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번 위원회의 결정도 그동안 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어 집행되어 오던 원전 건설을 포함한 에너지 정책에 일반 시민의 의견이 직접 반영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충분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참여정부 시기에 시민단체 대표가 국가에너지위원회에 참여하여 간접적으로 에너지 정책에 시민 사회가 관여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이번 '시민참여단'을 통한 정책 참여와는 질적인 차이를 보인다. 이들 시민참여단은 임의 추출 방식으로 직업, 나이, 지역 등을 고려하여 '일반 시민'을 대표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시민단체 대표와도 다를 수 있는 시민의 의견을 정책 결정에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론화위원회가 그야말로 '일반 시민'의 대표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시민참여단'을 선정하게 되면, 에너지 정책에 관한 첫 번째 국내 합의회의 경험이었던 2004년도 '우리나라 전력 정책의 미래에 대한 합의회의'가 갖고 있던 시민 대표성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시민 참여로 국가전력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자는 목표로 시도했던 이 합의회의는 시민단체인 시민과학센터가 주최하면서 재정적인 한계로 임의 추출 방식으로 참여 시민을 선출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촉박한 시일로 인해 여러 한계가 노출되고 있기는 하지만 '시민참여단' 운영은 국내 에너지 정책에의 직접적인 시민 참여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신고리 5·6호기 공사는 전력수급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고 원자력 발전의 기술적 안전에 관한 논란도 얽혀 있는 까닭에 이와 관련한 지식이 일천한 일반 시민들이 어떻게 정책 결정에 관여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발표되자 마자 연일 전기요금 폭등과 전력 수급 불안정을 내세워 탈원전 반대 여론을 조성하고 있는 조중동 일간지와 경제 신문들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원자로를 설계하고 핵분열 반응에 가장 적합한 재료 물질을 연구하는 원자력 공학자들이 그럼, 원자력 발전소의 기술적 안전을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일까? 1975년도 미국 MIT 노먼 라스무센 교수팀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원자로 안전성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원자로가 노심용융으로 방사능을 대량 유출될 확률을 10억 년에 한번으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보고서가 나온 지 4년도 채 안되어 쓰리마일 원전 노심 용융 사고가 발생하고 1986년 체르노빌 사고가 발생하면서 이 추정치는 폐기되었다. 이들 사고 발생 이후 미국규제위원회는 현실을 반영하여 원자로 설계를 할 때 노심용융이 일어나는 사고 확률을 10000년에 1회로 가정하도록 하였다. 이 가정은 체르노빌 사고 이후 25년 만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서 다시 한번 폐기할 운명에 처해졌다. 이런 원전 전문가들의 불확실한 지식에 근거하여 원자력 발전의 미래를 판단해야 하는 것일까?
원자력 발전소처럼 복잡한 기술들이 보이는 위험은 전문가들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같은 사망 확률을 보이는 위험이라도 자신이 기꺼이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위험과 그렇지 않은 위험의 경우 사람들은 다르게 판단하는 것이 알려졌다. 원전이 들어서 있는 주변 거주민들의 경우, 신규 원전으로 인한 경제적 보상으로 수용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원전은 다른 지역 주민들과 달리 그렇게 위험한 것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위험이나 안전에 대한 판단은 다만 전문가들의 수치 계산에 근거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위험에 관한 정확한 답을 줄 수 없다면, 위험을 원천적으로 피하기 위해 원전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일반 시민의 판단은 무지한 판단이 아니라 합리적인 판단인 것이다. 이런 까닭에 유럽 국가들에서는 위험을 동반하는 과학기술 도입 과정에 전문가들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판단도 반영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도화하게 되었다. 네덜란드에서는 1981년에 전력 분야에 원자력 발전을 도입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가열되자 1981년부터 1984년까지 "에너지 정책에 관한 광범위한 사회적 논쟁"을 조직하여 모든 네덜란드 시민이 참여하여 에너지 생산과 소비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도록 한 바 있다. 독일의 경우도 2011년 원전 폐쇄 일정을 결정하기 위해 원전 전문가 이외에 주교, 환경단체 대표, 사회과학자 등 비전문가가 참여하는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운영하여 탈원전 정책에 반영한 바 있다.
신고리 5·6호기는 원전 산업 측이나 원전 주변에 거주하는 지역 주민들에게는 경제적 이윤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시민들에게는 원전 사고 위험원으로 판단되기도 한다. 또한 어떤 에너지 미래를 우리가 바라는가에 따라서도 달리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해석에는 누구도 정답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공사 중단의 판단이건 계속의 판단이건 어떤 결정이든 일반 시민들의 생활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때문에 우리는 일반 시민으로서 이번 결정에 참여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정부의 일방적인 판단으로 지금까지는 값싼 전기를 선택하는 정책만을 강요받았다면 이제는 다른 정책을 우리가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값싼 전기 대신 "착한" 전기, 전기 생산으로 누군가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하지 않을 수 있는 전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 우리 스스로의 참여 선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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