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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권 과두제'를 혁파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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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권 과두제'를 혁파하려면 [사회 책임 혁명] 최장집과 전태일의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한 11월 7일 쏟아진 트럼프 방한 뉴스 속에서 '도심 곳곳 트럼프 방한 찬반 집회 '갑호 비상령' 유지', '트럼프 방한 반대 단체, 광화문에서 경찰과 몸싸움' 등 시위 소식을 함께 접할 수 있었다. 이날 신고된 찬반 집회가 100건이 넘었다고 한다. 표시한 의사의 내용과 별개로, 마치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처럼 정형화하고 이벤트화한 정상외교라는 국제거래에 국민이 직접 메시지를 전달하러 나섰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 어린 날 수업 중에 동원되어 길가에서 성조기를 흔들던 시절과 비교하여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사이 얼마나 발전한 것인지. '깡패 외교'를 일삼는 트럼프에게도 우리 국민의 외침이 전해졌으리라 생각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그 사이 참으로 발전을 거듭했다. 특히 지난 10월 29일 1주년을 맞은 촛불혁명은 분명 한국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분수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4·19혁명, 6월 민주화운동 등 앞서 민주주의 전범이 있지만 촛불혁명은 민(民)으로 하여금 비로소 민주주의 본령을 각성케 하고 민주주의의 반대자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는 측면에서, 진정한 민주주의의 시점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동안의 민주주의는 가짜였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시점'이란 말은 그동안의 민주주의가 가짜였다는 말이다. 그렇다. 그간 다수가 민주주의라고 믿은(또는 믿도록 강제된) 체제는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이승만 독재정권부터 박정희 철권통치를 거쳐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민주주의의 순도를 높였다고 믿었다. 일면으로 진실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론 허위이다. 우리가 독재의 독을 뽑아내고 민주주의를 순도를 높이는 사이에 민주주의의 적들은 반(反)민주주의를 우리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로 확산시켜 우리의 정치를 도둑질해갔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도둑질해가고 민주주의의 적들이 우리에게 대신 던져준 것은 민주주의의 외피를 쓴 금권과두제였다. 서구민주주의와 사실상 동의어인 금권과두제는 1987년 이후 독재체제를 대체하여 우리 사회를 재구조화하였다. 그러한 변화, 혹은 도둑질은 전광석화의 속도로 이루어져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것의 정체를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촛불혁명은 금권과두제가 지배하는 대의제 민주주의에 결정적 일격을 가한, 말 그대로 쾌거였다. 시민이 봉기하여 까발린 것은 금권과두제의 추악한 민낯이었다. 금권과 정치권력이 결탁·공모하여 우리 사회를 어떤 방식으로 지배하고 약탈하였는지를 요즘 조금씩 알게 되면서 경악하지 않는 국민이 없을 터이다. 촛불이 없었다면 이러한 '까발림' 또한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까발림'이나 사그라지지 않고 광장을 지키는 촛불이 불편하다. 서구민주주의 국가들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민주주의는 증오의 대상이다. 현대식 민주주의의 발생기로 돌아가면, '통제 불능에 무지한' 민(民)의 통치는 자본주의를 주도한 부르주아에게 애초에 탐탁지 않은 선택이었고, 그들은 자본주의를 지탱할 정치체제로 선거제도를 핵심으로 한 대의제 민주주의를 선택한다. 선거에 의한 대의제 민주주의는 현대 사회에서 대체로 자본의 정치로 수렴되고 있다. 서구에서 혈통에 의한 통치가 돈에 의한 통치로 전환되었듯, '독재에서 돈으로'라는 약간 다른 양상이지만 한국에서도 크게 보아 비슷한 그러한 전환이 이루어졌다. 아주 단순화해 지목하자면 촛불이 불편한 누군가는 금권과두제의 지배집단과 그 하수인들이다.

금권 과두제의 최상위 권력은 당연히 자본권력이다. 의회권력은 금권에 적당히 기생하거나 적극적으로 금권의 이익을 보호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왔다. 탄핵마저 불가능한 저 의회권력은 요즘 유행하는 용어로 적폐 중에 최고의 적폐라고 할 수 있다.(물론 그 추악성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는 현존 적폐가 제대로 청산된다는 전제호 하는 말이긴 하지만 시대정신에 비추어 상황과 무관하게 최고의 적폐라는 규정이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국회는 과두제의 이익에 봉사하는, 동시에 스스로 과두제의 일원임을 자랑스러워하는 반민주주의 세력이다.

▲ 전태일 열사 47주기를 하루 앞둔 11월 12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노조할 권리', '노동법 개정' 등을 요구했다. ⓒ연합뉴스

전태일이 추구한 민주주의를 최장집은 증오한다

1987년 체제는 한 마디로 민주화를 성취하였지만 민주주의를 잃어버린 사회시스템을 낳았다. 민주주의 없는 민주화 이후 자본권력은 선출되지 않는 권력으로 우리 사회의 지배세력이 되었고, 의회권력은 금권과두제를 확대·강화하는 기능을 수행하며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반(反)민주주의를 고착시켰다. 자본만이 민주화한 게 1987년 체제이다. 최소한의 상식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정당체계와 선거제도, 정치체계와 현실정치, 의원의 인적구성과 그들의 정치행태 등에서 민주주의란 단어를 떠올리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루소 등이 지적하였듯 서구 민주주의 역사에서 선거는 애초에 귀족정의 특징을 갖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서구의 부르주와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쌍으로 대의제 민주주의를 실현하면서 귀족정을 금권과두제로 대체하게 된다. 한국의 대의민주주의는 나아가 분단이란 특수 상황에 기반한 철저한 과점구조에다, 독과점과 되먹임 사슬을 형성한 지역주의, 선거 선택지의 체계적 왜곡, 대통령의 정당화 등이 맞물려 민(民)을 구조적으로 배제한 기이한 과두제 정치를 형성하고 발전시켰다.

촛불혁명은 이러한 퇴행적이고 반민주적인 사회시스템 전반에 균열을 만든 일대 사건이었으며, '민의 정치'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젖혔다는 측면에서 노동운동의 새 지평을 연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의 분신에 상응하는 의미를 갖는다. 문제는 과두제 지배집단의 조직적인 저항이다. 의회 및 행정부 권력을 지지하거나 기생함으로써 스스로 권력화한 지식권력이 현재 저항의 선봉에 서 있다. 경찰 등 공권력을 내세운 과거와 다른 양상이다.

과두제에 복무하는 이 지식권력은 1987년 체제가 만들어낸 민주주의 없는 민주화, 즉 금권과두제를 지켜내기 위해 촛불혁명의 역동성을 불온한 것으로 치부하면서 대의제의 기득권을 끊임없이 주장하는 사상투쟁을 벌이고 있다. 여기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은 소위 진보적 정치학자인 최장집을 필두로 한 대의민주주의자들이다. 최장집과 그 문하생들이 사회적 인정 네트워크 통해 그들의 사상을 확산하는 대오는 금권 과두제 집단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금권 과두제는 광장의 폐쇄를 통해서만 가능하기에, 이들은 열린 광장을 어떻게든 다시 닫아 광장 없는 정치를 복원하느라 골몰한다. 광장 없는 정치의 복원은 일차적으로 대의민주주의 이데올로그들의 몫이다. 광장의 폐쇄는 그들의 이익과도 일치한다. 대의민주주의자들의 인정 기반은 국회나 언론 등 과두제의 네트워크이기 때문이다. 대의민주주의의 결정적 균열은 기존 과두제 복무 지식권력에게 권력의 상실을 뜻한다.

앞으로 개헌국면과 맞물려 대의민주주의자들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더 격렬히 반민주주의를 설파할 것이 자명하다. 다행히 우리는 1987년 체제의 '민주화 이후 잃어버린 민주주의'를 촛불혁명으로 되찾을 발판을 마련했다. 촛불을 끄고 광장을 폐쇄하려는 금권과두제에 맞서 직접민주주의의 힘을 지켜내는 일이야말로 매우 중요한 시대적 과업이다. 독재가 사라진 공간에서 민주주의의 적이 누구였는지 성찰하며, 대의민주주의자들의 거짓 민주주의에 맞서 싸우는 것을 광장과 함께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대의민주주의를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다. 시장의 폐해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떤 시장'이냐에 주목하고 '나은 시장'을 만들어내는 데 진력하듯, 직접민주주의에 호응하는 대의민주주의를 구상하고 실천하여야 한다. 시장이 정치를 말살하려들 듯이 대의민주주의자들은 정치를 없애려 한다. 어떠한 영역, 어떠한 유형의 탈정치도 우리는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독재정치나 군주정을 피하기 위한 최고의 정치적 방법은 민주주의이다. 민이 끊임없이 다양한 균열을 만들고 실험적인 것을 포함한 수다한 방식으로 봉합하는 과정과 결부된 대의민주주의는 더 나은 민주주의이고 지금 대의민주주의자들이 말하는 민주주의와 다른 민주주의다. 대의민주주의자들의 기대(혹은 책동?)와 달리 우리는 여전히 더 많은 민주주의를 필요로 하며 요구하고 얻어내야 한다. 원래 민주주의는 민(民)의 몫이었다. 정치적으로 우리는 전태일이 분신한 47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다. 촛불을 들고 광장을 사수하는 일과 전태일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일은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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