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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작은 개'들을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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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작은 개'들을 기록하다 [서평] 프레시안 최형락 기자 외 <그날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사진 한 장이 천 마디 말을 대신할 때가 있다. 그래서 사진은 그 자체로 기록이다. 순간을, 그리고 시대를 기록하기 위해,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은 언제나 현장의 최전선으로 달려간다. 물대포에 안경이 날아가고, 심지어 '젊은 기자'라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에게 가격을 당하면서도 그들은 카메라를 놓지 않는다.

그렇게 포착된 371장의 기록이 한 데 묶였다. <그날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루페 펴냄)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10인이 기록한 탄핵, 그리고 기억의 광장에 관한 사진집이다.

▲신간 <그날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루페
371장을 손으로 주르르 훑으면, 순식간에 박근혜 정권 4년사(史)가 스쳐 지나간다. 그 안에는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이 있었고,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망 사건이 있었고, 평택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고공 농성이 있었다. 그리고 낱장을 들여다보면, 이른바 '피해자'로 명명되는 이들의 고통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과 연대하는 이들의 선한 눈망울이 보인다.

여기저기 흩어진 기록들을 모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작업이다. 사진가 이상엽은 1987년 6월 항쟁 당시에도 카메라는 차고 넘쳤지만, 당시 혁명과도 같았던 항쟁의 기록이 책으로 묶여 나오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다. 그래서 "우리가 막 지나온 역사적 현장의 잔상이 아직 가시기 전, 날것에 가까운 상태로 이 사진들을 대중에게 서둘러 전달할 책무가 있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사진집은 기록 그 자체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이상엽은 "박근혜의 구속이라는 격변 이후 우리 사회를 어떻게 재구성해갈지에 관한 화두를 놓치지 않도록" 하는 데 방점을 찍고 싶었다고 머리말에서 얘기한다.

그래서 이들은 사진의 배치를 통해 메시지를 만들어냈다. 이 사진집 안에서는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 1부 '광장의 기억'에는 박근혜 탄핵을 이끌어낸, 지난해 가을 이후의 광장의 장면을 담았다. 2부 '기억의 광장'에는 세월호부터 노인 빈곤까지 여전히 아픈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담았다. '승리의 기억'에서 출발해 '절망의 기억'으로 끝맺는다.

10인의 사진가와 함께 작업한 역사학자 후지이 다케시는 이 사진집 안의 시간이 역진하는 이유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곁들인다. 그는 "즐거웠던 승리의 순간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승리에 도취해 벌써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게 될까 봐 우려하는 마음이 이 사진집에 담겨 있다"고 말한다.

박근혜가 권좌에서 내려오고 나서도 촛불집회는 끝나지 않았다. 다들 "끝난 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단순히 박근혜 한 명을 물리치는 걸로 이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적폐 청산,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어떻게 재구성해갈지에 관한 화두'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 사태의 시작은 '정유라 게이트'였다. 사진은 정유라 입학 비리에 대해 학교 측의 해명을 촉구하는 이화여대 학생들의 학내 투쟁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2부에는 이 사회에서 도려내야 할 '적폐'들이 종종 등장한다. 고(故) 백남기 농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물대포를 쏜 경찰들, 그리고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폭력으로 몰아내고 움막을 파괴한 뒤 기념 촬영을 하는 경찰들…. (☞관련 기사 : 할매 목 향한 '펜치'…'작전' 끝낸 경찰은 V자 미소)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폭력으로 몰아내고 움막을 파괴한 뒤 기념 촬영을 하는 경찰들의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후지이 다케시는 "적폐는 멀리 있지 않다. 적폐 청산은 이런 이들도 반성하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며 "우리는 '큰 개'만이 아니라 주위에 널린 '작은 개들'을 문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책 제목이 왜 <그날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인지 의구심은 바로 이 대목에서 명쾌하게 풀린다.

이제 우리에게는 과제가 있다. 우선, '작은 개들'을 찾아내야 한다.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공권력에 의한 살인 행위의 주체를 찾아야 한다. 백남기 농민을 정조준해 물대포를 발사한 이가 누군지, 누가 어떤 명령을 하고 또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했는지 알아야 한다. 박근혜 정권을 든든하게 뒷받침했던 부역자들을 호명해야 한다.

작은 개들을 움직이는 큰 개의 출현을 막아야 한다. 오히려 '큰 개'를 골라내는 건 더 쉬울지도 모른다.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우리는 이 작업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스스로가 '개'가 되어선 안 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는 가해자, 적어도 방관자였을 수 있다. 마치 '악의 평범성'을 보여 준 유대인 학살 전범 칼 아돌프 아이히만처럼. 평범한 개인도 구조적 부정의에 기여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물에 빠진 개는 쳐라". 후지이 다케시의 신랄한 일침을 371장의 사진은 전하고 있다.

▲유성기업 노동자 고(故) 한광호 씨의 추모제. ⓒ윤성희

▲해고 노동자들의 오체투지 행진. ⓒ정운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밀양 할매'의 필사적 반항.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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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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