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할지구대 순찰차에 정복 입고 무더기로 학교에 출동..."메뉴얼 안 지켜 2차 피해까지 당해"
의붓아버지가 10대 딸과 친구들에게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신고가 들어온 지 3개월이 지났지만 경찰은 아직 행적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어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부산성폭력상담소는 10일 부산 해운대구의 한 고등학교 여고생 4명이 중학생이던 지난 2015년 말 의붓아버지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을 올해 5월 중순 학교 교사에게 털어놓으며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 양은 의붓아버지에게 "같이 마사지를 받으러 가자"는 말을 듣고 따라나섰다가 인근 모텔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지난 2016년 초에도 의붓아버지가 자신을 모텔로 유인해 다이어트에 좋은 약이라며 주사를 놓고 성폭행했다고 A 양은 덧붙였다. 또 주사를 맞고 나면 온몸에 힘이 빠진 A 양은 정신이 혼미한 상태여서 저항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A 양은 자신의 어머니가 충격을 받을까 봐 이같은 사실을 숨기며 고민하다가 올해 5월 학교 친구에게서 또 다른 피해 사실을 알게 됐다.
친구 B 양이 지난 2015년 초 A 양의 집에 놀러 갔다가 다이어트에 좋다는 A 양 의붓아버지 말에 속아 주사를 맞고 모텔에서 성추행까지 당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여고생 2명은 A 양의 의붓아버지에게서 "내 첫사랑이랑 닮았다", "애인으로 지내자"는 등의 문자메시지를 여러 차례 받기도 했다. 피해 학생들은 고민 끝에 올해 5월 학교 교사에게 이런 사실을 알렸고 교사는 경찰에 신고했다.
부산시교육청 건강생활과 권진옥 장학사는 "5월 24일에 해당 학교에서 피해사례를 인지하고 교육청과 경찰에 신고했다"며 "112 신고에 따라 관할인 해운대경찰서에서 처음 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의붓아버지에 대한 경찰의 수사는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재 수사가 3개월째 이어지고 있지만 의붓아버지는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최초 교사의 신고로 해운대 반여지구대에서 출동한 경찰관 여러 명이 순찰차를 타고 제복을 입은 상태로 학교에 찾아와 피해 학생들과 면담을 하는 과정에서 범죄 피해 사실 일부가 학교에 알려져 A 양 등이 정신적 피해까지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해운대경찰서 여성청소년과 황진홍 과장은 "5월 24일 최초 신고 내용이 '여학생이 친구 아버지로부터 문자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라는 내용이라 성폭행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신속하게 간다고 지구대에서 출동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성폭력 관련 신고였다면 우리가 그렇게 가지 않을 텐데 최대한 빨리 가는 게 목적이다 보니 그렇게 된 거 같다"며 "이미 제복을 입고 간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나 본지 확인 결과 학교 측은 경찰관계자와는 전혀 다른 증언을 했다. 학생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경찰의 초동 대응이 얼마나 안일했는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이어 해운대경찰서 측은 "성추행 사건은 해바라기 센터에서 피해자 조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1주일 정도 시간이 걸렸다"며 "사건 장소가 관할이 아니다 보니 억지로 하다 보면 내부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이송하게 됐다"고 또다시 변명했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해운대경찰서 류해국 서장은 "나도 모 통신사 보도를 보고 나서야 알았다"며 "우리 학교 학생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우리가 하는 게 좋았을 텐데 나도 아쉽다"는 말로 비난을 자초했다.
사건을 이송받은 양산경찰서와 금정경찰서 또한 신고 이후 2달이 다 되어 가는 상황에서 아직 행적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수사가 미흡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편 피해 학생들과 상담사들은 해운대경찰서에서 수사를 진행하다가 뒤늦게 관할이 아니라는 핑계로 양산경찰서와 금정경찰서로 사건이 이송되면서 의붓아버지의 행적은 커녕 3개월째 지지부진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경찰 측을 강하게 비난했다.
현재 A 양과 친구 B양은 "경찰에 신고한 지 석 달 가까이 돼가는데 의붓아버지의 행방조차 찾지 못해 되레 보복을 당할까 봐 두렵다"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해당 학교의 생활지도교사는 "그날은 사람이 많이 왔었다. 보통 형사분들 와서 조사하고 하던데 제복을 입고 많이 오다 보니 학생들의 시선을 끌었다"며 "남자 경찰들이 조사하다가 여학생들이기 때문에 나중에서야 여자 경찰이 왔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와 같은 경찰의 수사 태도에 대해 부산성폭력상담소 서지율 사무국장은 "경찰에 신고를 했음에도 곧바로 잡지도 못하고 해운대경찰서에서 갑자기 금정경찰서와 양산경찰서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이관을 했다"며 "6월경에 이관한 것으로 아는데 이렇게 수사가 오래 진행되자 아이들이 초조해하며 왜 붙잡질 못하냐고 분노하며 불안에 떨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 빈번하게 발생하는 청소년 대상 성범죄에 대한 일선 경찰들의 안일한 대처는 결국 우리 아이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로 남게 됐다. 경찰의 적극적이고 책임 있는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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