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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文대통령이 직시해야 할 다섯 가지 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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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최장집 "文대통령이 직시해야 할 다섯 가지 명제" [프레시안-정치발전소 공동기획] ③ 때늦은 데탕트 (1)
정치발전소,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프레시안의 공동주관으로 신정부 출범을 맞아 "새 정부, '무엇을', '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기획시리즈를 시작한다. 이 기획은 정권인수, 신정부 출범의 조건, 외교안보, 행정, 협치, 복지, 노동, 개헌문제 및 선거제도 등 신정부가 직면해야 될 다양한 과제와 조건에 대해 분야별로 총 10회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편집자

기획 전편 보기

이번 기획의 3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발전소 이사장)의 글 <때늦은 데탕트 :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외교정책의 지평을 더 늦기 전에 열어야 하는 이유>(원제)를 2회로 나누어 게재합니다. 최 교수는 이 글에서 북한을 현실의 눈으로 직시할 것을 조언하며 문재인 대통령과 새 정부가 외교 정책의 전환을 위해 반드시 견지해야 할 관점을 제시합니다.

▲ 최장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프레시안(최형락)


I. 한국 외교정책의 다섯 가지 명제

1) 무력 충돌 가능성이 높아진 한반도

2016년 9월 북한의 5차 핵실험은 관측자들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북한의 핵무장화를 가시권으로 당겨 놓았다. 장거리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해온 북한이 이를 핵탄두로 장착할 때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가공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 북한 핵문제는 임기 말을 앞둔 오바마 행정부에서 중대 의제가 되지 못했다.

금년 초 취임한 트럼프 신정부의 대북정책은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지금 한반도에서 전쟁위협은 가상이 아닌 실제로도 가능한 예측불허 상태가 되었다. 한국의 군사안보 관련자들이나 분석가들 그리고 미 국방부의 안보관련 군사 전략가들은, "군사적 공격이 오직 핵과 미사일기지를 제거하기 위한 제한적인 것일 경우라도 북한으로부터의 재난적 보복을 불러올 것이고, 촉발시킬 수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International New York Times(이후 INYT로 약칭) 4/12일자)

미국이 초정밀, 신무기를 사용해 북한의 핵시설을 선제 타격하는 것을 통해 위험을 제거한다고 하자. 그렇다하더라도, 이 공격에서 살아남은 북한포대의 반격은 근거리 사정권인 경인지역에 밀집돼있는 2500만 주민들에게 치명상을 입힐 가능성이 크다. 사실상 그것은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결과는 재난적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미국과 한국의 군사안보전문가들은 이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이미 1994년과 2003년 두 번에 걸쳐 핵 위기를 경험한 바 있다. 그러나 과거 클린턴정부나 부시정부 때와는 달리, 지금은 처음부터 대북강경노선을 천명하고 나선 트럼프정부와 미국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대담함을 보이면서 핵무장화와 미사일 실험을 추구하려는 북한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형국이다. 오늘의 미국, 북한 간의 치킨게임 상황은 그 이전에 비해 훨씬 더 긴박감을 느끼게 한다.

오늘날 세계는 1980년대 말 동서냉전이 종결된 이후로서 그때와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 국제정치 질서를 맞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만큼은 이러한 세계적 수준에서의 체제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 때와 유사하게 또다시 군사적 대립의 진원지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지금 활화산 정상에 사는 것이나 다름없는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런데도 언제까지 이러한 상황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며 별무대책으로 살아야하나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2) 냉전 반공주의도 민족주의도 아니다
한국 정부의 지도자들, 외교안보 분야의 정책당국자들, 정치권의 정치인들이 이러한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이렇다 할 대안을 갖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현재 한반도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무력충돌의 위험성은, 미국 또는 일본 또는 중국으로부터 그 심각성이 전해질 때에서 비로소 사실의 엄중함을 느끼게 되고 그때에야 이슈화된다.

트럼프 정부에 들어와 대북 강경정책이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높인다는 우려를 누구보다 먼저 표명했던 사람들은,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 대표로서 북미 기본합의를 타결했던 로버트 갈루치나 역시 동아태차관보와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역임한 크리스토퍼 힐 같은 미국 외교관들이었다. 정작 한국의 지도층들은 미국만 쳐다보고 불안 혹은 안도를 하는듯한 태도를 보였을 뿐이다. 그저 남의 집 불구경하듯 일희일비하는 것이 현재 우리의 현실이다.

지난 대선에서의 후보들 또한 다르지 않았다. 남북한 간 긴장과 안보 문제가 대선과정에 던져진 그 어떤 것보다 심각한 중대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설득력 있는 대안이나 비전을 제시하지도 못했다. 그보다는 낡은 냉전 반공주의적 이념 틀을 통해 서로를 공격하거나 혹은 행여 민감한 이데올로기적 중대 이슈를 잘못 건드렸다가 표 떨어질까 두려워 안전제일주의를 취한 것이 전부였다. 이러한 상황과 조건이 계속된다면, 우리의 안전은 지극히 위태롭다.

우리의 운명은 한반도에 대해 압도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과 중국 간의 정치적 게임의 함수인 듯 보일뿐이다. 이번 대선과정에서 보수정당의 후보들은 그것이 얼마나 합리적 현실성을 갖는 것인지에 대해 숙고함이 없이 한국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든가, 전술핵무기를 배치해야 한다는 등의 강경책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대안이 있다면, 한편으로는 미국만 쳐다보는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반도의 사드배치로 인한 중국의 무역보복에 대해 민족주의 감정을 일깨우면서 대국으로서 치졸하다고 비판하는 대응밖에는 없어 보인다. 우리의 안보를 위해 미국의 핵우산보호와 한미 군사동맹의 공고화가 모든 것의 출발점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안보와 평화라는 우리 문제는 우리가 풀어야한다는 인식이 그 어떤 것에도 우선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사드 배치를 결정할 때, 정부의 정책결정자들은 그 결정이 갖는 국제정치적 의미 자체 내지 그 중요성을 특별히 고려한 것으로 보이지가 않는다. 그로인한 중국의 무역보복 자체를 예상조차 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지금 한반도를 진원지로 하는 군사적 긴장과 대립은, 남북한 당사자들은 물론 미국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제관계에서 그 이해관계들이 상충하고 또 결합하면서 과거 냉전시기보다 훨씬 더 복잡해진 국제관계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국제정치 환경에서 박근혜 정부의 탄핵과 조기 대선을 통한 대통령의 선출과 새 정부의 출범은, 새로운 국제정치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남북한관계, 대북정책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필요로 한다.

현재의 시점은 촛불시위라는 격변적 방법을 통한 정권 교체와 외교안보 정책의 위기가 중첩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에서 우리가 현재 처한 위험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한반도에서 냉전시기 전체를 통해서도 이루지 못했던 지체된 데탕트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 어떻게 남북한 간의 군사적 대립을 넘어 상호간 평화공존의 방법을 발견하고, 이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지금 진지하게 논의할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그 해결책을 탐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익숙한 방식, 즉 힘으로 밀어붙이는 식의 대북정책 내지 통일정책으로부터 평화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책으로 대북정책, 남북한관계는 전환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긴 우회의 길을 통해 통일에 이르는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통일이라는 이상은 그 평화의 지평 저 너머에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더 옳다. 오직 평화를 제도화하는 것을 통해 평화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 이외에 다른 가치, 다른 목표는 있기 어렵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더 많은 민족주의'가 아니라, 민족주의를 상대화하는 일이다. 민족주의보다 더 우선하고 높은 가치는 평화의 가치이자 목표이다.

3) 새로운 목표를 위한 가정과 명제
이를 위해 나는 다음에서 다섯 가지의 명제 또는 가정들을 말하고자 한다.

첫째, 북한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를 북한에 대해 긍정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이해한다든가 하는 가치판단이 함축된 것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이데올로기나 가치, 희망적 사고를 통해 보는 것을 잠시 밀쳐두었으면 한다. 즉 철저하게 가치중립적으로 사실 그 자체를 보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김정은 정권의 붕괴가 곧 북한정권, 즉 북한체제의 붕괴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김정은 정권이 붕괴될 때, 북한체제가 붕괴되는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반드시는 그렇지는 않다. 그러므로 김정은 정권의 붕괴가 통일을 의미한다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한반도 통일은 분단의 원인이 그러했듯이 남북한 간 쌍방관계가 아니라, 동북아국제질서 내지 국제체제의 함수이다. 남북분단을 떠받치는 동북아 질서가 있기 때문에 북한이 존립하고 있는 것이지, 김 씨 정권이 북한을 지배하기 때문에 북한이 존립하는 것은 아니다.

셋째, 한반도에서 남북한 간의 통일은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통해서 가능할 수 없다. 힘에 의한 것으로서는 통일이든 평화든 모두 불가능하다. 북한의 존립은 무엇보다 냉전을 통해 실현됐듯이 동북아 질서에 있어 지정학적 특성에 힘입은 것이다. 북한은 중국에 대해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에 있다. 이 관계를 역사적으로 분명히 보여주었던 것은 6.25전쟁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별도로 자세히 살펴보겠다.

넷째, 평화를 남북한관계의 일차적인 목표로 삼고 추구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국제정치 질서에서 한국이 독자적인 플레이어가 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이 플레이어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한미 간의 공조와 상호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레어로서의 한국은 한미관계의 범위를 넘어서는 동아시아 국제정치 질서와 그 변화에 대한 비전과 이해를 필요로 한다.

다섯째, 안정적인 평화지향적 대북정책의 추구는, 한국정치와 사회에서 보수든, 진보든 어느 한 진영에 의한 것 만으로서는 성공할 수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햇볕정책'으로 불린 평화공존 정책과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 힘에 의한 강경정책을 통한 흡수통일 정책은 이 점에서 모두 한계가 있다.(여기에서 1980년대 말 냉전해체와 더불어 노태우정부가 처음으로 "한민족공동체" 형성을 통해 통일문제를 접근했던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 사이에 컨센서스를 형성하는 것이 대북정책의 변화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다. 우리는 독일통일과정에서 아데나워의 '서방정책'과 브란트의 '동방정책'간의 컨센서스 형성으로부터 모델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이하에서는 이상과 같은 가정 내지 명제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해보겠다.

ⓒ프레시안(최형락)


II. 현실에 대한 다른 이해가 필요하다
: 김정은 체제에서의 북한과 북핵 그리고 사드문제

1. 민족주의의 상대화를 위한 평화공존

나는 남북한 간에 평화를 진작시키기 위해서는 그 전제로 공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평화공존은 가치, 이념, 생활양식, 국가의 제도와 사회구조가 다른 두 체제가 평화를 유지하는 것에 동의하고 그것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뜻한다. 앞에서 나는 평화를 위해 민족주의를 상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것은 두 측면 내지 두 요소를 갖는다.

하나는 대내적인 것으로 민족주의에 대한 이해를 유연하게 하는 것이다. 민족주의의 가장 간단한 정의는 '일민족 일국가주의'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분단돼있어 한반도에는 사실상 두 개의 주권국가가 존립하고 있다. 남북이 공통적으로 민족주의의 가치와 이념을 준봉(遵奉)하면서 스스로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민족주의를 정치적으로 실현하려한다면 공존은 어렵고 평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것은 남과 북에서 각각 정당성/정통성의 문제가 왜 그토록 중요한가를 말해준다. 따라서 우리는 평화라는 가치가 경직적으로 정의된 민족주의의 가치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대외적인 것으로, 다른 여러 경쟁적인 이념이나 가치가 얼마든지 존재하고 존중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자유주의, 공동체주의, 자본주의, 민주주의 등 인간의 삶에 있어 중요한 가치들이 존재함을 수용하는 것이다. 즉 다른 이념이나 가치에 대해 열린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그렇게 될 때 이념으로서의 민족주의는 '열린 민족주의'가 될 수 있다. 북한은 북한대로 공산주의, 김일성주의, 전체주의와 같은 이념이 존재할 수 있다. 이런 인식을 가질 때 다양한 이념들이 민족주의와 병행하고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평화의 가치, 또는 인간의 물질적 향유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믿을 수 있다. 요컨대 민족주의만이 아닌 다른 가치들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평화공존은 가치와 이념을 다변화함으로써 하나만의 가치와 이념을 위해 생사투쟁을 벌이는 열정을 완화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상대의 존재, 체제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공존하는 마음의 상태를 갖도록 한다. 물론 평화 그 자체가 다른 체제를 통합하기 위해 피를 흘리지 않는 것도(그 결과가 통합을 가져오든 아니든) 보다 더 의미 있는 가치라고 깨닫게 되는 것도 민족주의를 상대화하는 것이다.

평화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점차 이를 제도화해 나간다는 것은, 한반도에서 현존하는 두 국가, 두 국민들 사이에서 현재로서는 양립하기 어려운 서로 다른 체제의 성격, 이데올로기에 대해 상대와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공존하겠다는 일종의 '잠정협정'(modus vivendi)의 성립에 도달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평화공존을 위해 불가피하고, 또 필수적이다. 스스로의 가치와 이념을 보편적인 것으로 상정하고, 상대방에게 이것을 부과하는 것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다른 체제와 공존하는 것을 받아들여야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항구적일 필요는 없다. 잠정적으로 각자의 일방주의적 욕구를 중단하는 것을 통해 평화를 위해 공존해야함을 수용하는 데 합의해야 하는 필요가 중요할 뿐이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에서는 남북한 쌍방이, 통일 또는 국가연합 등 어떤 형태의 것이든, 새로운 국가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2.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이해하기

상대를 정복하기 위한 것과, 평화공존을 실현하기 위해 상대를 이해하는 방식은 본질적으로 큰 차이를 갖는다. 정복을 위해 또는 상대를 적으로 이해할 때, 주된 관심은 우리의 우월성을 암묵적으로 전제하면서 상대방이 얼마나 나쁘고, 얼마나 역기능적이고, 얼마나 취약한가, 그리하여 그 체제가 왜 종국적으로 붕괴될 수밖에 없는가 하는데 두어지게 된다. 가치관, 이데올로기적 전제가 강할 때 희망적 사고가 이해과정을 지배하게 된다. 북한에 대한 이러한 이해와 전망이 사실이 아니었음은 오늘 이 시점에서의 북한의 존재 자체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붕괴되기는 고사하고, 유지되고 있을 뿐 아니라, 군사적 위협이 증가하는 점점 더 가공할 체제로 등장하고 있다.

그와는 달리 평화공존을 실현코자 노력할 때 우리는 상대를 협상의 대상으로 전제한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무엇을 원하고 있고, 무엇을 지향하는가하는 질문을 중심으로 있는 그대로 북한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과 무엇을 거래할 수 있는가가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은 어떻게 유지되고 있나, 어떻게 핵무장화에 이르게 되었나, 그것은 무엇을 목표로 하나, 오늘의 북한은 과거에 비해 어떻게 변했나, 아버지 김정일 체제와 아들 김정은 체제는 어떻게 다른가하는 의문들, 즉 있는 그대로의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일찍이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15장에서 "사변적 상상보다는 사물에 실체적 영향을 미치는 실체적 진실"(alla verità effettuale della cosa, che alla imaginazione di essa)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외국 자료나 외신을 통해 나타나는 북한의 실체는 우리가 한국에서 이해하는 것과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예컨대 중국전문가이자 천안문사태에 관한 저술로 유명한 미국콜럼비아대학 정치학교수 앤드류 네이탄이 미국의 대표적인 저널에 기고한 글을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The New York Review of Books, 2016년 8월 18일자, 63권 13호).

북한에 관해 최근 출간된 주요 문헌들을 종합한 그의 글 내용은, 붕괴 직전의 북한이 아니라 북한체제가 어떻게 존립할 수 있고, 실제로 작동하는가에 대해 말한다. 김정은에 대한 평가는 사뭇 흥미롭다. 동북아지역에서 최약체 국가인 북한이 모든 국가들에게 도전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는 그것을 생존을 위한 "능수능란한 솜씨"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미 냉전시기 전 기간을 통해 미소 간 경쟁의 틈바귀에서 이득을 취하며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중국과 북한 간의 관계는 바깥세계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쁘다. 한국에서 북한의 취약성을 말할 때, 중국과 북한관계의 악화가 북한체제 유지를 어렵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로 해석되고는 한다. 그러나 현실 상황은 그렇지 않다. 네이탄에 따르면, 지금 북한체제는 자신이 존립하는 것과 붕괴되는 것 둘 다에 의해 화를 불러올 수 있는 능력으로 세계의 나머지와 대적하고 있다고 말한다. 김정은에 대해서는 가장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것에서 일종의 성공으로 상황을 전환시켜, 애초 회의적이었던 관측자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상당한 평가를 한다.

김정은은 부단히 경계하고, 필요할 때 무자비할 수 있고, 완만하나마 경제회복을 실현했고, 핵강국으로 북한의 입지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체제가 붕괴할 수 있는 유일한 위험 요소는 젊은 김의 건강이 나빠지느냐 아니냐하는 것인데, 그럴 경우에도 강력하고 단련된 군부가 질서를 유지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만약 그런 사태가 발생한다면, 중국이 수혜자가 될 것이다. 많은 서구전략가들이 요구하는 긴급계획들에 관한 토론을 가져야할 필요도 없이 중국이 수혜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사태가 이렇게 된다 해도, 그것은 극히 만족스럽지 못한 승리에 지나지 않게 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망 속에서 젊은 통치자와 북한주민들은 그 자체가 악몽의 연속이 되는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네이탄에 의하면 중국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북한이 핵무장화를 밀고 나갈 때 동북아지역의 미국을 비롯한 한국, 일본을 포함하는 이해당사국들이 군사전략적으로 무력에 의존하는 정책을 밀고 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인접국가에서 핵전과 대규모 피난민을 만들어낼 잠재성을 갖는 일이다. 이러한 상황이 중국에 이로울 것은 하나도 없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남한에서 사드(미국의 레이더, 미사일방어체제) 배치를 미국과 합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베이징은 워싱턴이 생각하는 식으로 북한 문제를 위기라고 고려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상황이 중국에게 일정하게 혜택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평양의 교란적 행태는 미국, 일본, 한국을 포함하는 미국의 맹방이자 파트너들이 북한의 위협을 다루는데 있어 다른 우선순위를 갖는 까닭에 이들 사이의 관계에 긴장을 만들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중국은 한국이 중국에 더 가까워지도록 드라이브하고 워싱턴으로 하여금 베이징이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무엇이든 도와주는 노력을 한다면 감사하게 생각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스스로를 중심적인 외교적 중재자로의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 비록 중국 사람들이 김 씨 왕조를 결코 좋게 보지 않더라도 현존하는 북한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반도 핵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주로 워싱턴에 달려있다고 본다. 중국인들이 보는바에 의하면, 그동안 평양이 그렇게 말해왔듯이, 북한의 핵정책은 그들의 존립에 대해 미국이 가해온 수십 년 동안의 위협에 대한 필연적인 반응이다. 중국 전략가들은 만약 워싱턴이 북한체제의 붕괴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믿을 수 있도록 보장해 주었다면 평양은 핵프로그램을 포기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워싱턴이 이러한 방향에서 여러 가지를 말해왔다 하더라도, 그런 말의 내용들은 믿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확실하고, 공공적이지 않았다.

1994년과 2005년 두 번에 걸쳐 핵무기를 폐기하려는 중요한 협상이 있었지만, 평양과 워싱턴이 서로에 대해 이중적이라는 비난 속에서 그 협상들은 실패하고 말았다. 현재 중국의 관점에서 본다면, 북한을 비핵화시키는 것은 너무 늦었다. 김정은이 원하는 것은 하나의 핵 강국으로서 국제적 인정이다. 네이탄의 견해를 따르면, 결국에 가서, 미국은 그의 요구에 응해주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본다.

3. 합리적 미친 짓

2016년 9월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이 문제에 대한 반응들을 뉴욕타임스를 통해 볼 때에도 앞에서 말한 네이탄의 글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은 실제로 전쟁을 원치는 않지만, 전략적이고 의도적으로 항구적인 전쟁위협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본다. 북한의 행태는 일견 "미친 것처럼 보이지만, 합리적"이라는 것이다.(INYT, 2016년 9월 12일자) 이러한 행태는 더 교묘한 위험이지만, 중대한 위험임에 분명하다.

여기에서 북한에 대해 합리적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정치지도자들이 언제나 최상의 또는 가장 지고의 도덕적 선택을 하거나, 또는 그 지도자들이 정신적 적합함의 어떤 전형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는 자기보존의 핵심인 자기이익에 따라 행위 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상황을 전제로 한다면, 북한의 외부환경으로서 국제환경은 북한이 행위 하는 인센티브의 체계를 구성한다.

뉴욕타임스는 한 정치학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북한 지도자들은 능수능란하게도 그들의 이익이 무엇인가를 결정했고, 그에 따라 행동했고, (…) 극도의 정확성을 가지고 궁전을 운영하고, 또한 국내, 국제정치를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목적과 수단 사이의 상응성을 계산할 수 있는 합리적 지도자들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북한이 이러한 '비합리성의 합리성'을 구사하는 동기에 대해 그 역사적 배경을 이렇게 제시한다. 북한이 겉으로 보기에 이렇듯 정신병자 같은 행태를 보여주는 데는, 그들의 체제존립을 위태롭게 했던 두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하나는 군사적인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전쟁상태에 있는 한반도는 미소 교착상태에서 냉전의 해체로 인해 남한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졌고, 북한은 서방과의 연계를 개선하는데 초점을 둔 변화된 중국에 의해서만 보호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됐다. 다른 하나는 정치적인 것이다. 모든 한국민을 대표하는데 경쟁관계에 있었던 한반도의 두 국가는, 1990년대에 들어와 남한은 민주화로 인해 정치적으로 자유롭고 경제적으로 번영하게 돼 남북한 간 차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존재할 수 있는 여지는 없어져버렸다.

이 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답이 군사주의 최우선 정책이다. 국가의 빈곤은 군사력유지에 필요한 것으로 정당화되고, 내부의 배반자들을 뿌리 뽑는 억압을 정당화하고, 민족주의 깃발아래 뭉치는 것을 통해 정당성을 떠받치는 항구적인 전쟁상태로 내딛는 나라로 끌고 갔다. 북한은 일견 극도의 위험을 불사하고, 적들을 위협하는 수단으로서 전쟁할 용의까지 보여주는 자세를 의도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이 다만 호전적임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것이 실제로 만들어내는 위험이 무척 현실적이기 때문에 효과를 갖는다고 해석한다. 한 정치학자는 이를 일종의 '절망의 이론' 이라고 말한다. 이런 방식으로 사태를 극히 위험스럽게 만드는 것이 북한의 합리성이다. 북한은 한반도를 거의 전쟁에 가까운 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통해서만이 존립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어떤 사고나 오산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태를 유발시키는 위험을 창출하고 있다. 북한은 이러한 위험을 알고 있지만, 그 이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는 것으로 믿는듯하다.

절망의 이론이 의미하는 바는, 북한의 경우 패배할 가능성이 절대적으로 크지만, 그러한 전쟁을 위해 조건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은 여러 발의 핵 공격을 감행하고, 그 뒤의 핵 보복 공격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작은 기회를 발견코자 좌충우돌하면서 전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는 노력을 준비하고 있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북한 지도자들의 계산으로서는 그들은 다른 선택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위험을 감내한다. 북한 국민은 물론, 북한밖에 있는 한국, 미국을 포함하는 모든 관련당사국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지, 비록 그 가능성이 무척 적지만 아주 없지는 않은 이런 위험을 공유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상에서 묘사한 북한의 실정과 그에 대한 분석은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 특히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당국자들의 이해방식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최소한 그들이 언론을 통해 표현하는 것을 통해 볼 때 북한의 실정과 한국 정책당국자들이 북한을 이해하는 내용 사이에는 너무나 큰 괴리가 존재한다.

지난해 5차 북핵 실험 이후 윤병세 외무부장관은 "북한정권 최악 홍수에도 핵실험"을 하니 "참으로 후안무치하다"라고 말한다.(연합뉴스, 9.22) 그런가하면 사드 배치에 대해 한국 정부당국자들이 "사드, 푸틴은 넘어갔고 시진핑만 남았다"라고 말하는 것을 언론보도를 통해 보면서(중앙일보, 2016, 9, 5) 그들이 얼마나 엄중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가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의 핵실험이 체제의 존립이 걸린 절체절명의 위기를 벗어나려는 그들로서는 결사항전의 상황을 후안무치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뒤에 말하겠지만 중국의 무력보복이 단순한 외교적 대화나 설득만으로 될 문제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우리정부의 외교정책담당자들의 상황인식은 사태의 본질로부터 멀리 떨어져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이나 중국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는 성의조차 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 위 사진 가운데)이 14일 화성 12호 시험발사 관계자들과 함께 발사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노동신문


III. 한국전쟁의 교훈은 무엇인가 : 역사적이고 현실주의적 관점(realist view)에서 본 한중관계

1. 살아 있는 역사로서 한국전쟁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과 관련하여 4월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은 우리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 북핵 문제가 중요 의제가 된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트럼프에게 "중국과 북한 관계의 역사를 설명해줬다"고 외신은 전한다. 회담 중 외신들은 시주석은 미국이 북한핵/미사일기지에 대한 선제적 군사행동이 취해질 경우, 그것은 높은 전쟁위험성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한다.

그런가하면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미국과 북한 간 긴장이 높아져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하면서 미국과 북한 쌍방을 겨냥해 "누구든 도발을 한다면 역사적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라고 말했다.(연합뉴스, 4월15일) 나는 프랑스 대사와 회견하는 자리에서 왕이 부장이 말했다는 이 뉴스를 읽었을 때, 1950년 9월 한국전쟁 당시 저우언라이가 미국과 중국의 대화 창구였던 베이징 주재 인도대사 파니카에게 만약 미국이 38도선을 넘어 진격한다면 중국은 참전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던 사실이 기억나 한반도 상황에 대해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이러한 외신보도를 통해 북핵문제 해결에 대해 중국의 태도가 어떤 것인지 읽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 문제를 심도 있게 이해하기 위해 실제로 중국과 남북한 간의 관계가 역사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났는가를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6.25 전쟁은 무엇을 의미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중국과 북한관계의 역사"를 말했다고 했을 때 그 역사는 분명 한국전쟁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1950년의 전쟁과 2017년의 오늘의 상황은 거의 70년이 다돼가는 긴 시간이 떨어져있지만, 그때 전쟁의 의미는, 지금의 상황으로 옮겨온다 하더라도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때로 돌아가 보자.

2. 38도선을 넘느냐 마느냐

나는 한국전쟁의 성격과 의미는 두 전환점으로 집약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북한의 김일성 정권이 남침을 결정하여 38선을 넘어 거의 무방비 상태의 한국을 침공하여 분단된 한반도를 통일하기 위해 일사천리로 밀어붙이기 시작한 시점이다. 전쟁의 시작단계에서 미국이 취한 유엔군의 틀을 빌려 남침을 저지하기로 했던 신속하고도 즉각적인 결정이다. 그로인해 유엔군은 부산 페리미터를 지키면서 북한군에 대한 반격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한 전환점은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이 50년 10월초 38도선을 넘어, 북한군을 추격하여 북한 지역으로 반격을 확대하기로 한 결정이다. 이 두 번째 결정은 한국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계기로 해석될 수 있다. 그 이유는 이런 것이다.

미군의 지휘 하에 유엔군의 참전 결정은, 2차 대전 이후 초기 냉전과정의 특징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계기이다. 이 시기 냉전전략은 국무부 정책위원회 멤버였던 조지 케난에 의해 제시된 것으로 "봉쇄정책" (Containment Policy)으로 개념화될 수 있다. 유럽, 중동, 동아시아에 걸쳐 소련의 주도하에 전개되는 공산주의 세력의 공세적 팽창을 견제하면서 그들을 봉쇄해야 한다는 정책이다. 따라서 그것은 세계적 수준에서의 공산세력 팽창에 대한 수동적, 또는 방어적인 의미를 갖는 전략개념이다.

이 틀에서 볼 때, 한국전쟁은 이 시기 소련에 의해 주도되는 공산주의 세력의 팽창의 표현이고, 미국의 즉각적인 개입 결정은, 동아시아에서의 공산세력 팽창을 방어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봉쇄정책의 틀에서 볼 때 미국의 한국전개입은 비교적 단순한 전략적 결정이고, 따라서 결정도 쉬웠다. 공산 침략을 격퇴한다는 의미를 갖는 전쟁은 세계적 수준에서 널리 정당성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38도선을 넘는 문제는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두루 알다시피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이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고, 9월 중순 서울을 탈환하고, 북한군을 추격하면서 38도선에 당도했을 때, 미국은 이 선을 넘느냐 넘지 않느냐하는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국전쟁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결정은 이를 둘러싼 것이다. 북한군을 38도선 이북으로 격퇴하고 분단선 이남을 복원하는 문제는, 전쟁 개념으로 "전쟁 이전상태의 복원, 즉 현상의 유지"(status quo ante bellum)를 뜻한다. 워싱턴의 트루먼 민주당 정부는 현지 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에게 분단선을 넘지 않기를 명했다. 그러나 그는 이를 무시하고 10월초 분단선을 넘어 북한군을 추격하면서 북한지역으로 북진을 계속했다. "석권(席卷)"(Roll-Back) 전략 개념의 표현이다.

그것은 말 그대로 소련이나 그 지원을 받는 공산국가가 혁명 또는 전쟁 또는 어떤 정치권력의 확장을 통해 정치적 군사전략적으로 팽창했을 때 이를 격퇴해 쓸어버린다는 전략이다. 북한의 공산정권이 북한지역을 장악하고, 전쟁으로 한반도를 통일하려 했을 때, 전쟁 이전상태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침략을 감행한 그 정권자체를 해체 또는 붕괴시켜야 한다는 전략이다. 그것은 북한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전쟁을 계기로 중국대륙을 혁명과 내전을 통해 석권하고 새로운 정권을 수립한 공산당정부를 붕괴시킨다는 전략이론이기도 하다.

봉쇄정책이 소극적이고 방어적이라면, 석권전략은 공격적인 것이다. 이 시기 공화당 강경파들에 의해 지지되었던 전략이고, 맥아더 사령관은 이러한 비전을 가지고 한국전을 지휘했고, 트루먼 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38도선을 넘어 북한의 공산당 체제를 붕괴시켜 한반도를 통일하려는 자신의 비전을 관철하기 위해 북진했다.

이 결정이 중요한 것은, 38도선 이북으로의 한국전 확전은 중국의 참전을 불러왔고, 또한 2차대전 후 소련의 정치적 팽창과 군사적 위협 하에 있었던 2차 대전의 승전연합군 멤버인 영국, 프랑스를 필두로 한 유럽국가들의 격렬한 반대를 불러올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북진하는 유엔군 선발대는 늦가을 평안북도 압록강변 초산에 도달했고, 중공군은 이 시기 이미 북한 지역 내로 들어와 있었다. 유엔군의 배후에서 나타난 중공군을 격퇴하기 위해서는, 그 배후기지인 중국 본토와 만주지역을 보다 강력한 공군력으로 공격할 수 있다면 모르지만, 전장의 유엔군만으로는 수십만 명의 중공군에 대응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중국 본토에 대한 공격은 동아시아 전체로의 확전은 물론, 소련군의 서유럽침공 가능성을 열어놓기 때문에 3차 대전을 불러올 가능성은 컸다. 그러므로 북한지역에서 싸우는 유엔군이 확전을 위한 미국 본국으로부터의 지원을 얻지 못할 때, 후퇴이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그로인해 미군은 미군 역사상 최장거리의 후퇴를 감내해야 했고, 맥아더사령관은 다음해 4월 대통령에 의해 해임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컨대 한국전쟁은 세계적 확전의 입구에서 중지된 것이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타임지 표지 모델 ⓒ타임


3. 지정학적 차원이 결정적인 이유

중국은 왜 한국전에 참전했나? 그 의미는 무엇인가?. 중국이 한국전에 참전한 것은 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하여 1949년 10월 1일 천안문에서 새로운 공산당정부 수립을 선포한 지 꼭 일 년만의 일이다. 신생 공산당정부는 장기간의 중국내전으로 피폐해진 중국민들과 허약해진 군사력을 복원하고 그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야했고, 이른바 대만해방을 종결지어 완전한 중국통일을 실현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던 때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점에서, 미국과의 전쟁을 위해 한국전에 참전하는 중대 문제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중국 지도부 사이에서 많은 논쟁이 있었고,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가 앞장서 참전을 주장했기 때문에 결정될 수 있었다. 이로써 그들은 무엇보다 대만 해방을 포기해야 했다. 대만을 마주보는 안훼이성 일대에 배치되었던 인민해방군 주력을 그해 여름 압록강연안으로 이동시켰다. 중국대륙과 대만해협의 전략적 요충인 금문, 마조도 사이 포격거리에 있는, 통로가 아주 좁은 해협에 미국 7함대를 배치시켜 중공군의 대만 침공을 방어하고 있었던 상황 하에서 내린 결정이다. 왜 그랬을까?

새로 수립된 중국 공산당정부는, 당장의 대만 해방을 포기하고 훗날로 미루는 한이 있더라도 북한이 미군에 의해 해방되고, 한반도에 통일정부가 수립돼 미국의 직접적인 영향에 놓이게 되는 상황을 허용할 수 없었다. 그것은 미국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는 강력한 적대국가가 압록강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병립하게 되는 사태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만주/동북3성은 물론 베이징, 텐진이 위치한 허베이성과 산뚱성 일대의 중국 심장부가 지근거리에서 한반도를 마주 대하게 되기 때문에 결정적인 전략적 취약성에 노출될 것이다.

더욱이 당시 중국 지도부는 미국이 한국전쟁을 계기로 ‘롤백’ 전략을 실천에 옮겨 신생 중국공산당정부를 공격한다면, 체제 자체가 위태로워진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중국은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현재와 미래의 체제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참전하게 되었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한국전쟁만큼 북한이 중국에 대해 ‘순망치한’의 관계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한국전에 참전키로 결정한 중국의 입지는, 현재 한반도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북핵 위기 시점에서 중국과 북한, 중국과 한국과의 관계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극히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이 관계의 수준은 두 차원이다. 하나는 일상적인 외교 또는 경제관계를 통해 나타나는 관계가 우호적, 또는 적대적이라고 말하는 수준이 있다. 그것은 보통의 현상적 관계의 수준이다. 다른 한 수준은 현상으로 나타나는 관계가 어떤 것이든 세계의 국제관계의 체제적 차원에서 또는 지정학적 (geopolitics) 차원에서 작용하는 보다 더 근본적인 군사안보적, 이데올로기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작용하는 차원이다. 이 수준에서 오늘의 북핵 위기, 그것을 둘러싼 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볼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좋다거나 나쁘다고 말하거나, 또한 적대적이기까지 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첫 번째 수준에서 그러하다.

중국의 지도부, 지식인 엘리트층은 오늘의 북한체제에 대해 결코 우호적이지 않고, 북한보다 한국을 더 좋아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중국은 국가자본주의적 형태를 갖는다 하더라도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체제를 선택했고, 산업발전으로 경제수준과 그와 동반하는 지적, 문화적 생활양식과 취향은 북한보다 한국과 훨씬 가깝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모든 것이라고 혼동하지는 말아야 한다. 두 번째 지정학적 차원에서의 관계를 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체제적 수준에서는 중국과 북한은 상호 필요의 관계에 있다. 중국이 북한을 극히 필요로 하기 때문에, 북한은 사실상 중국 때문에 존재하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그것과는 달리 중국과 한국의 관계는, 결정적인 군사안보 전략적 수준에서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양립하기 어렵다. 이 수준에서 중국과 북한관계는 중국과 한국의 그것에 비할 수 없이 중요하다. 이 두 수준이 얼마나 엄청난 차이가 있는가하는 점은 한국에 사드 배치를 둘러싼 문제, 즉 한미정부가 사드배치에 합의한 것(그것이 최종적 결정은 아니지만)이 불러오는 중국의 대한국 무역보복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앞 장에서도 외교당국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그동안 사드 배치의 문제를 한중간 경제적 문화적 외교적 교류확대를 기초로 하여 외교적 차원에서 설득 가능한 것으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나의 관점에서 이 문제는 그런 수준에서의 이슈가 아니다. 중국의 군사전략적 이해관계가 한국의 사드 배치(최종적으로 그렇게 결정된다면)와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에 그것은 일반적 외교의 차원이 아니라, 지정학적 차원에서의 문제이다.

이 문제를 미국의 경우로 바꾸어 생각해보자. 예컨대 미국과 군사전략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어떤 경쟁적 또는 암묵적으로 적대적인 국가가 뉴욕, 워싱턴을 포함하는 미국동북부 심장부와 지근거리에 있는 캐나다의 노바스코시아나 쿠바 같은 곳에 고도의 성능을 갖는 전자감시망과 미사일방어기구를 설치한다고 할 때, 그것을 허용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사드 배치 문제는 중국과 한국간의 군사전략적 이해관계가 해소되거나, 완화될 수 있는 국제정치적 관계의 차원에서 접근되어야할 중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전쟁은 공산주의체제를 확립한 북한이 무력으로 민족적 정당성을 독점하려는 시도였다. 이 점에서 전쟁은 국내전이다. 그러나 전쟁터(theater)가 한반도라고 해서 국내전은 아니다. 전쟁의 시작과 함께 유엔군이 참전했고, 그와 더불어 이 전쟁은 개전 즉시 미소 냉전체제적 틀을 갖는 냉전시기 최대의 국제전으로 변했다. 3년간 전쟁이 군사적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첫 1년 동안이었고, 나머지 2년은 고지 하나를 점령하기 위해 수많은 병사들이 희생된 진지전이었다. 병사의 생명과 관련하여 이 시기는 훨씬 중요하다. 남북한을 위해 싸운 대부분의 병사들은 이시기에 죽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은 이 시기 민간인들을 포함하여 남북한 전체인구의 10%에 육박하는 2백만 명이 사망했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은 공중폭격으로 사망했다.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보다 전체 인구대비 전쟁희생자들의 비율이 훨씬 높은 현대의 그 어떤 전쟁보다 밀도 높은 죽음을 불러온 전쟁이었다. 그런데 이 처절한 전쟁이 끝났을 때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되었을까? 38도선이 휴전선으로 바뀐 것 말고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우리는 이렇게 많은 희생을 치르고도 그 자리에 서있다.

한국전쟁이 남긴 가장 분명한 교훈은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북핵 위기가 고조되고, 한반도에서 또 다른 무력충돌의 위험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오늘 우리가 평화를 추구하려는 노력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이다. 누군가 이 시점에서 무력을 통해서라도 민족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알아야할 것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은 전쟁을 통해서도 통일이 안 된다는 사실이다.

(2회에서 계속)

※ 이 기획은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분권과 협치의 대한민국 국가 운영 모델 연구"의 일환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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