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독재자이니까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에게 초청장을 보내는 결정을 빠르게 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김정은의 초청에 즉각 화답한 트럼프의 결정은 국무부와 상의도 없이, 백악관 참모들의 개입이 거의 없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블룸버그>는 "트럼프가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하기로 한 결정은 수십 년 전통의 외교 절차를 박살 낸 역사적인 도박"이라고 표현하며 이 결정을 우려하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다양한 문제점을 짚었다.
우선 미국의 역대 정부라면 대통령이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을 결정하려면 실무급 협상부터 거쳐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을 일이다. 트럼프는 "한 번도 가지 않을 길"을 거의 즉석에서 독단적으로 결정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북미 정상회담 자체가 북한의 위상을 높여주고, 만일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후폭풍을 우려해 대북접촉은 실무급 수준에 맡겨왔다는 점에서 너무나 대조적이다.
"북미정상회담, 협상하는 자리가 아니다"
<블룸버그>는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트럼프의 충격적인 결정은 김정은에게 북한 정권이 그토록 원했던 선물을 준 셈"이라면서 "미국의 현직 대통령이 북한의 최고지도자와 역사적인 회동으로 북한 왕조에 국제적인 정통성을 부여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회의론자들은 김정은의 북미대화 제의는 북핵 무기 프로그램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시간을 벌고, 제재를 완화시키기 위한 책략이라고 보고 있다.
비관론자들은 한 발 더 나아가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돼 오히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으로 반전될 수 있다는 경고도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국내 정치에서 겪는 어려움에서 시선을 돌리려고 북미 정상회담을 서둘렀다는 시각도 나온다. 현재 트럼프는 러시아 커넥션 의혹에 대한 특검 수사와 포르노 스타 스토미 대니얼스가 12년 전 트럼프와 성관계를 가졌다고 폭로하고 나선 성스캔들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반면 백악관 관료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들은 김정은이 그렇게 신뢰할 만한 대상도 아니고, 모종의 책략으로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을 제안했을 가능성은 인정한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 전까지 최대한의 대북 제재를 지속할 경우, 김정은이 대북 제재를 피할 수 있다고 기대하면서 회담을 제의했을지라도 북핵 폐기 등에 합의할 수밖에 없는 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북미 정상회담 제안에 화답한 직후 트위터를 통해 "큰 진전이 이뤄지고 있지만, 합의가 나오기 전까지 제재는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화당의 대표적인 강경파로 꼽히는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도 트럼프의 결단에 대해 조심스럽지만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그레이엄 의원은 "김정은 정권은 그동안 말만 하고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트럼프는 해야 한다면 무력을 사용할 것이라는 점을 북한도 이제는 인정하게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에게 한마디 경고하는데, 트럼프를 만나 기만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면서 "만일 그런 짓을 한다면, 김정은과 그 정권의 최후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에드 로이스 하원외교위원장도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그는 "북한은 미국의 양보와 시간을 벌기 위해 온갖 말과 공허한 약속을 반복했지만, 북미 정상회담 제안은 트럼프 정부의 대북제재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브라이언 샤츠 민주당 상원의원 역시 북미 정상회담 성사를 트럼프의 외교적 성과로 평가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보면 신중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고 이번 회담에 큰 기대를 하기 어렵지만, 전쟁으로 치닫는 것보다는 평화를 위한 대화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트위터에 썼다.
<뉴욕타임스>는 정통 외교에서 벗어난 트럼프의 결단이 회의론자들의 예상과 다른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을 색다른 지점에서 찾았다. 신문에 따르면, 트럼프는 예측불가능한 방식을 선호하고 순간적으로 입장을 바꾸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또한 중요한 결정은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김정은도 트럼프와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두 최고지도자가 의기 투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클린턴 정부 때 대북특사단의 일원이었고 버락 오바마 정부 때 이란과의 핵 협상에도 참여했던 정통 외교관 출신의 웬디 셔먼 전 국무부 차관은 "트럼프와 김정은은 자기의 생각만이 중요하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닮았다"고 평가했다.
헤리티지재단의 안보전문가 제임스 카라파노는 "트럼프가 북미 정상회담에서 협상의 결과물을 내놓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면서도 "하지만 북미회담 제안을 수용함으로써, 그가 쏟아낸 호전적인 메시지로 볼 때 북한과의 전쟁으로 향하고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켰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북미 정상회담은 협상하는 자리가 아니라 만나보는 자리"라는 한 백악관 고위 관료를 말을 전하면서 "이제 정말 관심의 초점은, 결정권을 가진 두 정상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의기 투합할 수 있느냐"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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