는 반면, 하위 재벌에겐 지나친 규제가 될 수 있다. 이런 식으론 효과를 거둘 수 없고, 부작용만 생긴다.

그렇다면 '경제력 집중 억제' 대상인 상위 4대 재벌에겐 어떤 방법론을 적용해야 하나. 지금 생겨난 문제들은 대부분 현행법조차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났다.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한 법률이 많이 있다. 그걸 제대로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으로도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지배구조 개선' 대상인 다수 대기업에겐 어떤 방법론을 써야 하나. 사전 규제보다는 사후 규제를 강화하는 게 낫다고 본다. 정부가 미리 지침을 주는 게 아니라, 문제가 있는 기업에 대해 시장이 압력을 넣게끔 한다는 게다.

흔히 한국 대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로 '순환 출자'를 꼽는다. 하지만 그건 지난 이야기다. 현대차 그룹을 제외하면, 주요 재벌의 총수 경영권과 관련해서 의미 있는 순환 출자 고리는 모두 해소된 상태다.

지금 제기되는 지배구조 문제들은 모두 주주총회 의결로 풀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국내 대기업 대부분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제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풀린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주주권 행사 모범 규준)을 도입해야 한다. 아울러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및 기금운용본부장을 제대로 임명해야 한다. 아울러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등이 담긴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 이런 장치가 마련되면, 시장의 힘으로 '지배구조 개선'을 이룰 수 있다."

국민연금이 제 역할 해야

국민연금의 역할을 강조한 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도 관계가 있다. 현재 수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손쉽게 삼성전자 장악력을 키웠다. 당시 합병은 삼성물산 기존 주주들에게 불리한 조건이었다. 그리고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대주주였다. 국민연금이 손해를 무릅쓰고 합병에 찬성한 대가로, 이 부회장이 이익을 봤다. 국민의 노후 자금을 관리하는 국민연금이 왜 이런 손해를 감수해야 했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김 교수의 말대로,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면 생기지 않았을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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