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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서 숭늉 찾는 '노동회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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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우물에서 숭늉 찾는 '노동회의소'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가입률 10% 빈약한 노조, 과도한 형식 지탱할 수 없다

90% 미조직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기구로 '노동회의소'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기존의 노조가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조직률 10%에 자족하면서 노조가 절실하게 필요한 비정규직이나 중소 영세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게는 무력하거나 무관심하다는 전제가 깔렸다. 하지만, 노동회의소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첫째, 노동회의소를 법정 강제 가입 기구로 할 것인가 여부다. 특정 계층에 대해서 특정 단체로의 가입을 법률로 강제하는 것은 기본적 자유권인 '결사의 자유(Freedom of Association)'에 거스른다. 노동자단체 가입의 자유를 법률로 보장하는 것과 노동자단체 가입 자체를 법률로 강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둘째, 노동회의소 구조와 운영에서 노동자 대표성과 주도권이 제대로 보장될 것인가다. 17개 시도 및 227개 시군구, 도합 244개 지자체에 설치될 노동회의소는 지도부를 어떻게 선출하고, 실무자를 어떻게 선발할 것인가.

비정규직-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대통령선거 할 시간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해 출퇴근길에 사장 눈치 보는 게 우리 현실이다. 노동회의소의 지도부 후보로 나갈 물리적 금전적 여유는커녕 자신을 대리할 지도부를 뽑으러 투표할 시간 내기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선거로 뽑히는 지도부와 실무자 중에서 진짜 90%는 얼마나 될까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관료, 노조 간부, 학자, 변호사나 노무사 출신들이 주도하고 장악할 수밖에 없다. 노동회의소 한 곳당 10명을 잡아도 무려 2500명 규모의 조직인데, '노동자 대표성'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해 봤자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이상의 의미를 갖기 힘들다.

셋째, 노동회의소의 재원을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다. '고용'이라는 변태적 이름으로 실업보험으로서의 성격이 심각하게 훼손된 채 고용노동부 관료들의 삼짓돈이 되어버린 고용보험에서 갖다 쓰자는 제안도 있고, 노동자들의 월급에서 노조비마냥 고정적으로 떼자는 제안도 있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고용보험 기금에서 재원이 나오면 실업자 지원금은 그만큼 줄고 고용보험이 갖는 실업 구제 기능은 더욱 훼손될 것이다. 반면에 노동자들의 월급에서 강제적으로 떼려 시도할 경우 법률적 장애는 물론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자발적으로 노동회의소 회비를 내려는 노동자는 눈을 씻고 찾아봐야 할 것이다.

넷째, 노동회의소의 역할과 기능이 무엇인가다. 노동자들의 집단적 권리 행사가 애초부터 보장되지 않는 노동회의소가 90% 미조직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이 되는 것은 현실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불가능하다.

현대 자본주의 역사는 노동자의 실질적인 대변(effective representation)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 권리, 즉 단결권-교섭권-행동권이 보장될 때 가능함을 보여준다. 선의를 가진 국가가 앞장서 법률적 강제로 '단결'시킨다고 노동자들이 저절로 단결되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교섭권과 행동권(파업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 조직이 제대로 된 대변-대표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앞의 노동3권에 더해 정보권-협의권-참가권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금 회자되는 노동회의소는 어떤 권리를 보장받는가.

국가와 자본이 노동권 허용을 꺼리는 이유는 노사 관계와 생산 현장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자의 이익은 정비례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보장된 노동3권을 국가와 자본이 합작하여 하위 법령에서 무력화시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노동의 권리를 억제함으로써 자본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할 때, 국가가 주도하는 법정 강제 조직으로 구성되는 작금의 '노동회의소'는 노동자를 대변-대표하는 조직이 되기는커녕, 이미 존재하는 노동 행정 서비스를 노동자들에게 홍보하고 연결해주는 하향식 관료주의 조직의 성격을 벗어나기 어렵다.

문제는 노동회의소를 통해서 하려는 서비스 업무를 이미 수행하고 있는 기관이 한 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사 기구를 또 만들기 전에 기존의 기관들이 효율적으로 운영되어 업무의 중복과 예산의 낭비는 없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오스트리아 노조 간부에게 노동회의소와 노동조합의 관계에 대해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오스트리아 노동회의소는 노동조합이 장악하고 있다. 노동회의소 지도부를 뽑는데 선거 경험과 조직력에서 앞서는 노동조합을 따라갈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들은 한국 노조 간부가 그랬다.

"그러니까 우리도 노동회의소 하면 되겠네."

턱도 없는 소리라고 답해줬다. 오스트리아는 단일 노총이다. 8개 산별노조가 노총을 좌우한다. 노조조직률은 30%를 넘고 단체협약 적용률은 100%에 육박한다.

현장 수준을 보면, 5인 이상 사업장에는 법적 기구인 종업원평의회(Works Council)가 설치되어 있고, 대부분의 평의회는 산별노조가 지배하고 있다. 무엇보다 오스트리아 사회 자체가 한국적 맥락에서 보기에는 너무나 잘 조직화되어 있다. 노동회의소와 노동조합의 시너지 효과가 가능한 이유다.

그런데 우리나라 노동조합은 제대로 일하는 활동가도 부족할뿐더러, 인력과 조직을 운영하고 자원을 관리하는 노하우는 더더욱 모자라다. 알찬 내용이 떠받치지 못하는 과도한 형식은 무너져내리거나 잘해 봤자 내용의 성장을 짓누르는 굴레가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동조합과 노동회의소는 서로에게 늪이 될 것이다. 현 시기 노동조합의 내용이 너무나 빈약하여 노동회의소 같은 과도한 형식을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노동자 90%는 왜 기존의 노동조합운동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것처럼 비치는가. 가장 큰 이유는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10%조차도 노동3권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후진적 노동 현실에서 찾아야 한다.

1953년 노동법이 제정된 이후로 지속되어온 문제, 즉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을 무력화시키면서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기업별 노사 관계로의 파편화를 조장하는 하위 법령을 개폐하지 않는 한, 90%의 권익 보장을 말하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기와 다를 바 없다.

진정으로 90% 미조직 노동자를 걱정한다면, 정체도 불분명한 국가 주도의 하향식 관료주의 기구를 법률로 강제하려는 비현실적 발상에서 벗어나, 90%가 노조하기 쉽도록 글로벌 수준에 맞게 노동 관련 법제를 개혁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이 그것이다.

한국 사회의 맥락에 맞지도 않고, 무리하여 억지로 만들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노동회의소에 힘 빼지 말자는 얘기다. 재차 말하지만 숭늉은 우물에서 찾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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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
택시노련 기획교선 간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국장, 민주노동당 국제담당, 천영세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다. 근로기준법을 일터에 실현하고 노동자가 기업 경영과 정치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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