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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합의 '재협상'에서 승산을 가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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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합의 '재협상'에서 승산을 가지려면?

[기고] 문재인 정부와 한일위안부 합의

예상했던 일이긴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초기부터 무거운 외교 현안에 둘러싸여 있다. 특히, 한일 위안부 합의는 박근혜 정부가 물려준 굴레이며 업보이자 불편한 정치·외교적 자산으로서 그 부담이 더욱 크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첫 통화에서 문 대통령은 "우리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위안부 합의를 수용하지 못하는 게 현실" 이라며, 사실상 합의 이행 불가 입장을 일본측에 통보하였다. 취임 이틀 만에 문 대통령이 던진 자신의 첫 번째 정치적 승부수이다.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 향후 새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주요 개혁과제의 정치적 동력과 밀접히 연관돼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며 '불가역적' 해결을 최대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아베 정권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 외교의 중요한 한축인 한일관계가 더욱 냉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의 첫단계는 위안부 합의라는 틀 속에 내재되고 투영된 구조와 의식을 이해함이 중요하다. 아베 정권이 위안부 합의에 그토록 절실하게 매달렸던 이유는 '전범국가'의 멍에인 강제 종군 위안부의 낙인을 지우고 '보통국가'로서 새출발하고자 함이었다. 유대인 학살을 저질렀던 같은 전범국가 독일이 전후 진실된 사과와 책임자 처벌 및 재발방지라는 실질적 조치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면, 일본은 뒤늦게 국가간 합의 형식으로 이를 얼버무린 것이다. 조약에 집착하는 그들의 의식구조는 19세기 이후 변함이 없다. 심지어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침공하여 강제로 병합하는 제국주의적 행태도 조약의 형식 속에 담았다. 사기를 쳤건 강압을 했건 일단 도장 찍었으면 합법이라고 그들은 믿는다.

관례를 넘어서 맹신에 가까운 일본의 국제법 제일주의는, 지난 100년을 제외하고, 과거 한 번도 유라시아 문명권의 일원이 되지 못한 일본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뿌리 깊이 내재된 열등감의 감춰진 단면이다. 바다로 둘러싸여 오랫 동안 대륙의 주류 문화를 그저 바라만 보던 섬나라 일본사람들에게, 17세기에 처음 만난 유럽사람들은 그야말로 별천지에서 온 신인류였다. 더욱이 발전된 과학기술로 무장한 유럽사람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던 규범인 국제공법은 진정한 문명의 척도이자 일본을 유럽같은 꿈의 세계로 인도할 교량이었다. 이에 충격을 받은 일본이 문명화 매뉴얼인 국제법을 손에 들고 아시아를 점령하고 미국과도 대적했으니 왕년의 성공을 안내한 국제법을 대치할 지침이 아직은 없다. 요즘도 간혹 일본 학자들과 대화하다보면 이치에 닿지도 않는 억지나 궤변을 어떻게든 국제법의 틀 속에서 설명하려는 시도를 자주 접한다. 이는 반대로 자신들에게 불리한 상황일지라도 국제법을 통한 논증이면 크게 반박하지 못하는 모습을 형성해왔다. 손해를 보더라도 '국제법을 준수하는 문명인'의 품위를 지켜야한다는 그들의 의식구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위안부 합의의 철회와 재협상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한일 위안부 합의가 국제법상 조약이 아니며, 단지 양국의 외교 당국자 사이에 합의된 입장을 구두로 밝힌 일종의 정책 조정 지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제 위안부 합의는 국제법상 조약이 되기 위한 내용과 절차 및 형식을 중대하게 흠결하고 있다. 아베 수상도 이런 약점을 알고 있기에 그간 '일본답지 않게' 합의의 이행을 정치적으로만 강변해 왔던 것이다. '국민적 정서'는 대통령의 중요한 고려 사항이지만, 자칫 이를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 일본의 프레임에 말려 갑론을박으로 전전할 수 있다. 협상이 진행되면 정치적 수사보다 비엔나 조약 법 협약의 규정이 우리에게 더욱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일본은 보편적 국제규범의 앞에서 입을 다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12일 유엔인권위원회 산하 고문방지위원회가 권고한 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에 대하여 일본 측이 일단 법적 구속력을 내세워 반박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국제법이라는 창과, 국민정서라는 방패를 잘 조합하면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 재협상에서 승산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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