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감축 일정을 구체화하고 재생에너지 확대의 기본 방향을 담은 정부의 '에너지 전환 로드맵'은 우리 사회가 이제 새로운 에너지 정책 프레임을 갖게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즉, 우리 사회도 산업 육성과 경제 발전 프레임에 에너지를 종속시키던 관행에서 안전성과 친환경성을 우선하는 에너지 정책을 지향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우리 에너지 정책의 역사를 새롭게 쓰기 시작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역사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에너지 전환 로드맵'을 정말 전환 로드맵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에너지 전환은 일반적으로 '온실가스 저감 배출을 위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에너지 믹스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현재의 에너지 시스템을 변환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기존의 에너지시스템이 기후변화 위험을 가중시키며 지구촌의 지속불가능을 결과하기 때문에 에너지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환시켜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시스템 변환에 필요한 중요한 실천은 에너지 효율 증가를 통한 에너지 사용의 절대적인 감축과 줄어든 에너지 수요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것이다. 여기서 에너지에는 전력만이 아니라 열에너지와 연료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에너지 전환 로드맵, 혹은 에너지 전환 정책에서는 전력 정책만이 아니라 건물 에너지, 수송 에너지 관련 정책이 포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에너지 효율화의 다양한 정책들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전환 정책의 일반론에 비추어보면 정부가 발표한 '에너지 전환 로드맵'은 기본적인 전환의 밑그림과는 거리가 멀다. 현재 발표된 로드맵은 원전 전기 공급의 감축과 재생에너지 전기 공급 확대, 즉, 전력 정책의 그림만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에너지의 또 다른 구성요소인 건물에너지, 수송 에너지 정책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내용에 걸맞은 수식어는 '에너지 전환' 보다는 '전력 믹스 전환'이 아닐까? 무엇보다 이 로드맵이 전환 로드맵으로 불리지 못하는 것은 전환 정책의 핵심인 에너지 효율화를 통한 에너지 감축 정책을 제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에너지 정책 전환을 실천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의 전환 전략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에너지효율화 전략이다. 정부에서 에너지 전환의 모범 사례로 들고 있는 독일의 경우, 재생에너지 정책과 동일하게 에너지 효율화 정책에도 집중하고 있다. 2050년까지 에너지 소비를 1990년 대비 50% 감축하기 위해 에너지효율센터를 설립하여 '국가에너지효율행동계획'을 수립하고, 에너지효율 펀드를 설립하여 에너지 효율 기술 개발 및 사업 투자를 촉진하고 있다. 사물인터넷 등 정보기기 사용으로 인한 에너지 소비 증가를 줄이기 위해 그린 IT 이니셔티브(Green IT Initiative)를 운영하고 산업체 에너지 효율화 향상을 위한 규제 및 인센티브 대안을 마련해오고 있다. 이와 같이 효율화 정책에 중심을 두는 것은 전환 정책의 궁극적인 지향이 온실가스 저감이고 이는 절대적인 소비 감축 없이는 달성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의 전환 로드맵은 예상되는 전력 소비 감소에 맞추어 원전 비중을 낮추고 이를 재생에너지와 가스발전으로 대체한다는 대략의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에너지 생산성, 에너지 효율화를 높여서 절대적인 에너지 소비 감축을 얼마나 하겠다는 목표는 설정하지 않은 것이다. 수급에 대한 계획은 구체적이지만 감축 계획은 불확실하다. 수요 관리 중심으로의 정책 프레임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로드맵이 작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렵게 시작한 새로운 에너지 정책이 실질적인 결실을 맺자면 '전환 로드맵'의 궁극적인 목표, 전환의 비전과 전환 정책의 요소들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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