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두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난해 12월과 지금 2018년 2월을 비교하면 한반도 상황 변화가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주지하다시피, 지난해 12월은 북미 양국의 적대 행동이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서로 충돌의 길로 치닫는 모습이었다.
12월 21~22일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다뤄야 할 시 "북한의 생존과 관련하여 최악의 상황을 만들 것"이며, 한반도에 "폭풍우 구름이 모여들고 있다"는 경고를 하고, 대북 '코피 전략'(bloody nose)이 워싱턴에 회자되는 등 전쟁 직전과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지금은 북한도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여 전 세계 스포츠 축제가 우리 땅에서 열리고 있고, 매년 강화되어 온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이 '올림픽 휴전'을 위해 연기되었으며, 남북한 사이에는 북한이 제의한 남북정상회담 개최 문제를 놓고 초기 준비단계에 들어가 있다. 세상살이는 '죽지만 않으면 어떻게든 살아날 길이 있다'는 말이 실감 난다.
지난해 상황을 잠깐 되돌아보면, 북한은 2016년부터 세 차례의 핵실험을 했고 폭발력 50kt 정도의 '수소탄' 실험에 성공했다. 또 '화성-14형'(사정거리 1만 km 추정)과 '화성-15형'(사정거리 1만 3000km 추정)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하면서 소위 '수소탄을 탑재한 ICBM'의 완성이라는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이에 미국은 무려 3개 항공모함 강습단(carrier strike groups)을 한반도 주변, 태평양에 동시 전개하고, F-22, F-35A, F-35B 스텔스 전투기 3종 등 최신예 항공기를 230대나 동원하여 사상 최대의 한미 공중훈련을 했으며(Vigilant Ace), 국제사회의 대북 정유 제품 수출의 89% 차단, 북한의 해외노동자 2년 내 철수 등을 규정한 유엔안보리 결의 2397호를 채택하는 등 사상 최대 강도와 범위로 대북 압박 작전을 폈다.
그동안 북미 양국은 2013년 봄부터 상호 간에 '핵 공격' 위협을 해오다가 올해 초에는 각자의 지도자들이 상대방을 향해 "핵단추"를 누를 수 있다는 것을 아예 거리낌 없이 내놓고 입에 올리고 있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위협', 그것도 잠재적으로 '핵 전쟁위협'이 마치 특별한 일이 아닌 양 '일상화'되다시피 했다. 문재인 정부가 나름대로 한반도에서 전쟁위협을 낮추기 위해 노력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팽팽한 전쟁위협 상황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 참가 의사를 표명하고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힘으로써 한반도 상황이 급변했다. 2월 8일 김정은은 여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을 자신의 '특사'로 서울에 보내, 2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한 것이다.
이제 평창올림픽이 끝나면, 늦어도 '올림픽 휴전'을 위해 연기됐던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이 재개되고 또 그것이 끝난 후에는, 남북정상회담의 의제, 일정, 장소 등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이다.
필자는 남북정상회담 개최는 2018년 한반도와 동북아 국제정치를 새로운 방향으로 '재구성'하는 강력한 힘이 될 것으로 예측한다. 그런데 우리에게 핵심적인 관심은 남북한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어떻게 '당사자' 지위를 회복하여 그동안 과도하게 '국제화'된 한반도 문제를 우리 민족의 생존과 번영이 확보되는 방향으로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이번에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당장 북한과 미국, 그리고 중국의 협력이 필요하다. 북한은 정상회담의 당사자이지만 정상회담의 의제 설정에서, 특히 '한반도 비핵화' 문제와 관련하여 많은 어려움을 줄 것으로 생각되고,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가 반드시 남북정상회담의 의제에 포함되기를 바라고 있다.
중국은 물론 한반도 비핵화를 원하지만, 그것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입장을 취하면서, 무엇보다도 남북정상회담 자체가 당장 한반도에서 전쟁위협을 낮춰 긴장완화로 이어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장기적으로 평화정착, 비핵화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모습이다.
어느 나라도 남북한이 스스로 결정하여 개최하는 남북정상회담에 반대할 명분을 가진 나라는 없다. 결국, 문제는 우리 정부가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데서 남북한이 '당사자'적 지위를 회복하고 한반도 문제를 새로운 방향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얼마나 강력한 의지와 뛰어난 전략적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여러 난관을 극복하면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또 성과를 낼 것인지 문제이다.
보다 현실적으로,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남북정상회담 의제에 넣을 수 있을 것인지 여부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로서는 '한반도 비핵화'를 정상회담 의제에 넣고 싶어 할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만약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정상회담 의제 중에 포함시키기를 반대하고,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다루지 않는 정상회담에 반대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데 이 경우에도 북한과 미국의 반대를 극복해 낼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의제를 "한반도 비핵화 달성"이나 "한반도 비핵화 문제 해결"이라는 표현이 아닌, 10.4남북정상선언에서처럼 "한반도 핵문제 해결"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면, 북한과 미국도 끝까지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만일 이번 정상회담이 개최되더라도 미리 목표로 했던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정상회담이 성과를 낼 것인지 여부는 실제 정상회담을 열어 협상을 해봐야 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일단 준비를 잘하여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이 중요하다.
올해 정상회담 개최는 남북한과 미국, 중국 모두에게 중요하다. 남한에게는 이번 정상회담이 한반도 (핵)전쟁위협 감소,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정착, 평화통일로 가는 데서 '시대를 가름하는' 중요 결정이 될 것이다. 만일 이번 정상회담의 기회를 놓친다면,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에 지금보다 더 좋은 기회를 찾기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북한은 남북정상회담 개최 카드를 사용함으로써 한반도와 동북아 정치에 충격을 주면서 이미 핵심적인 역할을 시작했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당장 미국의 대북 '군사적 옵션' 사용의 수위와 언급의 빈도를 낮추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한반도를 안정화시키고, 그 바탕 위에서 워싱턴과 협상을 통해 대북 제재 해제, 전쟁 종식, 평화협정 체결, 관계정상화로 나아가기를 원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한편, 미국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한 지도자인 문재인 대통령으로 하여금 북한지도자 김정은을 직접 설득하여 어떻게든지 북한으로 하여금 '비핵화' 문제에서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도록 만들고 싶을 것이며, 만일 그렇게만 된다면 북미회담을 통해 북한과 비핵화 문제를 놓고 본격적인 협상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국은 미국이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이용하여 미국이 자신에게 씌워 놓은 '통제 메커니즘'이 평창올림픽, 남북정상회담에 의해 '금'이 가고 결국 자신에 대한 미국의 통제 틀이 와해되면서 동북아 정치에서 새로운 동학(動學)의 공간이 생겨나기를 기대하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문제'를 우리의 생존과 번영의 방향으로 새롭게 '재구성'하겠다는 의지와 전략이 실현 가능성의 면에서 아주 적은 것만은 아니다. 다시 강조컨대, 어느 나라도 남북정상회담에 내놓고 반대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남북한이 하기에 따라서는, 특히 요새 지극히 '전략적'으로 나오고 있는 김정은의 선택지(選擇枝)를 놓고 볼 때, 더욱 그러하다.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정치와 외교에서의 전략적 능력과 협상의 묘미는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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