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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트럼프-폼페이오를 움직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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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트럼프-폼페이오를 움직이려면 [기고] 우려스러운 트럼프-폼페이오 조합
요즘 미국에서 TV를 틀면 누구보다 먼저, 누구보다 많이 나오는 이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이 결정하는 일이 많으니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런데 트럼프는 유난스레 많이 나온다. 잘 해서 찬사를 받는 경우보다는 추잡한 일이 많다. 포르노 배우와의 관계를 입막음하기 위해 변호사를 통해 돈을 줬다느니, 플레이보이 표지모델과 관계가 있었다느니 등등에서부터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을 퇴임 전날 해고했다, 국무장관을 해외 출장 중에 잘랐다 등등의 이야기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괴상한 사람이 미국 대통령을 하면서 21세기 마지막 냉전의 공간 한반도에 훈풍이 부니 우리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서구의 냉전이 해체된 이후에도 질기게 유지되어오고 있는 동북아의 냉전체제가 드디어 붕괴의 시작을 알리는 것인가 하는 기대도 어렴풋이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길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4월 남북 정상회담, 5월 북미 정상회담이 의미 있는 결실을 얻어야 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인민 생활의 향상'을 추구하고 있다. 2012년 4월 15일 첫 대중연설부터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고 강조하지 않았던가.

인민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은 정권 공고화를 위한 핵심 조건이니 정상회담에 임하는 김정은의 입장은 성과지향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남북화해와 평화의 길은 당초의 목표고, 지지도도 올릴 수 있고, 민족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니 좋은 결실을 얻으려 함이 분명하다.

묘한 것은 트럼프다. 공화당 정부의 전통적인 인식은 북한을 못 믿겠다는 것이다. 부시(George W. Bush) 행정부가 그랬다. 북핵 문제의 원인도 온전히 북한에 있고, 대화가 안 되는 것도, 대화해도 타협점을 찾기 어려운 것도 온통 북한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인식도 다르지 않다. 최대의 압박(maximum pressure)을 가해야 문제해결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인식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김정은의 정상회담 제안을 수용했다.

물론 괴짜 정치인 트럼프의 그야말로 '괴짜 정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센세이셔널한 이벤트를 좋아하는 트럼프의 '한 건 주의'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한반도의 운명이 5월의 첫 북미 정상회담에 의존하는 바가 너무 크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중앙정보국(CIA)이 회담의 성격을 규정하고 이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 대한 행위는 크게 보면 외교와 공작, 전쟁 세 가지이다. 외교는 외교부가, 공작은 정보기관이, 전쟁은 군이 한다. CIA는 공작이 기본기능인 기관이다. 공작은 외교가 잘 통하지 않을 때 상대의 비밀을 빼내거나 매수, 암살 등의 방법으로 국가의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행위이다. CIA는 그런 공작을 하는데 어느 기관보다도 능하다. 잘 알려진 것만 해도 많다. 1953년 이란 모사데크 정권 붕괴, 1966년 가나 엔크루마 정권 전복, 1973년 칠레 아옌데 대통령 암살, 1982년 차드 웨데이 정권 붕괴 등등.

그런 CIA가 외교 전면에 나섰다. 현직 CIA국장 마이크 폼페이오가 국무장관에 지명됐고, 북미 정상회담도 CIA가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폼페이오가 국무장관에 지명되자 미국 언론들은 '그가 매일 트럼프에게 보고하는 데, 트럼프가 그 보고를 마음에 들어 한 것 같다'고 보도했다. 그 가운데에는 북한 관련 보고도 많았을 것이다. 정상회담 결정 전까지는 미국의 접근이 대북압박이었으니 CIA의 보고도 그런 방향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김정은의 정상회담 제안을 받고 몇 시간 고민 끝에 수락했다. 트럼프가 결심 전 고위급 참모들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정상회담에 반대했다. '회담 하고 분명한 성과가 없으면 곤란하다'는 견해였다. 하지만 폼페이오는 찬성했다. '대통령이 충분한 배짱을 가졌으니 해볼 만하다'는 의견이었다.

이렇게 트럼프와 폼페이오가 배짱이 맞아 수락한 정상회담이니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은이 미국에 원하는 것은 체제 안전 보장과 경제적인 지원이다. 이것이 보장될 때는 핵 폐기를 선택할 수 있다. 체제 안전보장·경제지원과 핵 폐기가 차근차근 순서에 따라 교환될 때 북핵문제가 풀려갈 수 있다. 그러려면 정상적인 외교채널이 협상의 중심에 있어야 하고, 주고받기에 능한 외교관들이 회담을 이끌어 가야 한다. 트럼프-폼페이오 조합은 여기서 많이 벗어나 있다. 이들이 과연 북한과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는 외교를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기본 방향은 강력한 제재를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김정은을 만나보는 것도 나쁠 것이 없다. 적을 아는 것은 승리에 도움이 된다' 이런 생각으로 미국이 정상회담을 수용한 것이라면, 이는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식이라면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먼저 요구할 것이고, 이는 다시 북한의 반발과 도발적 행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도발 수위는 이전보다 더 높아질 것이고 한반도 위기는 미국이 북한 핵시설 폭격을 고려했던 1994년 6월의 상황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문재인 정부의 역할이다. 미국의 대통령부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CIA, 국무부, 국방부를 상대로 다양한 채널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왜 협상으로 가야하고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설득해줘야 한다.

민간과 정부, 정부와 민간 사이의 초국가적 연대(transnational coalition)도 추구해야 한다. 한국측 전문가들이 국제적인 세미나 등을 통해 미국의 정부에 의견을 전하고, 한국정부가 미국의 전문가들을 상대로 대화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자리가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이뤄질 때 협의규범(consultation norms)이 생길 수 있다. 미국이 북한과 협의할 때 '한국 의견을 참고해야지'하는 의무감을 갖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상대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관철하려 할 때 가장 유용한 방법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고, CIA 주도의 외교가 우려스럽긴 하지만 외교도 국내정치와 마찬가지로 가능성의 예술이다. 게다가 트럼프로서는 북한과의 협상을 타결로 이끌어야 할 이유도 많이 있다.

트럼프 지지율은 지금 40%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NBC와 <월스트리트저널>이 3월 10~14일 미국 유권자 1100명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표본오차 ±3%)에 따르면, 민주당 지배의 의회를 원하는 응답은 50%, 공화당 지배의 의회를 원한다는 답은 40%에 불과했다. 이대로 가면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에 완패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이 의회권력을 잡으면 그동안 누적된 사안들로 트럼프 탄핵을 추진할 수도 있다. 자신에 대한 불미스런 기사가 끊임없이 나오는 상황에서 트럼프는 이를 덮을 수 있는 성과가 필요하기도 하다. 그만큼 문재인 정부가 이슈집중력을 가지고 미국에 대한 설득에 나서면 효과를 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에 대한 인식을 새삼 분명히 하고 그 방향으로 외교력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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