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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초 개헌,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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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초 개헌, 괜찮을까? [프레시안-정치발전소 공동기획] ⑧ '빨리'보다 '제대로' 된 개헌을
정치발전소,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프레시안의 공동주관으로 신정부 출범을 맞아 "새 정부, '무엇을', '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기획시리즈를 시작한다. 이 기획은 정권인수, 신정부 출범의 조건, 외교안보, 행정, 협치, 복지, 노동, 개헌문제 및 선거제도 등 신정부가 직면해야 될 다양한 과제와 조건에 대해 분야별로 총 10회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편집자

기획 전편 보기


문재인 대통령이 5. 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고 밝힌데 이어 내년 지방선거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개헌 문제가 집권 초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야당들 역시 개헌 시기 문제에 관해서는 대체로 동의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향후 국회를 중심으로 한 개헌 논의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헌법은 국가의 근본 규범이자 이념의 총체라는 점에서 국민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간 개헌 논의를 통해 기본권, 지방자치 분야에서 일정한 합의에 이른 내용도 있지만, 30년만의 개헌이라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여러 논의들을 최대한 많이 담아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특히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권력구조 문제에 대해서는 각 당마다 의견이 다른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내년 지방선거까지 남은 1년 남짓의 시간을 고려하면 그 안에서 고민하고 논의해야 할 것은 너무도 많다. 모처럼 정치권이 개헌 시기 문제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개헌에 있어서 기한을 정하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개헌에 이르는 절차와 과정의 충분함이다. 이 글은 개헌의 전제와 과정은 어떠해야 하는지 등을 검토해 보고, 개헌 논의를 위해 우리 정치가 견지해야할 관점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사회적 합의가 결여된 개헌안 논의

그 동안 개헌은 주로 각 정치세력들에 의해 권력구조 개편의 관점에서 논의되어 왔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의 폐단이 지적될 때마다 그 주요한 원인으로 현행 헌법의 5년 단임 대통령제가 지목되었고, 그 때마다 각 정치세력들은 4년 중임 대통령제, 이원집정부제, 의회중심제 등 소위'제왕적 대통령제'의 해결을 위한 대안들을 제시하며 개헌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상당수 정치세력들은 실제 개헌 보다는 정국 주도나 정국 흔들기를 위해 상황에 따라 일관성 없는 개헌안을 주장해 왔고, 이들의 개헌 주장에 피로감이 쌓인 국민들은 개헌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특정세력의 개헌 주장에 대해서는 권력쟁취를 위한 정략적 수단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그 결과 각 대안들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논의는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가 마무리되던 2006년 헌법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4년 중임 대통령제를 내용으로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개헌 제안은 그에 필요한 정치권 내의 숙의나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이었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우호적이지 않은 여론과 야당의 반발로 철회되었다.

이후 국회는 2009년 및 2014년 두 차례에 걸쳐 개헌을 위한 국회의장 직속 자문위원회를 설치하고 개헌안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2009년에는 이원정부제 또는 4년 중임, 정·부통령제를, 2014년에는 6년 단임의 분권형 대통령제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등 당시의 정치지형에 따라 일관성 없는 대안을 제시하였다. 그 마저도 각 자문위원회가 그 결과보고서를 내놓을 즈음에는 정치권의 개헌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어 국회 내에서 각 정당 간 논의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18대 대선 전부터 개헌에 관하여 부정적 입장을 표명하고, 집권이후에도 개헌에 반대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최순실 사태 이후 지지율 급락의 위기에 빠지자, 이를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2016년 10월 24일 개헌 추진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국면 전환의 의도가 다분한 대통령의 개헌 제기에 대해 야당과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소추 가결에 즈음하여, 여야는 개헌 추진에 합의하고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발족하였다. 그러나 민주당이 처음부터 내년 지방선거를 개헌 시기로 제시한 것과 달리,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및 국민의당 3당은 대선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는 대선 정국에서 민주당 대선후보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3당 공조라는 전략적 의도가 다분한 것이었고, 1당인 민주당의 동의 없이 3당만의 개헌 합의로는 현실적으로 국회 통과 역시 불가능했다.

가장 많은 의견이 제시되어 온 권력구조에 관해서도 새로운 헌법에 어떠한 내용이 담길지 대다수 국민들은 여전히 예측하기 어렵고 각 대안의 내용조차 알기 어렵다. 그만큼 개헌에 대한 정치적 숙의는 부족했고 공론화도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탄핵정국을 거치며 새로운 국가와 사회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과 요구는 높아졌고 개헌에 대한 여론이 커지는 것 역시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국민들이 개헌을 바라는 이유는 탄핵 이후 더 나은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 때문이지 특정 세력에게 정치적 주도권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번 개헌은 촛불로 나타난 국민들의 열망을 반영하는 것이 최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2000년대 이후의 주요 개헌 논의

2. 개헌, 빨리하는 것보다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

개헌을 위해 논의해야 할 주제는 많고, 개헌 과정에서 헌법 이외에도 같이 논의해야 할 사안들도 많다. 충분히 검토하고, 폭넓게 논의하고, 넓게 합의해서 이번 기회에 우리 현실에 맞는, '오래 가는 헌법'을 만들어 가는 것이 기본 원칙이 되어야 한다.

권력구조는 선거제도, 정당제도, 의회제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사법권력, 지방분권, 감사원 독립 등의 문제와도 깊이 관련되어 있어 대통령의 임기나 국무총리에 관련된 헌법 조항만을 따져 볼 수는 없다. 기본권의 확대 역시 시급한 현안으로 안전권·망명권·정보기본권·환경권·보건권·성평등 등의 기본권 신설 부분에 관하여 많은 논의가 진행되어 있다. 지방자치 부분에 관하여도 지방정부의 자치권 확대가 시급하다는 요구 아래 헌법상 자치입법권의 확대, 국가 및 지방사무 배분 원칙의 규정, 자주재정권, 지방과세권 명시 등이 주장되고 있으며, 사법 부분에 있어서도 법원, 검찰 개혁을 위한 개헌의 필요성이 주장되고 있다. 다음은 개헌에 관련된 분야별 쟁점을 정리한 것이다.

분야별 주요 개헌 논의

<표>에서 보여지듯 개헌 과정에서 논의해야할 점들은 광범위하게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논의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주장하는 정당이나 정치세력마다 그 배경과 구체적인 개정 방향이 전혀 달라 다수·소수 의견이 정리되어 있지 않고, 심지어 쟁점조차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없는 개헌은 오히려 새로운 사회 갈등과 대립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30년 전의 9차 개헌에 비해 사회·경제는 훨씬 고도화되고 국민들의 권리의식은 높아졌다. 또 현행 헌법에 근거하여 수많은 법률들이 유기적 관계 속에 제정되어 있어,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각도에서의 검토가 필요하다.

올바른 개헌을 위해서는 내용적인 면에서 헌법적 문제에 관한 충분한 고찰이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 절차적인 면에서도 충분한 정치적 숙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각 정당이 개헌안에 대한 당론이 분명해져야 한다.

개헌안에 대한 당론을 정하기 위한 당적 논의 과정 차체가 개헌 논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각 정당은 최소한 권력구조에 관해서라도 빠른 시일 내에 당론을 확정하여 국민들에게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해야 한다. 다음으로 각 당에서 제시된 개헌안에 관하여 사회적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 시민사회, 학계 등 다양한 집단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하고 논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개헌의 시기 문제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개헌을 위해 각 정당이 밟아야 할 과정과 논의해야할 내용의 다양함을 고려하면 1년 남짓의 시간은 너무 촉박하다. 물론 개헌에 대한 정당 간 합의가 분명한 상황에서 대통령으로서 책임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탄핵정국 이후 수개월의 정치 공백 기간 동안 산적한 현안들과 개혁과제를 고려할 때, 상당히 큰 폭발력을 갖는 개헌 문제가 집권초부터 제기된다는 것은 우려스러운 면이 있다. 개헌의 내용을 만들고 합의하는 과정은 대통령이나 집권당이 일방적으로 할 수 없다. 지금과 같은 여소야대 구조에서 권력구조 문제를 포함한 개헌안에 대한 각 정당간 이견을 조율하는 것은 상당한 정치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개헌에 있어서는 물리적 시간을 지키는 것 보다는 내용과 절차를 제대로 밟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년 지방선거가 개헌 국민투표의 최적기인지를 미리 정해놓기 보다는 각 정치세력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국민과 함께 우리 정치문화에 맞는, 국민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합의안을 도출해 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3. 좋은 헌법 보다 좋은 정치가 먼저다

과거 개헌에 대한 여러 주장들은 개헌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다양한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어 온 측면도 있고, 정치의 실패를 헌법의 문제로 변명한 측면도 크다. 또 개헌이 모든 문제를 일시에 해결해줄 것이라는 기대도 위험하다.

어떤 내용의 개헌을 해야 할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라도 개헌이 아닌 정치적인 해결 또는 법률 개정을 통한 해결이 가능한지를 먼저 검토할 필요가 있다. 권력구조를 개혁한다고 최순실 사태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많은 과제들 중에서 무엇이 정치의 문제이고, 무엇이 헌법의 문제인지를 시민들이 판단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개헌에 필요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국운영에 따라 개헌의 필요성이 한순간에 사라지기는 어렵더라도 국민들의 개헌에 대한 요구 수준이나 그 긴급성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개헌을 둘러싼 논의가 말뿐이 아니라 실제 개헌을 위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헌을 가능케 하는 좋은 정치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 이 기획은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분권과 협치의 대한민국 국가 운영 모델 연구"의 일환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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