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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험대에 오른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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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다시 시험대에 오른 민주노총 [진보논평] 사회적대타협은 노동자 양보론에 불과하다

사회적대타협

역사적으로 국제 공산주의 운동, 즉 노동계급의 혁명운동이 없었더라면 서구의 사회민주주의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서구의 사회민주주의는 한 때 사회주의와 같은 뜻으로 쓰였다. 그러다가 러시아 혁명 이후에 자본주의 체제 내의 한 정치적 조류(경향)을 가리키는 것으로 굳어졌다. 오늘날 흔히 말하는 사민주의가 그것이다. 그런데 사민주의 경향에는, 계속해서 퇴색했지만, 사회주의의 흔적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비록 제국주의에 따른 개량의 효과가 뒷받침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사민주의는 아래로부터의 노동계급의 투쟁이 혁명운동으로 발전하는 것을 제어하기 위해 지배계급이 노동계급의 요구를 일부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노동계급은 양보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강력한 투쟁을 통해서만 자본과 국가의 양보를 그나마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역의 사례는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단 한 번도 나타난 바가 없으며, 그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이른바 사회적대타협 담론은 사민주의가 탄생하게 된 역사적 배경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등장한 것이다. 사회적 합의주의에 기초한 사회적대타협은 기본적으로 자본과 국가가 노동계급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과 방안으로 제기되고 있다. 사회적대타협은 겉으로는 노, 사, 정이 각각 일부를 양보하여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자는 것처럼 비쳐지지만 그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사회적대타협은 한마디로 '손실의 사회화', 즉 노동계급에게의 '위기 전가'에 불과하다. 자본에게는 '공적 자금', '부자 감세', '재정 긴축', '민영화 정책', '자본(금융) 자유화' 등을 부여하고, 노동계급에게는 '비정규직 양산', '임금 삭감', '고용 불안(유연화)', '복지 후퇴', '노조 약화(파괴)'를 강요하고 있는 데에서 알 수 있다. 사회적대타협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역사적 산물이다. 신자유주의는 이전 시기의 타협의 산물인 케인스주의에 대한 자본의 반발과 공격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즉 자본의 입장에서 타협이란 이전 시기의 타협을 철회, 파괴하고자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사회적대타협에서 '사회적'이란 수식어는 국가의 계급적(친자본) 성격을 가리고, 노동계급을 개별 시민으로 해체시키려는 의도를 감추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여기서 '대(大)' 자는, 이에 응하지 않으면 노동조합에게 '집단 이기주의(강성귀족노조)'라는 낙인을 부치기 위한 큰 장치일 따름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는 애초에 보수세력에 의해 시작됐지만 이를 완성한 세력은 '진보'라 일컬어지고 있는 사민주의 정권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지구화)가 전면화 되는 데 있어, 독일 사민당(슈뢰더 정권), 프랑스 사민당(죠스팽 정권), 영국 노동당(블레어 정권)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미국과 일본에서도 보수정권이 아닌 리버럴(자유주의) 세력의 역할이 컸으며,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알다시피 아예 김대중, 노무현 자유주의 정권이 앞장서 신자유주의를 전면화했으며, 이명박근혜 보수정권은 이를 계승, 더욱 강화했다. 마찬가지로 사회적대타협 또한 보수가 아닌 '진보' 정권의 프로젝트다. '진보' 정권이 사회적대타협이란 프로젝트를 시도한 데에는 보수세력에 의한 노골적인 친자본(반노동) 정책을 어느 정도 제어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랬던 측면이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설령 일부 그러한 의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효과는 거의 없다는 것이 현실에서 드러났다. 사회적대타협은 보수세력의 친자본 정책을 제어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는 결과만을 낳고 있다. 사회적대타협이란 결국 노동계급의 양보를 전제한 위에서 그 속에서 양보의 양을 놓고 다투는 것인 만큼 자본에게는 더 없이 유리한 규칙(운동장)인 반면에, 노동계급 입장에서는 단지 손해를 덜 보는 것밖에는 다른 수단이나 대안이 있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사회적대타협은 자본과 국가가 노동계급을 향해 양보를 강요, 강제하는 기제일 따름이다.

노사정위원회

알다시피 한국에서의 노사정위원회는 지난 김대중 정권 시기에 도입됐다. 이때부터 한국의 노사관계, 노동시장은 노동계급에게는 다시 지옥 같은 환경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오늘날 이른바 '헬조선'이 탄생하게 된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헬조선'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 낳은 참사다. 스스로를 '신자유주의 좌파'라고 했던 노무현 정권은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고백했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라는 원성이 일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한국사회가 지옥 같은 경쟁사회로 변모하고, '부자 되세요'가 최고의 인사가 되는가 하면, '스펙 쌓기'가 인생의 목표가 되고, 낙오자는 모든 책임을 스스로 져야만 했다. '박정희 부활(신드롬)'이 일기 시작한 연유다. 이명박 정권이 등장한 배경이다. 여기서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게 나쁜 의도가 있었는가, 김대중, 노무현정권이 이명박근혜 정권보다 더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등을 묻는다면 그것은 질문이 잘못된 것이다. 의도를 묻는 게 아니다. 의도를 탓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결과만이 문제라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의도가 어떠하든 그 결과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지, 인정하느냐의 여부다.

물론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한국 노동계급은 이와 같은 현실을 막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를 결국 탈퇴했지만, 그 때는 모든 것이 끝난 뒤였다. 정리해고제 도입, 오늘날 비정규직을 양산하게 된 파견법 제정은 그 전에 이미 이루어졌다. 노무현 정권 시기에 새로 도입된 이른바 '비정규직보호법'은 비정규직 양산과 비정규직 차별을 완전히 제도화시키는 것으로 귀결됐다. 이 때문에 비정규직 철폐냐, 비정규직 차별 철폐냐가 노동계급 안에서 논쟁이 되기도 했다. '노동자(정규직) 이기주의', '강성(귀족) 노조' 이데올로기가 무차별하게 난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단지 자본과 국가에 의해서만 아니라, 이른바 '진보진영' 내부는 물론, 노동계급(민주노총) 안에서조차 수용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게 되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노동계급 안에서의 서열화(계층 분화)가 본격화 된 때문이다. 임금 조건만 따지면 대기업 정규직, 대기업 비정규직, 중소기업 정규직 순으로 고착됐으며, 거기에 속하지 않은 나머지 노동자는 최저임금에 묶이거나 그조차 받지 못하는 형편으로 몰리면서도 고용은 더욱 불안한 상태로 방치됐다. 이런 상태는 민간, 공공부문을 가리지 않았다. 국가가 기꺼이 악덕 사업주가 되었다.

오늘 펼쳐지고 있는 단면은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헬조선'은 어느 날 갑자기 태어난 게 아니라 켜켜이 쌓인 결과로 모습을 비로소 드러낸 것이다. 지난 촛불집회를 계기로 이른바 '적폐', '적폐청산'이 한국사회 화두로 등장했다. 그러나 적폐를 처음 쓴 것은 알다시피 박근혜 정권이다. 적폐는 정치적으로든, 대중적으로든 매우 조심해서 맥락에 맞게 쓰지 않으면 용어 자체가 청산되어야 할 적폐의 대상의 될 수 있다. 예컨대 사회적대타협은 적폐인가, 그렇지 않은가. 적폐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적폐는 비계급적, 몰역사적으로 쓰이면 매우 위험하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의 '주체'인가 문제는 정확히 따져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청산하고자 하는 적폐는 '무엇'인가도 또한 세심히 살펴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과연 그것들을 할 수 '있는가'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은 '친노동'일 뿐만 아니라 '친자본'이라고도 말했다. 취임 후 쏟아 낸 그 많은 모든 언사가 가리키는 바는 바로 이 한마디로 압축할 수 있다. 그러나 '친노동'과 '친자본'은 공존, 병행할 수 없다. 그 둘은 모순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 모순에서 최종적으로 누구를 택할지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그 정부가 놓인 객관적 조건에 따라 결정 날 수밖에 없다.

시험대

민주노총은 중앙집행위원회 회의를 통해 표결 끝에 일자리위원회에의 참여를 결정했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가 표결을 해야 했을 만큼 내부에 많은 고심과 이견이 있다는 얘기다. 알다시피 일자리위원회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 과제를 담당할 일종의 사회적(타협) 기구다. 다만 기존의 노사정위원회와는 달리 일자리라는 특정 정책을 다룬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그 역시 사회적대타협의 한 형식이라는 점에서는 노사정위원회와 궤를 같이 한다. 그런데 일자리위원회는 다루는 정책의 특성상 노사정위원회보다도 훨씬 더 민주노총에게 더 많은, 그리고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예컨대 정규직 양보론을 더욱 체계적으로 들이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부에게 민주노총과의 노정 직접교섭에 응할 것을 함께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게 성립되지 않는다면 일자리위원회의 참여를 재고할 수 있다는 결정도 병행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노총이 계속해서 일자리위원회에 참여할지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는 있다.

알려지기로 문재인 정부는 민주노총이 참여하고 있지 않은 기존 노사정위원회와는 별도로, 새로운 형식의 사회적대타협 기구를 만들려 하고 있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더라도 아마 민주노총이 기존 노사정위원회에 이제 와서 다시 참여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면서 사실상 그를 대체할 새로운 형식을 구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게 추진된다면 이야말로 가장 큰 틀에서 포괄적인 노사정 관계를 다루는 실질적인 기구가 될 것이다. 그런 만큼 이 기구에의 참여 여부를 놓고 민주노총은 훨씬 더 깊은 고민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지난 김대중 정권 때의 노사정위원회의 참여 여부를 놓고 혼란에 빠졌던 것 이상의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 이에 대한 최종 결정은 대의원대회를 통해서 정리하려고 하겠지만 그러나 그것만으로 혼란이 쉽게 그리고 말끔히 거둬질 것 같지는 않다. 전에도 그랬던 바가 있기 때문이다.

마침 민주노총은 올 연말에 새로운 직선 2기 집행부 선출을 앞두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직접민주주의의 경험을 살리고, 나아가 직선제 선거의 의의를 더욱 높이는 차원에서 이 문제를 조합원에게 직접 묻는 방식을 택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합의할 필요가 있다. 시기적으로도 적어도 올 연말 쯤 되어야 문재인 정부에 대해 민주노총이 그리고 조합원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가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단순한 형식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총 내 각 정파의 입장과 태도를 명확히 밝히고 조합원이 이를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게 함으로써 민주노총의 책임성을 높이는 한편 조합원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다. 물론 조합원이 어떤 판단과 선택을 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어떤 결정을 해도 그것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민주노총의 지렛대가 될 수 있으며, 되게 해야 한다.

그동안 민주노총은 적지 않은 내외적 어려움을 겪어왔지만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가장 민주적으로 조직되고 운영되는 조직이라는 점은 유효하다. 비록 관료화가 심각한 수준에 오른 지 오래지만 그래도 아직 민주노총에게는 희망과 전망이 있다. 그 많은 우려와 부정적 인식과 편견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은 벌써 3년 전에 직선제 선거를 훌륭히 치른 경험을 가지고 있다. 지난 촛불집회에서 누가 뭐래도 민주노총의 역할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그 전 2016년 총선에서도 '총선공투본'을 통해 '진보-좌파'를 아우른 역량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2015년 박근혜 정부에 맞서 싸운 저력을 가지고 있다. 민주노총에게는 힘이 있으며, 그 힘을 스스로 키워왔다. 물론 채워야 할 부분과 바꿔야 할 많은 것들을 과제로 안고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으로서의 기본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노동조합의 기본은 정권과 자본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다. 투쟁하기 위해서는 사회적대타협이 아니라 가장 먼저 '노동기본권'을 쟁취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조합원을 믿고 기꺼이 역사의 시험대에 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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