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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무치' 박기영, 젊은 과학도들 "이 현실이 너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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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후안무치' 박기영, 젊은 과학도들 "이 현실이 너무 슬프다" [기자의 눈] "문재인 정부,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겠다더니"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일부 언론을 통해 '황우석 사태'와 관련된 자신의 책임을 전면 부인했다. 형식적 사과조차 한마디 없었다.

첫째,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에 대한 연구비 몰아주기 의혹. 박 본부장은 8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다 부처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유치한 것이다. 통으로 지원한 것은 아니다. 내가 연구비를 해드리거나 그런 적은 없다"고 했다.

덧붙여 "그 당시에 황우석 박사의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는 여론이 굉장히 높았고 여기저기에서 많이 황 박사의 연구를 유치하려고 해서 황 박사가 연구비를 신청하면 유리했다"며 "제도 속에서 황 박사가 연구비를 딴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박 본부장은 지난 2005년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 시절 "황 교수 팀의 연구를 심화 발전시키기 위해 모든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직접 265억 원의 지원계획을 밝힌 장본인이다. 황우석 프로젝트를 대규모 국가적 사업으로 격상시키고 홍보에 앞장섰던 나팔수였다는 얘기다.

둘째, 황 교수의 2004년 <사이언스> 논문 무임승차 의혹. 박 본부장은 조선비즈 인터뷰에서 "(2001년부터 2004년까지) 3년을 지켜보며 같이 연구했다"고 했다.

그는 "줄기세포 연구를 대상으로 절차를 어떻게 가져가고 내부 규제를 할 수 있을지, 당시 하던 식으로 법으로 정하는 규제 방식이 아니라 규제 방식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연구윤리 부분에서 자신의 기여가 분명히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 해명은 지난 2006년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사이언스> 논문 공저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박 본부장의 역할에만 '기여없음'이라고 밝혔던 공식 발표와 배치된다. 물론 그는 과거에도 "생명윤리에 관한 자문을 해줬다"며 무임승차 의혹을 부인한 바 있다.

하지만 조작된 <사이언스> 논문의 또 다른 치명적 결함은 그가 기여했다고 주장하는 연구윤리 분야에 있다. 2005년 당시 황 교수팀 소속 여성 연구원의 난자 기증 등 난자 수집 과정의 비윤리성이 뜨거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서울대 조사위원회 발표대로 이름만 올렸다면 무임승차이고, 박 본부장 주장대로 기여를 했다면 학자로서 해서는 안될 짓을 한 것이다.

이 문제에 박 본부장은 자신의 역할이 "난자 기증 과정과는 상관없다"고 당시에 이미 발뺌했으니 새롭지는 않다.

하지만 그가 이제 와 기여했다고 주장하는 '규제 업그레이드'는 황우석 교수의 연구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쪽으로 제도 변경을 추진했다는 점을 자인한 셈이다. 이는 시민단체와 과학계가 박기영 발탁에 반발하는 핵심 이유 가운데 하나다.

김병수 시민과학센터 부소장은 8일 TBS 방송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에 출연해 "당시 인간 배아 복제를 허용할 것이냐 이런 논란이 사회적으로 크게 있었다. 그 때 (박 본부장이) 규제에도 개입을 해서 황 박사가 실정법을 위반하지 않고 실험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줬다"고 했다.

종합하면, 황우석 신드롬을 조장해 막대한 국가재정을 퍼붓고 황우석 맞춤형으로 규제의 빗장까지 풀었던 당사자가 12년이 지난 지금, 자신의 과거 행위를 여론과 제도에 따른 조치였다고 주장하는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유체이탈 화법은 황우석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선 "그렇게 논문을 쓰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한 대목에서 정점을 찍는다. 조작과 허위로 판명돼 세계적 망신을 샀던 논문에 여전히 기여했다고 주장하는 이 공저자는, 자신을 향한 시민사회와 과학계의 비판이 무언지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방증이다.

▲ 2005년 5월 열린 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밝게 웃는 황우석 박사와 박기영 당시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 ⓒ 연합뉴스

이런 인사에게 문재인 대통령은 범부처 연구·개발(R&D) 컨트롤 타워라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다. 그의 손에 연간 20조 원에 달하는 R&D 예산 심의·조정권한, 기획재정부가 갖고 있던 R&D 예비타당성 조사권한이 들어갔다.

청와대는 박 본부장을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한 핵심과학기술 연구개발 지원 및 과학기술분야의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나갈 적임자"라는 입장에서 물러섬이 없다. 시민사회단체, 과학계, 자유한국당부터 정의당까지 민주당을 뺀 모든 정치세력, <조선일보>에서 <한겨레>까지 거의 모든 언론이 이구동성으로 박 본부장 임명을 부적절하다고 비판해도 요지부동이다.

황우석 사태 당시 배아줄기세포 조작을 밝혀냈던 과학인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브릭(BRIC·생물학연구정보센터)의 커뮤니티가 다시 들썩인다.

한 회원은 "(황우석 사태는) 노무현 정권의 최대 실책 중 하나인데 그 당시 청와대의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을 연구비 총괄책으로 복귀 시킨다면 앞으로 젊은 과학자들이 이분의 행적을 따라해야한다는 말인지 묻고 싶다"고 썼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회원들도 9일 성명을 냈다. 어느 몇 대목을 집어 옮기는 것으론 젊은 과학인들의 참담함과 절망감을 온전히 담아내기 어려울 것 같아 전문을 싣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꼭 일독해보길 바라며.

박기영 교수는 정말 아니다!

오늘 우리는 긴 겨울 광장에서 촛불과 함께 변화를 꿈꾸던, 과학기술인들의 절망을 본다. 문재인 정부는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박기영 순천대 교수를 임명했다. 혁신의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오히려 그 이름은 과학기술인들에겐 악몽에 가깝다.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인사를 심각하게 재고하길 기대한다.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과학기술인들의 희망을 담아 문재인 정부가 제안한 중요한 자리다. 국가연구개발(R&D) 예산권과 심의 및 조정, 연구성과 평가 등을 다루는 차관급 조직으로, 관료나 기업 출신이 아니라 과학기술 현장을 아는 인물이 선임되길 모두가 바랐다. 첫 리더는 상징적이다. 그는 과학기술계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야 하며, 그 지지를 바탕으로 국가 연구개발의 혁신을 이룰 수 있어야 하고, 나아가 그 연구개발 결과를 치열한 국제경쟁의 무대에 세워야 한다. 박기영 교수는 그런 리더십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다.

박기영 교수는 과학기술계가 바라는 철학을 공유하지 않는다. 그는 권력을 쥐었던 참여정부 시절, 스타 과학자 육성을 중심으로 한 언론플레이를 통해 개인의 정치적 야망을 달성하려 했고, 정권교체가 이루어지자마자 전공도 아닌 4차산업혁명 관련 저술로 다시 나타나 유행을 좇는 모습을 보였다. 혁신은 유행을 모방하는 행위나 소수의 스타과학자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혁신은 유행을 만드는 과정이며, 시스템적인 전환으로부터 나온다.

박기영 교수는 황우석 사태의 최정점에서 그 비리를 책임져야 할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성찰도 보여주지 않았다. 황우석 사태가 마무리되고 1년도 지나지 않아 등장한 인터뷰에서, 그는 황우석을 여전히 두둔하는 모습만을 보였다. 그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어떤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보냈는지, 과학기술계를 위해서는 어떤 희생을 했는지 분명하지 않다.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자는 미래를 만들 수 없다. 혁신은 과거에 대한 철저한 성찰과 반성으로부터만 나온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 실리콘 밸리 혁신의 중심엔 젊고 유능하며 바닥에서부터 기업을 일구어낸 인물들이 포진하고 있다. 혁신은 혁신을 추진하는 집단의 구성원들이 모두 능력을 인정하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리더를 필요로 한다. 대만은 최근 디지털 부분을 총괄하는 장관에 실리콘밸리 출신의 해커이자 트렌스젠더인 오드리 탕을 임명했다. 그는 35세다. 이런 혁신적인 인사까지 바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박기영 교수에겐 과학기술인들이 따르고 지지를 보낼만한 능력과 리더십조차 없다.

우리는 황우석 사태라는 낙인을 찍어 한 과학자의 복귀를 막으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과학기술혁신본부장으로 박기영 교수가 적합하지 않으며, 그 이유는 그에게서 어떤 혁신의 상징도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공정거래위원장과 외교부장관이 임명될 때, 과학기술인들은 희망을 걸었다. 우리도 멋지고 새로운 리더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창조과학자와 책을 함께 쓴 기업가 출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임명되었을 때, 우린 인내했고,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게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철저한 인사의 수난을 본다. 대통령이 과학기술을 모른다면, 현장에 겸손히 물었어야 했다. 우리는 탄핵된 대통령의 독단에 질렸다. 외교, 안보, 국방, 행정, 경제 관련 인사에선 했던 일을 과학기술계 인사엔 적용하지 않는 건, 과학기술계에 대한 무지 혹은 천대로밖에 볼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사람 사는 세상을 약속했다. 과학기술계에도 사람이 있다. 그 사람들은 산업화 시기 박정희 독재정권의 경제개발 프레임에 갇혀 국가에 희생하는 부속품으로 취급받았다. 한국 경제의 발전은 그들에 대한 처우 개선과 연계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사람이 아니라 국가경제개발계획의 부속품이다. 4차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아젠다 어디에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희망이라면, 그 사람에겐 희망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 나라에서 자랑스러운 과학기술인으로 살고 싶다. 우리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고, 우리가 존경할 수 있는 리더가 과학기술계를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한국 과학기술계는 단 한 번도 그런 리더를 가져보지 못했다. 나라가 나라다워지려면, 과학이 과학답고, 공학이 공학다우며, 기술이 기술다워야 한다. 국가 경제의 기반이 되는 과학기술계가 바로 서지 않고서는 나라는 결코 나라답게 되지 못한다.

2016년 11월 4일, 우리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고 새누리당의 책임을 묻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런 우리가 촛불 시민혁명으로 들어선 새 정부에 대해 이런 비판의 글을 내놓을 수밖에 없게 된 현실이 너무도 슬프다. 문재인 대통령이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인사를 심각하게 재고하길 아픈 마음으로 바란다.

2017년 8월 9일 0시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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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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