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남북 이산가족 상봉 및 군사회담 제의를 통해 남북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17일 "과거 7.4 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및 10.4 정상선언에서 합의한 대로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인 남북이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한반도 평화와 긴장 완화를 주도적으로 추진해 나가고자 한다"며 이산가족 상봉과 군사 당국회담 제안 배경을 밝혔다.
조 장관은 "두 가지(이산가족 상봉 및 군사분계선 적대 행위 중단) 사안은 한반도 긴장 완화와 남북 협력을 위한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이산가족 상봉은 어떤 정치적 고려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측 상봉 신청자는 13만 여명이며 이중 생존자는 6만 여명에 불과하고 그 중 63%가 80대 이상으로 매년 3000여 명이 사망하고 있는 상태"라며 "남북의 많은 고령의 이산가족들이 생전에 한 번만이라도 가족을 만나고 성묘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군사 당국회담과 관련해 조 장관은 "남북 군사 당국이 대화를 통해 군사분계선 일대의 우발적 충돌 위험을 제거하고 긴장상태를 완화해 나가는 것도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중요한 과제"라며 "북한이 진정으로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을 추구하고 7.4 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및 10.4 정상선언을 존중한다면 우리의 진정성 있는 제안에 호응해 나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 장관은 이어 "남북 간 긴장 완화와 현안 문제를 협의해 나가기 위해 판문점 남북 연락채널 및 서해 군 통신선이 조속히 정상화되어야 한다"면서 남북 간 연락 채널 복원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는 북한에 대해 적대시 정책을 갖고 있지 않으며, 북한의 붕괴나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며 "핵과 전쟁 위협이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가 우리 정부가 추구하는 일관된 목표"라고 밝혀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남북, 한미 연합 군사 훈련 논의하나
정부는 이날 남북 군사회담을 제의하며 대북 확성기 문제를 포함, 한미 연합 군사 훈련 등 북한의 관심 사항에 대해서도 회담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이에 북한이 어떻게 호응할지 주목된다. 조명균 장관은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이 회담에서 다뤄질 수 있느냐는 질문에 "상호 관심사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한다는 측면은 대통령이 베를린 구상을 통해 말한 바 있다"며 "북측이 호응해 온다면 새 정부 들어서 첫 번째 남북대화가 되는 만큼 상호 관심사들을 자연스럽게 논의할 수 있다"고 답해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을 의제에서 배제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날 북한에 군사 당국 회담을 제의한 서주석 국방부 차관 역시 회담 제의에서 언급된 '적대 행위'의 구체적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적대행위 범위에 대해서는 현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특정하기보다는 북한의 반응들을 보면서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답해 회담 의제가 열려있다고 밝혔다. 군사회담 수석대표의 급을 구체적으로 상정하지 않은 것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상호 관심사를 이야기해보자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접촉과는 달리 군사회담 수석대표의 급을 설정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조 장관은 "회담이 개최된다면 논의될 수 있는 사안들을 감안, 군사 회담의 형식적인 측면은 열어 두고 북한에 제의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어떤 급이 수석대표로 나가고 어떤 (회담) 형식이 될 것인지는 북한의 반응을 보면서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이 군사 회담에 대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경우 정부가 선제적으로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를 취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조 장관은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북한 반응을 보면서 회담 개최를 준비해 나가는 측면에 집중하고자 한다"고 답했다. 조 장관은 "저희가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은 7월 27일을 계기로 해서 군사분계선의 적대 행위를 중지하자는 제안이 있었고, 시점상 남북 군사 당국 회담의 조속한 개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군사적 적대 행위 중단을 강조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접촉 의제에 대해서도 열려 있는 자세를 보였다. 북한이 지난해 4월 남한으로 들어온 북한 식당 종업원 12명과 탈북자 김련희 씨를 북한으로 돌려보내야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할 수 있다고 밝힌 것과 관련, 조 장관은 "북측에 제의한 대로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현안 문제를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로 제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일단 북측의 반응을 봐가면서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말해 북측이 제기하는 사안들을 완전히 거부하지는 않을 뜻임을 보였다.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협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인 을지 프리덤 가디언(UFG)이 실시될 경우 정부가 훈련에 좀 더 유연하게 접근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조 장관은 "그런 사항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토된 것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처럼 구체적인 의제와 형식을 특정하지 않은 것은 북한을 회담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유인책의 일환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북한이 남한의 이번 제안에 응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북한이 호응하지 않는다면 어떤 대책을 준비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조 장관은 "북한의 반응을 앞으로 지켜봐야겠지만 반응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제안이 실현될 수 있도록 끈기 있게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북측에서 강조하고 잇는 것처럼 북측이 6.15와 10.4 선언 정신을 존중한다면 우리의 제안에 호응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며 북한의 호응을 촉구하기도 했다.미국은 제재, 한국은 대화?
일각에서는 미국이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들을 일괄적으로 제재하는 이른바 '세컨더리 보이콧'을 염두에 두고 있는 와중에 남한이 북한과 대화를 추진하면서 한미 간 대북 정책이 '엇박자'를 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대해 조 장관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해서는 제재와 대화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북한이 비핵화 방향으로 나오도록 노력한다는 기존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이번 대북 제안에 대해 미국에 사전 통보하거나 협의를 거쳤느냐는 질문에 조 장관은 "한반도 평화문제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풀어 간다는 측면에 대해서는 한미 정상회담, G20 등에서 국제사회와 의견을 같이 한 부분"이라며 "그러한 범위 내에서 상호 협조는 이뤄지고 있다"고 답했다. 북핵 문제의 진전이 없이 북한이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발사하는 등 여전히 군사적 행동을 취하고 있음에도 회담을 제안한 이유에 대해 조 장관은 "초기적 단계의 남북 관계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조치"라며 "본격적인 남북 당국 간 대화는 북한의 비핵화 문제 등에 대한 북한의 태도 변화 및 상황 변화를 지켜보면서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북한이 계속 군사적 행동을 이어가더라도 현재 입장을 유지할 것이냐는 질문에 조 장관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도발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으로 대처해 나간다"면서도 "제재·압박을 가하는 동시에 대화 등 모든 가능한 수단을 다 동원해서 (문제를) 풀어간다는 입장을 견지할 것"이라고 밝혀 북한과 대화의 끈을 이어갈 것이라는 의중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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