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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계 입장 발표, 도종환 후보자 '역사관' 논란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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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역사학계 입장 발표, 도종환 후보자 '역사관' 논란 본격화

청문회서 '도마' 오를 듯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이른바 '유사역사학' 논란에 휘말렸다. 이에 대해 한국고대사 학회가 13일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도 후보자에 대해 한국고대사학회는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의회 권력으로 학문 영역을 침해했고, 역사학계를 '식민사학'으로 매도하는 태도를 곧잘 표출해 왔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도 후보자와 가까운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현 상황에 대해 "쇼비니스트(배타적 국수주의자)들이 '민족'과 '애국'이라는 낱말로 대중을 선동하여 우리 사회를 야만과 광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평가했다.

나치즘과 유사역사학


한국 고대사 연구자들이 느끼는 이런 분노와 불안에는 이유가 있다. 한민족의 고대사를 대폭 과장 서술하는, 이른바 '유사역사학'은 학문적 근거가 없다. 군사정부 시절, 베스트셀러였던 <환단고기> 등이 이런 주장을 담고 있는데, 역사학자들은 <환단고기>가 조작된 역사책(위서)라고 본다.

극우 세력 및 일부 종교 세력이 후원했던 '유사역사학'은 과거 노동운동 및 진보적 사회운동을 허무는 데도 종종 동원됐었다. 전두환 정부 시절 보안사령부 정보처에서 일했던 강기준 씨가 설립한 다물민족연구소의 활동이 대표적이다. 구해근 미국 하와이대학교 교수는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에서 1990년대 노동운동을 약화시킨 게 '다물 민족주의'였다고 지적했다.

한국고대사학회는 20세기 독일 히틀러의 나치즘 및 일본 군국주의를 유사역사학이 낳는 위험을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했다. 제국주의 파시즘을 선동하는 소재로 종종 고대사가 이용됐다는 게다. 실제로 역사학자 기경량 박사는 <역사비평> 2016년 봄호에서 유사역사학의 연원을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냈던 안호상 박사의 활동에서 찾았다. 안 박사는 독일에서 철학을 전공했는데, 나치 파시즘의 영향을 받았다. 그가 제안한 '일민주의', '학도 호국단' 등에도 그 흔적이 있다. 그는 기존 역사학자들을 비난하면서 '한민족의 영광'을 강조했다. 기경량 박사에 따르면, 안 박사는 1974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데는 맥락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한 게 1972년이다. 이듬해인 1973년, 박정희 정부는 검인정 방식이던 국사 교과서를 국정화 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에도 역사학자들이 격렬히 반대했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부는 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4년, 안호상 박사가 활발한 활동을 벌인다. 기존 역사학자들을 격렬히 비판했다. 예컨대 당시 출간된 국정 국사 교과서에는 "단군 왕검은 제정일치 시대의 족장"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이에 대해 안 박사는 "단군은 한민족의 시조이자 숭배해야 할 존재"라면서 교과서를 저술한 역사학자들을 비난했다. 이런 행태는 과거 나치즘 및 일본 군국주의 역사에서 종종 봤던 것이다.


"영광스런 고대에 대한 허구적 집착, 환각제일 뿐"


한국고대사학회는 "영광스런 고대에 대한 허구적 집착은 현실의 문제들을 덮는다"라며 유사역사학을 '환각제'에 빗댔다.


한국고대사학회는 "환각제는 고통을 잠시 잊게 해주지만 질병을 치료하지 못한다"라며 박근혜 정부 시절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의 행태를 언급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시절, 유사역사학 관련 단체가 '탄핵 반대' 서명을 받았던 사례를 소개했다. 또 박근혜 정부가 국정 역사 교과서 도입을 추진할 때도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은 대부분 침묵했다.


반면, 유사역사학 관련 단체로부터 '식민사학자'라는 비난을 받은 역사학자들은 당시 국정 역사 교과서 도입 반대 운동을 주도했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이들 역사학자들을 '좌파'로 몰면서 비난했었다.


박근혜 정부가 되살린 극우 성향 유사역사학


유사역사학 관련 단체가 박근혜 정부에 호의적이었던 건 이유가 있다. 2000년대 들어 극우 민족주의가 한풀 꺾이면서, 함께 주춤했던 '유사역사학'이 되살아 난 게 박근혜 정부 시기였다. 박정희 정권이 키웠던 유사역사학 담론이 박근혜 정부에서 재활성화된 건, 상징성이 크다.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 첫 해인 2003년 광복절 경축사에 <환단고기> 속 문장이 포함된 게 대표적인 사례다. 그보다 앞선 2013년 4월 26일, 박근혜 정부는 '상고사 정립' 방침을 발표했었다. 이와 함께 교육부 관료 가운데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이 역사 연구 지원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자리에 발탁됐다. 아울러 '유사역사학' 친화적인 연구에 대대적인 자금이 지원됐다. 지난 2014년 8월에는 통일부 산하 통일연구원이 간행한 자료에도 <환단고기>가 길게 인용됐다. 박 전 대통령은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자신의 역사관을 드러냈었다. '유사역사학' 지원 흐름과 맞물려 관심을 끌었던 발언이다. 한국고대사학회는 "박근혜 정권 동안 유사역사 세력이 확산되었다"라며 "심지어 학회의 학술대회장, 시민강좌에서 고성을 지르거나 몸싸움이 일어나는 장면도 흔치 않게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한국고대사학회는 "이명박 정권 이래 광장에 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완력을 행사하는 무리들이 이상스레 늘어난 현상과 겹친다"며 "지난 수년 간은 우리 사회에서 이성과 합리성이 공격당하며 억지 주장과 완력이 횡행하는 혼돈의 시간이었다"라고 평가했다.

"도종환 포함된 동북아특위, 학문을 겁박했다"

행정부뿐이 아니다. 국회에선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동북아특위)가 꾸려졌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국회의원들이 '유사역사학'을 옹호하는 일이 잇따랐다. 도종환 후보자 역시 동북아특위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한국고대사학회는 "(동북아특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환상적 민족주의에 젖어 학문을 겁박(劫迫)하고 연구를 방해했다"고 지적했다. "유사역사 주창자의 주장을 반복하며 학계가 오랜 연구를 통해 밝혀낸 사실조차 부정하고, 학설에 개입하려 들며 여러 학자를 불러 모욕적으로 몰아세웠다"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당시 국회 동북아특위는 동북아역사재단의 활동에도 깊이 개입했다. '유사역사학' 성향이 반영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활동의 발목을 잡곤 했다. 한국고대사학회는 동북아역사지도 사업 중도 폐기, 미국 하버드대학교 고대 한국 프로젝트 중단 등을 그 사례로 든다.

도종환, 김석동, 그리고 '가야사 복원'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탄핵당하고 보다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선 지금도 상황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도종환 후보자는 지난 7일자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임나일본부설에서 임나를 가야라고 주장했는데, 일본의 연구비 지원으로 이 주장을 쓴 국내 역사학자들 논문이 많다. 여기에 대응해야 한다"면서, "관련 자료들을 찾아놨다"라고도 했다.

고대사 연구자들은 일본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은 대가로 임나일본부설을 옹호한 학자가 실제로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금시초문'이라며 황당해 했다. 도종환 후보자의 발언은 도 후보자가 특정 연구자에 대해 오해하고 있고, 장관 취임 이후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체육관광부가 진보 성향 문화인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더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이 발언이 논란을 부르자 도종환 후보자 측은 입장을 발표했는데, 정작 이 발언에 대한 해명은 빠져 있었다. 그간 SNS(사회관계망 서비스) 활동을 하지 않던 역사학자들까지 SNS를 통해 비판을 쏟아냈다.


도 후보자만이 아니다. 13일 일부 언론은 이명박 정부 시절 금융위원장을 지냈던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가 문재인 정부의 금융위원장 후보자로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김 대표는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금융위원장에서 물러난 뒤, 유사역사학 성향 강연에 전념했었다. 역시 한민족 고대사를 과장하는 내용이다.

'역사의 도구화'는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 '가야사 복원'을 주문한 데 대해서도, 비슷한 불안을 느끼는 연구자들이 있다. 하일식 한국고대사학회 회장(연세대학교 교수)는 지난 4일 학회 홈페이지에 "대통령의 가야사 연구, 복원 '지시'가 부적절한 이유"라는 글을 게재했다.

어떤 이유건, 대통령이 특정 시기 역사 연구에 대해 지시하는 것은 '역사를 도구화'하는 것이라는 비판이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 역사 교과서 도입 등을 통해 역사를 통치 도구로 삼으려 한 데 대해, 역사학자 및 역사교사들이 전면 저항에 나섰는데, 다시 '역사를 도구화'하는 시도가 있어서야 되겠느냐는 힐난이다. 아울러 대통령의 이런 지시는 실제 역사 연구의 진보로 이어지기보다 지방자치단체가 건설업체에게 돈을 퍼붓는 효과를 낳기 십상이라는 지적도 곁들여졌다.

문 대통령의 '가야사 복원' 발언과 도 후보자 지명을 엮어서 보는 흐름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는 문화재청 및 박물관들이 있다. 문화재 발굴 및 보존, 전시 업무가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인데, 이는 대체로 고대사와 관련이 깊다. 고대사는 사료가 부족한 탓에 유물 및 유적에 의지하는 경향이 다른 시기 역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고대사에 대한 생각을 문 대통령과 도 후보자가 공유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자유한국당이 도종환 역사관 검증할 자격이 있나?"

도 후보자 청문회는 오는 14일 열린다. 도 후보자의 동북아특위 활동이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수 야당 역시 도 후보자의 역사관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 역시 나온다. 자유한국당 및 바른정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유사역사학을 되살렸던 박근혜 정부 시절 여당이었다는 점 말고도 이유가 많다.

'유사역사학' 비판서인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 공동저자 가운데 한 명인 기경량 박사는 자신의 블로그에 지난 2015년 4월 17일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 회의록을 게재했다. 내용을 보면, 유사역사학에 동조한 발언을 한 의원은 도 후보자말고도 많다.

그들 가운데 다수는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및 바른정당) 소속이다. 김세연 바른정당 의원, 이명수 자유한국당 의원, 정문헌 전 새누리당 의원, 김제식 전 새누리당 의원, 이상일 전 새누리당 의원 등이다. 당시 이들은 유사역사학의 시각을 동북아역사재단 소속 연구자에게 강요하는 발언을 연거푸 했다. 기 박사는 이 글의 제목을 "자유한국당이 도종환의 역사관을 검증할 자격이 있나"라고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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