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문재인 정부, '무조건'이 지름길이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문재인 정부, '무조건'이 지름길이다 [정욱식 칼럼] 대화가 제재보다 강력한 이유
한반도 정세가 악순환의 구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와 압박이 북한의 잇따른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와 맞물리면서 반전의 기회가 좀처럼 찾아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진짜 안보'를 표방하면서 조속한 위기 해소를 다짐해온 문재인 정부는 주변국들에 특사를 파견하고 외교안보 책임자를 일부 임명·지명하면서 호시우보(虎視牛步)를 보이고 있다. 특히 미국과 북핵 공조를 재설계 하는 데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미 양국은 5월 16일 청와대 외교안보 T/F 팀장 정의용 전 대사(현 국가안보실장)와 매튜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회담을 갖고 네 가지 합의 사항을 내놓았다.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가 궁극적 목표 △제재와 대화를 포함한 모든 수단 동원 △북한과는 올바른 여건이 이루어지면 대화 가능 △과감하고 실용적인 한·미 간 공동 방안을 모색이 바로 그것들이다. 제재 모드를 유지하면서 조건부 대화 의사를 피력한 셈이다.

이러한 합의 직후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대화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대북 제재 강화를 전제로 삼으면서 "우리는 대화를 할 용의가 있지만, 핵 프로그램과 모든 형태의 실험의 전면중단(total stop)을 보기 전까지는 아니다"라고 강조한 것이다. 이를 두고 미국이 대화의 문턱을 '비핵화'에서 '핵 동결'로 낮춘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하지만 북핵 동결은 현실적으로 대화의 조건이 될 수 없다. 북한이 수용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한은 5월 21일 또다시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강행함으로써 핵보유국을 향한 '마이웨이'를 고집하고 있다. 미국이 조건부 대화를 고수하는 사이에 북한의 핵과 미사일의 고도화는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그래서 대화의 조건이 더더욱 멀어지고 있다는 점을 거듭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대북정책의 전면적인 재검토가 절실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미-중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새로운 접근법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실패한 정책을 답습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새로운 접근은 제재보다는 대화가 북한을 상대하는 강력하고도 실효적인 수단이라는 점을 깨닫는 데에서 시작될 수 있다. 제재든, 대화든, 그 목표는 북한의 전략적 셈법을 바꾸는 데에 있다. 그런데 제재 위주의 접근법은 핵보유국이 되겠다는 북한의 결기만 강화시켜왔다. 결과가 이를 말해준다.

일각에선 대북 제재가 약했기 때문이라며, 중국이 대북 송유관을 잠가서라도 북한을 굴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이 이에 굴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중국의 영향력에 대항하기 위해 '자주의 무기'로써의 핵무기의 필요성에 더욱 집착할 공산이 크다. 중국이 대북 제재를 강화해 북한의 언행을 바꿔보려고 할수록 중국의 영향력이 반감되는 게 북중관계의 역설적인 현실인 것이다.

그래서 북한 지도부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에는 대화만한 게 없다. 제재는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실상은 게으른 자의 선택이고 그래서 효과도 거의 없다. 반면 협상은 제재보다 훨씬 피곤하고 힘든 길이지만, 그 유용성은 제재를 압도한다. 과거의 경험이 이를 상당 부분 입증해주고 있다.

이제 무의미한 조건을 내려놓고 모든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협상의 시대로 진입해야 한다. 협상을 통해 달성해야 할 목표를 협상의 조건으로 삼음으로써 그 목표를 더욱 멀게 만드는 비외교적 행태도 바꿔야 한다.

2008년 이전까지도 북한과 미국이 서로 대화의 문턱을 쌓아놓고 상호 비방과 신경전을 벌이곤 했다. 그 문턱을 낮추고 삿대질하는 손을 악수하게 만든 나라가 바로 한국과 중국이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대의 한중관계는 잡았던 손을 놓고 서로 삿대질하는 사이로 돌변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이후 9년 동안 협상다운 협상은 한 차례도 없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문재인 정부는 '조건 없는 대화 재개'를 1차적인 목표로 삼아야 한다. 적어도 중국과 러시아는 이에 적극 동의할 것이다. 이들 나라와의 활발한 소통과 협력을 통해 양자든, 다자든 북한과 미국이 대화 테이블에 마주앉게 해야 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원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