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애국의 역사를 통치에 이용한 불행한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했다.
반가운 발언이다. 애국적 열정, 민족주의 정서 등을 지배층이 통치 수단으로 쓴 사례는, 거의 모든 나라 역사에 있다. 예컨대 독일 사회민주당은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 당론을 접고 전쟁 수행에 협조했었다.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슬라브 민족에 대항하는 게르만 민족'을 내세웠는데, 제1야당이던 독일 사회민주당이 영합한 것이다. 결국 사회민주당의 지지기반인 노동자들이 황제가 밀어붙인 '성스러운 전쟁'에 동원돼 피를 흘렸다. '전쟁 반대' 원칙을 고수했던 로자 룩셈부르크 등 소수파는 결국 독일 사회민주당을 떠났다.
이런 역사 탓에 어느 나라건, 진보 진영은 대체로 '애국', '민족' 등의 단어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민족주의를 대중 동원 수단으로 쓰는 것, 공동체 내부의 다양한 모순을 덮는 용도로 이용하는 것 등은 모두 잘못이다. 하지만, 다른 측면도 있다. 보통 사람이 자기 공동체에 대해 느끼는 자연스런 애정과 자부심이 민족주의 정서로 드러나는 것까지 싸잡아 폄하하는 건 위험하다. 공동체에 애정이 있어야 개혁도 가능하다.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 없는 진보 담론이라면, 책상물림의 말장난일 뿐이다.
'애국' 내세워 다양성 무시할 권리, 누구에게도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전후해서 벌어진 '태극기 집회'를 보며 답답해했던 이들에게, 문 대통령의 6일 발언은 위안이 된다. 문 대통령은 말했다.
"독립운동가의 품 속에 있던 태극기가 고지쟁탈전이 벌어지던 수많은 능선 위에서 펄럭였습니다. 파독광부·간호사를 환송하던 태극기가 5.18과 6월 항쟁의 민주주의 현장을 지켰습니다. 서해 바다를 지킨 용사들과 그 유가족의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애국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그 모두가 애국자였습니다."
이런 발언으로 인해, 한국 사회는 분명히 한 발 더 진보했다. '애국'을 비판 세력에 대한 족쇄로 삼기란 전보다 어려워졌다.
문 대통령은 "애국하는 방법은 달랐"다고 했다. 이는 특정 세력이 '애국'을 함부로 독점할 수 없으며,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억지 단결을 요구할 권리 역시 누구에게도 없다는 뜻이다. 공동체 구성원의 개성, 다양한 주장을 '민족'의 이름으로 뭉뚱그리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발언이 나왔다. 바로 같은 날인 6일 저녁, <한겨레> 온라인 판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발언을 소개했다.
도 후보자는 "동북공정, 독도 침탈에 대비해 우리 역사관이 확고해야 한다. 학계의 문제제기는 잘못된 것이며, 만약 청문회 때 이 문제를 질문하면 그대로 (내 의견을) 답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확고한 역사관'이야말로, "애국의 역사를 통치에 이용한 불행한 과거"의 산물이다. 역사관, 즉 역사를 바라보는 눈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걸 확고하게 통일한다는 발상. 누구나 알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사 국정 교과서를 만들었던 의도, 그리고 그의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같은 시도를 했던 의도와 정확히 겹친다. '확고한 역사관'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애국이 통치의 수단이 아니듯, 역사 역시 권력의 도구가 아니다. "동북공정, 독도 침탈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역사를 도구로 삼는 태도가 과연 '반공', '국민 통합' 등을 내걸고 비슷한 시도를 했던 다른 정부와 얼마나 다른가. 아울러 주변 강대국의 역사 왜곡에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게 과연 합리적인지도 의심스럽다. 상대가 주먹을 휘두르니, 우리도 주먹을 쓴다? 주먹이 약한 쪽에게 불리한 게임이다. 한국이 왜 이런 방식을 따라야 하나. 상대가 억지를 부릴 때, 우리는 차가운 논리로 맞서는 게 합리적이다.
유사역사학, 현실의 모순 덮는 마취제
도 후보자는 과거 의정 활동을 하며 이른바 '유사역사학'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여서, 역사학계의 우려를 샀다. 가짜 역사책인 <환단고기>를 옹호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한국 고대사를 과장하는 주장을 옹호한 건 사실이다. 아울러 '유사역사학' 관련 저술가들과 모임을 갖기도 했다.
'유사역사학'의 해로운 건, 그게 엄밀한 실증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로지 사실(史實, 역사적 사실)이 아니란 점만 문제라면, 그저 역사학계가 감당할 몫이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무조건 싸우기만 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노동 현장에 분명히 있는 문제를, '고대사의 영광' 같은 감정적 언어로 덮자고 하는 태도는 잘못이다.
왜 자부심의 근거를 영토와 패권에서 찾나?
최근 들어 젊은 역사 연구자들이 '유사역사학' 비판에 활발히 나선 것도 비슷한 이유다. '유사역사학'의 주장은, 우리 공동체가 지닐 자부심의 근거를 '과거의 넓은 영토'에서 찾는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는 과거에 더 넓은 영토를 지녔던 민족을 만나면 자부심을 꺾어야 한다. 왜 그래야 하나.
자부심의 근거를 영토와 패권에서 찾는 '유사역사학'은 결국 '뉴라이트'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뉴라이트' 지식인들이 재평가하는 친일 지식인 윤치호는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라고 했다. 도둑을 물어뜯을 수 있는 힘을 가진 개만, 도둑을 보고 짖을 수 있다는 말이다. 전형적인 힘의 논리다. 이런 주장이 현실에서 어떻게 변주되는지, 잘 알고 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정규직이 될 만한 스펙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비정규직 차별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
'공부를 못하는 사람은 입시 경쟁을 비판할 자격 없다.'
'애국심'을 가질 근거
문 대통령이 잘 이야기했다. 우리가 '애국심'을 가질 근거는, 우리가 확보한 군사력과 경제력, 영토만이 아니다. "5.18과 6월 항쟁의 민주주의 현장"을 기억하며, 우리는 공동체에 대한 애정을 가질 수 있다. 제국주의 일본의 폭력 앞에서 "살이 찢기고 손발톱이 뽑혀나가면서도 가슴에 태극기를 품고 조국을 버리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들을 떠올리며, 선조들에 대한 긍지를 지닐 수 있다.
한국은 비록 주변국에 비해 영토가 좁고 힘이 약하지만, 폭력에 대한 저항을 통해 세운 나라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두 9차례 개정됐는데, 전문이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시작한다는 점은 변한 적이 없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 운동의 결과물이므로, 한국의 정통성은 1919년 3.1 운동에 있다. 총칼에 맞선 평화적 시위가 건국의 기초였던 것이다. 이는 항일무장투쟁에서 정통성을 찾는 북한과도 다른 대목이다.
'대륙을 호령하는 기상'에 열광하는 '유사역사학'의 태도는, 이 같은 헌법 정신과도 맞지 않다. 군사력으로 뒷받침되는 패권에 대한 집착은, 문 대통령이 언급한 '애국'과 거리가 멀다. 아울러 도종환 후보자의 역사 인식 역시 마찬가지다. '유사역사학'을 옹호하는 태도와 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는 양립할 수 없다.
국정 교과서 도입에 맞서 싸웠던 이들을 '식민사학자'로 몬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도 후보자는 "일본이 임나일본부설에서 임나를 가야라고 주장했는데, 일본의 연구비 지원으로 이 주장을 쓴 국내 역사학자들 논문이 많다. 여기에 대응해야 한다"면서, "관련 자료들을 찾아놨다"라고도 했다.
국내 역사학자가 일본 돈을 받은 대가로 임나일본부설을 옹호한 사례가 실제로 있다면, 대충 넘어갈 일이 아니다. 그러나 명확한 근거 없이 이뤄지는 성토와 배제라면, 박근혜 정부 문화체육관광부 시절의 '블랙리스트'와 다를 바 없다.
정말 안타까운 게 바로 이 대목이다. 도 후보자의 역사 인식에 경악하는 이들은 대부분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 역사 교과서 도입에 맞서 싸웠던 이들이다. 역사는 권력의 도구가 아니며, 역사 해석은 다양해야 한다는 신념이 국정 역사 교과서와 양립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좌파-식민사학자'라니, 세상에 이런 코미디가 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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